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외친 소녀들’ 일신여학교 만세운동 재현

입력 2017.02.28 (19:26) 수정 2017.02.2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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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부산 일신여학교 만세운동은 범어사 만세운동과 더불어 부산지역 3·1 만세운동의 효시인데요,

98년 전 그때의 뜨거웠던 함성이 삼일절을 하루 앞두고 부산에서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장성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16살 전후의 여학생들이 주축이 돼 시작한 3·1 만세운동.

여학생들은 혼수용으로 준비해놓은 옷감으로 태극기 50개를 만들었습니다.

<녹취> "우리 대한이 살아있음을, 우리 민족이 살아있음을 보여줍시다."

만세운동을 시작하자마자 일제의 총칼에 잔인하게 제압됐지만, 여학생들의 외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곧 많은 시민이 여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인터뷰> 송수영(일신여학교 선생님 역할) :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라를 잃었을 때의 심정이 돼보니, 얼마나 슬펐을까,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일신 여학교 만세운동은 당시 경성에서 만세 운동이 시작된 지 열흘 만에 일어났습니다.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여학생과 교사 13명이 일본 군경에 붙잡혀 6개월에서 1년여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범어사 만세운동과 더불어 부산 경남 지역 만세운동의 촉매제가 됐습니다.

<인터뷰> 문소희(중학교 2학년) : "옛날 저희 나이 또래의 많은 애국자들이 돌아가시고, 그런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나라를 잃었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던 꽃다운 여학생들의 외침.

100년이 다 돼가는 오늘 여전히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과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성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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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 외친 소녀들’ 일신여학교 만세운동 재현
    • 입력 2017-02-28 19:28:17
    • 수정2017-02-28 19: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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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부산 일신여학교 만세운동은 범어사 만세운동과 더불어 부산지역 3·1 만세운동의 효시인데요,

98년 전 그때의 뜨거웠던 함성이 삼일절을 하루 앞두고 부산에서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장성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16살 전후의 여학생들이 주축이 돼 시작한 3·1 만세운동.

여학생들은 혼수용으로 준비해놓은 옷감으로 태극기 50개를 만들었습니다.

<녹취> "우리 대한이 살아있음을, 우리 민족이 살아있음을 보여줍시다."

만세운동을 시작하자마자 일제의 총칼에 잔인하게 제압됐지만, 여학생들의 외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곧 많은 시민이 여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인터뷰> 송수영(일신여학교 선생님 역할) :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라를 잃었을 때의 심정이 돼보니, 얼마나 슬펐을까,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일신 여학교 만세운동은 당시 경성에서 만세 운동이 시작된 지 열흘 만에 일어났습니다.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여학생과 교사 13명이 일본 군경에 붙잡혀 6개월에서 1년여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범어사 만세운동과 더불어 부산 경남 지역 만세운동의 촉매제가 됐습니다.

<인터뷰> 문소희(중학교 2학년) : "옛날 저희 나이 또래의 많은 애국자들이 돌아가시고, 그런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나라를 잃었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던 꽃다운 여학생들의 외침.

100년이 다 돼가는 오늘 여전히 우리에게 뜨거운 감동과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장성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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