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 신라 왕릉에 사용되는 유물 대거 발견
입력 2017.02.09 (10:35)
수정 2017.02.09 (10: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성림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사적 제163호 경주 낭산 일원에서 신라 왕릉에 사용되는 다량의 석재와 건물지, 담장, 도로 등을 비롯해 명문기와 등 300여 점의 중요 유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된 유적은 국보 제79호 금제여래입상과 국보 제80호 금제여래좌상이 발견된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약 135m 떨어진 지점의 논 경작지로, 학계에서는 신문왕릉이나 성덕왕비의 소덕왕후릉, 민애왕릉 등과 비슷한 급의 폐왕릉지, 또는 삼국유사 기록에 나온 의상대사의 탑돌이와 관련있는 절인 황복사의 목탑이 있던 곳으로 추정해 왔다.
확인된 석재 유물은 탱석과 면석, 지대석, 갑석, 미완성 석재 등으로 신라 왕릉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적이다. 아울러 그 주변에 8~9세기가 중심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너비 16~17m의 도로 등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와 '도깨비기와'로 불리는 '귀면와', 신라 관청명으로 추정되는 ‘습부정정'(習部井井), 한자 한 곳이 다른 ’습부정정'(習府井井), '정원사'(鄭元寺) 등이 적힌 명문기와(글이 적힌 기와) 등 유물 300여 점이 출토됐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해본 왕릉의 지름은 약 22m로, 전(傳) 경덕왕릉과 비슷한 규모이다.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으로 출토된 점과 후대에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된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축조가 중단된 '가릉'(假陵) 석물로 보인다고 문화재청은 추정했다.
가릉은 왕의 죽음이 임박해 사전에 능침을 만들어 두는 무덤을 말한다. 가릉 주인공은 발굴조사 결과와 십이지신상 형식으로 볼 때,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742薨)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가릉 주변에서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서 관청이나 특수한 용도의 건물로 추정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는 앞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왕릉 축조과정과 능원제도를 비롯한 신라왕경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발굴조사 성과는 9일 오후 2시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황복사지 삼층석탑 남쪽 일원의 발굴현장에서 열리는 설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사된 유적은 국보 제79호 금제여래입상과 국보 제80호 금제여래좌상이 발견된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약 135m 떨어진 지점의 논 경작지로, 학계에서는 신문왕릉이나 성덕왕비의 소덕왕후릉, 민애왕릉 등과 비슷한 급의 폐왕릉지, 또는 삼국유사 기록에 나온 의상대사의 탑돌이와 관련있는 절인 황복사의 목탑이 있던 곳으로 추정해 왔다.
확인된 석재 유물은 탱석과 면석, 지대석, 갑석, 미완성 석재 등으로 신라 왕릉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적이다. 아울러 그 주변에 8~9세기가 중심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너비 16~17m의 도로 등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와 '도깨비기와'로 불리는 '귀면와', 신라 관청명으로 추정되는 ‘습부정정'(習部井井), 한자 한 곳이 다른 ’습부정정'(習府井井), '정원사'(鄭元寺) 등이 적힌 명문기와(글이 적힌 기와) 등 유물 300여 점이 출토됐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해본 왕릉의 지름은 약 22m로, 전(傳) 경덕왕릉과 비슷한 규모이다.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으로 출토된 점과 후대에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된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축조가 중단된 '가릉'(假陵) 석물로 보인다고 문화재청은 추정했다.
