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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31) 휴대전화가 삼켜버린 카메라, 사진관
입력 2017.02.20 (15:18) 수정 2017.02.20 (17:20)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문 닫는 사진관, 깜깜해지는 빛의 놀이터


혹시 동네 사진관 언제 가보셨나요? 예전에는 흔하게 눈에 띄는 곳이 사진관이었고, 부지런히 드나들었습니다. 소풍이나 여행을 갔다 오면 으레 필름을 두세 통 들고 사진관 문을 두드렸고, 학교에 입학할 때나 취직할 때, 여권을 만들어야 할 때도 꽤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언제 그 많던 사진관이 사라졌는지 동네를 아무리 둘러봐도 사진관이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사진관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손순미 시인은 인천 소래포구에 들렀다가 점포를 세놓는다는 안내문이 붙은 사진관에 눈길이 닿은 모양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졌고 그나마 걸려 있는 사진도 찾아가지 않고 이따금 파도만 들렀다 가는 곳.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사진관은 쓸쓸함을 더합니다.

사진의 원리가 빛을 조절해서 필름에 피사체를 담아두었다가 암실에서 이 빛을 되살려 피사체를 복원하는 것인데 해가 넘어가면 포구 전체가 암실이 됩니다. 사진관도 그 암실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다시 태양이 떠올라 포구는 멋진 풍경 사진이 되어 사진관에 걸리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습니다.

바다가 배경이었던 이 사진관처럼 아파트나 달동네가 배경이었던 아니면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싱싱한 외침소리가 배경이었던 전국 방방곡곡에 있었던 사진관들이 모두 암실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발견한 가장 멋진 빛의 놀이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1998년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했던 이 영화는 서울 변두리의 한 사진관에서 그저 소박한 사진사로 살아가는 30대 청년과 주차 단속원으로 일하는 20대 젊은 여성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담한 흑백사진처럼 그려 찬사를 받았습니다.

한창 푸르러야 할 나이. 계절로 치면 여름인 청년 정원(한석규)이 불치의 병으로 너무도 때 이른 한겨울을 맞아야 하는 비극. 그렇지만 청순하기 이를 데 없는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을 만나 짧지만 애절한 사랑을 느끼니 그냥 한겨울은 아니었지요. 겨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맞고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텅 빈 사진관을 서성이던 다림은 굳게 닫힌 유리문 안으로 눈길을 주는데, 거기 마지막으로 정원이 만들어주고 간 그녀의 사진을 보고 미소 짓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그녀는 정원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아는 걸까요? 온갖 황당한 스토리와 감정 과잉, 값싼 판타지로 억지 울음과 웃음을 강요하는 삼류 로맨스 영화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겨울밤 차가운 가슴에 포근히 내려앉은 함박눈 같은 영화였습니다.

사진관은 다림에게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장소입니다. 기쁜 생일과 결혼, 입학과 취업,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뇌리에서 사라져야 할 그 행복의 순간을 필름과 빛을 버무려 영원히 되살려주는 곳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원로시인은 이런 사진관집 이층에서 하숙을 하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팔순의 원로 시인은 태어나서 가장 꿈 많고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도 사진관집에 살고 싶고,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 역시 사진관집에서 맞고 싶다고 말합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삶. 아무것도 가져갈 것도 남길 것도 없지만, 왠지 사진관 집에서 임종을 맞는다면 덜 아쉽고 허전할 듯도 합니다.

어쩌면 사진관은 신경림 시인뿐 아니라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을 남기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애착을 지닐 수밖에 없는 숭고한 장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정사진이 세상 가장 엄숙한 사진인 것처럼. 그런가 하면 오래된 사진관의 오래된 노인 사진사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회한의 틀로 반추해보는 시인도 있습니다.


온통 낡은 것들만 가득 찬 소읍에 아무도 찾지 않는 사진관, 거기에 흑백사진처럼 빈 가게를 지키고 있는 노인, 인화가 잘못된 사진처럼 회한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시인. 그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사진관에 황혼이 깃드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쓸쓸합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삼킨 아날로그 카메라, 휴대전화가 삼긴 디지털 카메라


1907년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소공동에 처음으로 '천연당' 사진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사람이든 정물이든 풍경이든 천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뜻이겠지요. 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온 해강 김규진 화가가 문을 연 이후 사진관은 카메라가 사랑받은 만큼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일도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필름에 담아 둔 자신의 모습이나 세상의 모습이 어떻게 현상돼 나올까를 상상하면서 기다리는 일도 여간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림의 미학, 그리움이 포도주처럼 발효하는 가게였던 사진관이 언제부턴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휴대전화 때문입니다.

