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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배우로서의 꿈? 오래 가는 거죠”
입력 2017.04.13 (17:01) 수정 2017.04.13 (17:02) 연합뉴스
올해로 연기 인생 60년을 맞은 배우 안성기는 "60년은 정말 실감 안 나는 숫자"라며 "연기를 오래 하는 것, 후배들을 위해 배우의 정년을 늘리는 것이 영화인으로서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한국영상자료원 상암 본원에서 데뷔 6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식에 앞서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국민배우'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팬클럽이 없으니 모든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배우가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역부터 시작해 60년간 약 130편의 작품을 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뽑는다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데 한 작품만 골라달라면 고문이다. 시대별로 의미를 따져보면 첫 번째로는 1980년도 이장호 감독과 함께한 '바람불어 좋은 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는 시대였고 정확하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이었다.

임권택 감독과의 첫 만남인 '만다라'는 예술적으로 세계에 많이 알려진 영화였고, '고래사냥'은 남녀노소가 좋아한, 많은 관객과 만난 첫 영화라는 의미가 있다.

'하얀전쟁'은 외대 베트남어과 출신인 내가 베트남전 참전 병사의 모습을 꼭 그리고 싶어서 정지영 감독에게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자고 권했던 작품이다. 베트남전을 뒤집어본 영화라는 데 의미가 있다.

'투캅스'는 순수하고 착한 역할만 하다가 망가진, 부패한 경찰의 모습 그리면서 연기의 폭을 넓힌 작품이고,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나이 들면서 주연에서 조연으로 바뀌어갔는데 이를 잘 연착륙 시켜준 작품이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첫 1천만 관객 돌파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저와 닮은 캐릭터를 연기해서 애정이 많이 간다.

--이렇게 보니 작품을 참 잘 선택한 것 같다.

▲배우가 연기력이 50이면 좋은 작품 만나는 게 50일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잘 선택하는 것이 연기력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역 시절 천재 소년으로 불렸는데 심적 부담은 없었는지.

▲어렸을 때는 전혀 연기가 뭔지 몰랐고 시키는 대로 했다. 신문광고에 나왔던 천재 소년 안성기라는 말은 선전용이었지 천재 소년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잘한다기보다는 어리숙하고 어린애다운 모습이 오히려 더 좋아서 귀여워해 주신 것 같다.

--TV 드라마나 연극은 안 하고 영화 외길을 걸어왔는데.

▲수사 드라마에 범인으로 1회 출연한 적이 있다. 50분 분량의 촬영을 이틀 만에 끝내는, 영화로서는 상상 못 할 스피드의 작업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드라마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얘기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또 관객들이 표를 예매하고 극장에 찾아가서 앉기까지 귀찮은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캄캄한 자리에 앉아서 자기를 감동시켜 달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많은 배우가 닮고 싶은 배우, 존경하는 배우로 꼽는데.

▲한눈팔지 않고 영화에 계속 매진하고 스크린쿼터 문제 등 영화에 관한 일이라면 앞장서서 열심히 한 편이다. 아마 그런 것을 좋아한 것 같다. 성인 연기자로 영화를 다시 시작했던 1980년대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때 영화 하는 사람도 좀 더 존중받고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품 하나하나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그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후배들도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연기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인으로서 연기 외에 다른 일들도 병행하고 있는데

▲유니세프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위원회 집행위원장 등 세 가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를 지원한다는 데에 의미를 갖고 하는 일들이며, 나 자신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

--이번 특별전 제목이 '한국영화의 페르소나'다. 인생 자체가 한국 영화 자체여서 붙은 수식어인 것 같다. 한국영화사의 상징적인 배우여서 힘겨운 순간은 없었는지.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 배우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좋은 이미지를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거기에는 의도적인 것도 있었고 나 스스로의 성격이나 삶도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의 활동계획 영화인으로서의 목표는 꿈은.

▲일단 오래 하는 게 꿈이자 가장 큰 숙제다. 배우의 정년을 길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나 자신을 위해서나 후배를 위해서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선배님들이 일찍 현장을 떠난다는 것이다. 선배나 동료들이 같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전부 사라지고 혼자 남는 느낌에 굉장히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시기 영화를 시작해서 지금은 한국 영화가 규모가 커지고 산업적으로 성장했는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절대 파이가 커져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의 삶도 나아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마음을 섞으면서 가족 같이 일하는 모습은 많이 잃었는데 그런 게 가장 아쉽다. 대기업에서 투자하다 보니 나이 드신 분들이 도태된 것도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지금 현장에 남은 선배들과 밑에서 올라오는 세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을 보고 싶다. 제가 앞으로 하려는 역할도 그런 것이다.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어떤 생각 갖고 계시는지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배우가 맞는 것 같다. (웃음) 국민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국민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
  • 안성기 “배우로서의 꿈? 오래 가는 거죠”
    • 입력 2017-04-13 17:01:43
    • 수정2017-04-13 17:02:12
    연합뉴스
올해로 연기 인생 60년을 맞은 배우 안성기는 "60년은 정말 실감 안 나는 숫자"라며 "연기를 오래 하는 것, 후배들을 위해 배우의 정년을 늘리는 것이 영화인으로서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한국영상자료원 상암 본원에서 데뷔 6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식에 앞서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국민배우'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팬클럽이 없으니 모든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배우가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역부터 시작해 60년간 약 130편의 작품을 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뽑는다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데 한 작품만 골라달라면 고문이다. 시대별로 의미를 따져보면 첫 번째로는 1980년도 이장호 감독과 함께한 '바람불어 좋은 날'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는 시대였고 정확하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이었다.

