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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이름도, 나이도…“안 당해보면 몰라요”
입력 2017.02.27 (11:45) 취재후·사건후
"잠깐만 얘기해보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감쪽같이 넘어가요. 처음 만난 날 어떻게 알았는지 제 이름, 나이, 직업까지 알고 있더라고요.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얼마나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람인지…." -피해 여성 김 모 씨

"통역해 줄 사람을 뽑는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처음 연락했어요. 처음 만나자마자 저한테 사업을 제안하더라고요. 자기랑 같이 다니면서 일을 도우면 한 달에 월급 350만 원을 주겠다 했어요. 조건이 괜찮아 보여서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피해 여성 신 모 씨

"처음에는 사업 동료로 만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한테 호감을 느낀다면서 갑자기 사귀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저희 부모님을 만나 결혼할 사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도 사업을 해서 의심이 많은 편인데 완전히 속았죠." -피해 여성 전 모 씨

이름, 나이, 주소까지…모든 게 거짓이었던 남자

기자와 만난 세 여자는 저마다의 사정도, 사기를 당한 수법도, 피해금액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자신들에게 접근한 이 모(28) 씨의 본명과 나이를 다르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성도, 살고 있는 주소지도 달랐다. 세 여성은 모두 같은 기간이었던 지난해 이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조성현'이라는 가명을 썼다.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이나 많은 것처럼 돌아다니고, 자신을 국내 대기업 총수의 친척이자 중국계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재벌 행세를 했다. 고급 호텔을 드나들며 수억 원에 달하는 수입차를 타고 다니면서 개인 비서까지 데리고 다녔던 이 씨의 모습에 여성들은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 씨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이 씨가 데리고 다닌 개인비서도 이 씨에게 속은 또 다른 피해자였다. 개인비서로 일하면 한 달에 500만 원씩 준다고 약속한 이 씨는 두 달 동안 비서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고급 호텔 숙박비도 모두 여성들 명의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이 씨는 지난해 1년간 만난 세 명의 여성들로부터 동의 없이 카드를 만들어 썼다.

"수입차 사주겠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는다" 범행 수법도 다양


이 씨는 중고 수입차의 무료 시승기간 서비스를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7월 이 씨는 김 씨에게 수입차를 사줄 테니 세금만 내라며 1,200만 원을 요구했다. 재벌가와 결혼하기 위해선 수입차가 필수라는 말에 할 수 없이 돈을 준 김 씨는 이 씨가 가져온 수입차를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김 씨가 운전한 지 1주일쯤 지나 이 씨는 차량 정비를 이유로 차를 다시 회수했다.

개인 사업자였던 전 씨에게 이 씨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씨는 지난해 6월 중고 수입차를 산 뒤 다시 되파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길 수 있다며 전 씨를 설득했다. 전 씨는 수입차 두 대를 사는 비용으로만 10억여 원을 내줬다. 전 씨 명의로 된 자동차등록증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차량이 출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는 차를 팔았고 갖은 이유를 대며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 씨는 이런 방식으로 전 씨에게서 16억 원을 챙겼다.

신 씨에게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돈을 요구했다. 지난해 4월, 사업만 잘 해결되면 곧장 결혼할 수 있다며 이 씨는 신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결국 신 씨는 5,000만 원을 대출받아 이 씨에게 빌려줬다. 하지만 이 씨의 대출 요구는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신 씨의 부모님에게까지 5억 원을 받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신 씨의 부모님은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결혼사진 촬영에 결혼식장까지 예약하며 안심시켜


이 씨가 연락이 끊기면서 여성들은 이 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씨는 각각의 여성들을 달래기 위해 귀금속을 보여주며 결혼 날짜를 잡았다. 먼저 이 씨는 김 씨에게 결혼반지를 건네주며 청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사진까지 촬영했다. 김 씨는 이 씨에 대한 의심을 풀고 결혼을 준비했다. 하지만 예단 비용 1억 원을 건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는 연락을 다시 끊고 잠적해버렸다.

