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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블랙리스트’에 떨고 있는 한국 기업들?
입력 2017.01.13 (16:21) 수정 2017.02.01 (17:49) 특파원 리포트
최근 중국 정부가 한국산 화장품에 대해 무더기 수입 불허 조치를 취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이 올 들어 처음으로 발표한 수입 불허 화장품 명단에 19종의 한국산 화장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반품된 양만 해도 11톤에 달한다.

사드 배치로 인한 불똥이 화장품 업계로 튄 것 아니냐는 우려는 당연하다. 이런 보도가 나가자 주중 한국 대사관이 부랴부랴 한 장짜리 확인 자료를 특파원들에게 보냈다.

해명 자료의 핵심 내용은 “불합격 건수는 증가했지만 한국 화장품에 대한 제재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인 해석”이란 것이다. 그 근거로 “인허가 등록 증명서 미제출 등 수출 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우리 화장품 업체의 잘못에서 기인한 문제이지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말 그럴까?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국에 나와 있는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대사관의 말과는 달리 최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말한다. 보통 1주일 걸리는 화장품 통관이 한 달이 지나도 될지 안 될지 모른다고 설명한다. 더욱 답답할 노릇은 그 이유도 말해주지 않아 속만 태운다고 한다.

그렇다고 언론이나 정부에다 대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괜히 나섰다가 중국 정부에 ‘찍혀’ 중국 시장을 통째로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처럼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더구나 좀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조차 없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우리 무역업계 전반에서 이런 ‘음성적’인 중국의 보복 조치가 현실화되고 있다. 처음에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조치로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한한령’(限韓令ㆍ한류 금지령)이 그 대표적이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류 스타들이 중국 프로그램에서 하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한한령에 대해 “그런 단어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라고 펄쩍 뛰었다. 중국의 미디어를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도 애초 없는 일이니 대응하지 않겠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제작사들은 ‘분명히’ 한한령이 있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 53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털어놨다. 중국 제작사 관계자는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보통 한 달이면 심의를 통과하는데 반년이 넘은 지금도 심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 아주 애매한 상황이라고 전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류 스타가 출현하는 광고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중국제작사 한 관계자는 북경 위성 TV의 한 관계자가 보낸 문자 메시지라며 공개했다. “모든 한국 기업, 브랜드, 상품, 연예인을 모델로 하는 광고는 11월 19일부터 방송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북경위성TV에서 현재 한류스타가 출연한 광고는 방송되지 않고 있다. 중국 중앙 CCTV도 한국 관련 제작물은 일절 방송하지 않고 있다. CCTV가 거의 유일하게 한국 관련 방송을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속보뿐이다. 하루 종일 나온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중국 정부가 자국 문화 정체성 확보를 위한 조치라고 보기 어려운 점은 이런 한한령이 한국 관련 산업 전 분야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어떨까.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 사업장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그나마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경우이다.

한국 간판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 현대차는 안녕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굳이 이들 업체 관계자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냥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대기업 역시 혹시라도 중국 정부에 잘못 보였다가 감당할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느끼는 소회는 우리 대사관의 ‘현실감’ 부족에 답답함을 느낀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만 하고 있다.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에 버금가는 강한 권력을 가진 최고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보이는 손과 보이지는 않는 손을 모두 잘 이용해야한다”는 말을 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우리에 대한 보복 조치는 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미 작동되고 있다.

최근 야당 방중단이 중국 외교부 직속 싱크탱크인 국제문제연구원을 찾았을 때 중국 측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이 사드처럼 3번이나 강력하게 안 된다고 경고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드러낸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시 주석의 말 한마디가 바로 중국 공산당의 명령이고 법인데 이를 거스를 수 있는 기관과 지도자는 중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공관은 너무나 한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올해는 한중 수교 25주년의 뜻깊은 해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정식 수교 이후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해 지금껏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한중 관계가 요즘처럼 얼어붙은 적은 수교 이후 한 번도 없었다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마이클 플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만나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사드 배치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인 의견이 아닌 국가안전보장회의(NCS)에서 논의돼 결정된 사항이라고 하니 여러 가지를 검토했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현실감 떨어진 공관 자료를 바탕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드가 실제로 한반도에 배치되면 그때는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보이는 손’이 작동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삼성, 현대를 비롯해 우리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철수나 사업축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보이는 손’이 작동하면 그때는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 기업이 없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가설이지만 이게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깝다. 사드 배치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원론적인 논쟁은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감당해 낼 수 있느냐다.

