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뭐하러 설치?!”…화재 키우는 ‘소방 관리’

입력 2017.03.0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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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화재는 4만 3천여 건. 이 때문에 2천 명 넘게 인명 피해를 봤고, 재산 피해 액수도 3천700억 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화재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골든타임'인 5분 안에 모든 초동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감지기, 경보기, 스프링클러 같은 소방 시설의 정상 작동은 필수다.

그러나 소방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작은 불을 대형 인재로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소방 시설 관리 실태를 KBS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가 취재했다.

"오작동 우려돼서.." 소방 시설 작동 일부러 '정지'

  

지난 2월 4일 경기도 화성의 대형 주상복합 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화재 당시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 같은 소방 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경찰 조사 결과, 경보기와 스프링클러 같은 모든 소방 시설의 작동을 일부러 정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건물 내 일부 매장에서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소방 시설이 오작동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일부러 소방 시설 작동을 정지해 작은 불이 큰불로 번진 사례는 또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시 한 상가에서 발생한 화재. 신속한 화재 진압으로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지만, 화재 당시 경보기가 울리지 않아 목격자들은 수동으로 경보기를 누르며 대피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초기에 화재를 발견한 이들이 소화전을 열어 불을 끄려고 했지만, 소화전 안 소방 호스에서는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 안에 설치돼 있던 스프링클러 역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 용수를 공급하는 배관과 수조에서 공급받은 소방 용수를 소화전까지 이동시키는 소방펌프 모두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화재 수신기였다. 화재 수신기는 각 방에 설치된 감지기 신호를 받아 경보기와 같은 소방 시설의 작동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화재 당시 수신기가 켜져 있었다면, 소방 용수 배관과 소방펌프에 문제가 없었으니 적어도 소방 호스에서는 물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소방 시설도 작동하지 않은 것은 수신기 자체를 꺼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임의로 소방 시설을 꺼 놓는 것이 흔한 일일까.

  

한 소방 시설 점검 업체 관계자는 "건물 10군데 중 3~4군데 정도는 소방 시설을 꺼 놓는다"고 증언했다. 화재 감지기 오작동으로 경보가 울리면 민원 등 여러 불편이 우려돼 경보 설비가 작동하지 않도록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가가 아닌 아파트 등 주거 시설은 어떨까. 정상적으로 화재 수신기가 켜진 아파트도 있었지만, 경보음이 눌리지 않도록 조작된 경우도 있었다.

  

화재가 아닌데도 경보음이 울리는 등 오작동이 자주 일어나 아예 꺼놓았다는 게 관리자들의 말이다. 혹시 화재를 인지하는 감지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삼겹살 연기에도 화재경보기 작동?!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 중인 화재 감지기는 소방산업기술원의 검사를 거쳐 KC마크를 단 제품만 판매할 수 있다. 결함은 없는지 간이 성능 실험을 했다.

  

화재 감지기 판매 업체 10곳을 무작위로 선정, 각기 다른 화재 감지기 4종씩 구입해 총 40개의 감지기를 준비했다. 실험은 실온인 23도보다 30도 높인 53도에서 감지기가 30초 안에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실험 결과, 화재 감지기 40개 중 한 개 제품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기 장착 후 정해진 시간인 30초가 넘었음에도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산된 모든 제품을 검사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 정도 불량률은 양호한 편이라고 말한다.

제품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화재 감지기가 오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즉, 우리가 생활하면서 감지기가 화재가 일어났다고 인지할 상황이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연기 감지기 가까이에서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열 감지기 근처에서 온풍기를 작동시키자 화재 경보음이 울렸다.

화재 감지기, 오래될수록 오작동 가능성 높아

화재 감지기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는 제보자 박선희 씨. 현재 박 씨 집에 있는 화재 감지기를 열어 보니, 1999년에 제조된 제품으로 18년 동안 노후화가 진행됐다. 주방의 화재 감지기 역시 먼지가 가득 차 있어 열전달에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제작진이 설치된 지 10년 넘은 화재 감지기 18개를 수거해 검사해 본 결과, 열 감지기 14개 중 2개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불량 판정을 받았다. 연기 감지기 4개 중 2개 역시 불량 판정을 받아 50%의 불량률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오래된 화재 감지기는 오작동은 물론 그 성능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낡은 화재 감지기 중 15%가 작동 불량인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화재 감지기 같은 소방 시설은 반드시 1년에 한 번씩 점검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 아파트 거주자 중 최근 1년 안에 소방 점검을 받은 사람은 약 15%에 불과했다. 이들은 소방점검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관리자가 소방점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방 점검을 받더라도 점검 업체가 허위·거짓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많았다. 건물주가 점검 업체를 고용하는 형태라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담당 부처인 국민안전처는 최근 자체 점검을 통해 제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1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소방 점검 주체가 관리자에서 건물주로 바뀌게 돼 법률 위반 시 처벌 대상도 달라졌다.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소방 시설을 꺼놓아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한 요즘. '재난은 잊힐 때 다시 찾아온다'는 말처럼 정부와 국민 모두 관심을 두고 매일 점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이날 방송은 KBS1TV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3월 3일 방송)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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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럴 거면 뭐하러 설치?!”…화재 키우는 ‘소방 관리’
    • 입력 2017-03-06 17:24:28
    방송·연예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화재는 4만 3천여 건. 이 때문에 2천 명 넘게 인명 피해를 봤고, 재산 피해 액수도 3천700억 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화재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골든타임'인 5분 안에 모든 초동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감지기, 경보기, 스프링클러 같은 소방 시설의 정상 작동은 필수다.