지난 20년 온 국민의 손을 장악한 휴대전화는 단순한 통화수단을 넘어 인터넷, 카메라, 동영상, 내비게이션, 게임기, 시계, 달력, 손전등까지 거의 모든 기능을 탑재하면서 관련 산업을 그야말로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휴대전화의 촬영기능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전업 작가나 마니아층을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대학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처음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을 때의 그 떨림과 신기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카메라 뚜껑을 열어서 필름을 넣고 조심스레 감을 때 그 팽팽하게 당겨오던 필름의 촉감, 셔터를 누를 때의 짜릿함. 24방의 필름을 다 찍고 나서는 조심조심 필름을 되감았습니다. 필름이 다 감기지 않았는데 뚜껑을 열었다가 빛이 들어가는 바람에 애면글면 찍은 사진이 시커멓게 타버릴 때의 허무함이란! 사진관으로 달려가서 필름을 맡겨놓고는 과연 내가 찍은 사진이 잘 나왔을까 궁금함을 억누르고 기다리던 사나흘의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나온 사진을 들고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하고, 앵글이 흔들려 엉망이 된 사진을 보면서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사진관은 한 차례 충격을 받게 됩니다.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는 아날로그 카메라는 반드시 사진관에서 인화지에 인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을 출력하지 않고 카메라 자체나 노트북 등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인화지가 아닌 일반 프린터에서도 출력이 가능해지면서 사진관의 수입은 크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1881년 창업해서 130년 동안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 시장을 호령했던 코닥은 쓰나미처럼 몰려 온 디지털 세상을 오판한 나머지 2011년 130년 만에 파산해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아날로그 사진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촬영기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그나마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보기 드물어졌습니다. 간간이 출력을 위해 오던 디지털 카메라 손님도 발길이 끊기면서 사진관은 2차 충격을 받습니다.

1981년 일본의 소니가 최초로 상용 디지털 카메라 '마비카'를 내놓은 이후, 가격은 내려가고 화소는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11만대 정도 팔리던 것이 2002년에는 20만대, 2005년에는 180만대, 2010년에는 200만대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스마트폰 보급 대수가 3천만 대를 넘어서고 2014년 4천만 대를 넘어서면서 디지털 카메라는 급격히 판매가 줄었습니다. 130년 아날로그 카메라를 무너뜨렸던 디지털 카메라도 불과 10년 왕좌를 차지하고는 스마트폰에 의해서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입니다.

실제로 2010년 전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1억 2천146만대였지만, 2015년에는 3천5백만대로 급감했습니다. 5년 만에 4분 1토막이 난 것입니다. 니콘과 캐논, 소니와 후지필름 등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의 70%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카메라 업체들도 속속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사실상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찍어대는 사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 가히 사진의 홍수라고 불리는 시대에 정작 사진의 종가(宗家)격인 사진관과 카메라는 사라지는 아이러니가 일어난 것입니다. SNS 가운데 페이스북 한 군데만 해도 하루 평균 전 세계에서 무려 3억 5천만 장의 사진이 새로 올라온다니, 유튜브와 각종 블로그 등 모든 SNS를 합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를 찍어대는 셈입니다.

통계청의 집계를 보면 지난 2014년 사진관은 7천622개, 종사자 수도 만 5천6백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충남 예산에서 52년째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78살 김인제 할아버지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사진관의 호황기라고 회고합니다. 카메라 가방에 지폐가 가득 담겼던 시절이었다는군요. 그나마 살아남은 사진관은 디지털 프린팅이나 액자 앨범 제작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혀 생존을 위한 힘겨운 몸부림을 하고 있지만, 서울 강남 등지의 호화 사진관을 뺀다면 근근이 버티는 형편입니다.

광고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인 제 친구는 최근 씁쓸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의 중학교 졸업식이어서 멋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고급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카메라를 가지고 온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단 세 사람뿐이었다네요. 게다가 아들과 가족들은 요즘 카메라로 찍는 것은 촌스럽다며 시큰둥 하더라나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담아 멋지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던 친구는 적잖이 서운했던 눈칩니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4월이면 열리는 여의도 벚꽃축제에서도 멋진 사진기와 잘 나온 큼지막한 사진을 들고 벚꽃과 사람들 사이를 누비던 사진가 아저씨들을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휴대전화가 사진관과 카메라, 축제를 누비던 사진사 아저씨들을 모두 삼켜버린 시대, 시인들은 어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까요? 이런 대단한 카메라를 지녔군요.