일본 기업은 중국에서 역사 인식과 민족 감정 문제로 사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글로벌 일본 기업도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이런 일본 기업 정도의 내성을 갖췄는지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마당에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제발 이런 자세와 능력을 갖추길 바랄 뿐이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 이후를 대비해 우리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 도발에 대응하는 방어 무기라는 개념을 벗어난 지 오래다. 오히려 중국에 맞서는 한, 미, 일 동맹체제의 ‘상징’이 되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동북아 강대국 사이에서 전통적 우방인 미국의 편에 선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강 대 강 힘겨루기에 나서면 그 색깔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흡사 백 년 전, 일본과 청나라가 한반도에서 힘을 겨루던 구한말, 선택을 강요받던 때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현재의 중국은 청일전쟁 중에 함대를 만들 군비를 빼돌려 자신의 처소인 이화원을 치장한 서태후의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G2 국가다. 그리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미래 성장을 도모할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나라와 등을 지는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했으면 하는 게 특파원 개인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지배층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했다. 잘 알려진 광해군과 인조 얘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었던 광해군은 즉위 이후 후금과 전쟁을 치르던 명나라로부터 지원군 요청을 받았다. 명분상 피할 수도 없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5만의 대군을 보내 준 명나라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무조건 명나라를 돕다가는 후금이 중원의 주인공이 되는 날 환란을 당할 수 있다는 판단도 했다. 그래서 싸우지 않는 가짜 지원군을 보내 나라의 우환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친명 사대주의를 분명히 했다. 인목대비의 광해군 폐위교서에 “광해는 그 은덕을 저버리고, 천자(명나라 황제)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오랑캐(청나라)와 화친하였다.”고 적시했다.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지 오랑캐 나라인 청나라와는 상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참화를 겪었고 인조는 한겨울에 먼 길을 걸어 삼전도에 있는 청 태종 앞에서 땅바닥에 머리를 9번이나 박고 피를 흘리며 항복의 예를 갖췄다.

무리에 낀다는 말은 적을 새롭게 만든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미, 중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나 엄중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늦더라도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대박보다는 쪽박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중국판 ‘블랙리스트’에 떨고 있는 한국 기업들?
    • 입력 2017-01-13 16:21:52
    • 수정2017-02-01 17:49:08
    특파원 리포트
최근 중국 정부가 한국산 화장품에 대해 무더기 수입 불허 조치를 취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중국 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이 올 들어 처음으로 발표한 수입 불허 화장품 명단에 19종의 한국산 화장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반품된 양만 해도 11톤에 달한다.

사드 배치로 인한 불똥이 화장품 업계로 튄 것 아니냐는 우려는 당연하다. 이런 보도가 나가자 주중 한국 대사관이 부랴부랴 한 장짜리 확인 자료를 특파원들에게 보냈다.

해명 자료의 핵심 내용은 “불합격 건수는 증가했지만 한국 화장품에 대한 제재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인 해석”이란 것이다. 그 근거로 “인허가 등록 증명서 미제출 등 수출 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우리 화장품 업체의 잘못에서 기인한 문제이지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말 그럴까?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국에 나와 있는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대사관의 말과는 달리 최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말한다. 보통 1주일 걸리는 화장품 통관이 한 달이 지나도 될지 안 될지 모른다고 설명한다. 더욱 답답할 노릇은 그 이유도 말해주지 않아 속만 태운다고 한다.

그렇다고 언론이나 정부에다 대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도 없다. 괜히 나섰다가 중국 정부에 ‘찍혀’ 중국 시장을 통째로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처럼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더구나 좀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조차 없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우리 무역업계 전반에서 이런 ‘음성적’인 중국의 보복 조치가 현실화되고 있다. 처음에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조치로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한한령’(限韓令ㆍ한류 금지령)이 그 대표적이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류 스타들이 중국 프로그램에서 하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한한령에 대해 “그런 단어는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라고 펄쩍 뛰었다. 중국의 미디어를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도 애초 없는 일이니 대응하지 않겠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제작사들은 ‘분명히’ 한한령이 있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 53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털어놨다. 중국 제작사 관계자는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보통 한 달이면 심의를 통과하는데 반년이 넘은 지금도 심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 아주 애매한 상황이라고 전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류 스타가 출현하는 광고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중국제작사 한 관계자는 북경 위성 TV의 한 관계자가 보낸 문자 메시지라며 공개했다. “모든 한국 기업, 브랜드, 상품, 연예인을 모델로 하는 광고는 11월 19일부터 방송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북경위성TV에서 현재 한류스타가 출연한 광고는 방송되지 않고 있다. 중국 중앙 CCTV도 한국 관련 제작물은 일절 방송하지 않고 있다. CCTV가 거의 유일하게 한국 관련 방송을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속보뿐이다. 하루 종일 나온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중국 정부가 자국 문화 정체성 확보를 위한 조치라고 보기 어려운 점은 이런 한한령이 한국 관련 산업 전 분야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어떨까.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 사업장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그나마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경우이다.

