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중순, 서울 여의도의 중소 시행사 대표 서 모(55) 씨는 지인으로부터 한 남성을 소개받았다. 건물 매입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다며 서 씨를 만난 이 남성은 가 모(60) 씨, 180cm가 넘는 키에 훤칠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첫 만남 뒤 나흘 만에 서 씨는 가 씨에게 12억 5천만 원 상당의 무기명 기프트카드(일종의 선불카드)를 건넸다. 3개월여가 지난 지금 가 씨는 경찰에 구속됐고 서 씨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국제금융업 총재' 사칭해 시행사 대표에 접근
피해자 서 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을 종합하면 이렇다.
가 씨는 자신을 '국제금융업 총재'라고 소개했다. "내 밑에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있다"는 말을 하며, 이에 대한 증거라며 서 씨에게 채권지급 결정문까지 보여줬다. 발행자는 서울중앙지법으로, 국내 유명 은행 3곳이 가 씨에게 1,00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결정문에 담겨있었다. 이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검은돈'이라며 말을 아꼈다.
가 씨는 지금 이 돈이 모두 채권 등으로 묶여 있어 현금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곤 자신이 당장 건물을 매입해야 하는데 보증금 30억 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채권이 풀리는 대로 웃돈을 얹어 50억 원을 주겠다는 말로 서 씨를 유혹했다.
구두 계약을 꺼려하는 서 씨에게 가 씨는 채권양도 통지서를 만들어 건넸다. "(가 씨 수중의) 1해 105경여 원 정 / 골드 5,000MT(1톤) 등의 지시채권(※) 등 50억 원을 양도한다"고 적힌 통지서를 받아든 서 씨는 가 씨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서 씨는 은행에서 50만 원 한도의 무기명 기프트카드 2,500장을 발급받아 가 씨 등 7명에게 건넸다.
※지시채권: 어음, 수표 등 특정인 또는 그가 지시한 자에게 변제해야 하는 증권적 채권. 즉, 금전의 지급이나 물건의 인도를 뜻한다.
국제금융업의 실체… 결국 '사기'
가 씨 '국제금융업'의 실체는 이들이 기프트카드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서 씨가 발급받은 기프트카드를 뭉칫돈으로 인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은행이 가 씨의 계좌 등을 조회해 사기가 의심된다고 통보한 것이다.
가 씨에겐 1해가 넘는 지시채권은커녕 빌린 12억여 원을 갚을 재산도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발행한 채권지급 결정문도 사기를 치기 위해 허위 민사 소송을 벌여 받아둔 자료였다.
그 과정은 이렇다. 먼저 제3자의 채권자를 두고, 채무자로 가 씨 본인을 설정한다. 채권·채무 관계에 대한 민사 소송을 진행하면서 가 씨는 재판부 측에 은행에 받을 돈이 있다고 시인한다. 법원은 가 씨가 말한 은행을 제3채무자로 지정해서 은행이 채무자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가압류 결정을 한다.
법원의 가압류 결정을 통보받은 은행에서는 당연히 가 씨에게 지급할 돈이 없으므로 항소를 한다. 그럼 가 씨 측은 첫 소송을 취하하고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가 씨에게는 법원의 가압류 결정문, 즉 은행 측의 채권지급 결정문이 남는다. 이는 서 씨 등 피해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데 사용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가 씨를 체포했다. 그리고 가 씨에게 서 씨를 소개해준 지인 박 모(59) 씨 등 4명을 잇따라 검거해 모두 5명의 일당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잠적한 김 모(62) 씨 등 2명도 추적 중이다.
하지만 7명이 나눠 가진 12억 5천만 원의 기프트카드는 하나도 회수하지 못했다. 가 씨 일당이 정당한 금전 거래였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돈의 행방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해 원이 넘는 돈을 자랑하며 국제금융업 총재를 사칭했던 60대 남성은 결국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됐다.
'국제금융업 총재' 사칭해 시행사 대표에 접근
피해자 서 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을 종합하면 이렇다.
가 씨는 자신을 '국제금융업 총재'라고 소개했다. "내 밑에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있다"는 말을 하며, 이에 대한 증거라며 서 씨에게 채권지급 결정문까지 보여줬다. 발행자는 서울중앙지법으로, 국내 유명 은행 3곳이 가 씨에게 1,00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결정문에 담겨있었다. 이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검은돈'이라며 말을 아꼈다.
가 씨는 지금 이 돈이 모두 채권 등으로 묶여 있어 현금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곤 자신이 당장 건물을 매입해야 하는데 보증금 30억 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채권이 풀리는 대로 웃돈을 얹어 50억 원을 주겠다는 말로 서 씨를 유혹했다.
