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테러 트라우마…케냐의 일상을 덮치다

입력 2016.12.24 (21:48) 수정 2016.12.2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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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 프랑스·터키 등 유럽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테러가 잇따랐습니다.

관광 산업마저 후퇴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끼친 충격이 컸는데요.

이런 대량 살상의 공포를 일상적 위협으로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요?

한해에만 수십 건씩 테러가 일어나는 케냐의 테러 피해자들을 김덕훈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2015년 4월 2일, 소말리아와 국경을 접한 가리사 지역의 한 대학교에서 새벽부터 총성이 울립니다.

소말리아 반군이자 이슬람 테러단체인 알 샤밥 조직원 4명이 기숙사를 습격한 겁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지만, 기숙사 한 동은 완전히 포위돼 괴한들 수중에 넘어갑니다.

<녹취> 마우린 마녱고(생존자/2015년 4월) : "테러범들이 '너희를 다 죽일 거다, 죽여야만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잠시 후 저희 모두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테러범들은 인질 가운데 기독교 신자들을 골라내 모두 148명을 학살했습니다.

1998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이후 케냐에서 발생한 테러 가운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알 샤밥의 공격 직후, 케냐 정부는 즉시 학교를 폐쇄했습니다.

살아남은 학생 700여 명은 다른 학교로 편입하는 등 모두 학교를 떠났습니다.

테러 피해자인 대학생 제프리 그리핀스 씨,

최근 가리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학교를 떠난 지 1년 8개월 만입니다.

<녹취> 제프리 그리핀스(테러 생존자) :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어요. 죽은 거죠. 함께 방을 쓰던 친구도 숨졌는데 제가 도망가려면 친구를 밟고 넘어가야 했어요."

테러 이후 대학 안에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건립됐습니다.

그리핀스 씨는 특히 이곳을 지날 때 혼자 살아남았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앞섭니다.

<인터뷰> 제프리 그리핀스(테러 생존자) : "한동안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요. 한밤중에 놀라 깨기도 했어요. 감정이 진정이 안되더라고요."

취재진과 함께 찾은 기숙사, 사고 이후 현재까지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녹취> "(이 방이 그리핀스 씨가 쓰던 곳인가요?) 아니요. 제 방은 반대쪽에 있어요. (이 기숙사는 그럼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나요?) 아무도 없어요, 지금은"

곳곳에 박힌 탄환의 흔적, 부서진 채 덜렁이는 문,

2년 넘게 살던 기숙사지만, 지금은 근처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테러 이후 심리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아직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녹취> 제프리 그리핀스(테러 생존자) : "사고 후 상담사들로부터 치료를 받았죠. 그런데 한 달 만에 정부와 계약이 끝나버렸대요. 그때부터 문제를 온전히 저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요."

케냐에서 테러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11년입니다.

케냐 정부가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이에 대한 보복 테러가 시작된 것입니다.

소말리아 정부 전복을 노리던 알 샤밥이 파병에 반발해 케냐 내에서 무차별 테러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조지 무사말리(케냐 안보 전문가) : "케냐 정부가 소말리아에 군대를 보내자 알 샤밥은 싸움을 케냐 내로까지 확산시키겠다고 공언했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알 샤밥은 100건이 넘는 무차별 테러를 벌였습니다.

최소 370명이 숨지고, 1,00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문제는 케냐 정부가 테러를 막기 위한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이 테러 공포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침투해 일상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테러 위협을 겪는 성인 가운데 7.5%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9.7%는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미성년자의 경우 그 영향은 더욱 막대합니다.

28.6%가 우울증이나 신경쇠약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터뷰> 수산 기타우(아프리카 나사렛 대학교 심리학 교수) : "테러 후유증은 심각한 공황 발작을 초래합니다. 또 각성 상태가 지속돼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죠. 케냐 정부가 진정 국민을 생각한다면 당장 피해자 관리와 조사에 착수해야 합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500km 떨어진 카펜구리아, 올해 7월 이 지역 경찰서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8명의 경찰관이 희생됐는데, 범인은 놀랍게도 같은 경찰서의 동료 경찰관이었습니다.

