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흰 옷에 짧은 머리…미망인들만 모여 사는 도시

입력 2017.03.16 (15:14) 수정 2017.03.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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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가족이 저를 버린 뒤, 너무 불행했습니다. 지금은 오직 신께서 곁에서 저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습니다."(80살 인도 미망인 인터뷰중에서)

인도에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른바 '미망인'들이 모여사는 도시가 있다. 인도 전역에 3곳에 밀집해 사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가운데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가까운 편인 브린다반에는 시민단체 추산 1만 6천 여명의 여성이 모여 살고 있다.

홀로 사는 여성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부통계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에게 버려진' 여성들, 대부분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여성들에게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인도에서는 테러로 인한 전쟁 '미망인', 각종 자연재해로 인해 꾸준히 늘고 있는 혼자 사는 여성들의 숫자가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시민단체의 몫이다.

남편이 없는 여성들에게 흰옷과 짧은 머리 스타일 강요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성들에게 흰 옷만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성들에게 흰 옷만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

힌두교인들의 성지로 알려진 '브린다반'에서는 봄맞이 축제인 홀리(holi)준비가 한창이었다.혼자 사는 여성들도 서로를 축복해주면서 뿌릴 꽃잎을 수북하게 쌓아두길 시작했고,여기저기서 색색의 염료도 준비를 했다. 참고로 '홀리'는 기후의 특성상 이모작을 하는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수확이 끝난 후 봄이 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다.

음력에 따라 3월 정도에 열리는데 물감이나 염료를 서로에게 던지고 뿌리면서 '해피 홀리'를 외치는 풍습이 있다. 외국인들은 '좋은 표적'이 되는데 일부 젊은 관광객들은 수십가지 색가루를 뒤집어 쓰는 광란의 축제를 즐기기위해 일부러 이 시기에 인도 북부를 찾기도 한다.


'브린다반'의 여성들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흰옷만 입고 종교적인 축제도 즐길수 없는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해왔다. 또 마음대로 화장을 할수도 없었고, 머리도 짧게 자르고 지내야 했으니 '행복 추구권'을 박탈 당한 채 생활해온 셈이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수 없다보니 고향에서도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결국 구걸을 하며 떠돌거나 남의 눈을 피해 다닐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 홀로 사는 여성들의 운명"이라고 시민단체 홍보담당인 비니타 베르마는 설명했다.

40년 만에 즐기는 축제.."벌써 내년 축제가 기다려진다"

 홀자 살게되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홀리’축제를 일반인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 홀자 살게되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홀리’축제를 일반인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

'브린다반'의 홀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즐기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축제 시작을 기다리지 못해 언론인들에게 먼저 꽃을 뿌리는 여성들, 같이 사는 여성들과 줄지어 앉아 취재진을 구경하는 여성들로 힌두교 사원은 가득 찼다. 언론과 미디어의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인도 방송사 2곳은 생방송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독립립영화제작자들은 다큐멘터리 촬영까지 올 정도로 2,3년 사이 소외받은 여성들의 삶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축제 시작시간, 큰 스피커를 통해 전통 음악이 울리자 여성들은 먼저 서로에게 꽃잎을 뿌려주었다. 작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여기까지 '광란'의 기미는 없었다. 하지만 축제가 무르익고 일반인들도 가세하자 색색의 염료들이 뿌려졌고, 엄숙했던 사원은 '화려한 색의 향연'으로 탈바꿈했다.일부 여성들은 억눌렀던 욕망을 표출하듯이 지칠때까지 춤을 췄고, 30여년 만에 축제를 즐긴다는 여성도 있었다.


축구장 4분의 1 면적의 사원에 수천명이 몰리고 그 안에서 색색의 가루가 뿌려졌다. 여성들의 특별한 홀리 축제는 2시간 넘게 계속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춤동작도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색색의 염료로 뒤덮인 사람, 원래 옷의 색을 알수 없을 정도로 '염색'이 된 사람 등 축제 막바지에는 여성들이 서로 마주 보고 웃기만 할 정도로 기진맥진했다. 벌써 내년 축제가 기다려진다며 아쉬움을 담아 인터뷰를 하는 여성도 있었다.

취재진은 촬영 장비로 모든 장면을 찍고 있었지만, 미세한 색가루 때문에 렌즈와 화면의 질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방수 커버'라고 불리는 비닐로 싸여 있어서 본체는 무사했지만, 취재장비를 향해서도 색가루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뿌려진 색가루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매캐했고, 콧속까지 파고 들어 처음 이 같은 '홀리'를 겪는 사람은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였다.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무료 건강검진을 받기위해 줄을 선 ‘브린다반’의 여성들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무료 건강검진을 받기위해 줄을 선 ‘브린다반’의 여성들

인도 전역에는 300 만명정도의 미망인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수랍 인터내셔널이란 시민단체의 통계치이다. 혼자 사는 여성들의 주거지역이 일정하지 않고,시민단체 보호시설에 거주하는 여성들도 일부에 불과해서 신뢰할만한 수치는 아니었다.