패전 후 일본의 상실과 상처를 시를 통해 치유했던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은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개하기도 했던 분입니다. 하긴 인간의 눈보다 더 영롱하고 정교한 렌즈가 어디 있을까요? 눈의 깜박거림을 셔터라 비유하고 두뇌는 암실에 해당한다니 참 기발한 비유입니다. 그리그 그 암실은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이 무한대로 쌓여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라니. 그 암실 하나로 시인은 평생 배불렀겠습니다. 여러분의 암실에는 무엇이 쌓여 있는지요?

휴대전화가 열어가는 디지털 사진의 빛과 그림자

1839년 프랑스에서 사진술이 처음 공인된 이후 약 180년. 사진은 처음에는 복제되지 않는 금속판에 얹혀 있다가 19세기 말 인쇄기술과 결합해서 무한복제가 되는 인화지에 담기면서 세상을 바꿔놓는 결정적인 매체가 됩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매스미디어의 발달을 비롯해 의료, 산업, 공학, 건축 등 모든 분야의 비약적 발전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진은 일정한 범위밖에 보지 못하고 또 저장이 불가능한 인간의 유한한 눈을 대신해, 광활한 우주에서 극미 세포의 세계까지 거의 모든 대상을 시각 이미지화 하는 마법의 발명품입니다.

또 무한복제를 통해 지식의 보편화, 정보의 확산, 인식의 확장에 절대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그런 사진은 이제 물리적인 인화지가 아니라 인터넷과 전자신호라는 새로운 매체(support)를 만나 인화의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빠른 속도와 편리성 그리고 전파력(傳播力)을 타고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나치시대 탁월한 사회학자였던 발터 벤야민은 이미 이런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던 것일까요?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이가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휴대폰으로 다양한 방식의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가공하고 또 전송하는 솜씨를 갖추지 못하면 거의 문맹 수준으로 대접받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디지털 사진 문화는 좋기만 한 걸까요? 편리함과 속도, 그리고 가격과 비용 같은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아날로그 카메라 시대보다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풍요의 역설이라고나 할까요? 너무 풍부해서 도리어 애틋함과 소중함 그리고 진정성을 잃어버리는 단점도 있습니다. 무제한으로 찍어도 되고 또 지워도 되는 디지털의 속성상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나 셔터를 누르는 정성, 그리고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아날로그에 비해 엷어진다는 것입니다.

부평 역전에서 아날로그 사진관을 고집하는 최광남 사진사는 '마지막 한 컷에 담긴 추억'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게 만일 가장 소중한 사진이 뭐라고 묻는다면 전 36방 필름카메라의 마지막 한 컷이라고 지금도 얘기해요. 이제 딱 한 장밖에 찍을 수 없으니 얼마나 생각이 많겠어요. 가능하면 아름다운 풍광, 가능하면 꼭 기억하고 싶은 사람과 장면, 이걸 담으려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가 편하다고 하지만 진정성을 맛볼 수 있는 것은 필름카메라. 그것도 그 마지막 한 컷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 곰곰 생각할수록 가슴이 뭉클해져 오는 단어입니다. 온 국민이 휴대전화를 지닌 만큼 이제 온 국민이 사진사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빨리, 많이 찍을 수 있게 된 것 못지않게 깊이 그리고 넓게 세상을 찍고 사유하는 안목도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김중만 작가는 "사진이 삶의 기록이고 일기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기장이 너무 감각적이고 선정적이고 또 천박한 기록으로 가득 차면 곤란합니다. 한 컷에 하루 종일 눈길이 머무르고, 한 장이 온 영혼을 뒤흔들 수 있는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좀 사진관에도 들러 멋진 인화지로 출력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최근에 저는 동네 사진관에 가서 막내아들이 쓴 시를 가족사진과 합성해 멋진 액자로 만들었습니다. 거실에 놓여진 그 액자를 들여다볼수록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진을 마음껏 찍어 노트북이나 휴대폰에만 꼭꼭 숨겨두지 말고, 한번 사진관 사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우리 주변에 멋진 기술을 가진 장인이란 장인들은 다 사라지고 우리는 24시간 휴대전화만 얼싸안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연관 기사] [임병걸의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시리즈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31) 휴대전화가 삼켜버린 카메라, 사진관
    • 입력 2017-02-20 15:18:28
    • 수정2017-02-20 17:20:51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문 닫는 사진관, 깜깜해지는 빛의 놀이터


