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복원된 신라 석조물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보물 지정
입력 2017.01.11 (10:42)
수정 2017.01.11 (10: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9세기~1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928호로 지정했다.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부재 35개로 구성됐고 높이는 6.12m다. 일부 부재가 사라지고 흩어진 채 방치돼 있었지만 1980년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조립됐다. 이 때문에 신구 부재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례미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복원 과정에서 석탑 기초부 조사를 통해 잡석과 진흙을 다지고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씩 굳히면서 쌓아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기단부의 적심(積心, 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 안에서는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땅속의 신을 위해 묻는 물건인 '지진구'가 출토된 바 있다.
9∼10세기 석탑은 이전 시대 석탑보다 크기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규모가 유난히 큰 편인 것도 특징이다.
석탑이 있었던 미탄사는 고려시대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로 황룡사지 남쪽에 있었다. 지난 2013년 발굴조사에서 '미탄'(味呑)이라는 글자가 있는 기와가 나와 실체가 확인됐고, 금당을 비롯해 강당, 남문의 터가 드러났다.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부재 35개로 구성됐고 높이는 6.12m다. 일부 부재가 사라지고 흩어진 채 방치돼 있었지만 1980년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조립됐다. 이 때문에 신구 부재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례미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복원 과정에서 석탑 기초부 조사를 통해 잡석과 진흙을 다지고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씩 굳히면서 쌓아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기단부의 적심(積心, 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 안에서는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땅속의 신을 위해 묻는 물건인 '지진구'가 출토된 바 있다.
9∼10세기 석탑은 이전 시대 석탑보다 크기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규모가 유난히 큰 편인 것도 특징이다.
석탑이 있었던 미탄사는 고려시대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로 황룡사지 남쪽에 있었다. 지난 2013년 발굴조사에서 '미탄'(味呑)이라는 글자가 있는 기와가 나와 실체가 확인됐고, 금당을 비롯해 강당, 남문의 터가 드러났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1980년 복원된 신라 석조물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 보물 지정
-
- 입력 2017-01-11 10:42:48
- 수정2017-01-11 10:45:11
문화재청은 9세기~1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928호로 지정했다.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부재 35개로 구성됐고 높이는 6.12m다. 일부 부재가 사라지고 흩어진 채 방치돼 있었지만 1980년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조립됐다. 이 때문에 신구 부재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례미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복원 과정에서 석탑 기초부 조사를 통해 잡석과 진흙을 다지고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씩 굳히면서 쌓아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기단부의 적심(積心, 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 안에서는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땅속의 신을 위해 묻는 물건인 '지진구'가 출토된 바 있다.
9∼10세기 석탑은 이전 시대 석탑보다 크기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규모가 유난히 큰 편인 것도 특징이다.
석탑이 있었던 미탄사는 고려시대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로 황룡사지 남쪽에 있었다. 지난 2013년 발굴조사에서 '미탄'(味呑)이라는 글자가 있는 기와가 나와 실체가 확인됐고, 금당을 비롯해 강당, 남문의 터가 드러났다.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부재 35개로 구성됐고 높이는 6.12m다. 일부 부재가 사라지고 흩어진 채 방치돼 있었지만 1980년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조립됐다. 이 때문에 신구 부재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례미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복원 과정에서 석탑 기초부 조사를 통해 잡석과 진흙을 다지고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씩 굳히면서 쌓아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기단부의 적심(積心, 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 안에서는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땅속의 신을 위해 묻는 물건인 '지진구'가 출토된 바 있다.
9∼10세기 석탑은 이전 시대 석탑보다 크기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규모가 유난히 큰 편인 것도 특징이다.
석탑이 있었던 미탄사는 고려시대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로 황룡사지 남쪽에 있었다. 지난 2013년 발굴조사에서 '미탄'(味呑)이라는 글자가 있는 기와가 나와 실체가 확인됐고, 금당을 비롯해 강당, 남문의 터가 드러났다.
-
-
김민경 기자 mkdream@kbs.co.kr
김민경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