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쿠란을 금지하라”…‘네덜란드 트럼프’는 승리할까?

입력 2017.03.1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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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망토에 흰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산타클로스의 원조격인 성 니콜라스이다. 네덜란드어로는 '신터클라스'. 신터클라스 옆엔 조수가 있다. 붉은 코의 루돌프 사슴이 아니다. 까만 피부의 사람이다. 이름도 '블랙피터'다.

이들은 해마다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온다.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크리스마스 축제다. 신터클라스는 백마를 타고 행진하고, 블랙피터들은 사탕과 과자를 나눠준다. 백인 산타와 블랙 피터. 무엇이 연상되는가. 백인 주인과 흑인 몸종 아닌가.

제국주의 시대의 흑인 노예.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해마다 되풀이됐다. 인권단체는 축제 중단을 주장했다. 논란은 소송까지 갔다. 법원은 판단 불가 결정을 내렸다. 결국, 네덜란드 총리가 중재안을 내놨다. 피터의 얼굴에 회색칠을 하자는 것이다. 산타의 조수이니 굴뚝 숯검댕이 묻었다는 설정이다.

이 중재안으로 논란은 수그러드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달 논쟁은 다시 불붙었다. 유력 정치인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블랙 피터는 축제의 전통이다. 피부색을 왜 바꾸나?" 인권단체의 주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 극우정당 '자유당(PVV)'의 대표이다.


지난달 독일 뒤셀도르프 카니발. 행렬 가운데 눈에 띄는 인형들이 등장했다. 왼쪽부터 트럼프 미 대통령.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네덜란드 자유당의 빌더르스. 마지막으로 그 사람, 히틀러다.

이들의 손에는 플래카드가 들려있다. "blond ist das neue braun(금발은 새로운 갈색이다)." 무슨 뜻일까.

1920년대 이념은 색깔로 표현됐다. 공산주의는 붉은색. 이탈리아 파시즘은 검은색이었다. 독일 나치 파시즘의 상징은 갈색이었다. '내 조국 독일, 고향의 땅'이란 뜻을 담았다고 한다. 나치 돌격대의 유니폼 색깔도 갈색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갈색 옷을 보면 공포에 떨었다. '갈색 테러(brauner Terror)'란 용어도 있다. '극우 성향의 테러'를 지칭했다. 한마디로 갈색은 나치다. 금발은 누구인가. 트럼프, 르펜, 빌더르스다. '금발은 새로운 갈색'이란 말은 이제 해석 가능하다. 이 세 사람이 새로운 나치라는 뜻이다. 이들의 노골적 인종차별을 강력 비판한 것이다.

히틀러와 어깨를 나란히 한 빌더르스. 반이민, 반이슬람, 자국민 우선주의를 주장한다. 선거 슬로건은 "네덜란드를 다시 우리 것으로!". 무슬림 이민 금지, 이슬람 사원 폐쇄 등의 공약이 당연히 포함됐다. 네덜란드에서 모로코인 이민자 '쓰레기'들을 치우겠다고도 했다. 유럽연합 탈퇴, 이른바 '넥시트'도 주장했다.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왼쪽)과 이슬람의 경전 ‘쿠란’(오른쪽)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왼쪽)과 이슬람의 경전 ‘쿠란’(오른쪽)

최근엔 유럽에서 가장 극단적인 공약을 내놨다. 네덜란드에서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히틀러를 언급했다.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이 불법인 것처럼 쿠란을 내버려두지 않겠다". 한 종교의 경전을, 독재자의 자서전 수준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이념 논쟁의 수준을 벗어났다. 종교 전쟁의 선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더르스의 주장은 통하고 있다. 자유당은 지난 6개월 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다. 집권당과 팽팽한 선두 다툼이다. 선거가 다가오며 지지율은 주춤하고 하다. 하지만 집권은 못 해도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래서인지 자유당에선 다시 낙관론이다. 홍보 영상 속 네덜란드는 역시나 아름답다. 반짝이는 햇빛, 여유로운 풍차. 빌더르스는 강조한다. "자유, 독립, 미래의 변화를 위한 시기이다. 영국도 하고 있고 미국도 하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네덜란드 극우정당 ‘자유당(PVV)’의 대표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린다.네덜란드 극우정당 ‘자유당(PVV)’의 대표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린다.

이웃 국가들의 시선은 걱정으로 가득하다.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인 FAZ는 빌더르스 현상을 '창피하다'라고 썼다. 자유로운 미국인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것도 창피하고, 네덜란드인들이 빌더르스를 연호하는 것도 창피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총선은 네덜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유럽 내 극우 열풍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선거의 해'이다. 네덜란드 총선이 스타트를 끊는다. 다음달엔 프랑스 대선이 있다. 독일 총선은 오는 9월이다. 말 그대로 정치적 격변기이다. 유럽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나의 유럽', '포용의 유럽'은 여전히 유럽의 목표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 그 결과는, 네덜란드 총선이 치러지는 오는 15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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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쿠란을 금지하라”…‘네덜란드 트럼프’는 승리할까?
    • 입력 2017-03-13 18:18:27
    특파원 리포트
붉은 망토에 흰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산타클로스의 원조격인 성 니콜라스이다. 네덜란드어로는 '신터클라스'. 신터클라스 옆엔 조수가 있다. 붉은 코의 루돌프 사슴이 아니다. 까만 피부의 사람이다. 이름도 '블랙피터'다.

