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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범죄를 반성한 왕족…일왕 숙부의 죽음
입력 2016.11.05 (10:48) 취재K
 11월 4일 일본 도쿄에서는 한국인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은 행사가 엄수됐다. '미카사노미야' 친왕의 장례식이었다. 친왕은 왕의 아들이나 형제 가운데, 왕위 계승 1순위인 왕세자를 제외한 사람을 일컫는다. '미카사노미야'는 현 아키히토 일왕의 숙부이자 히로히토 전(前) 일왕의 막내 동생이다.


■ ‘전범’ 일왕의 동생…‘평화주의자’ 일왕의 숙부

히로히토 일왕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일본을 통치하며 전쟁을 지휘한 사람, 사실상 전범이었지만 맥아더의 옹호로 전범 재판에서 제외됐던 사람, 그리고 '신의 위치'에서 '인간의 위치'로 내려오면서 자리를 보존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아키히토 현 일왕은 그의 아들이다. 아버지와는 달리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전쟁 범죄를 반성하는 뜻을 밝혔고, 아베 총리가 못마땅해 하는 평화헌법의 수호자로 불리고 있다.

■ 1세기에 걸친 삶…
미카사노미야 친왕은 전범의 동생이자 평화주의자의 숙부이다. 그 자신 전쟁범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고백해, 일본인의 양심에 경종을 울린 인물이다. 지난 10월 27일 도쿄 시내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세. 2016년 5월 급성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아왔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1세기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오전 9시, 운구 행렬은 시민들의 배웅 속에 도쿄 아카사카 왕실 지역의 미카사 궁을 출발한 뒤, 9시 30분 분쿄쿠의 토시마 오카 묘지에 도착했다.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 등 왕실 가족과 아베 총리 등 각계 인사 600여 명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관례에 따라, 일왕 부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영결실은 10시에 시작됐다. 분향과 조사 낭독, 그리고 역사연구에 헌신했던 고인의 삶을 회고하는 의식이 이어진 뒤, 참석자들은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묘지 앞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친절하고 온화하며 배려가 넘치는 사람'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고령층은 차별 없이 사람을 대했던,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의례적인 인사말에 그치지 않는 것은 고인의 삶이 그만큼 치열하고도 투명했음을 많은 사람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갈망했던 일본 사람들에게는 양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 전쟁범죄를 반성한 왕족

그는 1879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을 통치한 다이쇼 일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학문에 뜻이 있었지만, 형이 일으킨 전쟁의 참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전쟁 당시, 중국 난징과 일본 최고 지휘부의 참모로 일했다. 훗날 저서를 통해, '전쟁의 죄악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탓에 지금도 양심의 가책이 끊이지 않는다'고 술회했다.


전쟁 이후, 역사학자로서 헌신하면서 도쿄대에서 고대 중동사를 전공했고, 일본 레크리에션 협회의 총재로도 활동했다. 협회원들은 춤과 스케이트를 하며 즐거워하고,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한결같이 다정했던 고인을 기억하고 있다.




미카사노미야는 1998년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대해 중국인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은 2006년 출간된 장쩌민의 외교방문 실록에 자세히 등장한다.

실록에 따르면, 일왕이 주최한 궁중 만찬에서 장쩌민 전 주석에게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당시 육군 장교로서 난징에 주둔한 적이 있다' '일본군의 폭행을 눈으로 보고 지금도 매우 부끄럽고 마음에 걸린다' '중국인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며…

그는 급진파는 아니었다. 일본 왕실의 전통을 중시했다. 2005년, 여성 왕위계승을 인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세 생일을 맞았을 때는,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을 바란다' '70년 이상 나를 지지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즐겁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메시시를 남겼다. 일본인의 양심을 일깨운 목소리는 모든 사람의 평화로운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침략전쟁의 책임을 부인하고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진작부터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한 왕족의 삶과 죽음이 일본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일본의 전쟁범죄를 반성한 왕족…일왕 숙부의 죽음
    • 입력 2016-11-05 10:48:02
    취재K
 11월 4일 일본 도쿄에서는 한국인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은 행사가 엄수됐다. '미카사노미야' 친왕의 장례식이었다. 친왕은 왕의 아들이나 형제 가운데, 왕위 계승 1순위인 왕세자를 제외한 사람을 일컫는다. '미카사노미야'는 현 아키히토 일왕의 숙부이자 히로히토 전(前) 일왕의 막내 동생이다.