최근들어 시민단체들은 각종 모금을 통해 직접 미망인들에게 매달 2천 루피(우리 돈 3만 4천원 정도 액수) 정도를 지원해주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직업 교육을 받고 한달에 6,7천원 정도의 돈을 더 벌수도 있다.하지만,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재혼도 쉽지 않고 가족조차 외면한 여성들에게는 축제를 즐길 권리 뿐만 아니라 주거안정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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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흰 옷에 짧은 머리…미망인들만 모여 사는 도시
    • 입력 2017-03-16 15:14:34
    • 수정2017-03-16 15:15:14
    특파원 리포트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가족이 저를 버린 뒤, 너무 불행했습니다. 지금은 오직 신께서 곁에서 저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습니다."(80살 인도 미망인 인터뷰중에서)

인도에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른바 '미망인'들이 모여사는 도시가 있다. 인도 전역에 3곳에 밀집해 사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가운데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가까운 편인 브린다반에는 시민단체 추산 1만 6천 여명의 여성이 모여 살고 있다.

홀로 사는 여성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부통계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에게 버려진' 여성들, 대부분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여성들에게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인도에서는 테러로 인한 전쟁 '미망인', 각종 자연재해로 인해 꾸준히 늘고 있는 혼자 사는 여성들의 숫자가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시민단체의 몫이다.

남편이 없는 여성들에게 흰옷과 짧은 머리 스타일 강요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성들에게 흰 옷만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
힌두교인들의 성지로 알려진 '브린다반'에서는 봄맞이 축제인 홀리(holi)준비가 한창이었다.혼자 사는 여성들도 서로를 축복해주면서 뿌릴 꽃잎을 수북하게 쌓아두길 시작했고,여기저기서 색색의 염료도 준비를 했다. 참고로 '홀리'는 기후의 특성상 이모작을 하는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수확이 끝난 후 봄이 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다.

음력에 따라 3월 정도에 열리는데 물감이나 염료를 서로에게 던지고 뿌리면서 '해피 홀리'를 외치는 풍습이 있다. 외국인들은 '좋은 표적'이 되는데 일부 젊은 관광객들은 수십가지 색가루를 뒤집어 쓰는 광란의 축제를 즐기기위해 일부러 이 시기에 인도 북부를 찾기도 한다.


'브린다반'의 여성들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흰옷만 입고 종교적인 축제도 즐길수 없는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해왔다. 또 마음대로 화장을 할수도 없었고, 머리도 짧게 자르고 지내야 했으니 '행복 추구권'을 박탈 당한 채 생활해온 셈이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수 없다보니 고향에서도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결국 구걸을 하며 떠돌거나 남의 눈을 피해 다닐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 홀로 사는 여성들의 운명"이라고 시민단체 홍보담당인 비니타 베르마는 설명했다.

40년 만에 즐기는 축제.."벌써 내년 축제가 기다려진다"

 홀자 살게되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홀리’축제를 일반인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
'브린다반'의 홀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즐기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축제 시작을 기다리지 못해 언론인들에게 먼저 꽃을 뿌리는 여성들, 같이 사는 여성들과 줄지어 앉아 취재진을 구경하는 여성들로 힌두교 사원은 가득 찼다. 언론과 미디어의 취재 경쟁도 치열했다. 인도 방송사 2곳은 생방송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독립립영화제작자들은 다큐멘터리 촬영까지 올 정도로 2,3년 사이 소외받은 여성들의 삶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축제 시작시간, 큰 스피커를 통해 전통 음악이 울리자 여성들은 먼저 서로에게 꽃잎을 뿌려주었다. 작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여기까지 '광란'의 기미는 없었다. 하지만 축제가 무르익고 일반인들도 가세하자 색색의 염료들이 뿌려졌고, 엄숙했던 사원은 '화려한 색의 향연'으로 탈바꿈했다.일부 여성들은 억눌렀던 욕망을 표출하듯이 지칠때까지 춤을 췄고, 30여년 만에 축제를 즐긴다는 여성도 있었다.


축구장 4분의 1 면적의 사원에 수천명이 몰리고 그 안에서 색색의 가루가 뿌려졌다. 여성들의 특별한 홀리 축제는 2시간 넘게 계속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춤동작도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색색의 염료로 뒤덮인 사람, 원래 옷의 색을 알수 없을 정도로 '염색'이 된 사람 등 축제 막바지에는 여성들이 서로 마주 보고 웃기만 할 정도로 기진맥진했다. 벌써 내년 축제가 기다려진다며 아쉬움을 담아 인터뷰를 하는 여성도 있었다.

취재진은 촬영 장비로 모든 장면을 찍고 있었지만, 미세한 색가루 때문에 렌즈와 화면의 질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방수 커버'라고 불리는 비닐로 싸여 있어서 본체는 무사했지만, 취재장비를 향해서도 색가루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뿌려진 색가루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매캐했고, 콧속까지 파고 들어 처음 이 같은 '홀리'를 겪는 사람은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였다.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무료 건강검진을 받기위해 줄을 선 ‘브린다반’의 여성들
인도 전역에는 300 만명정도의 미망인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수랍 인터내셔널이란 시민단체의 통계치이다. 혼자 사는 여성들의 주거지역이 일정하지 않고,시민단체 보호시설에 거주하는 여성들도 일부에 불과해서 신뢰할만한 수치는 아니었다.

최근들어 시민단체들은 각종 모금을 통해 직접 미망인들에게 매달 2천 루피(우리 돈 3만 4천원 정도 액수) 정도를 지원해주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직업 교육을 받고 한달에 6,7천원 정도의 돈을 더 벌수도 있다.하지만,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재혼도 쉽지 않고 가족조차 외면한 여성들에게는 축제를 즐길 권리 뿐만 아니라 주거안정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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