혹시 동네 사진관 언제 가보셨나요? 예전에는 흔하게 눈에 띄는 곳이 사진관이었고, 부지런히 드나들었습니다. 소풍이나 여행을 갔다 오면 으레 필름을 두세 통 들고 사진관 문을 두드렸고, 학교에 입학할 때나 취직할 때, 여권을 만들어야 할 때도 꽤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언제 그 많던 사진관이 사라졌는지 동네를 아무리 둘러봐도 사진관이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사진관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손순미 시인은 인천 소래포구에 들렀다가 점포를 세놓는다는 안내문이 붙은 사진관에 눈길이 닿은 모양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졌고 그나마 걸려 있는 사진도 찾아가지 않고 이따금 파도만 들렀다 가는 곳.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사진관은 쓸쓸함을 더합니다.

사진의 원리가 빛을 조절해서 필름에 피사체를 담아두었다가 암실에서 이 빛을 되살려 피사체를 복원하는 것인데 해가 넘어가면 포구 전체가 암실이 됩니다. 사진관도 그 암실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다시 태양이 떠올라 포구는 멋진 풍경 사진이 되어 사진관에 걸리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습니다.

바다가 배경이었던 이 사진관처럼 아파트나 달동네가 배경이었던 아니면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싱싱한 외침소리가 배경이었던 전국 방방곡곡에 있었던 사진관들이 모두 암실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발견한 가장 멋진 빛의 놀이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1998년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했던 이 영화는 서울 변두리의 한 사진관에서 그저 소박한 사진사로 살아가는 30대 청년과 주차 단속원으로 일하는 20대 젊은 여성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담한 흑백사진처럼 그려 찬사를 받았습니다.

한창 푸르러야 할 나이. 계절로 치면 여름인 청년 정원(한석규)이 불치의 병으로 너무도 때 이른 한겨울을 맞아야 하는 비극. 그렇지만 청순하기 이를 데 없는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을 만나 짧지만 애절한 사랑을 느끼니 그냥 한겨울은 아니었지요. 겨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맞고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텅 빈 사진관을 서성이던 다림은 굳게 닫힌 유리문 안으로 눈길을 주는데, 거기 마지막으로 정원이 만들어주고 간 그녀의 사진을 보고 미소 짓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그녀는 정원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아는 걸까요? 온갖 황당한 스토리와 감정 과잉, 값싼 판타지로 억지 울음과 웃음을 강요하는 삼류 로맨스 영화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겨울밤 차가운 가슴에 포근히 내려앉은 함박눈 같은 영화였습니다.

사진관은 다림에게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장소입니다. 기쁜 생일과 결혼, 입학과 취업,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뇌리에서 사라져야 할 그 행복의 순간을 필름과 빛을 버무려 영원히 되살려주는 곳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원로시인은 이런 사진관집 이층에서 하숙을 하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팔순의 원로 시인은 태어나서 가장 꿈 많고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도 사진관집에 살고 싶고,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 역시 사진관집에서 맞고 싶다고 말합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삶. 아무것도 가져갈 것도 남길 것도 없지만, 왠지 사진관 집에서 임종을 맞는다면 덜 아쉽고 허전할 듯도 합니다.

어쩌면 사진관은 신경림 시인뿐 아니라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을 남기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애착을 지닐 수밖에 없는 숭고한 장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정사진이 세상 가장 엄숙한 사진인 것처럼. 그런가 하면 오래된 사진관의 오래된 노인 사진사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회한의 틀로 반추해보는 시인도 있습니다.


온통 낡은 것들만 가득 찬 소읍에 아무도 찾지 않는 사진관, 거기에 흑백사진처럼 빈 가게를 지키고 있는 노인, 인화가 잘못된 사진처럼 회한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시인. 그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사진관에 황혼이 깃드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쓸쓸합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삼킨 아날로그 카메라, 휴대전화가 삼긴 디지털 카메라


1907년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소공동에 처음으로 '천연당' 사진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사람이든 정물이든 풍경이든 천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뜻이겠지요. 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온 해강 김규진 화가가 문을 연 이후 사진관은 카메라가 사랑받은 만큼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일도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필름에 담아 둔 자신의 모습이나 세상의 모습이 어떻게 현상돼 나올까를 상상하면서 기다리는 일도 여간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림의 미학, 그리움이 포도주처럼 발효하는 가게였던 사진관이 언제부턴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휴대전화 때문입니다.

