14년 전의 기적…부산아시안게임 농구 결승전

입력 2016.10.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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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나 감독님, 코치님, 그 경기를 지켜본 관중들까지도 아마 다 포기했을 거예요."

2002년 10월 14일 펼쳐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을 떠올리며 김승현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그만큼 힘든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4쿼터 종료 3분 전까지 우리나라는 84대 71, 무려 13점 차로 중국에 끌려가고 있었다.

농구에서 종료 3분 전 13점 차는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점수가 아니다. 앞서고 있는 팀이 지공을 펼친다면 상대 팀은 점수 차를 좁힐 수 있는 공격 기회를 몇 차례 잡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다 상대가 당시 NBA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된 야오밍과 아시아 최고의 포워드 후웨이동이 버틴 강호 중국이라면 승부를 뒤집을 확률은 더 희박해진다.

그런데 모두 포기하려던 그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적이 그 날 그 코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벽과 같았던 중국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은 한국 스포츠 사에서도 명경기로 손꼽힌다. 서장훈과 이상민, 문경은, 전희철, 현주엽, 김승현 등 당시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 농구 대표팀은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에 아시아 농구 정상 탈환을 노렸다.


하지만 상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와 1998년 방콕 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에게 20여 점 차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한국 농구에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그 때문에 한국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표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승현은 "중국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며 "야오밍이 있고 노장이었지만 후웨이동도 있고 잘하는 선수가 많았다. 그런 중국을 이기리라 상상도 못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적과도 같았던 그 날의 승리

야오밍이 버틴 중국은 역시 강했다. 특히 야오밍은 2m 26cm의 거대한 신장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슛 동작과 몸놀림으로 골 밑을 휘저었다. 서장훈은 야오밍을 막다가 1쿼터에만 반칙 3개를 범할 정도였다.

4쿼터 중반까지 한국은 야오밍과 중국 선수들의 외곽슛에 밀려 한 번의 리드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 3분 전 84대 71, 무려 13점 차로 점수 차는 벌어졌고 우리나라는 패색이 짙어갔다.

그런데 이때 김진 감독이 승부수로 김승현을 투입했다. 김승현의 투입에도 반전을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김승현 본인도 "누구나 다 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경기를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며 "단지 끝까지 한 번 해봐야겠다"는 정도로 코트에 들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김승현이 특유의 스피드를 활용해 경기를 이끌어 나가면서 한국의 대역전극은 시작됐다. 김승현은 당시 "상대 가드가 발이 느렸고 힘이 세지도 않아서 자신이 맡으면 한, 두 번 정도 공을 뺏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종료 44초 전 김승현은 가로채기를 성공한 뒤 득점을 올리며 추격에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시 현주엽의 득점으로 90대 85, 5점 차로 점수 차를 좁힌 종료 22초 전 김승현의 결정적인 가로채기가 나왔다. 야오밍의 패스를 김승현이 공을 가로챈 것이다.

김승현은 이 공을 문경은에게 패스했고 극적인 3점 슛이 터졌다. 문경은 감독은 경기 전 연습상황에서 김승현에게 항상 '승현아 나는 (3점 선에) 발만 맞추고 있을 게'라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정말 그 순간 "문경은 선수가 발을 맞추고 3점 슛을 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김승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90대 88, 단 2점 차까지 경기가 좁혀졌다. 전희철이 상대 선수였던 후웨이동을 파울로 끊었고 후웨이동에게는 자유투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때 아시아 최고의 포워드로 불리던 후웨이동이 거짓말처럼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쳤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에서 현주엽이 종료 4초 전 극적인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연장으로 이끌었다.


기적적인 동점으로 분위기를 탄 한국은 연장에서도 기세를 몰아 서장훈의 3점 슛으로 포문을 연 뒤 연장전 내내 앞서가며 102대 100, 극적인 승리를 완성했다. 20년 만에 한국 남자 농구가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김승현은 당시 승리에 대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이었고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고 표현했다.


한국 스포츠史에 길이 남을 부산아시안게임

우리 대표팀은 중국과의 결승에 앞서 필리핀과 치른 준결승에서도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68대 66으로 뒤진 경기 종료 직전 가드 이상민이 상대 수비수 2명을 속임 동작으로 따돌린 3점 버저비터를 성공하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준결승부터 결승까지 이어진 두 번의 기적적인 승리로 20년 만에 아시아 농구 정상에 오른 한국 농구의 그 날은 많은 스포츠팬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아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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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년 전의 기적…부산아시안게임 농구 결승전
    • 입력 2016-10-14 18:08:51
    취재K
"선수들이나 감독님, 코치님, 그 경기를 지켜본 관중들까지도 아마 다 포기했을 거예요."