교제 기간이 가장 길었던 신 씨에게는 결혼식장 예약 명세서를 직접 보여주면서 안심시켰다. 결혼 날짜까지 정해지자 신 씨도 이 씨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하지만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서 이 씨는 다시 바쁜 사업을 핑계 삼아 연락을 끊었다. 신 씨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결혼식장 예약은 이미 취소된 상태였다. 이 씨는 신 씨를 속이기 위해 예식장 직원에게 신 씨가 확인하면 예약이 잘 처리됐다고 말할 것을 주문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 씨는 자신과 결혼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던 전 씨에게 무리하게 돈을 요구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전 씨가 없는 자리에서 이 씨는 전 씨의 아버지를 만나 자신이 전 씨와 결혼할 사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결혼 요구를 수상히 여긴 전 씨가 지난해 10월 이 씨를 남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지난달 경찰은 이 씨를 검거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검거 당시에도 다른 여성들 속여...가로챈 돈은 도박 사이트로


이 씨는 검거 당시였던 지난 1월에도 또 다른 여성들에게 접근해 같은 수법으로 돈을 가로채고 있었다. '조성현'이라는 이름 대신 '이현'이라는 가명으로 돌아다니며 자신을 재력가라고 속이며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이 씨는 2명의 여성으로부터 한 달 사이 3,000여 만 원을 가로챘다. 지난 1년간 이 씨에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만 5명, 피해액만 20억 원이 넘는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가로챈 돈 대부분을 인터넷 도박을 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통장 내역에서 다수의 인터넷 도박 사이트 계좌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해 여성들이 돈을 온전히 돌려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음 달 재판을 앞둔 현재 이 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대부분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또 비슷한 피해를 막기 위해 용기를 내 제보했다고 한다. 피해 여성 중엔 이 씨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를 하고 자살기도까지 한 사람도 있다. 또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의 기로에 선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1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상처 준 만큼 꼭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어요." 
  • [취재후] 이름도, 나이도…“안 당해보면 몰라요”
    • 입력 2017-02-27 11:45:35
    취재후·사건후
"잠깐만 얘기해보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감쪽같이 넘어가요. 처음 만난 날 어떻게 알았는지 제 이름, 나이, 직업까지 알고 있더라고요.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얼마나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람인지…." -피해 여성 김 모 씨

"통역해 줄 사람을 뽑는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처음 연락했어요. 처음 만나자마자 저한테 사업을 제안하더라고요. 자기랑 같이 다니면서 일을 도우면 한 달에 월급 350만 원을 주겠다 했어요. 조건이 괜찮아 보여서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피해 여성 신 모 씨

"처음에는 사업 동료로 만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한테 호감을 느낀다면서 갑자기 사귀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저희 부모님을 만나 결혼할 사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도 사업을 해서 의심이 많은 편인데 완전히 속았죠." -피해 여성 전 모 씨

이름, 나이, 주소까지…모든 게 거짓이었던 남자

기자와 만난 세 여자는 저마다의 사정도, 사기를 당한 수법도, 피해금액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자신들에게 접근한 이 모(28) 씨의 본명과 나이를 다르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성도, 살고 있는 주소지도 달랐다. 세 여성은 모두 같은 기간이었던 지난해 이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조성현'이라는 가명을 썼다.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이나 많은 것처럼 돌아다니고, 자신을 국내 대기업 총수의 친척이자 중국계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재벌 행세를 했다. 고급 호텔을 드나들며 수억 원에 달하는 수입차를 타고 다니면서 개인 비서까지 데리고 다녔던 이 씨의 모습에 여성들은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여성들이 이 씨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이 씨가 데리고 다닌 개인비서도 이 씨에게 속은 또 다른 피해자였다. 개인비서로 일하면 한 달에 500만 원씩 준다고 약속한 이 씨는 두 달 동안 비서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고급 호텔 숙박비도 모두 여성들 명의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이 씨는 지난해 1년간 만난 세 명의 여성들로부터 동의 없이 카드를 만들어 썼다.

