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초청장 하나로 불법입국·난민신청

입력 2017.04.1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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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으로 가는 지름길, 초청장

2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수단인 A 씨는 한 장의 초청장을 손에 넣었다. 초청장은 직업이 없던 A 씨를 '중고차 수입업자'로 둔갑시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줄 황금티켓이었다. A 씨는 이 허위 초청장을 손에 쥐기 위해 수단인 브로커 B 씨에게 7백 달러를 지불했지만, 그 덕에 주수단 한국 대사관에서 90일짜리 단기방문비자(C-3)를 수월하게 발급받았다.

국내 기업으로부터 사업 상대방임을 증명하는 초청장이 있으면 단기방문비자를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단기방문비자는 상업 활동과 관광 등을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90일을 넘지 않는 기간 체류를 허가하는 비자다.

A 씨를 초청한 기업은 다름 아닌 인천의 한 중고차 수출 업체. 이전부터 브로커 B 씨와 중고차 거래를 해왔던 해당 업체는 초청장을 발급해주면, B 씨와 거래를 늘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수단 현지의 브로커 2명도 B 씨와 마찬가지로 중고차 수출 업체와 접촉해 밀입국을 원하는 수단인들에게 초청장 발급을 알선했다. 이렇게 2년 동안 23명의 수단인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입국후 공단에 취업....해법은 난민신청

한국으로 들어온 수단인들은 대부분 안산의 공단 지역으로 향했다. 안산엔 정유 공장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수단인들에게 한국에 체류하도록 허용된 시간은 단기방문비자의 기한인 90일. 그러나 그들에겐 또 다른 히든카드가 있었다.

바로 난민 신청이었다. 일단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난민 인정 여부를 놓고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적게는 2년 이상을 비자와 상관없이 국내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단인들은 그들이 발급받은 비자를 단기방문비자인 'C-4'에서 난민 신청자 자격인 'G-15'로 바꿀 수 있었다. 난민 신청자 자격을 얻으면 6개월에 한 번씩 체류 자격을 연장할 수 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송환되지 않는 점을 노렸다.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 근로자가 너무 많아요'

그때 였다, 경찰에게 첩보 하나가 들어 온 것은. 수원과 안산 등지에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 근로자가 너무 많다는 것. 이들이 난민 신청을 하게 된 이유와 함께 입국 과정을 들여다보던 경찰은 브로커의 존재와 허위 초청장의 실태를 캐낼 수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아프리카인 8명이 불법 입국하도록 도운 혐의로 수단인 브로커 A(47) 씨를 구속하고 수단인 밀입국자와 중고차 수출업체 대표 등 3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아직 잡히지 않은 국내의 수단인 밀입국자 4명과 밀입국을 도운 아프리카 현지의 또 다른 브로커 3명의 행방을 쫓고 있는 상태다.

제도 허점을 악용한 불법 입국은 반복된다

'난민신청 제도의 허점을 노리고 불법 입국을 알선한 아프리카인 브로커가 경찰에 붙잡혔다.' 뭔가 조금 전에 본 것 같은 느낌의 기사다. 다름 아닌 지난해 4월 29일 자 기사의 첫 문장이었다. 같은 방식의 불법 입국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수단인들을 적발한 오늘, 경기남부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역시 '외국인 바이어'로 둔갑해 국내 입국한 이집트인들과 브로커 2명을 구속하고, 밀입국한 이집트인 11명과 사업자 명의를 빌려준 한국인 9명 등 20명을 불구속 입건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런 방식의 불법 입국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비자 발급 과정에서 재외 공관의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청장이 있더라도 심사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검증하거나 입국자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난민 신청, 진짜 난민을 찾아라

아직도 세계 곳곳에선 내전 등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으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들은 7,542명. 최근 5년 동안 7배 가까이 증가했다. 따라서 이러한 난민 제도를 악용한 입국 사례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UN 난민협약 1조에 따르면 난민의 정의는 "인종, 종교, 민족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이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한 바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거치며 이제 우리나라는 주로 난민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다만 비자 발급 과정과 난민 신청 과정에서의 검증 강화를 통해 진짜 보호받아야 할 '난민'을 받아들여야, 불법 브로커들의 손바닥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번에 적발된 수단인들은 어떻게 될까? 경찰이 출입국관리소에 이들의 신상명세를 통보하면, 출입국관리소는 경찰에 고발하게 된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이 검찰에 수단인들을 송치하게 되면 검찰의 벌금형 처벌이 내려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출입국관리소는 강제 퇴거 절차를 통해 이들을 수단으로 추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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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초청장 하나로 불법입국·난민신청
    • 입력 2017-04-13 21:58:13
    취재후·사건후
대한민국으로 가는 지름길, 초청장

2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수단인 A 씨는 한 장의 초청장을 손에 넣었다. 초청장은 직업이 없던 A 씨를 '중고차 수입업자'로 둔갑시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줄 황금티켓이었다. A 씨는 이 허위 초청장을 손에 쥐기 위해 수단인 브로커 B 씨에게 7백 달러를 지불했지만, 그 덕에 주수단 한국 대사관에서 90일짜리 단기방문비자(C-3)를 수월하게 발급받았다.

