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아들에서 대통령 당선까지

입력 2017.05.10 (07:06) 수정 2017.05.10 (07:2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가난한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인권 변호사와 참여정부 참모를 거치며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문 당선인의 생애와 정치 인생을 안다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문재인(대통령 당선인/신촌 유세) : “흙수저 금수저 따로 없는 공정한 나라, 누구입니까?”

<녹취> 문재인(대통령 당선인/공주 유세) : "대탕평, 국민통합 만들 사람 누구입니까?"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습니다.

문재인의 부모는 1950년, 전쟁을 피해 함경남도 흥남에서 내려온 피난민이었습니다.

<인터뷰> 엄수훈(중고등학교 친구) : "1.4 후퇴 때 미군 LST(전차상륙함)을 타고 3일 만에 장승포항으로 피난을 오신 거죠. 한밤 중에 숟가락 하나 못 챙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산으로 이사한 문재인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인터뷰> 서재현(초등학교 친구) : "(어머님이) 구제품, 군화라든지 이런 걸 수선해서 내다 팔기도 하고 연탄배달도 하고 어려운 생활에서도 하여튼 자식 교육열만큼은 엄청나셨던 것 같더라고요."

가난은 그러나 인생의 선물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문재인(대통령 당선인) : "덕분에 저는 강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찍 철들 수가 있었고요.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많이 있다. 이런 인식도 저에게 심어주었고요."

중고교 시절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습니다.

<인터뷰> 장세훈(중고등학교 친구) : "가정형편과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 반발의식이 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어요.그 대신 내가 알기로는 책은 엄청나게 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유신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1975년,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됐고, 학교에서는 제적 당했습니다.

석방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다시 구속됐고, 같은 해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판사를 희망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임용에서 탈락하자,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같은 학교 음대생으로 2년 후배인 김정숙 씨와 8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바꾼 또 한 사람,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노무현이 1988년 국회로 진출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부산 지역 시국 사건과 노동사건의 변론을 도맡았습니다.

<인터뷰> 송병곤(당시 변호사사무소 사무장) : "전국 최초였습니다. 노동법률상담소를 만든 게. 그리고 우리는 그 때는 전국 최고다. 변호사님들 하고 전국 최고다, 노동법률은.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었죠."

이후 문재인은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해 인권 변호에 집중했습니다.

1980년, 외항선원이던 신귀영씨와 친척들이 불법 감금과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렸다가 29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신씨 일가 간첩단 사건 재심 변론이 대표적입니다.

<인터뷰> 신귀영(간첩단 사건 피해자) : "실망을 시키지 않고, 계속 싸워주겠다. 진실이 끝날(밝혀질) 때까지 그게 참 마음에 안도가 들었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다시 만납니다.

문재인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며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경험을 쌓게 됩니다.

<인터뷰> 이정우(전 청와대 정책실장/경북대 교수) :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스님이 계셨죠. 지율스님이 수십 일 단식을 했어요 청와대 근처에서. 그때 문재인 수석이 거길 가서 설득을 하고 대화를 하고 그런 일을 아주 잘합니다."

노 대통령 탄핵 당시엔 탄핵 재판 대리인으로, 또 퇴임 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무현의 곁을 지켰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문재인 정치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뷰> 황호선(부경대 교수/중고등학교 친구) : "본인이 결심을 하고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제 내려올 수도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이건 하나의 소명이다라고..."

19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고, 18대 대선에도 출마했습니다.

안철수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이뤘지만 박근혜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녹취> 문재인(18대 대선 패배 승복 기자회견/2012년) :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실패이지 새 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들의 실패가 아닙니다."

18대 대선 실패 후 재기에 나선 문재인은 2015년 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당 개혁에 매진합니다.

이듬해 4.13 총선에 승리하며 입지를 다져갔습니다.

미뤘던 대권 도전의 꿈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정철(카피라이터) : "지역 문제, 세대 문제 이거를 건너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 플랜들을 하나씩 하나씩준비를 하시는 그런 모습들이 강하다를 넘어서 독하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구에서 시작한 첫 유세는 국민 통합을 향한 상징적 행보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문재인은 19대 대통령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19대 대통령 문재인의 앞길엔 새 정치,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난관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녹취> 문재인(대통령 당선인) :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상식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저는 국민과 민생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가겠습니다!"

