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분노가 만들어낸 ‘트럼프 대통령’

입력 2016.11.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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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의 정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해 6월 16일 자신 회사 건물인 뉴욕 맨해튼 트럼프 타워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예측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신의 사업을 위해 이름값을 높이려는 우발사건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출마 선언 1년도 채 안 돼 미국 정치 명문가 출신인 젭 부시를 비롯해 16명의 공화당 경선 후보 모두를 가볍게 물리쳤다. 이후에도 공화당 주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낙마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마침내 올해 7월 21일 도널드 트럼프는 에이브러햄 링컨 당이라는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별명 중 하나가 '테플론 트럼프'다. 무엇을 해도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테플론 프라이팬처럼 트럼프는 히스패닉, 이슬람교도, 여성, 장애인 등 비하 발언으로 숱하게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보통 정치인이라면 이 중 한 가지만 말했어도 진작 정치 생명이 끝났을 것이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이러한 막말을 무기로 공화당 대선 후보를 거머쥐었다.

3개월여에 걸친 선거전에서도 트럼프는 여성 혐오, 인종 혐오, 이슬람 혐오 등 온갖 막말을 쏟아냈고 모든 언론과 여론 조사 기관들은 클린턴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미국 국민들의 도널드 트럼프를 후보를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워싱턴 아웃사이더가 만들어낸 트럼피즘(Trumpism)'은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이 개표방송을 보면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AP)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이 개표방송을 보면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AP)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에 환호한 이유는?

'트럼피즘'에 대한 통일적인 정의는 아직 없지만, 일반적으로 "트럼프식 언행과 생각하는 방식에 열광하는 현상"을 말한다. 소수의 정치 기득권층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쌓인 국민의 피로와 불만이 극에 달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져 트럼피즘이 생겨난 것이다.

미 공화당 내에서 조차 환영받지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였지만 워싱턴 정치에 대한 반발과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가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부상을 가져왔다. 우선 미국 경제는 25년 전에 비해 크게 악화했다. 근로계층 특히 저소득 백인 근로계층은 세계화, 기술변화 등으로 경제적 지위가 떨어졌고 고용사정도 크게 나빠졌다. 양극화도 심화하였다.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소득은 42년 전보다 낮아졌다. 소득 최하위 구간 계층의 실질 임금은 대략 60년 전 수준으로 빈부격차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미국 워싱턴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했던 무역과 금융 자유화 같은 개혁은 저소득층에 혜택을 주지 못했다. 생활 수준이 정체 또는 후퇴한 이들은 " 미국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 둘 다일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가 "미국의 모든 문제를 교역과 이민 탓"이라는 '틀린 주장'을 해도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통제권 밖에 있는 힘에 강타당하고 불공평한 결과에 노출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모든 세대는 이전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오랜 전제가 의심받게 되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새로운 사람을 찾게 됐다. 자신들의 정부가 미국을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간 부유한 은행가들을 구제하는 한편 일자리와 집을 잃은 수백만 보통 미국인들을 위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뉴욕 제이컵 재빗 컨벤션센터에서 힐러리 클린턴 진영 관계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TV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AP)뉴욕 제이컵 재빗 컨벤션센터에서 힐러리 클린턴 진영 관계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TV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AP)

이번 선거에서 저소득 백인 노동자층 중심으로 한 워싱턴 정치에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이 투표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몰표를 몰아줬다. 이른바 쇠락한 공업 지역이라는 러스트벨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합 지역에서 트럼프 후보가 압승한 비결이다.

“트럼피즘, 새로운 정치 지향”

실리콘 밸리의 거물급 인사 중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 겸 페이스북 이사는 최근 "트럼피즘(트럼프 주의)은 미친 것이 아니며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터 틸은 "트럼프는 공화당이 레이건 시대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고, 한 정당의 개조를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틸은 "트럼프의 말이나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의 판단력이 흐려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리더십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주제는 미국을 정상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라면서 "정상적인 국가는 5천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지 않으며, 5개의 선전포고도 없는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자들이 개표방송 진행되는 CNN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비난하는 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AP)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자들이 개표방송 진행되는 CNN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비난하는 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AP)

그러나 트럼프의 공약은?

트럼프의 공약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트럼프 후보가 약속하는 거의 모든 미 부유층과 기업 감세를 수반한 또 다른 낙수효과 경제는 이전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트럼프의 공약대로 중국, 멕시코, 기타 미 교역상대국들과 무역전쟁을 시작하면 모든 미국인은 더 가난해지고 이슬람 국가(IS), 글로벌 테러리즘,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인 핵심문제 해결에 새로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잇따랐다, 기술, 교육, 또는 인프라 투자에 쓰일 수 있는 돈을 미국·멕시코 장벽을 쌓는 데 투입하는 것은 최악의 자원 낭비라는 것이다.

