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연설은 시작도 끝도 ‘믿음과 희망’

입력 2017.01.11 (14:24) 수정 2017.01.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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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3년 전인 2004년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존 케리 상원 의원을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당시 전당대회의 주인공은 존 케리 후보가 아닌 전국적인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일리노이에서 온 젊은 상원 의원 버락 오바마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당대회의 흥행을 위해 기조연설자로 선정됐던 버락 오바마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약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당시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링컨의 고향 일리노이를 대표해 저에게 이번 전당대회 연설의 특혜를 허락해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저에게 아주 명예로운 밤입니다. 왜냐하면 이 무대에서의 저의 참석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국제 학생이셨으며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셨습니다. 아버지는 염소를 몰면서 자랐으며 낡아빠진 지붕 아래 학교에 다니셨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영국의 가사 노예로서, 요리사였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아주 멋진 사랑을 나누셨을 뿐만 아니라 이 국가의 가능성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도 나누셨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아프리카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버락’입니다. 이것은 ‘축복받은’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에는 관용의 나라인 미국에서 사람의 이름은 성공에 대한 장애를 주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17분 동안 계속된 연설에서 자신의 가족 얘기를 미국의 역사와 함께 들려줬고 이 얘기들을 하나의 천처럼 엮어냈다.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시간당 7달러밖에 주지 않는 직업을 위해 그들의 자식과 함께 싸워야만 노동자들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또한, 직장을 잃어버리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한 달에 아들을 위해 약값으로 4,500달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눈물을 삼키고 있는 제가 만난 한 아버지를 위해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또한, 동기가 있고 의지는 있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동부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수천 명의 젊은 여성들을 위해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 저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진보적인 미국이 따로 없습니다. 보수적인 미국도 없습니다. 미합중국만이 있습니다. 흑인들의 미국도 백인들의 미국도 라틴계 사람들의 미국도 아시아인들의 미국도 없습니다. 미합중국만이 있습니다."

"희망,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의 희망,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의 희망, 담대한 희망입니다. 결국, 희망이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정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 당시 연설에서 오바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건 '미국 사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그리고 변화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8년 버락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바로 가기]
☞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버락 오바마 연설①(유튜브)
☞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버락 오바마 연설②(유튜브)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딸 마리아가 고별 연설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AP)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딸 마리아가 고별 연설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AP)

고별 연설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 재확인"

지난 8년간 미국을 이끌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퇴임 열흘을 앞두고 10일 (현지시각)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마무리하는 연설의 화두도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미국 사회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었다.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을 더 나은 나라, 더 강한 나라로 만들었고, 우리는 진보를 향한 기나긴 계주를 뛰면서 우리의 일이 항상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이웃에 관대한 마음을 갖고, 조국을 사랑하는 시민이 우리의 조국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그것이 시민의 의무입니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함께 더 나은 나라를 만들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답할 것입니다."

"변화는 보통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을 요구하기 위해 함께 뭉칠 때 일어납니다. 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변화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변화는 미국적 사고의 뛰는 심장이자 담대한 실험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두 걸음 나아가면 종종 한 걸음 뒤로 가는 것을 느낀다"며 "국가의 진보가 고르지 않다"고 정권 재창출 실패에 대해 아쉬움을 간접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껴안기 위해 전진과 끊임없는 건국이념 확대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신들을 위해 봉사한 것은 내 삶의 영광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 마지막 부탁을 하고자 합니다. 변화를 이뤄내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변화능력을 믿어주십시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한 시민으로서 내 삶의 남은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우리는 이뤄냈습니다. (Yes We Did).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고맙습니다. 신의 은총이 가득하길!"

