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특강] 개인 문화 vs 전체 문화

입력 2016.12.07 (08:48) 수정 2016.12.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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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근철입니다.

언어 속에 숨어있는 생각과 문화를 들여다보고 그 이유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

오늘도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한국어에서는 성을 이름보다 먼저 씁니다.

그럼 영어에서는 어떨까요? 알고 계시는 것처럼 이름이 성보다 먼저 나오죠.

그래서 이름을 영어로는 처음에 나온다는 의미로 first name, 성은 끝에 나온다 해서 last name이라고 부릅니다.

- 이근철=이(성) + 근철(이름) - Jake Lee = Jake(이름), Lee(성)

영어권 문화에서는 이름 말고도 우편물의 주소, 그리고 연도와 날짜를 표시(30th, Nov, 2016)할 때도 한국의 '큰 것 -> 작은 것'의 순서와는 반대로, 가장 작은 단위부터 시작해 큰 것으로 끝을 냅니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 이에 대한 설명을 드리기 전에 다음의 간단한 실험을 한번 보실까요?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는 상황입니다. 차가 부족한 듯 보이는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묻습니다.

"어머님, 차를 더 드시겠어요?" 이때 이 문장을 그 의미는 유지하면서 가장 짧게 줄여보세요!

- 어머님, 차를 더 드시겠어요? - 더 드시겠어요? - 차 더?

아마 대부분 '더 드시겠어요?'라고 하셨을 테고, 반말에 가까운 '차 더?'를 선택한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즉, 우리말에서는 핵심어구를 중심으로 전체 내용을 짧게 줄이면 '동사부분'이 남게 됩니다.

그러면 영어는 어떨까요?

"차를 더 드시겠어요?"라는 뜻의 "Would you like more tea?"라는 문장을 가지고 원어민에게 앞과 똑같은 실험을 하면 어떤 부분이 남을까요?

- Would you like more tea? - Would you like? - More tea?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원어민들은 거의 대부분 'More tea?'라고 줄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영어에서는 의사전달을 위해 남게 되는 핵심어구가 바로 명사라는 말이 됩니다.

앞선 본 <이름, 주소, 연도>의 표기법과 방금한 실험이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개인성을 중요시 하는 서양/미국에서는 각각의 개체가 전체보다 더 우선시됩니다.

그래서 가문을 보여주는 성보다, 개인을 드러내는 이름을 먼저 표기하는 것이죠.

반면에 한국에서는 개체보다는 전체의 큰 틀을 더 중요시하고 또 개체들도 서로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계지향적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이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서, 한국어에서는 화자나 청자의 입장인 관계를 고려한 '동사와 그 존칭어법'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그래서 핵심부분을 남기면 동사(더 드시겠어요?)가 되지만, 영어에서는 개인의 속성을 고려한 '명사위주의 언어생활'을 더 선호하기에 문장 속에서 관계를 보여주는 부분(Would you like~?)은 생략이 되고 명사(More tea?)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고방식을 언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까지 확장해보면 새로운 시각이 가능해집니다.

2007년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에서 32명의 희생자를 냈던 총격사건이 있었는데요.

이 범인이 한국계 2세로 밝혀지자, 한국인들 대부분은 마음이 불편해 지거나 미안해했습니다.

당시 미국주재 한국대사는 32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32일간의 단식을 제안했고, 당시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위안메시지가 3번이나 희생자에게 전달되기도 했죠.

그런데 정작 미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이런 집단 죄의식(collective guilt)에 대해 이해가 쉽지 않다는 기사를 냈고, 일부 미국블로거들은 개인문제를 한국전체가 나서서 하는 사과에 강한 반감을 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마치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시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가 매번 나서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블로거들의 논리도 이해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개인의 속성만을 따지는 미국인들의 눈에는 비논리적으로 보였을 겁니다.

이렇듯 같은 사건을 두고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인식과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반대로 한국이 미국에 요청할 지도 모르는 미래의 사과요구가 어깃장으로 보이지 않고 설득력 있게 통역되고 논리적으로 표현되어 그들의 마음을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언어, 생각, 문화의 이근철 이었습니다. Have a fabulous day!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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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에 특강] 개인 문화 vs 전체 문화
    • 입력 2016-12-07 08:50:58
    • 수정2016-12-07 09: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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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근철입니다.

