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서울 모습 그대로…이 동네는?

입력 2017.04.2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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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래된 거리 하나가 나타난다.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중림동이다. 대형 빌딩들과 주상복합 아파트를 코앞에 둔 곳에 흑백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낡은 아파트와 상가, 그리고 난전에 생선을 벌여놓은 어(魚)시장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오래된 서울, 중림동에는 긴 역사와 보통 사람들의 삶이 있다. 긴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주름살이 패인 중림동의 풍경은 각박한 도시의 또 다른 속살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제는 그 어디서도 쉬이 만나보기 힘든 골목의 정취와 사람 사는 냄새를 간직한 곳, 중림동 149번지다.


장보배(35) 씨는 중림동에 대한 인상이 서울 같지 않다고 말한다. "여긴 서울인데 '서울시'가 아니라 '서울도 중림리', 이런 느낌이에요. 우리 외할머니댁이 생각났어요. 지하철역이 가깝고 서울역이 옆에 있다는 걸 빼고 여기 동네만 봤을 때도 '되게 매력 있다'고 생각했어요. 옆집 걸러 옆집이 다 아는 사이더라고요. 가게를 열었는데 할머니들도 다 몰려오시고요."



중림동 ‘국내 최초’ 건물들


중림동 약현성당은 1892년 국내 최초 서양식 벽돌 건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1970년에 준공한 성요셉아파트는 국내 최초의 복도식 주상복합 아파트다. 약현성당 측이 신도들을 위해 지은 것이 성 요셉 아파트의 시초로 50년 가까이 된 건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고 튼튼한 아파트다. 이 아파트에는 총 68세대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이 이곳에서 수십 년간 살아왔다. 이들에게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 아파트가 어떤 대궐보다 좋은, '내 집'이다.


성요셉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홍정자(77) 씨는 성요셉아파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여기 내 집이다, 여기니까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없어요. 여기 와서만 (쭉 살고) 저런 곳들은 복잡해서 안 살았어요. 내가 벌어서 이날 이때까지 산 거예요."

서울 도심의 달동네, 호박 마을


성요셉아파트를 끼고 올라가면 중림리5길, '호박 마을'이 나온다. 과거 '호박 넝쿨이 무성하던 곳'이라 그렇게 불린다. 골목 사진으로 유명한 김기찬 사진작가가 사랑했던 1970·8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 이곳에는 김기찬 작가가 주로 촬영했던 서울 판자촌처럼,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 방수 천으로 지붕을 덮은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비좁지만 고즈넉한 골목을 걷다 보면, 어린 시절 골목길을 뛰어놀던 추억도 새록새록 샘솟는다.

새벽 여는 중림시장


주상복합 아파트인 성요셉아파트 1층에는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문받은 떡과 고춧가루를 배달해야 하는 방앗간들의 기계는 부지런히 돌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계란집, 쌀집, 정육점 등 옛 모습을 간직한 가게들도 아기자기 늘어선 채 장사를 준비한다.

아파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오랜 역사를 지닌 중림시장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칠패시장에서 시작된 중림시장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장이 열린다. 지금 그 규모는 작아졌지만, 중림시장은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의 싱싱한 해산물과 채소들은 주로 인근 식당으로 팔려 나간다. 상인들은 쉬는 날 없이 매일 장사를 하며 동네에서 청춘을 보내고, 자식들을 키워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떠나갔어도,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과 그들을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기에 오늘도 중림시장의 새벽은 잠들지 않는다.


조한기(62) 씨는 중림시장의 화려했던 과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여기가 최고 중앙 시장이라 옛날에 열차로도 (물건들이) 왔어요. 여수 산지에서 이렇게 열차 편으로 오면 노조가 받아다가 경매 부르고 대단한 곳이었어요, 이 시장 뿌리가."

중림동에 부는 새로운 바람

중림동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옛날 방앗간들이 즐비했던 성요셉아파트 1층 상가에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아이디어 공밤점이 생겼고, 서울 강남에나 있을 법한 헤어숍도 들어섰다. 인근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면 약현성당에서 이어지는 중림동 골목을 걸으며 산책도 한다. 어르신과 젊은이가 살갑게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게 된 중림동은 어느덧 사람 온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또한, 중림동이 도시재생 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더 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면 철거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게 주목적인 만큼, 꾸준히 주민회의를 열며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서울시는 중림동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중림로 보행문화거리'를 조성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과연 중림동은 어떤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까.


주재현(46) 씨는 중림동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데에 기대를 품고 있다. "이 모습을 잘 가꿔가면서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여기를 지나갈 때 '여기 되게 매력적이다. 독특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아들이나 딸이 여기 커피숍을 이어서 했으면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저는 계속 여기에 있을 겁니다."


김지은(46) 씨 또한 "중림동에는 다른 곳에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며 중림동의 매력을 소개했다. "중림동은 아름답고 아련합니다. 가족과 함께 와서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서울의 정취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저처럼 가슴 찡한 느낌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눈물도 나지 않을까요."

