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이 잘못해 화상”…CCTV보니 ‘거짓말’

입력 2017.02.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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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일부 층이 괴사한 상태로 성장하면서 추가적인 수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낸 20개월, 24개월 아이들이 '깊은 2도 화상'을 입었다. 2주 이상의 입원 치료가 필요하고 관절 부위의 경우 굳을 위험도 있어 경과를 보며 수술 진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뜨거운 물에 뎄다'는 어린이집에서의 문자를 받고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까지만 해도 아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큰 상처인 줄 몰랐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컵에 든 뜨거운 물을 조금 쏟았다는데 왜 이렇게 많이 다친 걸까?

CCTV를 요구하자 드러난 어린이집의 거짓말

부모들이 폐쇄회로(CC)TV를 보여달라고 하자 어린이집에서는 신청서를 요구하고 전문 기술자가 와야 확인할 수 있다며 시간을 끌었다. 아이의 부모가 해당 CCTV 회사에 문의하자 이번에는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의 초상권을 이유로 다시 미뤘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에는 피해 아동 2명과 원장의 손자가 전부다. 부모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여준 CCTV 화면 속에는 어린이집의 거짓말이 담겨있었다.

아이들이 쏟았다던 물은 교사가 쏟은 물이었고 컵이 아닌 보온병이었다. 잘 몰랐다던 원장은 아이의 상처를 확인하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15분 동안 아이들은 아픈 부위를 붙잡고 울 뿐이었다. 그동안 교사는 주변을 정리했고 원장은 남편에게 연락해 개인차를 대기시켰다. 피해 아동의 부모는 "이렇게까지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아이들이 한 일로 축소하고 은폐해 없는 일처럼 넘어가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고 분개했다.

어린이집의 응급상황 시 내부 지침과 부모들의 응급처치 동의서어린이집의 응급상황 시 내부 지침과 부모들의 응급처치 동의서

왜 아무런 응급조치가 없었을까?

뉴스가 나가고 많은 사람이 가진 의문이다. 어린이집에는 응급 상황 발생 시 119에 신고하라는 내부 지침이 있었다. 특정 병원을 지정해둔 응급처치 동의서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어린이집 CCTV에 표기된 사건 발생 시간은 10시 30분. 하지만 아이가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은 시간은 11시 23분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15분 가까이 되어서야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을 나갔고 구급차가 아닌 원장 남편의 차를 기다리면서 아이는 최대 50분 가까이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다. 왜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냐는 물음에 원장은 "119가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고 해명했다.



은석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아이들의 경우 성인에 비해 피부가 약해 화상을 입을 경우 열 침투가 빠르기 때문에 초기 30분이 '골든타임'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바로 젖은 수건 등으로 냉찜질하며 병원에 와서도 30분에서 1시간 가까이 상처 부위의 열을 식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린이집에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쳤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어린이집 안전사고, 제대로 관리 감독할 수는 없을까?

현재 부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응급처치 동의서'를 작성한다. 동의서에는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연락할 보호자 연락처와 119신고, 응급치료를 원하는 병원을 학부모가 지정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어린이집에서는 실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동의서에 따라 조치하고 해당 사항에 대해 '보육통합정보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집을 관리 감독하는 해당 구청에서는 전염병 등 특별한 사안이 아닌 안전사고에 대한 보고 내용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보육교사의 안전교육 역시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다. 어린이집 안전사고는 2011년 2,992건에서 2015년 6,786건으로 2.3배 증가했지만 보육교사 안전교육의 이수율은 2015년 기준 18.8%에 불과하다. 부모들은 응급 상황에서 어린이집에 기대기도, 감독 기관에 기대기도 불안하다.



이 불안을 해결할 마지막 장치가 어린이집 CCTV이다. 지난 2015년 9월부터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 이에 따라 학부모는 학대나 안전사고 정황이 의심될 경우 어린이집에 CCTV 열람을 요구할 수 있다.

학부모는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양식에 맞춰 신청서를 작성, 제출하고 어린이집 책임자인 원장은 10일 이내에 열람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사실상 해당 어린이집의 의심스러운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어린이집 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쉽게 CCTV를 열람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CCTV를 갖추어 놓지만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어린이집에서도 최소 60일간 보관이 되어야 하는 CCTV 영상을 30일밖에 보관하지 않고 있었다.