<녹취> 와냐마 무샴부(노스 리프트 지방의원) : "용의자는 무기를 다룰 줄 압니다. 훈련받은 경찰들이 지키는 경찰서로 들어간 걸로 보아 내부 사정도 잘 아는 듯하고요."

경찰 당국은 알 샤밥의 스파이인 경찰관이 당시 경찰서에 구금돼 있던 동료 테러 조직원을 구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동료 조직원으로 지목된 용의자의 이름은 오마르 에우몬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외부인의 왕래가 거의 없는, 차량조차 진입하지 못하는 오지, 이곳에 에우몬드가 일하던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에우몬드가 경찰에 붙잡힌 건 올해 7월 초 입니다.

에우몬드를 테러범으로 특정한 경찰은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 에서 총격을 벌였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달아났고, 학교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인터뷰> 파울린 롱고리알렘(학부모) : "아이들은 지금도 차 소리만 나면 숲 속으로 숨어버려요. 그런데 정부는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조차 약속해 주지 않고 있죠."

악명을 떨치는 알 샤밥 외에도 최근에는 이슬람 무장단체, IS가 케냐 내에서 테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정부에 불만은 품은 케냐 자국민, 그것도 주로 청년들이 돈에 포섭돼 테러 조직에 가담하면서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지 무사말리(케냐 안보 전문가) : "정부는 경제를 살려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돼 있어요. 헛된 유혹에 빠질 청년들이 없다는 걸 케냐 밖 테러 조직에 보여줘야 합니다."

도시 거주 청년 실업률 16%,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 평균의 2배가 넘는 7% 물가 상승,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 속에서 절망한 청년들이 만들어 낸 상시적인 테러 공포는 케냐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케냐에서 김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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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테러 트라우마…케냐의 일상을 덮치다
    • 입력 2016-12-24 22:02:30
    • 수정2016-12-24 22: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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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 프랑스·터키 등 유럽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테러가 잇따랐습니다.

관광 산업마저 후퇴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끼친 충격이 컸는데요.

이런 대량 살상의 공포를 일상적 위협으로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요?

한해에만 수십 건씩 테러가 일어나는 케냐의 테러 피해자들을 김덕훈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2015년 4월 2일, 소말리아와 국경을 접한 가리사 지역의 한 대학교에서 새벽부터 총성이 울립니다.

소말리아 반군이자 이슬람 테러단체인 알 샤밥 조직원 4명이 기숙사를 습격한 겁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지만, 기숙사 한 동은 완전히 포위돼 괴한들 수중에 넘어갑니다.

<녹취> 마우린 마녱고(생존자/2015년 4월) : "테러범들이 '너희를 다 죽일 거다, 죽여야만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잠시 후 저희 모두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테러범들은 인질 가운데 기독교 신자들을 골라내 모두 148명을 학살했습니다.

1998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이후 케냐에서 발생한 테러 가운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알 샤밥의 공격 직후, 케냐 정부는 즉시 학교를 폐쇄했습니다.

살아남은 학생 700여 명은 다른 학교로 편입하는 등 모두 학교를 떠났습니다.

테러 피해자인 대학생 제프리 그리핀스 씨,

최근 가리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학교를 떠난 지 1년 8개월 만입니다.

<녹취> 제프리 그리핀스(테러 생존자) :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어요. 죽은 거죠. 함께 방을 쓰던 친구도 숨졌는데 제가 도망가려면 친구를 밟고 넘어가야 했어요."

테러 이후 대학 안에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건립됐습니다.

그리핀스 씨는 특히 이곳을 지날 때 혼자 살아남았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앞섭니다.

