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운동 ‘정재용 선생’ 육성 증언
입력 2017.03.01 (21:25)
수정 2017.03.0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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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98년 전 오늘(1일) 학생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정재용 선생의, 생전 육성 증언이 담긴 테이프가 최근 발굴됐습니다.
엄혹했던 일제 치하에서 거사를 준비한 과정과 선열들의 굳은 결의가 담겼습니다.
김범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 학생,시민 5천여명이 모였습니다.
일제 무단통치가 한창이던 시기 서울 한가운데 대규모 집회는 날짜와 시간까지 감안한 치밀한 사전 계획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고종 인산일인 3월 3일이다.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올라올 때다. 그 시기를 이용해 독립선언을 해보자."
거사 전날 밤, 서울 재동의 손병희 선생댁에 모여 독립선언서 초안을 마련하기까지 형식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처음에는 청원서로 하자는 그런 말도 있었지만 선언서로 하자."
일제에 당부하는 청원서보다 떳떳하게 독립을 대내외에 밝히는 선언서를 택한 겁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무저항주의. 때리면 맞고 죽으면 죽고 무저항주의로 나아가자."
그리고 3월 1일. 학생 대표 정재용 선생은 준비된 독립선언서를 또박 또박 읽어내려 갔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바지 춤에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내어 '조선독립선언서'하니까. 조선독립만세!"
3.1 만세운동의 뒷얘기를 담은 고 정재용 선생의 육성 증언은 최근 유족들이 발굴해 공개했습니다.
KBS 뉴스 김범주입니다.
98년 전 오늘(1일) 학생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정재용 선생의, 생전 육성 증언이 담긴 테이프가 최근 발굴됐습니다.
엄혹했던 일제 치하에서 거사를 준비한 과정과 선열들의 굳은 결의가 담겼습니다.
김범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 학생,시민 5천여명이 모였습니다.
일제 무단통치가 한창이던 시기 서울 한가운데 대규모 집회는 날짜와 시간까지 감안한 치밀한 사전 계획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고종 인산일인 3월 3일이다.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올라올 때다. 그 시기를 이용해 독립선언을 해보자."
거사 전날 밤, 서울 재동의 손병희 선생댁에 모여 독립선언서 초안을 마련하기까지 형식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처음에는 청원서로 하자는 그런 말도 있었지만 선언서로 하자."
일제에 당부하는 청원서보다 떳떳하게 독립을 대내외에 밝히는 선언서를 택한 겁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무저항주의. 때리면 맞고 죽으면 죽고 무저항주의로 나아가자."
그리고 3월 1일. 학생 대표 정재용 선생은 준비된 독립선언서를 또박 또박 읽어내려 갔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바지 춤에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내어 '조선독립선언서'하니까. 조선독립만세!"
3.1 만세운동의 뒷얘기를 담은 고 정재용 선생의 육성 증언은 최근 유족들이 발굴해 공개했습니다.
KBS 뉴스 김범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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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만세운동 ‘정재용 선생’ 육성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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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3-01 21:25:56
- 수정2017-03-01 21:40:17
<앵커 멘트>
98년 전 오늘(1일) 학생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정재용 선생의, 생전 육성 증언이 담긴 테이프가 최근 발굴됐습니다.
엄혹했던 일제 치하에서 거사를 준비한 과정과 선열들의 굳은 결의가 담겼습니다.
김범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 학생,시민 5천여명이 모였습니다.
일제 무단통치가 한창이던 시기 서울 한가운데 대규모 집회는 날짜와 시간까지 감안한 치밀한 사전 계획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고종 인산일인 3월 3일이다.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올라올 때다. 그 시기를 이용해 독립선언을 해보자."
거사 전날 밤, 서울 재동의 손병희 선생댁에 모여 독립선언서 초안을 마련하기까지 형식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처음에는 청원서로 하자는 그런 말도 있었지만 선언서로 하자."
일제에 당부하는 청원서보다 떳떳하게 독립을 대내외에 밝히는 선언서를 택한 겁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무저항주의. 때리면 맞고 죽으면 죽고 무저항주의로 나아가자."
그리고 3월 1일. 학생 대표 정재용 선생은 준비된 독립선언서를 또박 또박 읽어내려 갔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바지 춤에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내어 '조선독립선언서'하니까. 조선독립만세!"
3.1 만세운동의 뒷얘기를 담은 고 정재용 선생의 육성 증언은 최근 유족들이 발굴해 공개했습니다.
KBS 뉴스 김범주입니다.
98년 전 오늘(1일) 학생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정재용 선생의, 생전 육성 증언이 담긴 테이프가 최근 발굴됐습니다.
엄혹했던 일제 치하에서 거사를 준비한 과정과 선열들의 굳은 결의가 담겼습니다.
김범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 학생,시민 5천여명이 모였습니다.
일제 무단통치가 한창이던 시기 서울 한가운데 대규모 집회는 날짜와 시간까지 감안한 치밀한 사전 계획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고종 인산일인 3월 3일이다.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올라올 때다. 그 시기를 이용해 독립선언을 해보자."
거사 전날 밤, 서울 재동의 손병희 선생댁에 모여 독립선언서 초안을 마련하기까지 형식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처음에는 청원서로 하자는 그런 말도 있었지만 선언서로 하자."
일제에 당부하는 청원서보다 떳떳하게 독립을 대내외에 밝히는 선언서를 택한 겁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무저항주의. 때리면 맞고 죽으면 죽고 무저항주의로 나아가자."
그리고 3월 1일. 학생 대표 정재용 선생은 준비된 독립선언서를 또박 또박 읽어내려 갔습니다.
<녹취> 정재용(1961년 이화외고 강연) : "바지 춤에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내어 '조선독립선언서'하니까. 조선독립만세!"
3.1 만세운동의 뒷얘기를 담은 고 정재용 선생의 육성 증언은 최근 유족들이 발굴해 공개했습니다.
KBS 뉴스 김범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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