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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32) 인터넷, 인류사상 최대의 제국
입력 2017.02.28 (16:44) 수정 2017.02.28 (17:54)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인터넷 바다를 표류하는 사람들

이 시를 읽다 보면 정말 인터넷에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도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저물녘 해가 바다에 잠을 자러 들어갈 때면 신을 벗던가요? 멀쩡하던 사람들의 그림자는 비가 오면 왜 선술집으로 몰려가는지, 새들도 예쁜 아가씨 곁을 지나칠 때는 과연 날갯짓의 속도를 늦추는지 인터넷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인터넷! 전 세계의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을 가리키는 이 말은 이제 24시간 지구촌 모든 인간이 한시라도 벗어나기 어려운 거대하고도 촘촘한 그물망이 되었습니다. 마치 공기와 물, 밥처럼 그것의 부재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의 의존도는 마약처럼 갈수록 심해져만 갑니다. 오죽하면 인터넷과 휴대폰을 '디지털 마약'이라고 부를라고요.

그래서 오성일 시인은 좀 부아가 치민 듯합니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하고 세상의 모든 정보를 집어삼키는 리바이어던이라 해도, 도무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고귀한 것들이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것을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고, 동화적 판타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계량화나 표준화가 불가능한 결 고운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인터넷이 아니라 노을과 떡갈나무와 구름과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물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삶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시인은 믿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대답을 찾을 길 없는 질문 서너 가지 정도 가지고 계신가요?

제가 KBS에 입사하던 1987년만 해도 인터넷으로 이렇게 기사를 쓰고 검색하고 또 휴대폰이라는 모바일 단말기로 세상과 24시간 접속하고 소통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30년 만에 세상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었습니다. 통신망을 통해 인간의 정보가 오고 가는 가상의 세상, 이른바 사이버스페이스는 이제 인간이 직접 몸을 움직여 교류하는 물리적 세상을 훨씬 능가하는 거대한 제국을 구축했습니다. 과거 알렉산더나 징기츠칸, 나폴레옹 등 영웅이 구축했던 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영토는 넓고, 지리적으로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인간을 지배하는 전천후 제국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정보망이 적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정보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미 공군의 군사적 필요성에서 시작된 인터넷 개념은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정보 그물망이 탄생한 이후 폭발적으로 세계인들을 연결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라는 책에서 인터넷이 구축해 놓은 새로운 세상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최종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은 기존의 시간 및 공간 개념을 무덤에 묻고 친절하게 장례까지 치러주었다. 기차나 비행기가 사이 시간과 사이 공간을 살해했다면, 컴퓨터와 인터넷은 기존의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 자체를 살해한 셈이다. 과거의 공간 개념이 '장소의 공간'이었다면, 정보화는 공간을 '정보 흐름의 공간'으로 바꾸었다. 또한 정보화는 '시간을 초월한 시간'으로 시간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러니까 컴퓨터와 인터넷은 공간은 물론 시간 개념까지도 송두리째 바꿈으로써, 공간을 초월한 공간, 시간을 초월한 시간 속에서 인류를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좀 복잡한 주장 같지만 구체적인 우리들의 일상에서 예를 들어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요즘 우리는 뉴스든 다큐멘터리든 드라마든 방송국이 보내주는 시간과 분량에 맞춰 안방이라는 특정 공간에서만 시청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친구들과 얘기하는 식당에서도,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면서도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든 저녁이든 원하는 시간에 꺼내서 볼 수 있고 또 무한 반복해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저장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송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과거의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흐름'의 공간으로 바꾼 것이고, '초월'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빨리빨리'라는 부사가 상징하듯 속도를 즐기는 한국인들에게 인터넷은 최적의 정보 통신망이었고 한국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가입률과 이용률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6년 인터넷 이용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구 인터넷 접속률은 99.2%, 인터넷 이용률은 88.3%였습니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는 4천364만 명으로 5살 이하 어린아이를 뺀다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66.2%가 SNS에 어떤 형태로든 가입해 있습니다.


