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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도 나이 드는 게 낯설다”…‘나이듦’이란?
입력 2017.05.16 (14:15) 방송·연예
어느새 '100세 시대'가 당연한 운명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 대한민국.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노인 빈곤율 1위'(평균의 4배), '노인 자살률 1위' (평균의 3배), '75세 이상 초 고령층 인구 고용률 5년 연속 1위' (2위는 멕시코)라는 부끄러운 지표는 장수가 더는 전통적인 의미로서 '미덕'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처럼 불행히도 우리는 늙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 역사에 유례없는 초고령사회를 처음으로 헤쳐나갈 '노인'이라는 집단이 우리 사회의 외계인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어떻게, 잘 받아들이며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대한민국을 좀 '살아 본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만나본다.


나는 거부한다, 이 모든 낯선 것들을

인간은 해가 바뀜에 따라 노력 없이 '나이'라는 숫자를 얻는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몸은 점점 퇴화하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절반 이상을 더 살아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직장-은퇴' 3단계로 나뉜 인생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 늘어난 수명만큼 다양하게 찾아오는 삶의 분절점들을 어떻게 지나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인생의 늘어난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이와 같이 살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늙어가면서 우선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다."
-폴 트루니에 (자신과의 대화 中)-


찾아온 늙음을 흔쾌히 맞이하는 법: 회심(回心)

대전에서 순댓국집을 운영 중인 조재성(72) 씨는 '선생님', '어르신'이라는 존칭보다 '형', '큰형님'이라 불러달라며 젊은 친구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간다. 그는 은퇴 이후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시 공부 하듯 컴퓨터를 배워 SNS를 시작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나이와 사회를 초월한 친구들과 연결되고 소통한 결과 조 씨는 10년 전보다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몇 해 전에는 접었던 가게 문도 새로 열었다. "옛날 그 친하던 친구 찾아보면 무료한 생활이 반복되니까 대화가 잘 연결이 안 되고 누구 책임이랄 것도 없이 멀어지죠. 점점 대화도 없고. 늙어서 대화 상대 없는 것이 가장 불행하거든요."


2016년 1박 2일 '이화여대 편'에 출연해 친할머니 같은 따뜻한 위로로 학생들의 심금을 울린 박경희(81) 씨는 죽기 전까지 악기 10개를 다뤄보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녀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을까.

이화여대를 다니던 당시, 결혼과 동시에 출교 처리가 됐던 그녀는 2003년 '금혼학칙의 위헌 결정에 따른 폐지'가 결정되자마자 모교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입학한 지 근 50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아든 이후에도 중독재활복지학과와 악기를 다루는 수업을 찾아다니는 등 줄곧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모르는 게 제일 어둡잖아요, 사람이. 그러니까 배우면 배울수록 아주 즐거워. 세상이 더 잘 보이고... 그래서 나는 자꾸만 뭘 배워요."


옷 잘 입기로 소문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대한민국 대표 '꽃할배' 여용기(65) 씨는 4만 4천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사진공유 소셜미디어) 팔로워를 보유한 부산의 스타다.

사실 그의 본업은 양복점 '마스터 테일러(재단사)'로 옷만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들기로도 소문나 있다. 한때 기성복 시대에 밀려 양복점을 접어야 할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17년 만에 과거로 묻어 두었던 가위를 다시 잡기로 하면서 여 씨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었다. "지금 옷도 입어보니까 편한데, 옛날 옷만 고집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따라 하면 되더라고, 고집 세워서 '꼭 옛날 그대로 입어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노년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고광애(81) 씨는 오늘도 지인들에게 '회심'의 미학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의 저서에 나온 삶의 전환점으로서의 '회심' 즉, '마음 고쳐먹는' 행위를 읽고 무릎을 탁 쳤다는 그녀는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길 주저하는 노인들에게 '회심'은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자식도, 국가도 만들어 줄 수 없는 '노인의 행복'을 스스로 쟁취해 내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명령하거나 충고를 하는 오래된 습관들을 버리고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것에 주저함 없이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늙어서는 일단 마음을 한 번 돌려라. 지금까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고 충고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렇게 인생을 한 번 돌려라' 그 말이 나한테 탁 꽂혔어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 내 나이가 되니까요. 가장 큰 과제는 죽음이더라고요. 이 죽음을 어떻게 잘 죽을까... 그것이 자나 깨나 내 화두야."


사람들은 유독 늙어가는 것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 없이 찾아온 노후, 그리고 죽음에 우리는 늘 낯설어하고, 두려움을 넘어 공포심마저 느낀다.