조지타운대 E J 디온 주니어 교수는 선거 직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트럼프뿐 아니라 트럼피즘도 물리쳐야 한다’는 칼럼에서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언행과 여성혐오, 탐욕, 복수심이 대선 이후에도 남아선 안 되지만 '트럼피즘'은 백인 우월주의와 극우주의가 활개 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미국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지, 그리고 전 세계는 충격 속에서 현실화된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 또 다른 불확실성 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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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신과 분노가 만들어낸 ‘트럼프 대통령’
    • 입력 2016-11-09 16:54:38
    취재K
워싱턴에서의 정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해 6월 16일 자신 회사 건물인 뉴욕 맨해튼 트럼프 타워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예측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자신의 사업을 위해 이름값을 높이려는 우발사건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출마 선언 1년도 채 안 돼 미국 정치 명문가 출신인 젭 부시를 비롯해 16명의 공화당 경선 후보 모두를 가볍게 물리쳤다. 이후에도 공화당 주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낙마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마침내 올해 7월 21일 도널드 트럼프는 에이브러햄 링컨 당이라는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별명 중 하나가 '테플론 트럼프'다. 무엇을 해도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테플론 프라이팬처럼 트럼프는 히스패닉, 이슬람교도, 여성, 장애인 등 비하 발언으로 숱하게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보통 정치인이라면 이 중 한 가지만 말했어도 진작 정치 생명이 끝났을 것이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이러한 막말을 무기로 공화당 대선 후보를 거머쥐었다.

3개월여에 걸친 선거전에서도 트럼프는 여성 혐오, 인종 혐오, 이슬람 혐오 등 온갖 막말을 쏟아냈고 모든 언론과 여론 조사 기관들은 클린턴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미국 국민들의 도널드 트럼프를 후보를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워싱턴 아웃사이더가 만들어낸 트럼피즘(Trumpism)'은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이 개표방송을 보면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AP)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에 환호한 이유는?

'트럼피즘'에 대한 통일적인 정의는 아직 없지만, 일반적으로 "트럼프식 언행과 생각하는 방식에 열광하는 현상"을 말한다. 소수의 정치 기득권층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쌓인 국민의 피로와 불만이 극에 달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져 트럼피즘이 생겨난 것이다.

미 공화당 내에서 조차 환영받지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였지만 워싱턴 정치에 대한 반발과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가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부상을 가져왔다. 우선 미국 경제는 25년 전에 비해 크게 악화했다. 근로계층 특히 저소득 백인 근로계층은 세계화, 기술변화 등으로 경제적 지위가 떨어졌고 고용사정도 크게 나빠졌다. 양극화도 심화하였다.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소득은 42년 전보다 낮아졌다. 소득 최하위 구간 계층의 실질 임금은 대략 60년 전 수준으로 빈부격차도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미국 워싱턴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장담했던 무역과 금융 자유화 같은 개혁은 저소득층에 혜택을 주지 못했다. 생활 수준이 정체 또는 후퇴한 이들은 " 미국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 둘 다일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가 "미국의 모든 문제를 교역과 이민 탓"이라는 '틀린 주장'을 해도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통제권 밖에 있는 힘에 강타당하고 불공평한 결과에 노출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모든 세대는 이전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오랜 전제가 의심받게 되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새로운 사람을 찾게 됐다. 자신들의 정부가 미국을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간 부유한 은행가들을 구제하는 한편 일자리와 집을 잃은 수백만 보통 미국인들을 위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뉴욕 제이컵 재빗 컨벤션센터에서 힐러리 클린턴 진영 관계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TV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AP)
이번 선거에서 저소득 백인 노동자층 중심으로 한 워싱턴 정치에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이 투표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몰표를 몰아줬다. 이른바 쇠락한 공업 지역이라는 러스트벨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합 지역에서 트럼프 후보가 압승한 비결이다.

“트럼피즘, 새로운 정치 지향”

실리콘 밸리의 거물급 인사 중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 겸 페이스북 이사는 최근 "트럼피즘(트럼프 주의)은 미친 것이 아니며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터 틸은 "트럼프는 공화당이 레이건 시대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고, 한 정당의 개조를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틸은 "트럼프의 말이나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의 판단력이 흐려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리더십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가 말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주제는 미국을 정상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라면서 "정상적인 국가는 5천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지 않으며, 5개의 선전포고도 없는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자들이 개표방송 진행되는 CNN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비난하는 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AP)
그러나 트럼프의 공약은?

트럼프의 공약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트럼프 후보가 약속하는 거의 모든 미 부유층과 기업 감세를 수반한 또 다른 낙수효과 경제는 이전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트럼프의 공약대로 중국, 멕시코, 기타 미 교역상대국들과 무역전쟁을 시작하면 모든 미국인은 더 가난해지고 이슬람 국가(IS), 글로벌 테러리즘,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인 핵심문제 해결에 새로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잇따랐다, 기술, 교육, 또는 인프라 투자에 쓰일 수 있는 돈을 미국·멕시코 장벽을 쌓는 데 투입하는 것은 최악의 자원 낭비라는 것이다.

조지타운대 E J 디온 주니어 교수는 선거 직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트럼프뿐 아니라 트럼피즘도 물리쳐야 한다’는 칼럼에서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언행과 여성혐오, 탐욕, 복수심이 대선 이후에도 남아선 안 되지만 '트럼피즘'은 백인 우월주의와 극우주의가 활개 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미국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지, 그리고 전 세계는 충격 속에서 현실화된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 또 다른 불확실성 시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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