항의하기도 어려운 '현실'

어린이집 안전사고 위험은 곳곳에 존재한다. 부모들은 응급처치를 전적으로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지만 이를 관리하고 감독할 곳이 없다.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기 급급한 어린이집에 항의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도 한 아이의 부모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만, 그동안 아이를 맡아줄 기관도, 지인도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부모는 응급처치에 대한 방침도, 교육도, 감시도 없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그저 다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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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아이 잘못해 화상”…CCTV보니 ‘거짓말’
    • 입력 2017-02-27 11:42:50
    취재후·사건후
"피부 일부 층이 괴사한 상태로 성장하면서 추가적인 수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낸 20개월, 24개월 아이들이 '깊은 2도 화상'을 입었다. 2주 이상의 입원 치료가 필요하고 관절 부위의 경우 굳을 위험도 있어 경과를 보며 수술 진행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뜨거운 물에 뎄다'는 어린이집에서의 문자를 받고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까지만 해도 아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큰 상처인 줄 몰랐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컵에 든 뜨거운 물을 조금 쏟았다는데 왜 이렇게 많이 다친 걸까?

CCTV를 요구하자 드러난 어린이집의 거짓말

부모들이 폐쇄회로(CC)TV를 보여달라고 하자 어린이집에서는 신청서를 요구하고 전문 기술자가 와야 확인할 수 있다며 시간을 끌었다. 아이의 부모가 해당 CCTV 회사에 문의하자 이번에는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의 초상권을 이유로 다시 미뤘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에는 피해 아동 2명과 원장의 손자가 전부다. 부모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여준 CCTV 화면 속에는 어린이집의 거짓말이 담겨있었다.

아이들이 쏟았다던 물은 교사가 쏟은 물이었고 컵이 아닌 보온병이었다. 잘 몰랐다던 원장은 아이의 상처를 확인하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15분 동안 아이들은 아픈 부위를 붙잡고 울 뿐이었다. 그동안 교사는 주변을 정리했고 원장은 남편에게 연락해 개인차를 대기시켰다. 피해 아동의 부모는 "이렇게까지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아이들이 한 일로 축소하고 은폐해 없는 일처럼 넘어가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고 분개했다.

어린이집의 응급상황 시 내부 지침과 부모들의 응급처치 동의서
왜 아무런 응급조치가 없었을까?

뉴스가 나가고 많은 사람이 가진 의문이다. 어린이집에는 응급 상황 발생 시 119에 신고하라는 내부 지침이 있었다. 특정 병원을 지정해둔 응급처치 동의서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어린이집 CCTV에 표기된 사건 발생 시간은 10시 30분. 하지만 아이가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은 시간은 11시 23분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15분 가까이 되어서야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을 나갔고 구급차가 아닌 원장 남편의 차를 기다리면서 아이는 최대 50분 가까이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다. 왜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냐는 물음에 원장은 "119가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고 해명했다.



은석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아이들의 경우 성인에 비해 피부가 약해 화상을 입을 경우 열 침투가 빠르기 때문에 초기 30분이 '골든타임'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바로 젖은 수건 등으로 냉찜질하며 병원에 와서도 30분에서 1시간 가까이 상처 부위의 열을 식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린이집에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쳤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어린이집 안전사고, 제대로 관리 감독할 수는 없을까?

현재 부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응급처치 동의서'를 작성한다. 동의서에는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연락할 보호자 연락처와 119신고, 응급치료를 원하는 병원을 학부모가 지정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어린이집에서는 실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동의서에 따라 조치하고 해당 사항에 대해 '보육통합정보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그러나 어린이집을 관리 감독하는 해당 구청에서는 전염병 등 특별한 사안이 아닌 안전사고에 대한 보고 내용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보육교사의 안전교육 역시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이다. 어린이집 안전사고는 2011년 2,992건에서 2015년 6,786건으로 2.3배 증가했지만 보육교사 안전교육의 이수율은 2015년 기준 18.8%에 불과하다. 부모들은 응급 상황에서 어린이집에 기대기도, 감독 기관에 기대기도 불안하다.



이 불안을 해결할 마지막 장치가 어린이집 CCTV이다. 지난 2015년 9월부터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 이에 따라 학부모는 학대나 안전사고 정황이 의심될 경우 어린이집에 CCTV 열람을 요구할 수 있다.

학부모는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양식에 맞춰 신청서를 작성, 제출하고 어린이집 책임자인 원장은 10일 이내에 열람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사실상 해당 어린이집의 의심스러운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어린이집 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쉽게 CCTV를 열람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CCTV를 갖추어 놓지만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어린이집에서도 최소 60일간 보관이 되어야 하는 CCTV 영상을 30일밖에 보관하지 않고 있었다.

항의하기도 어려운 '현실'

어린이집 안전사고 위험은 곳곳에 존재한다. 부모들은 응급처치를 전적으로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지만 이를 관리하고 감독할 곳이 없다.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기 급급한 어린이집에 항의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도 한 아이의 부모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만, 그동안 아이를 맡아줄 기관도, 지인도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부모는 응급처치에 대한 방침도, 교육도, 감시도 없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그저 다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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