지난 1999년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약 943만 명, 이용률은 22.4%였습니다. 2001년에는 불과 2년 만에 2천230만 명으로 늘었고, 이용률도 51.6%로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2004년에는 3천158만 명에 이용률은 70.2%로 높아졌고, 2016년에는 4천364만 명, 이용률은 88.3%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축복이면서 재앙인 정보의 바다

" 모든 기술은 짐인 동시에 축복이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 닐 포스트먼의 이 말이 인터넷처럼 절실하게 와 닿은 분야는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은 분명 정보의 평등화, 편리화, 저렴화, 개방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혜택을 인류에게 가져다주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터넷 중독을 비롯한 많은 병폐를 동시에 낳았습니다. 인터넷의 이점과 폐해를 둘러싼 논쟁은 첨예합니다. 인터넷의 긍정적 기능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무엇보다 그동안 비용과 네트워크의 문제 때문에 소수의 권력자가 독점했던 정보의 생산, 소비, 유통이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평등하게 열렸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한종우 미국 시라큐스 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수 엘리트들이 대중 매체의 공적 영역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gate-keeping force) 유교의 위계적 정치문화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의 젊은 목소리와 소시민, 그리고 약자들이 정치 담론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에 훨씬 더 다양한 견해가 표출될 수 있는 진일보한 민주적 담론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는 인터넷이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확실히 담보하지 못하는 직접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주었다고도 주장합니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조지 길더 교수 역시 "인터넷은 미디어 독점과 상업주의에 관한 전통적인 우려를 모두 불식시킬 것이며,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면, 전례 없을 만큼 위대하고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합니다. 그는 인터넷이야말로 텔레비전 이후의 보편적 삶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학자도 매우 많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인터넷 공간이 모든 이에게 접근과 이용에 있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철저히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논리가 이곳에서도 예외 없이 관철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미국의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는 그의 저서 '디지털 디스커넥트'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 인터넷에 관한 대다수 비평가들은 인터넷을 주조하고 길들이는데 자본주의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를 언급할 때 흔히 '자유시장'이라는 표현을 대신 사용해 버린다. 자애롭게 주어진 것을 뜻하고 민주주의의 동의어처럼 쓰는 몹쓸 단어이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 지구 차원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고, 민주주의의 통치 상황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끔찍한 상황에 이르렀다. 인터넷과 자본주의의 연관성, 이들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좀 더 비관적으로 조망하는 일이 매우 절실한 시점에 이른 것이다."

좀 정리한다면 인터넷은 여전히 자본이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고,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을 개선하기는커녕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끔 그런 것을 느끼지 않나요? 자신보다 훨씬 인터넷과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과의 정보 격차가 예전보다 더 벌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나, 혹은 월정액이 부담스러워 이용정보를 무제한으로 하지 못할 때 느끼는 아쉬움 같은 것 말입니다. 유료로 막혀 있는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없을 때도 서운합니다.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문제입니다. 흔히 컴맹이나 인터넷맹이라는 노인들로 갈수록 이런 소외감은 더합니다.

인터넷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양측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른바 과도하게 인터넷 세상에 빠져드는 인터넷 중독의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도 중독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은 마약이나 담배, 알코올이나 도박 못지않은 심각한 탐닉 때문에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터넷 중독 때문에 우울증이나 강박, 산만함과 집중력 저하, 충동적 성향, 사회적 불안감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가 파생합니다. 오죽하면 '인터넷 폐인'이라는 용어가 생겼을까요?


미래창조과학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2013년 인터넷 중독자는 228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는 268만 명으로 약 40만 명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중독자도 299만 8천 명에서 무려 581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5천만 명 정도니까 열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인터넷 중독은 더욱 심각합니다. 2013년 인터넷 중독 청소년은 111만 7천 명에서 2015년에는 170만 4천 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사실 인터넷 중독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이 숫자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인터넷을 잠시라도 켜놓지 않으면 불안하고,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정도를 중독이라고 정의한다면 더 심각한 숫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인들은 아무래도 인터넷의 편리함보다는 그 병폐에 대해서 개탄하는 쪽이 더 우세한 듯합니다. 그래서 원로 여류시인 신달자 선생님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의 바다에 들어갈 때는 아주 단단히 각오와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인터넷의 바다에는 온갖 괴물이 떠돌아다닙니다. 무제한의 성적 쾌락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질주하고 인간을 발가벗기는 인격 살해와 비방, 그럴듯한 치장을 한 온갖 허위정보가 난무합니다.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게임과 동영상들이 정말 홍등가의 불빛보다 더 요염한 치장을 하고 유혹합니다. 그러니까 종이 한 장을 옆에 놓고 점점 더 깊은 인터넷의 수렁으로 온 정신이 빠져들어 가려고 하면 싸인 펜으로 흰 종이 위에 이름 석 자 또박또박 써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이 구덩이에서 발을 빼야 합니다. 몽환의 세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라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장자에 나오는 '나비의 꿈'을 빗대 인터넷이 인간에게 주는 몽환의 날개를 풍자한 시인도 있습니다.


