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명화 속 음식 1위 과일…‘레몬’

입력 2017.02.28 (13:35) 수정 2017.02.2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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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뉴스7] 명화로 보는 음식문화…500년 전에도 음식 자랑?


바다 냄새를 머금은 신선한 굴과 껍질을 반 쯤 벗긴 레몬, 붉은 가재가 식탁에 놓여있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은제 식기에 음식의 형채가 어리면서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피터르 클라스(Pieter Claesz)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이다. 당시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에 문화적 황금기가 찾아오면서 미술사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신이나 역사를 주제로 한 경건한 종교화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음식, 자연의 풍경이 처음으로 캔버스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요하네스 베르메르_1658년 作우유를 따르는 여인(요하네스 베르메르_1658년 作

죽어있는 사물을 그린다고 해서 회화 장르에서 가장 천시받던 정물화는 17세기를 전후해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림의 주문자가 왕족이나 귀족 등 특권층에서 부르주아 계급으로, 대중으로 확대되면서 일상적인 소재를 즉물 화법으로 생생하게 포착한 정물화가 대유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음식을 그린 정물화는 서민들 사이에서도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꽃이나 과일, 값비싼 식기가 등장하는 정물화는 복제품(레플리카)도 수없이 만들어질 정도로 많이 팔려나갔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1500년부터 2000년 사이에 그려진 음식 정물화를 분석했더니 과일이 76%로 가장 자주 등장했다.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1500년부터 2000년 사이에 그려진 음식 정물화를 분석했더니 과일이 76%로 가장 자주 등장했다.

음식을 묘사한 정물화를 보면 '당시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주로 먹었구나'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사회·과학적 연구를 하는 '아트 사이언스'라는 분야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1500년부터 2000년까지 500년간 그려진 음식 정물화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750점 가운데 식탁을 클로즈업해 음식을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 140점을 스크리닝했더니 가장 많이 등장한 소재는 과일이었다. 그 뒤를 빵이나 육류·해산물이 차지했다.

당시 주식은 빵이었으니까 당연히 정물화에 자주 등장한 것은 알겠는데, 과일 중에서는 레몬이 31%로 가장 많이 그려졌다. 흔했던 사과와 포도보다 정물화의 소재로 인기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히말라야가 원산지인 레몬은 당시 지중해 일부지역에서 재배되는 희귀한 과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정물화에서는 절반이 넘는 빈도로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주식이었던 돼지고기나 햄, 소시지보다 생선이나 조개, 굴, 가재 등해산물의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분석한 그림 3점 가운데 1점은 해산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희귀했던 과일인 레몬과 썩기 쉬운 해산물이 그림 3점당 1번 꼴(31%)로 등장했다.희귀했던 과일인 레몬과 썩기 쉬운 해산물이 그림 3점당 1번 꼴(31%)로 등장했다.

전동호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해안이 아닌 내륙에서 신선한 생선을 맛보는 일은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17세기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민들은 대부분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한 해산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또 해산물의 풍미를 좋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해독 작용을 한다고 알려진 레몬이 늘 함께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희귀한 것들이 한 자리에 차려진 그림 속 식탁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SNS에 올리는 음식 게시물도 평범한 음식보다는 먹기 힘든 음식들이 주를 이룬다.SNS에 올리는 음식 게시물도 평범한 음식보다는 먹기 힘든 음식들이 주를 이룬다.

17세기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으로 보이는 음식 정물화는 사실 일상을 포착한 것이 아니다. 전동호 교수는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풍요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희귀하고 값비싼 음식들을 그림으로 그려 식탁 주변에 걸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민들은 이런 그림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늘 먹던 음식을 그린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을 그린 것이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들, 이른바 '먹빵'이나 '먹짤' '먹스타그램' 사진들을 보면 일상에서 먹는 밥이나 국, 김치를 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어쩌다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이런 음식 게시물을 보는 사람들도 '좋아요'를 누르며 대리 만족을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사진이 없던 17세기에는 '어쩌다 먹는' 특별한 음식을 캔버스에 옮겨두고 싶었고 주변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오래오래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맛있고 희귀한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전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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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8 13:35:14
    • 수정2017-02-28 21: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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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뉴스7] 명화로 보는 음식문화…500년 전에도 음식 자랑? 바다 냄새를 머금은 신선한 굴과 껍질을 반 쯤 벗긴 레몬, 붉은 가재가 식탁에 놓여있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은제 식기에 음식의 형채가 어리면서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피터르 클라스(Pieter Claesz)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이다. 당시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에 문화적 황금기가 찾아오면서 미술사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신이나 역사를 주제로 한 경건한 종교화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음식, 자연의 풍경이 처음으로 캔버스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요하네스 베르메르_1658년 作 죽어있는 사물을 그린다고 해서 회화 장르에서 가장 천시받던 정물화는 17세기를 전후해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림의 주문자가 왕족이나 귀족 등 특권층에서 부르주아 계급으로, 대중으로 확대되면서 일상적인 소재를 즉물 화법으로 생생하게 포착한 정물화가 대유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음식을 그린 정물화는 서민들 사이에서도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꽃이나 과일, 값비싼 식기가 등장하는 정물화는 복제품(레플리카)도 수없이 만들어질 정도로 많이 팔려나갔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1500년부터 2000년 사이에 그려진 음식 정물화를 분석했더니 과일이 76%로 가장 자주 등장했다. 음식을 묘사한 정물화를 보면 '당시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주로 먹었구나'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림을 통해 사회·과학적 연구를 하는 '아트 사이언스'라는 분야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1500년부터 2000년까지 500년간 그려진 음식 정물화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 750점 가운데 식탁을 클로즈업해 음식을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 140점을 스크리닝했더니 가장 많이 등장한 소재는 과일이었다. 그 뒤를 빵이나 육류·해산물이 차지했다. 당시 주식은 빵이었으니까 당연히 정물화에 자주 등장한 것은 알겠는데, 과일 중에서는 레몬이 31%로 가장 많이 그려졌다. 흔했던 사과와 포도보다 정물화의 소재로 인기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히말라야가 원산지인 레몬은 당시 지중해 일부지역에서 재배되는 희귀한 과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정물화에서는 절반이 넘는 빈도로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주식이었던 돼지고기나 햄, 소시지보다 생선이나 조개, 굴, 가재 등해산물의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분석한 그림 3점 가운데 1점은 해산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희귀했던 과일인 레몬과 썩기 쉬운 해산물이 그림 3점당 1번 꼴(31%)로 등장했다. 전동호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해안이 아닌 내륙에서 신선한 생선을 맛보는 일은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17세기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민들은 대부분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한 해산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또 해산물의 풍미를 좋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해독 작용을 한다고 알려진 레몬이 늘 함께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희귀한 것들이 한 자리에 차려진 그림 속 식탁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SNS에 올리는 음식 게시물도 평범한 음식보다는 먹기 힘든 음식들이 주를 이룬다. 17세기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으로 보이는 음식 정물화는 사실 일상을 포착한 것이 아니다. 전동호 교수는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풍요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희귀하고 값비싼 음식들을 그림으로 그려 식탁 주변에 걸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민들은 이런 그림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늘 먹던 음식을 그린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을 그린 것이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들, 이른바 '먹빵'이나 '먹짤' '먹스타그램' 사진들을 보면 일상에서 먹는 밥이나 국, 김치를 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어쩌다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이런 음식 게시물을 보는 사람들도 '좋아요'를 누르며 대리 만족을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사진이 없던 17세기에는 '어쩌다 먹는' 특별한 음식을 캔버스에 옮겨두고 싶었고 주변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오래오래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맛있고 희귀한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전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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