언어 속에 숨어있는 생각과 문화를 들여다보고 그 이유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

오늘도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한국어에서는 성을 이름보다 먼저 씁니다.

그럼 영어에서는 어떨까요? 알고 계시는 것처럼 이름이 성보다 먼저 나오죠.

그래서 이름을 영어로는 처음에 나온다는 의미로 first name, 성은 끝에 나온다 해서 last name이라고 부릅니다.

- 이근철=이(성) + 근철(이름) - Jake Lee = Jake(이름), Lee(성)

영어권 문화에서는 이름 말고도 우편물의 주소, 그리고 연도와 날짜를 표시(30th, Nov, 2016)할 때도 한국의 '큰 것 -> 작은 것'의 순서와는 반대로, 가장 작은 단위부터 시작해 큰 것으로 끝을 냅니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 이에 대한 설명을 드리기 전에 다음의 간단한 실험을 한번 보실까요?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는 상황입니다. 차가 부족한 듯 보이는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묻습니다.

"어머님, 차를 더 드시겠어요?" 이때 이 문장을 그 의미는 유지하면서 가장 짧게 줄여보세요!

- 어머님, 차를 더 드시겠어요? - 더 드시겠어요? - 차 더?

아마 대부분 '더 드시겠어요?'라고 하셨을 테고, 반말에 가까운 '차 더?'를 선택한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즉, 우리말에서는 핵심어구를 중심으로 전체 내용을 짧게 줄이면 '동사부분'이 남게 됩니다.

그러면 영어는 어떨까요?

"차를 더 드시겠어요?"라는 뜻의 "Would you like more tea?"라는 문장을 가지고 원어민에게 앞과 똑같은 실험을 하면 어떤 부분이 남을까요?

- Would you like more tea? - Would you like? - More tea?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원어민들은 거의 대부분 'More tea?'라고 줄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영어에서는 의사전달을 위해 남게 되는 핵심어구가 바로 명사라는 말이 됩니다.

앞선 본 <이름, 주소, 연도>의 표기법과 방금한 실험이 서로 관련 없어 보이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개인성을 중요시 하는 서양/미국에서는 각각의 개체가 전체보다 더 우선시됩니다.

그래서 가문을 보여주는 성보다, 개인을 드러내는 이름을 먼저 표기하는 것이죠.

반면에 한국에서는 개체보다는 전체의 큰 틀을 더 중요시하고 또 개체들도 서로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관계지향적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이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서, 한국어에서는 화자나 청자의 입장인 관계를 고려한 '동사와 그 존칭어법'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그래서 핵심부분을 남기면 동사(더 드시겠어요?)가 되지만, 영어에서는 개인의 속성을 고려한 '명사위주의 언어생활'을 더 선호하기에 문장 속에서 관계를 보여주는 부분(Would you like~?)은 생략이 되고 명사(More tea?)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고방식을 언어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까지 확장해보면 새로운 시각이 가능해집니다.

2007년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에서 32명의 희생자를 냈던 총격사건이 있었는데요.

이 범인이 한국계 2세로 밝혀지자, 한국인들 대부분은 마음이 불편해 지거나 미안해했습니다.

당시 미국주재 한국대사는 32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32일간의 단식을 제안했고, 당시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위안메시지가 3번이나 희생자에게 전달되기도 했죠.

그런데 정작 미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이런 집단 죄의식(collective guilt)에 대해 이해가 쉽지 않다는 기사를 냈고, 일부 미국블로거들은 개인문제를 한국전체가 나서서 하는 사과에 강한 반감을 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마치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시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가 매번 나서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블로거들의 논리도 이해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개인의 속성만을 따지는 미국인들의 눈에는 비논리적으로 보였을 겁니다.

이렇듯 같은 사건을 두고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인식과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반대로 한국이 미국에 요청할 지도 모르는 미래의 사과요구가 어깃장으로 보이지 않고 설득력 있게 통역되고 논리적으로 표현되어 그들의 마음을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언어, 생각, 문화의 이근철 이었습니다. Have a fabulous day!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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