대한민국을 뒤덮은 이 어두운 회색 천장의 공포에서 벗어나 '나이듦'에 따른 정신적 신체적 변화를 잘 받아들기 위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KBS스페셜 '삶의 기술-나이듦에 대하여'는 18일(목)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 “노인도 나이 드는 게 낯설다”…‘나이듦’이란?
    • 입력 2017-05-16 14:15:48
    방송·연예
어느새 '100세 시대'가 당연한 운명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 대한민국.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노인 빈곤율 1위'(평균의 4배), '노인 자살률 1위' (평균의 3배), '75세 이상 초 고령층 인구 고용률 5년 연속 1위' (2위는 멕시코)라는 부끄러운 지표는 장수가 더는 전통적인 의미로서 '미덕'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처럼 불행히도 우리는 늙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 역사에 유례없는 초고령사회를 처음으로 헤쳐나갈 '노인'이라는 집단이 우리 사회의 외계인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어떻게, 잘 받아들이며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대한민국을 좀 '살아 본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만나본다.


나는 거부한다, 이 모든 낯선 것들을

인간은 해가 바뀜에 따라 노력 없이 '나이'라는 숫자를 얻는다. 100세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몸은 점점 퇴화하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절반 이상을 더 살아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직장-은퇴' 3단계로 나뉜 인생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 늘어난 수명만큼 다양하게 찾아오는 삶의 분절점들을 어떻게 지나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인생의 늘어난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이와 같이 살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늙어가면서 우선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다."
-폴 트루니에 (자신과의 대화 中)-


찾아온 늙음을 흔쾌히 맞이하는 법: 회심(回心)

대전에서 순댓국집을 운영 중인 조재성(72) 씨는 '선생님', '어르신'이라는 존칭보다 '형', '큰형님'이라 불러달라며 젊은 친구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간다. 그는 은퇴 이후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시 공부 하듯 컴퓨터를 배워 SNS를 시작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나이와 사회를 초월한 친구들과 연결되고 소통한 결과 조 씨는 10년 전보다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몇 해 전에는 접었던 가게 문도 새로 열었다. "옛날 그 친하던 친구 찾아보면 무료한 생활이 반복되니까 대화가 잘 연결이 안 되고 누구 책임이랄 것도 없이 멀어지죠. 점점 대화도 없고. 늙어서 대화 상대 없는 것이 가장 불행하거든요."


2016년 1박 2일 '이화여대 편'에 출연해 친할머니 같은 따뜻한 위로로 학생들의 심금을 울린 박경희(81) 씨는 죽기 전까지 악기 10개를 다뤄보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녀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을까.

이화여대를 다니던 당시, 결혼과 동시에 출교 처리가 됐던 그녀는 2003년 '금혼학칙의 위헌 결정에 따른 폐지'가 결정되자마자 모교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입학한 지 근 50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아든 이후에도 중독재활복지학과와 악기를 다루는 수업을 찾아다니는 등 줄곧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모르는 게 제일 어둡잖아요, 사람이. 그러니까 배우면 배울수록 아주 즐거워. 세상이 더 잘 보이고... 그래서 나는 자꾸만 뭘 배워요."


옷 잘 입기로 소문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대한민국 대표 '꽃할배' 여용기(65) 씨는 4만 4천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사진공유 소셜미디어) 팔로워를 보유한 부산의 스타다.

사실 그의 본업은 양복점 '마스터 테일러(재단사)'로 옷만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들기로도 소문나 있다. 한때 기성복 시대에 밀려 양복점을 접어야 할 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17년 만에 과거로 묻어 두었던 가위를 다시 잡기로 하면서 여 씨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었다. "지금 옷도 입어보니까 편한데, 옛날 옷만 고집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따라 하면 되더라고, 고집 세워서 '꼭 옛날 그대로 입어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노년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고광애(81) 씨는 오늘도 지인들에게 '회심'의 미학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의 저서에 나온 삶의 전환점으로서의 '회심' 즉, '마음 고쳐먹는' 행위를 읽고 무릎을 탁 쳤다는 그녀는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길 주저하는 노인들에게 '회심'은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자식도, 국가도 만들어 줄 수 없는 '노인의 행복'을 스스로 쟁취해 내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명령하거나 충고를 하는 오래된 습관들을 버리고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것에 주저함 없이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늙어서는 일단 마음을 한 번 돌려라. 지금까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하고 충고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렇게 인생을 한 번 돌려라' 그 말이 나한테 탁 꽂혔어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 내 나이가 되니까요. 가장 큰 과제는 죽음이더라고요. 이 죽음을 어떻게 잘 죽을까... 그것이 자나 깨나 내 화두야."


사람들은 유독 늙어가는 것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 없이 찾아온 노후, 그리고 죽음에 우리는 늘 낯설어하고, 두려움을 넘어 공포심마저 느낀다.

대한민국을 뒤덮은 이 어두운 회색 천장의 공포에서 벗어나 '나이듦'에 따른 정신적 신체적 변화를 잘 받아들기 위해서 '죽음을 향해 가는'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KBS스페셜 '삶의 기술-나이듦에 대하여'는 18일(목)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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