지난 20년 온 국민의 손을 장악한 휴대전화는 단순한 통화수단을 넘어 인터넷, 카메라, 동영상, 내비게이션, 게임기, 시계, 달력, 손전등까지 거의 모든 기능을 탑재하면서 관련 산업을 그야말로 초토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휴대전화의 촬영기능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전업 작가나 마니아층을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대학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처음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을 때의 그 떨림과 신기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카메라 뚜껑을 열어서 필름을 넣고 조심스레 감을 때 그 팽팽하게 당겨오던 필름의 촉감, 셔터를 누를 때의 짜릿함. 24방의 필름을 다 찍고 나서는 조심조심 필름을 되감았습니다. 필름이 다 감기지 않았는데 뚜껑을 열었다가 빛이 들어가는 바람에 애면글면 찍은 사진이 시커멓게 타버릴 때의 허무함이란! 사진관으로 달려가서 필름을 맡겨놓고는 과연 내가 찍은 사진이 잘 나왔을까 궁금함을 억누르고 기다리던 사나흘의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나온 사진을 들고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하고, 앵글이 흔들려 엉망이 된 사진을 보면서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사진관은 한 차례 충격을 받게 됩니다.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는 아날로그 카메라는 반드시 사진관에서 인화지에 인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을 출력하지 않고 카메라 자체나 노트북 등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인화지가 아닌 일반 프린터에서도 출력이 가능해지면서 사진관의 수입은 크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1881년 창업해서 130년 동안 아날로그 카메라와 필름 시장을 호령했던 코닥은 쓰나미처럼 몰려 온 디지털 세상을 오판한 나머지 2011년 130년 만에 파산해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아날로그 사진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촬영기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그나마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보기 드물어졌습니다. 간간이 출력을 위해 오던 디지털 카메라 손님도 발길이 끊기면서 사진관은 2차 충격을 받습니다.

1981년 일본의 소니가 최초로 상용 디지털 카메라 '마비카'를 내놓은 이후, 가격은 내려가고 화소는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11만대 정도 팔리던 것이 2002년에는 20만대, 2005년에는 180만대, 2010년에는 200만대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스마트폰 보급 대수가 3천만 대를 넘어서고 2014년 4천만 대를 넘어서면서 디지털 카메라는 급격히 판매가 줄었습니다. 130년 아날로그 카메라를 무너뜨렸던 디지털 카메라도 불과 10년 왕좌를 차지하고는 스마트폰에 의해서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입니다.

실제로 2010년 전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1억 2천146만대였지만, 2015년에는 3천5백만대로 급감했습니다. 5년 만에 4분 1토막이 난 것입니다. 니콘과 캐논, 소니와 후지필름 등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의 70%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카메라 업체들도 속속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사실상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찍어대는 사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 가히 사진의 홍수라고 불리는 시대에 정작 사진의 종가(宗家)격인 사진관과 카메라는 사라지는 아이러니가 일어난 것입니다. SNS 가운데 페이스북 한 군데만 해도 하루 평균 전 세계에서 무려 3억 5천만 장의 사진이 새로 올라온다니, 유튜브와 각종 블로그 등 모든 SNS를 합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를 찍어대는 셈입니다.

통계청의 집계를 보면 지난 2014년 사진관은 7천622개, 종사자 수도 만 5천6백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충남 예산에서 52년째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78살 김인제 할아버지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사진관의 호황기라고 회고합니다. 카메라 가방에 지폐가 가득 담겼던 시절이었다는군요. 그나마 살아남은 사진관은 디지털 프린팅이나 액자 앨범 제작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혀 생존을 위한 힘겨운 몸부림을 하고 있지만, 서울 강남 등지의 호화 사진관을 뺀다면 근근이 버티는 형편입니다.

광고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인 제 친구는 최근 씁쓸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막내아들의 중학교 졸업식이어서 멋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고급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카메라를 가지고 온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단 세 사람뿐이었다네요. 게다가 아들과 가족들은 요즘 카메라로 찍는 것은 촌스럽다며 시큰둥 하더라나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담아 멋지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던 친구는 적잖이 서운했던 눈칩니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4월이면 열리는 여의도 벚꽃축제에서도 멋진 사진기와 잘 나온 큼지막한 사진을 들고 벚꽃과 사람들 사이를 누비던 사진가 아저씨들을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휴대전화가 사진관과 카메라, 축제를 누비던 사진사 아저씨들을 모두 삼켜버린 시대, 시인들은 어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까요? 이런 대단한 카메라를 지녔군요.


