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 ‘오 마이 파파’

입력 2016.11.11 (21:39) 수정 2016.11.1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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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직후 우리나라를 찾아와, 2만명이 넘는 고아 등을 돌보며 평생을 바친 외국인 신부가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았던 신부의 헌신, 김빛이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57년, 피난민 판자촌이 가득한 부산에 27살의 벨기에 신부가 찾아왔습니다.

알로이시오, 한국 이름 ‘소재건’.

천 여명의 전쟁 고아들을 위해 기숙사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함께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그는 고아들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녹취> 소재건 신부 : “내 희망은 보통 가정의 아버지 희망과 똑같습니다. 재밌게 살고, 교육 잘 받고."

매일 편지로 전 세계에서 후원금을 호소했고, 루게릭병 판정을 받아 손을 움직이지 못하자, 영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온 몸을 바쳐 세운 학교는 이제 미혼모 자녀 기숙사 시설로 바뀌었습니다.

<녹취> 정말지(수녀/마리아수녀회 대표) : "신부님 살아계실 때 여기 살았던 아이들은, 신부님에 대해서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죠. 살아갈 수록 더 그런가봐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최고의 시설, 정작 자신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낡은 가방과 단벌 사제복이 전부였습니다.

<녹취> “(이 옷을) 57년도에 입고 나오셔서, 다 떨어지고."

고아와 미혼모 자녀들의 아버지, '오 마이 파파'...소재건 신부.

그의 헌신은 작은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로 맺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빛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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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 ‘오 마이 파파’
    • 입력 2016-11-11 21:37:30
    • 수정2016-11-11 21:43:15
    뉴스9(경인)
<앵커 멘트>

625 전쟁 직후 우리나라를 찾아와, 2만명이 넘는 고아 등을 돌보며 평생을 바친 외국인 신부가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았던 신부의 헌신, 김빛이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57년, 피난민 판자촌이 가득한 부산에 27살의 벨기에 신부가 찾아왔습니다.

알로이시오, 한국 이름 ‘소재건’.

천 여명의 전쟁 고아들을 위해 기숙사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함께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그는 고아들의 아버지가 됐습니다.

<녹취> 소재건 신부 : “내 희망은 보통 가정의 아버지 희망과 똑같습니다. 재밌게 살고, 교육 잘 받고."

매일 편지로 전 세계에서 후원금을 호소했고, 루게릭병 판정을 받아 손을 움직이지 못하자, 영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온 몸을 바쳐 세운 학교는 이제 미혼모 자녀 기숙사 시설로 바뀌었습니다.

<녹취> 정말지(수녀/마리아수녀회 대표) : "신부님 살아계실 때 여기 살았던 아이들은, 신부님에 대해서 굉장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죠. 살아갈 수록 더 그런가봐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최고의 시설, 정작 자신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낡은 가방과 단벌 사제복이 전부였습니다.

<녹취> “(이 옷을) 57년도에 입고 나오셔서, 다 떨어지고."

고아와 미혼모 자녀들의 아버지, '오 마이 파파'...소재건 신부.

그의 헌신은 작은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로 맺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빛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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