국내 기업으로부터 사업 상대방임을 증명하는 초청장이 있으면 단기방문비자를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단기방문비자는 상업 활동과 관광 등을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90일을 넘지 않는 기간 체류를 허가하는 비자다.

A 씨를 초청한 기업은 다름 아닌 인천의 한 중고차 수출 업체. 이전부터 브로커 B 씨와 중고차 거래를 해왔던 해당 업체는 초청장을 발급해주면, B 씨와 거래를 늘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수단 현지의 브로커 2명도 B 씨와 마찬가지로 중고차 수출 업체와 접촉해 밀입국을 원하는 수단인들에게 초청장 발급을 알선했다. 이렇게 2년 동안 23명의 수단인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입국후 공단에 취업....해법은 난민신청

한국으로 들어온 수단인들은 대부분 안산의 공단 지역으로 향했다. 안산엔 정유 공장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수단인들에게 한국에 체류하도록 허용된 시간은 단기방문비자의 기한인 90일. 그러나 그들에겐 또 다른 히든카드가 있었다.

바로 난민 신청이었다. 일단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난민 인정 여부를 놓고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적게는 2년 이상을 비자와 상관없이 국내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단인들은 그들이 발급받은 비자를 단기방문비자인 'C-4'에서 난민 신청자 자격인 'G-15'로 바꿀 수 있었다. 난민 신청자 자격을 얻으면 6개월에 한 번씩 체류 자격을 연장할 수 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송환되지 않는 점을 노렸다.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 근로자가 너무 많아요'

그때 였다, 경찰에게 첩보 하나가 들어 온 것은. 수원과 안산 등지에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 근로자가 너무 많다는 것. 이들이 난민 신청을 하게 된 이유와 함께 입국 과정을 들여다보던 경찰은 브로커의 존재와 허위 초청장의 실태를 캐낼 수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아프리카인 8명이 불법 입국하도록 도운 혐의로 수단인 브로커 A(47) 씨를 구속하고 수단인 밀입국자와 중고차 수출업체 대표 등 3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아직 잡히지 않은 국내의 수단인 밀입국자 4명과 밀입국을 도운 아프리카 현지의 또 다른 브로커 3명의 행방을 쫓고 있는 상태다.

제도 허점을 악용한 불법 입국은 반복된다

'난민신청 제도의 허점을 노리고 불법 입국을 알선한 아프리카인 브로커가 경찰에 붙잡혔다.' 뭔가 조금 전에 본 것 같은 느낌의 기사다. 다름 아닌 지난해 4월 29일 자 기사의 첫 문장이었다. 같은 방식의 불법 입국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 수단인들을 적발한 오늘, 경기남부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역시 '외국인 바이어'로 둔갑해 국내 입국한 이집트인들과 브로커 2명을 구속하고, 밀입국한 이집트인 11명과 사업자 명의를 빌려준 한국인 9명 등 20명을 불구속 입건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런 방식의 불법 입국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비자 발급 과정에서 재외 공관의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청장이 있더라도 심사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검증하거나 입국자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난민 신청, 진짜 난민을 찾아라

아직도 세계 곳곳에선 내전 등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으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들은 7,542명. 최근 5년 동안 7배 가까이 증가했다. 따라서 이러한 난민 제도를 악용한 입국 사례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UN 난민협약 1조에 따르면 난민의 정의는 "인종, 종교, 민족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이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한 바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거치며 이제 우리나라는 주로 난민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다만 비자 발급 과정과 난민 신청 과정에서의 검증 강화를 통해 진짜 보호받아야 할 '난민'을 받아들여야, 불법 브로커들의 손바닥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번에 적발된 수단인들은 어떻게 될까? 경찰이 출입국관리소에 이들의 신상명세를 통보하면, 출입국관리소는 경찰에 고발하게 된다.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이 검찰에 수단인들을 송치하게 되면 검찰의 벌금형 처벌이 내려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출입국관리소는 강제 퇴거 절차를 통해 이들을 수단으로 추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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