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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80년 스러진 광주 시민들…37년 만에 맞춘 퍼즐
입력 2017.01.13 (15:38) 수정 2017.01.13 (15:39) 취재후
광주광역시 전일빌딩광주광역시 전일빌딩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는 사망 163명, 행방불명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 101명, 그리고 부상자가 3,139명에 이른다.(2009. 광주광역시 발표). 1980년 광주 오월의 거리에서 그들은 어떻게 스러져 갔을까? 풀리지 않았던 한 퍼즐이 37년 만에 비로소 맞춰졌다. 군 헬기에서 시민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했다는 증언이 증명된 것이다.

"헬기에서 사격하고 있었는데, 제가 당시 보고 들은 것은 '타다닥'하는 사격 소리가 3번 정도 들렸던 것 같으며 그와 동시에 헬기에서 파다닥 하는 모습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김OO, 52년생, 의사)

"어디선가 헬기 소리가 나서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순간 헬기에서 기관총 사격을 하여 깜짝 놀라 방안에 엎드려 있다가...."
(정OO, 26년생, 무직)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이 이어지던 광주에서 시민들이 목격했다는 '헬기 사격' 증언들이다.

'민주화 산증인'으로 불리는 故 조비오 신부도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와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구술 녹취록 등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여러 차례 증언했다. 이 밖에도 수십 명의 사람이 같은 날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비오 신부조비오 신부

수많은 목격담과 증언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헬기 사격'에 대해 전면 부인해왔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헬기 사격은 의혹으로만 남는 듯했다.


'헬기 사격' 진실의 조각을 맞추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 37년 만에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광주광역시청의 의뢰로 진행한 '전일빌딩 총탄 흔적 존재 여부 조사'를 통해서다.

광주시는 노후화된 전일빌딩(1968년 완공)의 리모델링에 앞서 5·18 당시 총탄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지난 9월 국과수에 조사를 의뢰했다. 전일빌딩은 옛 전남도청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로 시민군이 계엄군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이다. 지난해 12일 국과수는 조사를 마치고 '헬기 사격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감정서를 내놨다.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은 모두 185개. 35개는 외부 벽면에서 발견됐다. 150개는 최상층인 10층 사무실의 기둥과 천장, 바닥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곳은 당시 전일방송 사무실로 사용됐던 곳이다.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전일빌딩의 총탄 흔적

기둥에 집중된 총탄 흔적기둥에 집중된 총탄 흔적

국과수는 탄흔의 각도가 수평, 또는 아래로 나 있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주변에는 10층 이상의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헬기 등 비행체에서 발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10층 기둥에는 비슷한 지점 위, 아래로 탄흔이 집중돼 있다. 이것은 항공기가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는 '호버링(hovering)', 즉 정지 비행 상태에서 사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85개의 탄흔으로 남은 총격은 전일빌딩에 있던 광주 시민들을 몇 명이나 살상했을까?

광주시는 전일빌딩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추념 공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리모델링 사업도 전문가와 오월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5·18기념재단도 풀리지 않았던 헬기 사격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번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단순히 '헬기 사격이 있었다'를 사실을 밝혀 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군의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주장을 뒤집을 증거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이 상공에서, 저항할 수도 없는 상태의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있었고, 곧이어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들을 종합하면 치밀하게 짜인 계획에 따라 지상과 공중에서 동시에 광주시민 살상 작전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발포 명령자를 밝혀내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다. 그것은 5.18 진상규명의 종착역이기도 하다. 역사는 더디지만, 진실을 향해 흐르고 있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5·18 때 헬기 사격 가능성” 첫 정부 보고서
  • [취재후] 80년 스러진 광주 시민들…37년 만에 맞춘 퍼즐
    • 입력 2017-01-13 15:38:13
    • 수정2017-01-13 15:39:28
    취재후
광주광역시 전일빌딩광주광역시 전일빌딩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는 사망 163명, 행방불명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 101명, 그리고 부상자가 3,139명에 이른다.(2009. 광주광역시 발표). 1980년 광주 오월의 거리에서 그들은 어떻게 스러져 갔을까? 풀리지 않았던 한 퍼즐이 37년 만에 비로소 맞춰졌다. 군 헬기에서 시민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했다는 증언이 증명된 것이다.

"헬기에서 사격하고 있었는데, 제가 당시 보고 들은 것은 '타다닥'하는 사격 소리가 3번 정도 들렸던 것 같으며 그와 동시에 헬기에서 파다닥 하는 모습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김OO, 52년생, 의사)

"어디선가 헬기 소리가 나서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순간 헬기에서 기관총 사격을 하여 깜짝 놀라 방안에 엎드려 있다가...."
(정OO, 26년생, 무직)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이 이어지던 광주에서 시민들이 목격했다는 '헬기 사격' 증언들이다.

'민주화 산증인'으로 불리는 故 조비오 신부도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와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구술 녹취록 등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여러 차례 증언했다. 이 밖에도 수십 명의 사람이 같은 날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비오 신부조비오 신부

수많은 목격담과 증언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헬기 사격'에 대해 전면 부인해왔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헬기 사격은 의혹으로만 남는 듯했다.


'헬기 사격' 진실의 조각을 맞추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 37년 만에 나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광주광역시청의 의뢰로 진행한 '전일빌딩 총탄 흔적 존재 여부 조사'를 통해서다.

광주시는 노후화된 전일빌딩(1968년 완공)의 리모델링에 앞서 5·18 당시 총탄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지난 9월 국과수에 조사를 의뢰했다. 전일빌딩은 옛 전남도청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로 시민군이 계엄군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이다. 지난해 12일 국과수는 조사를 마치고 '헬기 사격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감정서를 내놨다.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은 모두 185개. 35개는 외부 벽면에서 발견됐다. 150개는 최상층인 10층 사무실의 기둥과 천장, 바닥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곳은 당시 전일방송 사무실로 사용됐던 곳이다.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전일빌딩의 총탄 흔적

기둥에 집중된 총탄 흔적기둥에 집중된 총탄 흔적

국과수는 탄흔의 각도가 수평, 또는 아래로 나 있는 것에 주목했다. 당시 주변에는 10층 이상의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헬기 등 비행체에서 발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10층 기둥에는 비슷한 지점 위, 아래로 탄흔이 집중돼 있다. 이것은 항공기가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는 '호버링(hovering)', 즉 정지 비행 상태에서 사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85개의 탄흔으로 남은 총격은 전일빌딩에 있던 광주 시민들을 몇 명이나 살상했을까?

광주시는 전일빌딩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추념 공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리모델링 사업도 전문가와 오월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5·18기념재단도 풀리지 않았던 헬기 사격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번 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단순히 '헬기 사격이 있었다'를 사실을 밝혀 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군의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주장을 뒤집을 증거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이 상공에서, 저항할 수도 없는 상태의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있었고, 곧이어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들을 종합하면 치밀하게 짜인 계획에 따라 지상과 공중에서 동시에 광주시민 살상 작전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발포 명령자를 밝혀내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다. 그것은 5.18 진상규명의 종착역이기도 하다. 역사는 더디지만, 진실을 향해 흐르고 있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5·18 때 헬기 사격 가능성” 첫 정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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