이들은 해마다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온다.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크리스마스 축제다. 신터클라스는 백마를 타고 행진하고, 블랙피터들은 사탕과 과자를 나눠준다. 백인 산타와 블랙 피터. 무엇이 연상되는가. 백인 주인과 흑인 몸종 아닌가.

제국주의 시대의 흑인 노예.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해마다 되풀이됐다. 인권단체는 축제 중단을 주장했다. 논란은 소송까지 갔다. 법원은 판단 불가 결정을 내렸다. 결국, 네덜란드 총리가 중재안을 내놨다. 피터의 얼굴에 회색칠을 하자는 것이다. 산타의 조수이니 굴뚝 숯검댕이 묻었다는 설정이다.

이 중재안으로 논란은 수그러드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달 논쟁은 다시 불붙었다. 유력 정치인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블랙 피터는 축제의 전통이다. 피부색을 왜 바꾸나?" 인권단체의 주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 극우정당 '자유당(PVV)'의 대표이다.


지난달 독일 뒤셀도르프 카니발. 행렬 가운데 눈에 띄는 인형들이 등장했다. 왼쪽부터 트럼프 미 대통령.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네덜란드 자유당의 빌더르스. 마지막으로 그 사람, 히틀러다.

이들의 손에는 플래카드가 들려있다. "blond ist das neue braun(금발은 새로운 갈색이다)." 무슨 뜻일까.

1920년대 이념은 색깔로 표현됐다. 공산주의는 붉은색. 이탈리아 파시즘은 검은색이었다. 독일 나치 파시즘의 상징은 갈색이었다. '내 조국 독일, 고향의 땅'이란 뜻을 담았다고 한다. 나치 돌격대의 유니폼 색깔도 갈색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갈색 옷을 보면 공포에 떨었다. '갈색 테러(brauner Terror)'란 용어도 있다. '극우 성향의 테러'를 지칭했다. 한마디로 갈색은 나치다. 금발은 누구인가. 트럼프, 르펜, 빌더르스다. '금발은 새로운 갈색'이란 말은 이제 해석 가능하다. 이 세 사람이 새로운 나치라는 뜻이다. 이들의 노골적 인종차별을 강력 비판한 것이다.

히틀러와 어깨를 나란히 한 빌더르스. 반이민, 반이슬람, 자국민 우선주의를 주장한다. 선거 슬로건은 "네덜란드를 다시 우리 것으로!". 무슬림 이민 금지, 이슬람 사원 폐쇄 등의 공약이 당연히 포함됐다. 네덜란드에서 모로코인 이민자 '쓰레기'들을 치우겠다고도 했다. 유럽연합 탈퇴, 이른바 '넥시트'도 주장했다.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왼쪽)과 이슬람의 경전 ‘쿠란’(오른쪽)
최근엔 유럽에서 가장 극단적인 공약을 내놨다. 네덜란드에서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히틀러를 언급했다.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이 불법인 것처럼 쿠란을 내버려두지 않겠다". 한 종교의 경전을, 독재자의 자서전 수준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이념 논쟁의 수준을 벗어났다. 종교 전쟁의 선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더르스의 주장은 통하고 있다. 자유당은 지난 6개월 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다. 집권당과 팽팽한 선두 다툼이다. 선거가 다가오며 지지율은 주춤하고 하다. 하지만 집권은 못 해도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래서인지 자유당에선 다시 낙관론이다. 홍보 영상 속 네덜란드는 역시나 아름답다. 반짝이는 햇빛, 여유로운 풍차. 빌더르스는 강조한다. "자유, 독립, 미래의 변화를 위한 시기이다. 영국도 하고 있고 미국도 하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네덜란드 극우정당 ‘자유당(PVV)’의 대표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린다.
이웃 국가들의 시선은 걱정으로 가득하다. 독일의 대표적 일간지인 FAZ는 빌더르스 현상을 '창피하다'라고 썼다. 자유로운 미국인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것도 창피하고, 네덜란드인들이 빌더르스를 연호하는 것도 창피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총선은 네덜란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유럽 내 극우 열풍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선거의 해'이다. 네덜란드 총선이 스타트를 끊는다. 다음달엔 프랑스 대선이 있다. 독일 총선은 오는 9월이다. 말 그대로 정치적 격변기이다. 유럽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나의 유럽', '포용의 유럽'은 여전히 유럽의 목표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 그 결과는, 네덜란드 총선이 치러지는 오는 15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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