KBS 뉴스 안다영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피난민 아들에서 대통령 당선까지
    • 입력 2017-05-10 07:13:34
    • 수정2017-05-10 07:27:11
    뉴스광장
<앵커 멘트>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가난한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인권 변호사와 참여정부 참모를 거치며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문 당선인의 생애와 정치 인생을 안다영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녹취> 문재인(대통령 당선인/신촌 유세) : “흙수저 금수저 따로 없는 공정한 나라, 누구입니까?”

<녹취> 문재인(대통령 당선인/공주 유세) : "대탕평, 국민통합 만들 사람 누구입니까?"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습니다.

문재인의 부모는 1950년, 전쟁을 피해 함경남도 흥남에서 내려온 피난민이었습니다.

<인터뷰> 엄수훈(중고등학교 친구) : "1.4 후퇴 때 미군 LST(전차상륙함)을 타고 3일 만에 장승포항으로 피난을 오신 거죠. 한밤 중에 숟가락 하나 못 챙기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산으로 이사한 문재인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인터뷰> 서재현(초등학교 친구) : "(어머님이) 구제품, 군화라든지 이런 걸 수선해서 내다 팔기도 하고 연탄배달도 하고 어려운 생활에서도 하여튼 자식 교육열만큼은 엄청나셨던 것 같더라고요."

가난은 그러나 인생의 선물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문재인(대통령 당선인) : "덕분에 저는 강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찍 철들 수가 있었고요.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많이 있다. 이런 인식도 저에게 심어주었고요."

중고교 시절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습니다.

<인터뷰> 장세훈(중고등학교 친구) : "가정형편과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조금 반발의식이 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어요.그 대신 내가 알기로는 책은 엄청나게 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유신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1975년,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됐고, 학교에서는 제적 당했습니다.

석방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다시 구속됐고, 같은 해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판사를 희망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임용에서 탈락하자,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같은 학교 음대생으로 2년 후배인 김정숙 씨와 8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바꾼 또 한 사람,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노무현이 1988년 국회로 진출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부산 지역 시국 사건과 노동사건의 변론을 도맡았습니다.

<인터뷰> 송병곤(당시 변호사사무소 사무장) : "전국 최초였습니다. 노동법률상담소를 만든 게. 그리고 우리는 그 때는 전국 최고다. 변호사님들 하고 전국 최고다, 노동법률은.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었죠."

이후 문재인은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해 인권 변호에 집중했습니다.

1980년, 외항선원이던 신귀영씨와 친척들이 불법 감금과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렸다가 29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신씨 일가 간첩단 사건 재심 변론이 대표적입니다.

<인터뷰> 신귀영(간첩단 사건 피해자) : "실망을 시키지 않고, 계속 싸워주겠다. 진실이 끝날(밝혀질) 때까지 그게 참 마음에 안도가 들었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두 사람은 청와대에서 다시 만납니다.

문재인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며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경험을 쌓게 됩니다.

<인터뷰> 이정우(전 청와대 정책실장/경북대 교수) :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스님이 계셨죠. 지율스님이 수십 일 단식을 했어요 청와대 근처에서. 그때 문재인 수석이 거길 가서 설득을 하고 대화를 하고 그런 일을 아주 잘합니다."

노 대통령 탄핵 당시엔 탄핵 재판 대리인으로, 또 퇴임 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무현의 곁을 지켰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문재인 정치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뷰> 황호선(부경대 교수/중고등학교 친구) : "본인이 결심을 하고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제 내려올 수도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이건 하나의 소명이다라고..."

19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고, 18대 대선에도 출마했습니다.

안철수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이뤘지만 박근혜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녹취> 문재인(18대 대선 패배 승복 기자회견/2012년) :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실패이지 새 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들의 실패가 아닙니다."

18대 대선 실패 후 재기에 나선 문재인은 2015년 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당 개혁에 매진합니다.

이듬해 4.13 총선에 승리하며 입지를 다져갔습니다.

미뤘던 대권 도전의 꿈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정철(카피라이터) : "지역 문제, 세대 문제 이거를 건너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 플랜들을 하나씩 하나씩준비를 하시는 그런 모습들이 강하다를 넘어서 독하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대구에서 시작한 첫 유세는 국민 통합을 향한 상징적 행보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문재인은 19대 대통령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19대 대통령 문재인의 앞길엔 새 정치,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난관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녹취> 문재인(대통령 당선인) :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상식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저는 국민과 민생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가겠습니다!"

KBS 뉴스 안다영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