그러나 소방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작은 불을 대형 인재로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소방 시설 관리 실태를 KBS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가 취재했다.

"오작동 우려돼서.." 소방 시설 작동 일부러 '정지'

 
지난 2월 4일 경기도 화성의 대형 주상복합 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화재 당시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 같은 소방 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경찰 조사 결과, 경보기와 스프링클러 같은 모든 소방 시설의 작동을 일부러 정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건물 내 일부 매장에서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소방 시설이 오작동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일부러 소방 시설 작동을 정지해 작은 불이 큰불로 번진 사례는 또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시 한 상가에서 발생한 화재. 신속한 화재 진압으로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지만, 화재 당시 경보기가 울리지 않아 목격자들은 수동으로 경보기를 누르며 대피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초기에 화재를 발견한 이들이 소화전을 열어 불을 끄려고 했지만, 소화전 안 소방 호스에서는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 안에 설치돼 있던 스프링클러 역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 용수를 공급하는 배관과 수조에서 공급받은 소방 용수를 소화전까지 이동시키는 소방펌프 모두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화재 수신기였다. 화재 수신기는 각 방에 설치된 감지기 신호를 받아 경보기와 같은 소방 시설의 작동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화재 당시 수신기가 켜져 있었다면, 소방 용수 배관과 소방펌프에 문제가 없었으니 적어도 소방 호스에서는 물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소방 시설도 작동하지 않은 것은 수신기 자체를 꺼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임의로 소방 시설을 꺼 놓는 것이 흔한 일일까.

 
한 소방 시설 점검 업체 관계자는 "건물 10군데 중 3~4군데 정도는 소방 시설을 꺼 놓는다"고 증언했다. 화재 감지기 오작동으로 경보가 울리면 민원 등 여러 불편이 우려돼 경보 설비가 작동하지 않도록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가가 아닌 아파트 등 주거 시설은 어떨까. 정상적으로 화재 수신기가 켜진 아파트도 있었지만, 경보음이 눌리지 않도록 조작된 경우도 있었다.

 
화재가 아닌데도 경보음이 울리는 등 오작동이 자주 일어나 아예 꺼놓았다는 게 관리자들의 말이다. 혹시 화재를 인지하는 감지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삼겹살 연기에도 화재경보기 작동?!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 중인 화재 감지기는 소방산업기술원의 검사를 거쳐 KC마크를 단 제품만 판매할 수 있다. 결함은 없는지 간이 성능 실험을 했다.

 
화재 감지기 판매 업체 10곳을 무작위로 선정, 각기 다른 화재 감지기 4종씩 구입해 총 40개의 감지기를 준비했다. 실험은 실온인 23도보다 30도 높인 53도에서 감지기가 30초 안에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실험 결과, 화재 감지기 40개 중 한 개 제품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기 장착 후 정해진 시간인 30초가 넘었음에도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산된 모든 제품을 검사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 정도 불량률은 양호한 편이라고 말한다.

제품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화재 감지기가 오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즉, 우리가 생활하면서 감지기가 화재가 일어났다고 인지할 상황이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연기 감지기 가까이에서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열 감지기 근처에서 온풍기를 작동시키자 화재 경보음이 울렸다.

화재 감지기, 오래될수록 오작동 가능성 높아

화재 감지기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는 제보자 박선희 씨. 현재 박 씨 집에 있는 화재 감지기를 열어 보니, 1999년에 제조된 제품으로 18년 동안 노후화가 진행됐다. 주방의 화재 감지기 역시 먼지가 가득 차 있어 열전달에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제작진이 설치된 지 10년 넘은 화재 감지기 18개를 수거해 검사해 본 결과, 열 감지기 14개 중 2개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불량 판정을 받았다. 연기 감지기 4개 중 2개 역시 불량 판정을 받아 50%의 불량률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오래된 화재 감지기는 오작동은 물론 그 성능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낡은 화재 감지기 중 15%가 작동 불량인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화재 감지기 같은 소방 시설은 반드시 1년에 한 번씩 점검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 아파트 거주자 중 최근 1년 안에 소방 점검을 받은 사람은 약 15%에 불과했다. 이들은 소방점검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관리자가 소방점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방 점검을 받더라도 점검 업체가 허위·거짓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많았다. 건물주가 점검 업체를 고용하는 형태라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담당 부처인 국민안전처는 최근 자체 점검을 통해 제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1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소방 점검 주체가 관리자에서 건물주로 바뀌게 돼 법률 위반 시 처벌 대상도 달라졌다.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소방 시설을 꺼놓아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한 요즘. '재난은 잊힐 때 다시 찾아온다'는 말처럼 정부와 국민 모두 관심을 두고 매일 점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이날 방송은 KBS1TV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3월 3일 방송)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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