구두 계약을 꺼려하는 서 씨에게 가 씨는 채권양도 통지서를 만들어 건넸다. "(가 씨 수중의) 1해 105경여 원 정 / 골드 5,000MT(1톤) 등의 지시채권(※) 등 50억 원을 양도한다"고 적힌 통지서를 받아든 서 씨는 가 씨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서 씨는 은행에서 50만 원 한도의 무기명 기프트카드 2,500장을 발급받아 가 씨 등 7명에게 건넸다.
※지시채권: 어음, 수표 등 특정인 또는 그가 지시한 자에게 변제해야 하는 증권적 채권. 즉, 금전의 지급이나 물건의 인도를 뜻한다.
국제금융업의 실체… 결국 '사기'
가 씨 '국제금융업'의 실체는 이들이 기프트카드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서 씨가 발급받은 기프트카드를 뭉칫돈으로 인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은행이 가 씨의 계좌 등을 조회해 사기가 의심된다고 통보한 것이다.
가 씨에겐 1해가 넘는 지시채권은커녕 빌린 12억여 원을 갚을 재산도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발행한 채권지급 결정문도 사기를 치기 위해 허위 민사 소송을 벌여 받아둔 자료였다.
그 과정은 이렇다. 먼저 제3자의 채권자를 두고, 채무자로 가 씨 본인을 설정한다. 채권·채무 관계에 대한 민사 소송을 진행하면서 가 씨는 재판부 측에 은행에 받을 돈이 있다고 시인한다. 법원은 가 씨가 말한 은행을 제3채무자로 지정해서 은행이 채무자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가압류 결정을 한다.
법원의 가압류 결정을 통보받은 은행에서는 당연히 가 씨에게 지급할 돈이 없으므로 항소를 한다. 그럼 가 씨 측은 첫 소송을 취하하고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가 씨에게는 법원의 가압류 결정문, 즉 은행 측의 채권지급 결정문이 남는다. 이는 서 씨 등 피해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데 사용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가 씨를 체포했다. 그리고 가 씨에게 서 씨를 소개해준 지인 박 모(59) 씨 등 4명을 잇따라 검거해 모두 5명의 일당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잠적한 김 모(62) 씨 등 2명도 추적 중이다.
하지만 7명이 나눠 가진 12억 5천만 원의 기프트카드는 하나도 회수하지 못했다. 가 씨 일당이 정당한 금전 거래였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돈의 행방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해 원이 넘는 돈을 자랑하며 국제금융업 총재를 사칭했던 60대 남성은 결국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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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은행들이 내 밑에 있는데”…12억여 원 가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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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5-01 10:23:42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중순, 서울 여의도의 중소 시행사 대표 서 모(55) 씨는 지인으로부터 한 남성을 소개받았다. 건물 매입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다며 서 씨를 만난 이 남성은 가 모(60) 씨, 180cm가 넘는 키에 훤칠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첫 만남 뒤 나흘 만에 서 씨는 가 씨에게 12억 5천만 원 상당의 무기명 기프트카드(일종의 선불카드)를 건넸다. 3개월여가 지난 지금 가 씨는 경찰에 구속됐고 서 씨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국제금융업 총재' 사칭해 시행사 대표에 접근
피해자 서 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을 종합하면 이렇다.
가 씨는 자신을 '국제금융업 총재'라고 소개했다. "내 밑에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있다"는 말을 하며, 이에 대한 증거라며 서 씨에게 채권지급 결정문까지 보여줬다. 발행자는 서울중앙지법으로, 국내 유명 은행 3곳이 가 씨에게 1,00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결정문에 담겨있었다. 이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검은돈'이라며 말을 아꼈다.
가 씨는 지금 이 돈이 모두 채권 등으로 묶여 있어 현금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곤 자신이 당장 건물을 매입해야 하는데 보증금 30억 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채권이 풀리는 대로 웃돈을 얹어 50억 원을 주겠다는 말로 서 씨를 유혹했다.
구두 계약을 꺼려하는 서 씨에게 가 씨는 채권양도 통지서를 만들어 건넸다. "(가 씨 수중의) 1해 105경여 원 정 / 골드 5,000MT(1톤) 등의 지시채권(※) 등 50억 원을 양도한다"고 적힌 통지서를 받아든 서 씨는 가 씨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서 씨는 은행에서 50만 원 한도의 무기명 기프트카드 2,500장을 발급받아 가 씨 등 7명에게 건넸다.
※지시채권: 어음, 수표 등 특정인 또는 그가 지시한 자에게 변제해야 하는 증권적 채권. 즉, 금전의 지급이나 물건의 인도를 뜻한다.
국제금융업의 실체… 결국 '사기'
가 씨 '국제금융업'의 실체는 이들이 기프트카드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서 씨가 발급받은 기프트카드를 뭉칫돈으로 인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은행이 가 씨의 계좌 등을 조회해 사기가 의심된다고 통보한 것이다.