임권택 감독과의 첫 만남인 '만다라'는 예술적으로 세계에 많이 알려진 영화였고, '고래사냥'은 남녀노소가 좋아한, 많은 관객과 만난 첫 영화라는 의미가 있다.

'하얀전쟁'은 외대 베트남어과 출신인 내가 베트남전 참전 병사의 모습을 꼭 그리고 싶어서 정지영 감독에게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자고 권했던 작품이다. 베트남전을 뒤집어본 영화라는 데 의미가 있다.

'투캅스'는 순수하고 착한 역할만 하다가 망가진, 부패한 경찰의 모습 그리면서 연기의 폭을 넓힌 작품이고,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나이 들면서 주연에서 조연으로 바뀌어갔는데 이를 잘 연착륙 시켜준 작품이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한국 영화 사상 첫 1천만 관객 돌파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저와 닮은 캐릭터를 연기해서 애정이 많이 간다.

--이렇게 보니 작품을 참 잘 선택한 것 같다.

▲배우가 연기력이 50이면 좋은 작품 만나는 게 50일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잘 선택하는 것이 연기력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역 시절 천재 소년으로 불렸는데 심적 부담은 없었는지.

▲어렸을 때는 전혀 연기가 뭔지 몰랐고 시키는 대로 했다. 신문광고에 나왔던 천재 소년 안성기라는 말은 선전용이었지 천재 소년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잘한다기보다는 어리숙하고 어린애다운 모습이 오히려 더 좋아서 귀여워해 주신 것 같다.

--TV 드라마나 연극은 안 하고 영화 외길을 걸어왔는데.

▲수사 드라마에 범인으로 1회 출연한 적이 있다. 50분 분량의 촬영을 이틀 만에 끝내는, 영화로서는 상상 못 할 스피드의 작업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드라마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사람들과 얘기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또 관객들이 표를 예매하고 극장에 찾아가서 앉기까지 귀찮은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캄캄한 자리에 앉아서 자기를 감동시켜 달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많은 배우가 닮고 싶은 배우, 존경하는 배우로 꼽는데.

▲한눈팔지 않고 영화에 계속 매진하고 스크린쿼터 문제 등 영화에 관한 일이라면 앞장서서 열심히 한 편이다. 아마 그런 것을 좋아한 것 같다. 성인 연기자로 영화를 다시 시작했던 1980년대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때 영화 하는 사람도 좀 더 존중받고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품 하나하나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그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후배들도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연기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인으로서 연기 외에 다른 일들도 병행하고 있는데

▲유니세프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위원회 집행위원장 등 세 가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를 지원한다는 데에 의미를 갖고 하는 일들이며, 나 자신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

--이번 특별전 제목이 '한국영화의 페르소나'다. 인생 자체가 한국 영화 자체여서 붙은 수식어인 것 같다. 한국영화사의 상징적인 배우여서 힘겨운 순간은 없었는지.

▲영화인들과 영화가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성인 연기자로서의 삶을 출발해서 저 자신을 굉장히 다그치고 많은 자제를 하면서 살았다. 배우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좋은 이미지를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거기에는 의도적인 것도 있었고 나 스스로의 성격이나 삶도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의 활동계획 영화인으로서의 목표는 꿈은.

▲일단 오래 하는 게 꿈이자 가장 큰 숙제다. 배우의 정년을 길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나 자신을 위해서나 후배를 위해서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선배님들이 일찍 현장을 떠난다는 것이다. 선배나 동료들이 같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전부 사라지고 혼자 남는 느낌에 굉장히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시기 영화를 시작해서 지금은 한국 영화가 규모가 커지고 산업적으로 성장했는데.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절대 파이가 커져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의 삶도 나아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마음을 섞으면서 가족 같이 일하는 모습은 많이 잃었는데 그런 게 가장 아쉽다. 대기업에서 투자하다 보니 나이 드신 분들이 도태된 것도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지금 현장에 남은 선배들과 밑에서 올라오는 세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갖추는 것을 보고 싶다. 제가 앞으로 하려는 역할도 그런 것이다.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어떤 생각 갖고 계시는지

▲저는 팬클럽도 없는데 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하면 국민배우가 맞는 것 같다. (웃음) 국민배우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국민배우로서 잘살았으면 하는 애정의 표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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