"수입차 사주겠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는다" 범행 수법도 다양


이 씨는 중고 수입차의 무료 시승기간 서비스를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7월 이 씨는 김 씨에게 수입차를 사줄 테니 세금만 내라며 1,200만 원을 요구했다. 재벌가와 결혼하기 위해선 수입차가 필수라는 말에 할 수 없이 돈을 준 김 씨는 이 씨가 가져온 수입차를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김 씨가 운전한 지 1주일쯤 지나 이 씨는 차량 정비를 이유로 차를 다시 회수했다.

개인 사업자였던 전 씨에게 이 씨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 씨는 지난해 6월 중고 수입차를 산 뒤 다시 되파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길 수 있다며 전 씨를 설득했다. 전 씨는 수입차 두 대를 사는 비용으로만 10억여 원을 내줬다. 전 씨 명의로 된 자동차등록증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차량이 출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는 차를 팔았고 갖은 이유를 대며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 씨는 이런 방식으로 전 씨에게서 16억 원을 챙겼다.

신 씨에게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돈을 요구했다. 지난해 4월, 사업만 잘 해결되면 곧장 결혼할 수 있다며 이 씨는 신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결국 신 씨는 5,000만 원을 대출받아 이 씨에게 빌려줬다. 하지만 이 씨의 대출 요구는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신 씨의 부모님에게까지 5억 원을 받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신 씨의 부모님은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결혼사진 촬영에 결혼식장까지 예약하며 안심시켜


이 씨가 연락이 끊기면서 여성들은 이 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씨는 각각의 여성들을 달래기 위해 귀금속을 보여주며 결혼 날짜를 잡았다. 먼저 이 씨는 김 씨에게 결혼반지를 건네주며 청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사진까지 촬영했다. 김 씨는 이 씨에 대한 의심을 풀고 결혼을 준비했다. 하지만 예단 비용 1억 원을 건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는 연락을 다시 끊고 잠적해버렸다.

교제 기간이 가장 길었던 신 씨에게는 결혼식장 예약 명세서를 직접 보여주면서 안심시켰다. 결혼 날짜까지 정해지자 신 씨도 이 씨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하지만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서 이 씨는 다시 바쁜 사업을 핑계 삼아 연락을 끊었다. 신 씨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결혼식장 예약은 이미 취소된 상태였다. 이 씨는 신 씨를 속이기 위해 예식장 직원에게 신 씨가 확인하면 예약이 잘 처리됐다고 말할 것을 주문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 씨는 자신과 결혼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던 전 씨에게 무리하게 돈을 요구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전 씨가 없는 자리에서 이 씨는 전 씨의 아버지를 만나 자신이 전 씨와 결혼할 사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결혼 요구를 수상히 여긴 전 씨가 지난해 10월 이 씨를 남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지난달 경찰은 이 씨를 검거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검거 당시에도 다른 여성들 속여...가로챈 돈은 도박 사이트로


이 씨는 검거 당시였던 지난 1월에도 또 다른 여성들에게 접근해 같은 수법으로 돈을 가로채고 있었다. '조성현'이라는 이름 대신 '이현'이라는 가명으로 돌아다니며 자신을 재력가라고 속이며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이 씨는 2명의 여성으로부터 한 달 사이 3,000여 만 원을 가로챘다. 지난 1년간 이 씨에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만 5명, 피해액만 20억 원이 넘는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가로챈 돈 대부분을 인터넷 도박을 하는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통장 내역에서 다수의 인터넷 도박 사이트 계좌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해 여성들이 돈을 온전히 돌려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음 달 재판을 앞둔 현재 이 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대부분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또 비슷한 피해를 막기 위해 용기를 내 제보했다고 한다. 피해 여성 중엔 이 씨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를 하고 자살기도까지 한 사람도 있다. 또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의 기로에 선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1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상처 준 만큼 꼭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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