존재의 허무에 대한 동양의 사유를 담은 장자의 나비 우화를 빗대, 인터넷이 보여주는 세상이나 인터넷을 하면서 느끼는 쾌락은 대부분 물거품 같은 것이고 한바탕 봄 꿈처럼 허망한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빠져나와 자연을 클릭!


그렇다면 이 편리한 악마, 만병통치인 동시에 마약인 디지털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정말 이 인터넷의 망망대해에서 죽을 때까지 허우적대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인터넷은 그야말로 가공의 세상일 뿐, 우리 앞에 펼쳐진 대자연과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인터넷의 좁은 공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무한의 매력 덩어리입니다. 잿빛 겨울을 뚫고 이성부 시인의 표현처럼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이 찬란한 봄만 해도 그렇습니다. 두 다리로 밟아보면 내 살갗보다 더 부드러워진 대지와 그 대지에 팔다리도 없이 오직 가녀린 몸뚱이 하나로 꽃과 잎을 피워내는 나무와 풀들은 얼마나 눈부십니까? 그래서 이재무 시인은 잠든 꽃잎을 햇살이 콕콕 찔러 깨우는 것을, 우리가 인터넷을 클릭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어떻습니까? 2월이 가는 마지막 날, 겨울과 작별하는 날 여러분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벌써 우둘투둘 도드라진 목련 꽃봉오리를 한번 살짝 클릭! 하고, 그 옆 노란 꽃망울이 튀어나올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산수유 꽃도 클릭! 온 허리에 연초록 물을 들이고 낭창낭창 흔들리는 수양버들 가지에 클릭!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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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02-28 17:54:07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인터넷 바다를 표류하는 사람들

이 시를 읽다 보면 정말 인터넷에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도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저물녘 해가 바다에 잠을 자러 들어갈 때면 신을 벗던가요? 멀쩡하던 사람들의 그림자는 비가 오면 왜 선술집으로 몰려가는지, 새들도 예쁜 아가씨 곁을 지나칠 때는 과연 날갯짓의 속도를 늦추는지 인터넷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인터넷! 전 세계의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을 가리키는 이 말은 이제 24시간 지구촌 모든 인간이 한시라도 벗어나기 어려운 거대하고도 촘촘한 그물망이 되었습니다. 마치 공기와 물, 밥처럼 그것의 부재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의 의존도는 마약처럼 갈수록 심해져만 갑니다. 오죽하면 인터넷과 휴대폰을 '디지털 마약'이라고 부를라고요.

그래서 오성일 시인은 좀 부아가 치민 듯합니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하고 세상의 모든 정보를 집어삼키는 리바이어던이라 해도, 도무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고귀한 것들이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것을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고, 동화적 판타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계량화나 표준화가 불가능한 결 고운 감수성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인터넷이 아니라 노을과 떡갈나무와 구름과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물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삶에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시인은 믿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대답을 찾을 길 없는 질문 서너 가지 정도 가지고 계신가요?