오바마 대통령은 50분간 계속된 고별 연설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이 끝난 뒤 미셸 오바마를 껴안아 주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고는 있는 사람은 조 바이든 부통령 부부 (사진=AP)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이 끝난 뒤 미셸 오바마를 껴안아 주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고는 있는 사람은 조 바이든 부통령 부부 (사진=AP)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미셸 여사에 대해 "당신은 내 아내자 내 아이의 엄마일 뿐 아니라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다. 당신은 백악관을 모든 사람의 장소로 만들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도 각별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 도중 수차례 기립박수를 받았고 흑인 여성을 비롯해 일부 참석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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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1 14:24:07
    • 수정2017-01-11 14:26:20
    취재K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4년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존 케리 상원 의원을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당시 전당대회의 주인공은 존 케리 후보가 아닌 전국적인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일리노이에서 온 젊은 상원 의원 버락 오바마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당대회의 흥행을 위해 기조연설자로 선정됐던 버락 오바마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약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당시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링컨의 고향 일리노이를 대표해 저에게 이번 전당대회 연설의 특혜를 허락해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저에게 아주 명예로운 밤입니다. 왜냐하면 이 무대에서의 저의 참석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국제 학생이셨으며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셨습니다. 아버지는 염소를 몰면서 자랐으며 낡아빠진 지붕 아래 학교에 다니셨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영국의 가사 노예로서, 요리사였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아주 멋진 사랑을 나누셨을 뿐만 아니라 이 국가의 가능성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도 나누셨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아프리카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버락’입니다. 이것은 ‘축복받은’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에는 관용의 나라인 미국에서 사람의 이름은 성공에 대한 장애를 주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17분 동안 계속된 연설에서 자신의 가족 얘기를 미국의 역사와 함께 들려줬고 이 얘기들을 하나의 천처럼 엮어냈다.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시간당 7달러밖에 주지 않는 직업을 위해 그들의 자식과 함께 싸워야만 노동자들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또한, 직장을 잃어버리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한 달에 아들을 위해 약값으로 4,500달러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눈물을 삼키고 있는 제가 만난 한 아버지를 위해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또한, 동기가 있고 의지는 있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동부 세인트루이스에 사는 수천 명의 젊은 여성들을 위해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 저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진보적인 미국이 따로 없습니다. 보수적인 미국도 없습니다. 미합중국만이 있습니다. 흑인들의 미국도 백인들의 미국도 라틴계 사람들의 미국도 아시아인들의 미국도 없습니다. 미합중국만이 있습니다."

"희망,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의 희망,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의 희망, 담대한 희망입니다. 결국, 희망이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버락 오바마의 정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 당시 연설에서 오바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건 '미국 사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그리고 변화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8년 버락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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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버락 오바마 연설①(유튜브)
☞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버락 오바마 연설②(유튜브)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딸 마리아가 고별 연설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AP)
고별 연설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 재확인"

지난 8년간 미국을 이끌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퇴임 열흘을 앞두고 10일 (현지시각)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고별 연설을 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마무리하는 연설의 화두도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미국 사회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었다.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을 더 나은 나라, 더 강한 나라로 만들었고, 우리는 진보를 향한 기나긴 계주를 뛰면서 우리의 일이 항상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이웃에 관대한 마음을 갖고, 조국을 사랑하는 시민이 우리의 조국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그것이 시민의 의무입니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함께 더 나은 나라를 만들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답할 것입니다."

"변화는 보통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을 요구하기 위해 함께 뭉칠 때 일어납니다. 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변화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변화는 미국적 사고의 뛰는 심장이자 담대한 실험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두 걸음 나아가면 종종 한 걸음 뒤로 가는 것을 느낀다"며 "국가의 진보가 고르지 않다"고 정권 재창출 실패에 대해 아쉬움을 간접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껴안기 위해 전진과 끊임없는 건국이념 확대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신들을 위해 봉사한 것은 내 삶의 영광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 마지막 부탁을 하고자 합니다. 변화를 이뤄내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변화능력을 믿어주십시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한 시민으로서 내 삶의 남은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우리는 이뤄냈습니다. (Yes We Did).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Yes We Can). 고맙습니다. 신의 은총이 가득하길!"

오바마 대통령은 50분간 계속된 고별 연설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이 끝난 뒤 미셸 오바마를 껴안아 주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고는 있는 사람은 조 바이든 부통령 부부 (사진=AP)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도중 미셸 여사에 대해 "당신은 내 아내자 내 아이의 엄마일 뿐 아니라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다. 당신은 백악관을 모든 사람의 장소로 만들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도 각별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 도중 수차례 기립박수를 받았고 흑인 여성을 비롯해 일부 참석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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