한국 간판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 현대차는 안녕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굳이 이들 업체 관계자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냥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대기업 역시 혹시라도 중국 정부에 잘못 보였다가 감당할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느끼는 소회는 우리 대사관의 ‘현실감’ 부족에 답답함을 느낀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만 하고 있다.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에 버금가는 강한 권력을 가진 최고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보이는 손과 보이지는 않는 손을 모두 잘 이용해야한다”는 말을 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우리에 대한 보복 조치는 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미 작동되고 있다.

최근 야당 방중단이 중국 외교부 직속 싱크탱크인 국제문제연구원을 찾았을 때 중국 측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이 사드처럼 3번이나 강력하게 안 된다고 경고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드러낸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시 주석의 말 한마디가 바로 중국 공산당의 명령이고 법인데 이를 거스를 수 있는 기관과 지도자는 중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공관은 너무나 한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올해는 한중 수교 25주년의 뜻깊은 해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정식 수교 이후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해 지금껏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한중 관계가 요즘처럼 얼어붙은 적은 수교 이후 한 번도 없었다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마이클 플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만나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사드 배치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인 의견이 아닌 국가안전보장회의(NCS)에서 논의돼 결정된 사항이라고 하니 여러 가지를 검토했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현실감 떨어진 공관 자료를 바탕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드가 실제로 한반도에 배치되면 그때는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보이는 손’이 작동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삼성, 현대를 비롯해 우리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철수나 사업축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보이는 손’이 작동하면 그때는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 기업이 없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가설이지만 이게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깝다. 사드 배치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원론적인 논쟁은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감당해 낼 수 있느냐다.

일본 기업은 중국에서 역사 인식과 민족 감정 문제로 사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글로벌 일본 기업도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이런 일본 기업 정도의 내성을 갖췄는지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마당에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제발 이런 자세와 능력을 갖추길 바랄 뿐이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 이후를 대비해 우리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 도발에 대응하는 방어 무기라는 개념을 벗어난 지 오래다. 오히려 중국에 맞서는 한, 미, 일 동맹체제의 ‘상징’이 되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사드 배치를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동북아 강대국 사이에서 전통적 우방인 미국의 편에 선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강 대 강 힘겨루기에 나서면 그 색깔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흡사 백 년 전, 일본과 청나라가 한반도에서 힘을 겨루던 구한말, 선택을 강요받던 때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현재의 중국은 청일전쟁 중에 함대를 만들 군비를 빼돌려 자신의 처소인 이화원을 치장한 서태후의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G2 국가다. 그리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미래 성장을 도모할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나라와 등을 지는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했으면 하는 게 특파원 개인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았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지배층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했다. 잘 알려진 광해군과 인조 얘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었던 광해군은 즉위 이후 후금과 전쟁을 치르던 명나라로부터 지원군 요청을 받았다. 명분상 피할 수도 없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5만의 대군을 보내 준 명나라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무조건 명나라를 돕다가는 후금이 중원의 주인공이 되는 날 환란을 당할 수 있다는 판단도 했다. 그래서 싸우지 않는 가짜 지원군을 보내 나라의 우환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친명 사대주의를 분명히 했다. 인목대비의 광해군 폐위교서에 “광해는 그 은덕을 저버리고, 천자(명나라 황제)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오랑캐(청나라)와 화친하였다.”고 적시했다.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지 오랑캐 나라인 청나라와는 상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참화를 겪었고 인조는 한겨울에 먼 길을 걸어 삼전도에 있는 청 태종 앞에서 땅바닥에 머리를 9번이나 박고 피를 흘리며 항복의 예를 갖췄다.

무리에 낀다는 말은 적을 새롭게 만든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미, 중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나 엄중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늦더라도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대박보다는 쪽박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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