제가 KBS에 입사하던 1987년만 해도 인터넷으로 이렇게 기사를 쓰고 검색하고 또 휴대폰이라는 모바일 단말기로 세상과 24시간 접속하고 소통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30년 만에 세상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었습니다. 통신망을 통해 인간의 정보가 오고 가는 가상의 세상, 이른바 사이버스페이스는 이제 인간이 직접 몸을 움직여 교류하는 물리적 세상을 훨씬 능가하는 거대한 제국을 구축했습니다. 과거 알렉산더나 징기츠칸, 나폴레옹 등 영웅이 구축했던 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영토는 넓고, 지리적으로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인간을 지배하는 전천후 제국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정보망이 적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정보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미 공군의 군사적 필요성에서 시작된 인터넷 개념은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정보 그물망이 탄생한 이후 폭발적으로 세계인들을 연결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은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라는 책에서 인터넷이 구축해 놓은 새로운 세상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최종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은 기존의 시간 및 공간 개념을 무덤에 묻고 친절하게 장례까지 치러주었다. 기차나 비행기가 사이 시간과 사이 공간을 살해했다면, 컴퓨터와 인터넷은 기존의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 자체를 살해한 셈이다. 과거의 공간 개념이 '장소의 공간'이었다면, 정보화는 공간을 '정보 흐름의 공간'으로 바꾸었다. 또한 정보화는 '시간을 초월한 시간'으로 시간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러니까 컴퓨터와 인터넷은 공간은 물론 시간 개념까지도 송두리째 바꿈으로써, 공간을 초월한 공간, 시간을 초월한 시간 속에서 인류를 살아가게 한 것입니다. 좀 복잡한 주장 같지만 구체적인 우리들의 일상에서 예를 들어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요즘 우리는 뉴스든 다큐멘터리든 드라마든 방송국이 보내주는 시간과 분량에 맞춰 안방이라는 특정 공간에서만 시청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친구들과 얘기하는 식당에서도,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면서도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든 저녁이든 원하는 시간에 꺼내서 볼 수 있고 또 무한 반복해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저장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송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과거의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흐름'의 공간으로 바꾼 것이고, '초월'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빨리빨리'라는 부사가 상징하듯 속도를 즐기는 한국인들에게 인터넷은 최적의 정보 통신망이었고 한국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가입률과 이용률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6년 인터넷 이용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구 인터넷 접속률은 99.2%, 인터넷 이용률은 88.3%였습니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는 4천364만 명으로 5살 이하 어린아이를 뺀다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66.2%가 SNS에 어떤 형태로든 가입해 있습니다.


지난 1999년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약 943만 명, 이용률은 22.4%였습니다. 2001년에는 불과 2년 만에 2천230만 명으로 늘었고, 이용률도 51.6%로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2004년에는 3천158만 명에 이용률은 70.2%로 높아졌고, 2016년에는 4천364만 명, 이용률은 88.3%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축복이면서 재앙인 정보의 바다

" 모든 기술은 짐인 동시에 축복이다."

미국의 문화 비평가 닐 포스트먼의 이 말이 인터넷처럼 절실하게 와 닿은 분야는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은 분명 정보의 평등화, 편리화, 저렴화, 개방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혜택을 인류에게 가져다주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터넷 중독을 비롯한 많은 병폐를 동시에 낳았습니다. 인터넷의 이점과 폐해를 둘러싼 논쟁은 첨예합니다. 인터넷의 긍정적 기능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무엇보다 그동안 비용과 네트워크의 문제 때문에 소수의 권력자가 독점했던 정보의 생산, 소비, 유통이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평등하게 열렸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한종우 미국 시라큐스 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수 엘리트들이 대중 매체의 공적 영역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gate-keeping force) 유교의 위계적 정치문화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의 젊은 목소리와 소시민, 그리고 약자들이 정치 담론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에 훨씬 더 다양한 견해가 표출될 수 있는 진일보한 민주적 담론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는 인터넷이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확실히 담보하지 못하는 직접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주었다고도 주장합니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조지 길더 교수 역시 "인터넷은 미디어 독점과 상업주의에 관한 전통적인 우려를 모두 불식시킬 것이며,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면, 전례 없을 만큼 위대하고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합니다. 그는 인터넷이야말로 텔레비전 이후의 보편적 삶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학자도 매우 많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인터넷 공간이 모든 이에게 접근과 이용에 있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철저히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논리가 이곳에서도 예외 없이 관철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미국의 로버트 맥체스니 교수는 그의 저서 '디지털 디스커넥트'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 인터넷에 관한 대다수 비평가들은 인터넷을 주조하고 길들이는데 자본주의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를 언급할 때 흔히 '자유시장'이라는 표현을 대신 사용해 버린다. 자애롭게 주어진 것을 뜻하고 민주주의의 동의어처럼 쓰는 몹쓸 단어이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 지구 차원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고, 민주주의의 통치 상황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끔찍한 상황에 이르렀다. 인터넷과 자본주의의 연관성, 이들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좀 더 비관적으로 조망하는 일이 매우 절실한 시점에 이른 것이다."