<인터뷰> 제프리 그리핀스(테러 생존자) : "한동안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요. 한밤중에 놀라 깨기도 했어요. 감정이 진정이 안되더라고요."

취재진과 함께 찾은 기숙사, 사고 이후 현재까지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녹취> "(이 방이 그리핀스 씨가 쓰던 곳인가요?) 아니요. 제 방은 반대쪽에 있어요. (이 기숙사는 그럼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나요?) 아무도 없어요, 지금은"

곳곳에 박힌 탄환의 흔적, 부서진 채 덜렁이는 문,

2년 넘게 살던 기숙사지만, 지금은 근처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테러 이후 심리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아직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녹취> 제프리 그리핀스(테러 생존자) : "사고 후 상담사들로부터 치료를 받았죠. 그런데 한 달 만에 정부와 계약이 끝나버렸대요. 그때부터 문제를 온전히 저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요."

케냐에서 테러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11년입니다.

케냐 정부가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이에 대한 보복 테러가 시작된 것입니다.

소말리아 정부 전복을 노리던 알 샤밥이 파병에 반발해 케냐 내에서 무차별 테러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조지 무사말리(케냐 안보 전문가) : "케냐 정부가 소말리아에 군대를 보내자 알 샤밥은 싸움을 케냐 내로까지 확산시키겠다고 공언했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알 샤밥은 100건이 넘는 무차별 테러를 벌였습니다.

최소 370명이 숨지고, 1,00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문제는 케냐 정부가 테러를 막기 위한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이 테러 공포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침투해 일상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테러 위협을 겪는 성인 가운데 7.5%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9.7%는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미성년자의 경우 그 영향은 더욱 막대합니다.

28.6%가 우울증이나 신경쇠약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터뷰> 수산 기타우(아프리카 나사렛 대학교 심리학 교수) : "테러 후유증은 심각한 공황 발작을 초래합니다. 또 각성 상태가 지속돼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죠. 케냐 정부가 진정 국민을 생각한다면 당장 피해자 관리와 조사에 착수해야 합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서쪽으로 500km 떨어진 카펜구리아, 올해 7월 이 지역 경찰서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8명의 경찰관이 희생됐는데, 범인은 놀랍게도 같은 경찰서의 동료 경찰관이었습니다.

<녹취> 와냐마 무샴부(노스 리프트 지방의원) : "용의자는 무기를 다룰 줄 압니다. 훈련받은 경찰들이 지키는 경찰서로 들어간 걸로 보아 내부 사정도 잘 아는 듯하고요."

경찰 당국은 알 샤밥의 스파이인 경찰관이 당시 경찰서에 구금돼 있던 동료 테러 조직원을 구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동료 조직원으로 지목된 용의자의 이름은 오마르 에우몬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외부인의 왕래가 거의 없는, 차량조차 진입하지 못하는 오지, 이곳에 에우몬드가 일하던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에우몬드가 경찰에 붙잡힌 건 올해 7월 초 입니다.

에우몬드를 테러범으로 특정한 경찰은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 에서 총격을 벌였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달아났고, 학교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인터뷰> 파울린 롱고리알렘(학부모) : "아이들은 지금도 차 소리만 나면 숲 속으로 숨어버려요. 그런데 정부는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조차 약속해 주지 않고 있죠."

악명을 떨치는 알 샤밥 외에도 최근에는 이슬람 무장단체, IS가 케냐 내에서 테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정부에 불만은 품은 케냐 자국민, 그것도 주로 청년들이 돈에 포섭돼 테러 조직에 가담하면서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지 무사말리(케냐 안보 전문가) : "정부는 경제를 살려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돼 있어요. 헛된 유혹에 빠질 청년들이 없다는 걸 케냐 밖 테러 조직에 보여줘야 합니다."

도시 거주 청년 실업률 16%,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 평균의 2배가 넘는 7% 물가 상승,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 속에서 절망한 청년들이 만들어 낸 상시적인 테러 공포는 케냐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케냐에서 김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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