가 씨에겐 1해가 넘는 지시채권은커녕 빌린 12억여 원을 갚을 재산도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발행한 채권지급 결정문도 사기를 치기 위해 허위 민사 소송을 벌여 받아둔 자료였다.
그 과정은 이렇다. 먼저 제3자의 채권자를 두고, 채무자로 가 씨 본인을 설정한다. 채권·채무 관계에 대한 민사 소송을 진행하면서 가 씨는 재판부 측에 은행에 받을 돈이 있다고 시인한다. 법원은 가 씨가 말한 은행을 제3채무자로 지정해서 은행이 채무자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가압류 결정을 한다.
법원의 가압류 결정을 통보받은 은행에서는 당연히 가 씨에게 지급할 돈이 없으므로 항소를 한다. 그럼 가 씨 측은 첫 소송을 취하하고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가 씨에게는 법원의 가압류 결정문, 즉 은행 측의 채권지급 결정문이 남는다. 이는 서 씨 등 피해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데 사용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가 씨를 체포했다. 그리고 가 씨에게 서 씨를 소개해준 지인 박 모(59) 씨 등 4명을 잇따라 검거해 모두 5명의 일당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잠적한 김 모(62) 씨 등 2명도 추적 중이다.
하지만 7명이 나눠 가진 12억 5천만 원의 기프트카드는 하나도 회수하지 못했다. 가 씨 일당이 정당한 금전 거래였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돈의 행방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해 원이 넘는 돈을 자랑하며 국제금융업 총재를 사칭했던 60대 남성은 결국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됐다.
'국제금융업 총재' 사칭해 시행사 대표에 접근
피해자 서 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을 종합하면 이렇다.
가 씨는 자신을 '국제금융업 총재'라고 소개했다. "내 밑에 세계 유수의 은행들이 있다"는 말을 하며, 이에 대한 증거라며 서 씨에게 채권지급 결정문까지 보여줬다. 발행자는 서울중앙지법으로, 국내 유명 은행 3곳이 가 씨에게 1,00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결정문에 담겨있었다. 이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검은돈'이라며 말을 아꼈다.
가 씨는 지금 이 돈이 모두 채권 등으로 묶여 있어 현금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곤 자신이 당장 건물을 매입해야 하는데 보증금 30억 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채권이 풀리는 대로 웃돈을 얹어 50억 원을 주겠다는 말로 서 씨를 유혹했다.
구두 계약을 꺼려하는 서 씨에게 가 씨는 채권양도 통지서를 만들어 건넸다. "(가 씨 수중의) 1해 105경여 원 정 / 골드 5,000MT(1톤) 등의 지시채권(※) 등 50억 원을 양도한다"고 적힌 통지서를 받아든 서 씨는 가 씨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서 씨는 은행에서 50만 원 한도의 무기명 기프트카드 2,500장을 발급받아 가 씨 등 7명에게 건넸다.
※지시채권: 어음, 수표 등 특정인 또는 그가 지시한 자에게 변제해야 하는 증권적 채권. 즉, 금전의 지급이나 물건의 인도를 뜻한다.
국제금융업의 실체… 결국 '사기'
가 씨 '국제금융업'의 실체는 이들이 기프트카드를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서 씨가 발급받은 기프트카드를 뭉칫돈으로 인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은행이 가 씨의 계좌 등을 조회해 사기가 의심된다고 통보한 것이다.
가 씨에겐 1해가 넘는 지시채권은커녕 빌린 12억여 원을 갚을 재산도 없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발행한 채권지급 결정문도 사기를 치기 위해 허위 민사 소송을 벌여 받아둔 자료였다.
그 과정은 이렇다. 먼저 제3자의 채권자를 두고, 채무자로 가 씨 본인을 설정한다. 채권·채무 관계에 대한 민사 소송을 진행하면서 가 씨는 재판부 측에 은행에 받을 돈이 있다고 시인한다. 법원은 가 씨가 말한 은행을 제3채무자로 지정해서 은행이 채무자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가압류 결정을 한다.
법원의 가압류 결정을 통보받은 은행에서는 당연히 가 씨에게 지급할 돈이 없으므로 항소를 한다. 그럼 가 씨 측은 첫 소송을 취하하고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가 씨에게는 법원의 가압류 결정문, 즉 은행 측의 채권지급 결정문이 남는다. 이는 서 씨 등 피해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데 사용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가 씨를 체포했다. 그리고 가 씨에게 서 씨를 소개해준 지인 박 모(59) 씨 등 4명을 잇따라 검거해 모두 5명의 일당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잠적한 김 모(62) 씨 등 2명도 추적 중이다.
하지만 7명이 나눠 가진 12억 5천만 원의 기프트카드는 하나도 회수하지 못했다. 가 씨 일당이 정당한 금전 거래였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돈의 행방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해 원이 넘는 돈을 자랑하며 국제금융업 총재를 사칭했던 60대 남성은 결국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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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기자 sykb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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