가릉은 왕의 죽음이 임박해 사전에 능침을 만들어 두는 무덤을 말한다. 가릉 주인공은 발굴조사 결과와 십이지신상 형식으로 볼 때,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742薨)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가릉 주변에서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서 관청이나 특수한 용도의 건물로 추정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는 앞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왕릉 축조과정과 능원제도를 비롯한 신라왕경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발굴조사 성과는 9일 오후 2시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황복사지 삼층석탑 남쪽 일원의 발굴현장에서 열리는 설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경주 낭산, 신라 왕릉에 사용되는 유물 대거 발견
-
- 입력 2017-02-09 10:35:54
- 수정2017-02-09 10:48:21
문화재청은 성림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 중인 사적 제163호 경주 낭산 일원에서 신라 왕릉에 사용되는 다량의 석재와 건물지, 담장, 도로 등을 비롯해 명문기와 등 300여 점의 중요 유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된 유적은 국보 제79호 금제여래입상과 국보 제80호 금제여래좌상이 발견된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약 135m 떨어진 지점의 논 경작지로, 학계에서는 신문왕릉이나 성덕왕비의 소덕왕후릉, 민애왕릉 등과 비슷한 급의 폐왕릉지, 또는 삼국유사 기록에 나온 의상대사의 탑돌이와 관련있는 절인 황복사의 목탑이 있던 곳으로 추정해 왔다.
확인된 석재 유물은 탱석과 면석, 지대석, 갑석, 미완성 석재 등으로 신라 왕릉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적이다. 아울러 그 주변에 8~9세기가 중심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너비 16~17m의 도로 등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와 '도깨비기와'로 불리는 '귀면와', 신라 관청명으로 추정되는 ‘습부정정'(習部井井), 한자 한 곳이 다른 ’습부정정'(習府井井), '정원사'(鄭元寺) 등이 적힌 명문기와(글이 적힌 기와) 등 유물 300여 점이 출토됐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해본 왕릉의 지름은 약 22m로, 전(傳) 경덕왕릉과 비슷한 규모이다.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으로 출토된 점과 후대에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된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축조가 중단된 '가릉'(假陵) 석물로 보인다고 문화재청은 추정했다.
가릉은 왕의 죽음이 임박해 사전에 능침을 만들어 두는 무덤을 말한다. 가릉 주인공은 발굴조사 결과와 십이지신상 형식으로 볼 때,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742薨)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가릉 주변에서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서 관청이나 특수한 용도의 건물로 추정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는 앞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왕릉 축조과정과 능원제도를 비롯한 신라왕경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발굴조사 성과는 9일 오후 2시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황복사지 삼층석탑 남쪽 일원의 발굴현장에서 열리는 설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사된 유적은 국보 제79호 금제여래입상과 국보 제80호 금제여래좌상이 발견된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약 135m 떨어진 지점의 논 경작지로, 학계에서는 신문왕릉이나 성덕왕비의 소덕왕후릉, 민애왕릉 등과 비슷한 급의 폐왕릉지, 또는 삼국유사 기록에 나온 의상대사의 탑돌이와 관련있는 절인 황복사의 목탑이 있던 곳으로 추정해 왔다.
확인된 석재 유물은 탱석과 면석, 지대석, 갑석, 미완성 석재 등으로 신라 왕릉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적이다. 아울러 그 주변에 8~9세기가 중심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너비 16~17m의 도로 등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와 '도깨비기와'로 불리는 '귀면와', 신라 관청명으로 추정되는 ‘습부정정'(習部井井), 한자 한 곳이 다른 ’습부정정'(習府井井), '정원사'(鄭元寺) 등이 적힌 명문기와(글이 적힌 기와) 등 유물 300여 점이 출토됐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해본 왕릉의 지름은 약 22m로, 전(傳) 경덕왕릉과 비슷한 규모이다.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으로 출토된 점과 후대에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된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축조가 중단된 '가릉'(假陵) 석물로 보인다고 문화재청은 추정했다.
가릉은 왕의 죽음이 임박해 사전에 능침을 만들어 두는 무덤을 말한다. 가릉 주인공은 발굴조사 결과와 십이지신상 형식으로 볼 때,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742薨)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가릉 주변에서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서 관청이나 특수한 용도의 건물로 추정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는 앞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왕릉 축조과정과 능원제도를 비롯한 신라왕경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발굴조사 성과는 9일 오후 2시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황복사지 삼층석탑 남쪽 일원의 발굴현장에서 열리는 설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
김민경 기자 mkdream@kbs.co.kr
김민경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