좀 정리한다면 인터넷은 여전히 자본이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고,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을 개선하기는커녕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끔 그런 것을 느끼지 않나요? 자신보다 훨씬 인터넷과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과의 정보 격차가 예전보다 더 벌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나, 혹은 월정액이 부담스러워 이용정보를 무제한으로 하지 못할 때 느끼는 아쉬움 같은 것 말입니다. 유료로 막혀 있는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없을 때도 서운합니다.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문제입니다. 흔히 컴맹이나 인터넷맹이라는 노인들로 갈수록 이런 소외감은 더합니다.

인터넷의 기능을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양측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른바 과도하게 인터넷 세상에 빠져드는 인터넷 중독의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도 중독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은 마약이나 담배, 알코올이나 도박 못지않은 심각한 탐닉 때문에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터넷 중독 때문에 우울증이나 강박, 산만함과 집중력 저하, 충동적 성향, 사회적 불안감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가 파생합니다. 오죽하면 '인터넷 폐인'이라는 용어가 생겼을까요?


미래창조과학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2013년 인터넷 중독자는 228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는 268만 명으로 약 40만 명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중독자도 299만 8천 명에서 무려 581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5천만 명 정도니까 열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인터넷 중독은 더욱 심각합니다. 2013년 인터넷 중독 청소년은 111만 7천 명에서 2015년에는 170만 4천 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사실 인터넷 중독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이 숫자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인터넷을 잠시라도 켜놓지 않으면 불안하고,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정도를 중독이라고 정의한다면 더 심각한 숫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인들은 아무래도 인터넷의 편리함보다는 그 병폐에 대해서 개탄하는 쪽이 더 우세한 듯합니다. 그래서 원로 여류시인 신달자 선생님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의 바다에 들어갈 때는 아주 단단히 각오와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인터넷의 바다에는 온갖 괴물이 떠돌아다닙니다. 무제한의 성적 쾌락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질주하고 인간을 발가벗기는 인격 살해와 비방, 그럴듯한 치장을 한 온갖 허위정보가 난무합니다.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게임과 동영상들이 정말 홍등가의 불빛보다 더 요염한 치장을 하고 유혹합니다. 그러니까 종이 한 장을 옆에 놓고 점점 더 깊은 인터넷의 수렁으로 온 정신이 빠져들어 가려고 하면 싸인 펜으로 흰 종이 위에 이름 석 자 또박또박 써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이 구덩이에서 발을 빼야 합니다. 몽환의 세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라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장자에 나오는 '나비의 꿈'을 빗대 인터넷이 인간에게 주는 몽환의 날개를 풍자한 시인도 있습니다.


존재의 허무에 대한 동양의 사유를 담은 장자의 나비 우화를 빗대, 인터넷이 보여주는 세상이나 인터넷을 하면서 느끼는 쾌락은 대부분 물거품 같은 것이고 한바탕 봄 꿈처럼 허망한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빠져나와 자연을 클릭!


그렇다면 이 편리한 악마, 만병통치인 동시에 마약인 디지털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정말 이 인터넷의 망망대해에서 죽을 때까지 허우적대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인터넷은 그야말로 가공의 세상일 뿐, 우리 앞에 펼쳐진 대자연과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인터넷의 좁은 공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무한의 매력 덩어리입니다. 잿빛 겨울을 뚫고 이성부 시인의 표현처럼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이 찬란한 봄만 해도 그렇습니다. 두 다리로 밟아보면 내 살갗보다 더 부드러워진 대지와 그 대지에 팔다리도 없이 오직 가녀린 몸뚱이 하나로 꽃과 잎을 피워내는 나무와 풀들은 얼마나 눈부십니까? 그래서 이재무 시인은 잠든 꽃잎을 햇살이 콕콕 찔러 깨우는 것을, 우리가 인터넷을 클릭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어떻습니까? 2월이 가는 마지막 날, 겨울과 작별하는 날 여러분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벌써 우둘투둘 도드라진 목련 꽃봉오리를 한번 살짝 클릭! 하고, 그 옆 노란 꽃망울이 튀어나올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산수유 꽃도 클릭! 온 허리에 연초록 물을 들이고 낭창낭창 흔들리는 수양버들 가지에 클릭!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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