2002년 10월 14일 펼쳐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을 떠올리며 김승현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그만큼 힘든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4쿼터 종료 3분 전까지 우리나라는 84대 71, 무려 13점 차로 중국에 끌려가고 있었다.

농구에서 종료 3분 전 13점 차는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점수가 아니다. 앞서고 있는 팀이 지공을 펼친다면 상대 팀은 점수 차를 좁힐 수 있는 공격 기회를 몇 차례 잡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다 상대가 당시 NBA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된 야오밍과 아시아 최고의 포워드 후웨이동이 버틴 강호 중국이라면 승부를 뒤집을 확률은 더 희박해진다.

그런데 모두 포기하려던 그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기적이 그 날 그 코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벽과 같았던 중국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전은 한국 스포츠 사에서도 명경기로 손꼽힌다. 서장훈과 이상민, 문경은, 전희철, 현주엽, 김승현 등 당시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 농구 대표팀은 뉴델리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에 아시아 농구 정상 탈환을 노렸다.


하지만 상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와 1998년 방콕 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에게 20여 점 차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한국 농구에는 벽과 같은 존재였다. 그 때문에 한국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표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승현은 "중국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며 "야오밍이 있고 노장이었지만 후웨이동도 있고 잘하는 선수가 많았다. 그런 중국을 이기리라 상상도 못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적과도 같았던 그 날의 승리

야오밍이 버틴 중국은 역시 강했다. 특히 야오밍은 2m 26cm의 거대한 신장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슛 동작과 몸놀림으로 골 밑을 휘저었다. 서장훈은 야오밍을 막다가 1쿼터에만 반칙 3개를 범할 정도였다.

4쿼터 중반까지 한국은 야오밍과 중국 선수들의 외곽슛에 밀려 한 번의 리드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 3분 전 84대 71, 무려 13점 차로 점수 차는 벌어졌고 우리나라는 패색이 짙어갔다.

그런데 이때 김진 감독이 승부수로 김승현을 투입했다. 김승현의 투입에도 반전을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김승현 본인도 "누구나 다 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경기를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며 "단지 끝까지 한 번 해봐야겠다"는 정도로 코트에 들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김승현이 특유의 스피드를 활용해 경기를 이끌어 나가면서 한국의 대역전극은 시작됐다. 김승현은 당시 "상대 가드가 발이 느렸고 힘이 세지도 않아서 자신이 맡으면 한, 두 번 정도 공을 뺏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종료 44초 전 김승현은 가로채기를 성공한 뒤 득점을 올리며 추격에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시 현주엽의 득점으로 90대 85, 5점 차로 점수 차를 좁힌 종료 22초 전 김승현의 결정적인 가로채기가 나왔다. 야오밍의 패스를 김승현이 공을 가로챈 것이다.

김승현은 이 공을 문경은에게 패스했고 극적인 3점 슛이 터졌다. 문경은 감독은 경기 전 연습상황에서 김승현에게 항상 '승현아 나는 (3점 선에) 발만 맞추고 있을 게'라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정말 그 순간 "문경은 선수가 발을 맞추고 3점 슛을 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김승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90대 88, 단 2점 차까지 경기가 좁혀졌다. 전희철이 상대 선수였던 후웨이동을 파울로 끊었고 후웨이동에게는 자유투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때 아시아 최고의 포워드로 불리던 후웨이동이 거짓말처럼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쳤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에서 현주엽이 종료 4초 전 극적인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연장으로 이끌었다.


기적적인 동점으로 분위기를 탄 한국은 연장에서도 기세를 몰아 서장훈의 3점 슛으로 포문을 연 뒤 연장전 내내 앞서가며 102대 100, 극적인 승리를 완성했다. 20년 만에 한국 남자 농구가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김승현은 당시 승리에 대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이었고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고 표현했다.


한국 스포츠史에 길이 남을 부산아시안게임

우리 대표팀은 중국과의 결승에 앞서 필리핀과 치른 준결승에서도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68대 66으로 뒤진 경기 종료 직전 가드 이상민이 상대 수비수 2명을 속임 동작으로 따돌린 3점 버저비터를 성공하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준결승부터 결승까지 이어진 두 번의 기적적인 승리로 20년 만에 아시아 농구 정상에 오른 한국 농구의 그 날은 많은 스포츠팬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아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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