패전 후 일본의 상실과 상처를 시를 통해 치유했던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은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개하기도 했던 분입니다. 하긴 인간의 눈보다 더 영롱하고 정교한 렌즈가 어디 있을까요? 눈의 깜박거림을 셔터라 비유하고 두뇌는 암실에 해당한다니 참 기발한 비유입니다. 그리그 그 암실은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이 무한대로 쌓여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라니. 그 암실 하나로 시인은 평생 배불렀겠습니다. 여러분의 암실에는 무엇이 쌓여 있는지요?

휴대전화가 열어가는 디지털 사진의 빛과 그림자

1839년 프랑스에서 사진술이 처음 공인된 이후 약 180년. 사진은 처음에는 복제되지 않는 금속판에 얹혀 있다가 19세기 말 인쇄기술과 결합해서 무한복제가 되는 인화지에 담기면서 세상을 바꿔놓는 결정적인 매체가 됩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매스미디어의 발달을 비롯해 의료, 산업, 공학, 건축 등 모든 분야의 비약적 발전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진은 일정한 범위밖에 보지 못하고 또 저장이 불가능한 인간의 유한한 눈을 대신해, 광활한 우주에서 극미 세포의 세계까지 거의 모든 대상을 시각 이미지화 하는 마법의 발명품입니다.

또 무한복제를 통해 지식의 보편화, 정보의 확산, 인식의 확장에 절대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그런 사진은 이제 물리적인 인화지가 아니라 인터넷과 전자신호라는 새로운 매체(support)를 만나 인화의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되는 빠른 속도와 편리성 그리고 전파력(傳播力)을 타고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나치시대 탁월한 사회학자였던 발터 벤야민은 이미 이런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던 것일까요?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이가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이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휴대폰으로 다양한 방식의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가공하고 또 전송하는 솜씨를 갖추지 못하면 거의 문맹 수준으로 대접받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디지털 사진 문화는 좋기만 한 걸까요? 편리함과 속도, 그리고 가격과 비용 같은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아날로그 카메라 시대보다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풍요의 역설이라고나 할까요? 너무 풍부해서 도리어 애틋함과 소중함 그리고 진정성을 잃어버리는 단점도 있습니다. 무제한으로 찍어도 되고 또 지워도 되는 디지털의 속성상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나 셔터를 누르는 정성, 그리고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아날로그에 비해 엷어진다는 것입니다.

부평 역전에서 아날로그 사진관을 고집하는 최광남 사진사는 '마지막 한 컷에 담긴 추억'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게 만일 가장 소중한 사진이 뭐라고 묻는다면 전 36방 필름카메라의 마지막 한 컷이라고 지금도 얘기해요. 이제 딱 한 장밖에 찍을 수 없으니 얼마나 생각이 많겠어요. 가능하면 아름다운 풍광, 가능하면 꼭 기억하고 싶은 사람과 장면, 이걸 담으려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가 편하다고 하지만 진정성을 맛볼 수 있는 것은 필름카메라. 그것도 그 마지막 한 컷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 곰곰 생각할수록 가슴이 뭉클해져 오는 단어입니다. 온 국민이 휴대전화를 지닌 만큼 이제 온 국민이 사진사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빨리, 많이 찍을 수 있게 된 것 못지않게 깊이 그리고 넓게 세상을 찍고 사유하는 안목도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김중만 작가는 "사진이 삶의 기록이고 일기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기장이 너무 감각적이고 선정적이고 또 천박한 기록으로 가득 차면 곤란합니다. 한 컷에 하루 종일 눈길이 머무르고, 한 장이 온 영혼을 뒤흔들 수 있는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좀 사진관에도 들러 멋진 인화지로 출력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최근에 저는 동네 사진관에 가서 막내아들이 쓴 시를 가족사진과 합성해 멋진 액자로 만들었습니다. 거실에 놓여진 그 액자를 들여다볼수록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진을 마음껏 찍어 노트북이나 휴대폰에만 꼭꼭 숨겨두지 말고, 한번 사진관 사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우리 주변에 멋진 기술을 가진 장인이란 장인들은 다 사라지고 우리는 24시간 휴대전화만 얼싸안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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