KBS '다큐멘터리 3일'(23일 밤 10시 40분,KBS 2TV)은 서울의 오랜 정취가 남아있는 중림동의 모습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내레이션은 배우 양희경이 맡았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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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대 서울 모습 그대로…이 동네는?
    • 입력 2017-04-22 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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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래된 거리 하나가 나타난다.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중림동이다. 대형 빌딩들과 주상복합 아파트를 코앞에 둔 곳에 흑백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낡은 아파트와 상가, 그리고 난전에 생선을 벌여놓은 어(魚)시장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오래된 서울, 중림동에는 긴 역사와 보통 사람들의 삶이 있다. 긴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주름살이 패인 중림동의 풍경은 각박한 도시의 또 다른 속살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제는 그 어디서도 쉬이 만나보기 힘든 골목의 정취와 사람 사는 냄새를 간직한 곳, 중림동 149번지다.


장보배(35) 씨는 중림동에 대한 인상이 서울 같지 않다고 말한다. "여긴 서울인데 '서울시'가 아니라 '서울도 중림리', 이런 느낌이에요. 우리 외할머니댁이 생각났어요. 지하철역이 가깝고 서울역이 옆에 있다는 걸 빼고 여기 동네만 봤을 때도 '되게 매력 있다'고 생각했어요. 옆집 걸러 옆집이 다 아는 사이더라고요. 가게를 열었는데 할머니들도 다 몰려오시고요."



중림동 ‘국내 최초’ 건물들


중림동 약현성당은 1892년 국내 최초 서양식 벽돌 건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1970년에 준공한 성요셉아파트는 국내 최초의 복도식 주상복합 아파트다. 약현성당 측이 신도들을 위해 지은 것이 성 요셉 아파트의 시초로 50년 가까이 된 건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고 튼튼한 아파트다. 이 아파트에는 총 68세대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이 이곳에서 수십 년간 살아왔다. 이들에게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이 아파트가 어떤 대궐보다 좋은, '내 집'이다.


성요셉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홍정자(77) 씨는 성요셉아파트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여기 내 집이다, 여기니까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없어요. 여기 와서만 (쭉 살고) 저런 곳들은 복잡해서 안 살았어요. 내가 벌어서 이날 이때까지 산 거예요."

서울 도심의 달동네, 호박 마을


성요셉아파트를 끼고 올라가면 중림리5길, '호박 마을'이 나온다. 과거 '호박 넝쿨이 무성하던 곳'이라 그렇게 불린다. 골목 사진으로 유명한 김기찬 사진작가가 사랑했던 1970·80년대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 이곳에는 김기찬 작가가 주로 촬영했던 서울 판자촌처럼, 쓰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 방수 천으로 지붕을 덮은 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비좁지만 고즈넉한 골목을 걷다 보면, 어린 시절 골목길을 뛰어놀던 추억도 새록새록 샘솟는다.

새벽 여는 중림시장


주상복합 아파트인 성요셉아파트 1층에는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문받은 떡과 고춧가루를 배달해야 하는 방앗간들의 기계는 부지런히 돌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계란집, 쌀집, 정육점 등 옛 모습을 간직한 가게들도 아기자기 늘어선 채 장사를 준비한다.

아파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오랜 역사를 지닌 중림시장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 칠패시장에서 시작된 중림시장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장이 열린다. 지금 그 규모는 작아졌지만, 중림시장은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의 싱싱한 해산물과 채소들은 주로 인근 식당으로 팔려 나간다. 상인들은 쉬는 날 없이 매일 장사를 하며 동네에서 청춘을 보내고, 자식들을 키워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떠나갔어도,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과 그들을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기에 오늘도 중림시장의 새벽은 잠들지 않는다.


조한기(62) 씨는 중림시장의 화려했던 과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여기가 최고 중앙 시장이라 옛날에 열차로도 (물건들이) 왔어요. 여수 산지에서 이렇게 열차 편으로 오면 노조가 받아다가 경매 부르고 대단한 곳이었어요, 이 시장 뿌리가."

중림동에 부는 새로운 바람

중림동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옛날 방앗간들이 즐비했던 성요셉아파트 1층 상가에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아이디어 공밤점이 생겼고, 서울 강남에나 있을 법한 헤어숍도 들어섰다. 인근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면 약현성당에서 이어지는 중림동 골목을 걸으며 산책도 한다. 어르신과 젊은이가 살갑게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게 된 중림동은 어느덧 사람 온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또한, 중림동이 도시재생 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더 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면 철거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게 주목적인 만큼, 꾸준히 주민회의를 열며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서울시는 중림동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중림로 보행문화거리'를 조성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과연 중림동은 어떤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까.


주재현(46) 씨는 중림동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데에 기대를 품고 있다. "이 모습을 잘 가꿔가면서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여기를 지나갈 때 '여기 되게 매력적이다. 독특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아들이나 딸이 여기 커피숍을 이어서 했으면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저는 계속 여기에 있을 겁니다."


김지은(46) 씨 또한 "중림동에는 다른 곳에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며 중림동의 매력을 소개했다. "중림동은 아름답고 아련합니다. 가족과 함께 와서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서울의 정취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저처럼 가슴 찡한 느낌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눈물도 나지 않을까요."

KBS '다큐멘터리 3일'(23일 밤 10시 40분,KBS 2TV)은 서울의 오랜 정취가 남아있는 중림동의 모습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내레이션은 배우 양희경이 맡았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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