■ ‘전범’ 일왕의 동생…‘평화주의자’ 일왕의 숙부

히로히토 일왕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일본을 통치하며 전쟁을 지휘한 사람, 사실상 전범이었지만 맥아더의 옹호로 전범 재판에서 제외됐던 사람, 그리고 '신의 위치'에서 '인간의 위치'로 내려오면서 자리를 보존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아키히토 현 일왕은 그의 아들이다. 아버지와는 달리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전쟁 범죄를 반성하는 뜻을 밝혔고, 아베 총리가 못마땅해 하는 평화헌법의 수호자로 불리고 있다.

■ 1세기에 걸친 삶…
미카사노미야 친왕은 전범의 동생이자 평화주의자의 숙부이다. 그 자신 전쟁범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고백해, 일본인의 양심에 경종을 울린 인물이다. 지난 10월 27일 도쿄 시내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세. 2016년 5월 급성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아왔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1세기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오전 9시, 운구 행렬은 시민들의 배웅 속에 도쿄 아카사카 왕실 지역의 미카사 궁을 출발한 뒤, 9시 30분 분쿄쿠의 토시마 오카 묘지에 도착했다.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 등 왕실 가족과 아베 총리 등 각계 인사 600여 명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관례에 따라, 일왕 부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영결실은 10시에 시작됐다. 분향과 조사 낭독, 그리고 역사연구에 헌신했던 고인의 삶을 회고하는 의식이 이어진 뒤, 참석자들은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묘지 앞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친절하고 온화하며 배려가 넘치는 사람'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고령층은 차별 없이 사람을 대했던,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의례적인 인사말에 그치지 않는 것은 고인의 삶이 그만큼 치열하고도 투명했음을 많은 사람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갈망했던 일본 사람들에게는 양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 전쟁범죄를 반성한 왕족

그는 1879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을 통치한 다이쇼 일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학문에 뜻이 있었지만, 형이 일으킨 전쟁의 참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전쟁 당시, 중국 난징과 일본 최고 지휘부의 참모로 일했다. 훗날 저서를 통해, '전쟁의 죄악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탓에 지금도 양심의 가책이 끊이지 않는다'고 술회했다.


전쟁 이후, 역사학자로서 헌신하면서 도쿄대에서 고대 중동사를 전공했고, 일본 레크리에션 협회의 총재로도 활동했다. 협회원들은 춤과 스케이트를 하며 즐거워하고,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한결같이 다정했던 고인을 기억하고 있다.




미카사노미야는 1998년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대해 중국인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은 2006년 출간된 장쩌민의 외교방문 실록에 자세히 등장한다.

실록에 따르면, 일왕이 주최한 궁중 만찬에서 장쩌민 전 주석에게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당시 육군 장교로서 난징에 주둔한 적이 있다' '일본군의 폭행을 눈으로 보고 지금도 매우 부끄럽고 마음에 걸린다' '중국인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며…

그는 급진파는 아니었다. 일본 왕실의 전통을 중시했다. 2005년, 여성 왕위계승을 인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세 생일을 맞았을 때는,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을 바란다' '70년 이상 나를 지지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즐겁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메시시를 남겼다. 일본인의 양심을 일깨운 목소리는 모든 사람의 평화로운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침략전쟁의 책임을 부인하고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진작부터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한 왕족의 삶과 죽음이 일본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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