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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남긴 트라우마
입력 2017.05.21 (23:04) 수정 2017.05.21 (23:23) 취재파일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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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터뷰> "하나도 못 건졌어요. 수저 하나도 못 건졌어. 건진 것은 이 트럭 하나. 도망가기 위해서 이 트럭 하나밖에는 남은 게 없어요.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

<인터뷰> 전향옥(산불 이재민) : "마음이 불안해서 밤에 잠도 잘 안 오니까. 지금도 막 골이 깨질 것 같아요. 머리도 많이 아프고 지금 그렇거든요."

보름여 전 동해안 지역을 덮친 산불은 나흘 동안 이어졌습니다.

집과 터를 잃은 이재민들은 무너진 일상에 막막해 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주들은 산불을 겪은 후,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리포트>

마을 곳곳이 까맣게 불탔습니다.

이달 초 대형산불로 이 마을에서만 여덟 가구가 잿더미가 됐습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이 임시 대피소가 된 마을 회관에 모였습니다.

<녹취> "불탄데 갔다 왔어. 내 집 어떻게 됐나 또 보러.. (기가 막히고.. 기가 막혀.)"

폐허가 된 마을을 떠올리면 아직도 공포가 밀려옵니다.

<인터뷰> 전향옥(산불 이재민) : "말만 하면 속 떨려. 나 지금 떨려 죽겠어. 불 얘기하면 속 떨린다고. 밤에도 자꾸 불타는 게 자꾸 떠오르고…."

구호물품을 정리하던 주민들, 헬기 소리가 들리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창가로 모여듭니다.

<녹취> "불이 또 났대. 불 냄새 나나? (냄새는 모르겠는데 저기에 연기는 싸하다고.)"

흰구름이 연기로 보인다는 주민도 있습니다.

80대 노모와 지내는 58살 전향옥 씨, 원주에 있는 친척 집에 들렀다 돌아오던 중 불길에 휩싸인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인터뷰> 전향옥(산불 이재민) : "우리 동네 내려다보니까 진짜 불길이 아주 말도 못하게 올라가는데 그때부터 가슴이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더라고요. 집에 연락하니 연락도 안 되고 엄마 핸드폰 다 두고 나왔지. "

다행히 노모는 불을 피해 집밖으로 대피해 무사했습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전씨는 당시 상황을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인터뷰> 한옥선(산불 이재민) "집에 있었으면 차도 못 끌고 다녔어. 네가 집에 있었으면. 미처 차를 탈 수 있나 휠체어를 실을 수 있나…."

마음을 추스리는 사이, 이재민들을 위한 식사가 배달됩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도시락 왔습니다. 한 분은 어디 가셨지?"

불이 나고 사흘간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몇 술 채 뜨지 못하고 수저를 놓습니다.

<녹취> "안 먹어 소화가 안 돼서 안 먹어. 아이고. (국물이라도 먹어. 국물이라도.) 안 먹어."

틀니까지 불에 타버려 제대로 밥을 씹지 못하는 노모를 보고, 참았던 눈물이 터집니다.

<녹취> "(밥 먹으라고.) 왜 우나? (엄마가 건강해야 나도 살지.) 배가 부르니 안먹지."

이웃들이 친척 집 등으로 옮겨가 이젠 모녀만 마을회관에 남았습니다.

<녹취> "이거는 거기 깔아놓고, 이렇게 깔고 자야"

자는 중에 또다시 화마가 덮치진 않을까 잠을 청하는 것도 힘듭니다.

<녹취> "마음이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자. 한 두 시간 자면 또 잠이 깨죠."

집은 불타고 마당 한켠 창고만 겨우 남은 전학표 씨.

<녹취>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어..."

창고에 임시 세간살이를 마련해 세 가족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학표(산불 이재민) : "노숙자들이 상자를 왜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았어. 상자도 이거 마트에 가서 너무 많이 가져오니까 뭐라 그러더라니까."

강릉시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전씨는 산불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일터에 나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학표(산불 이재민) : "(아침에 근무 하세요?) 네. 지금 머리도 멍하고 얼굴도 열이 팍 나고 제정신이 아니에요. 돌아다니는 것도…."

이렇게 대형 재난 후에 찾아오는 트라우마.

피해가 복구되고 일상 생활로 돌아와도 마음의 복구는 더디게 이뤄집니다.

재난의 기억이 반복돼 지속적인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인터뷰>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 : "예민함, 불안함, 일상이라든지 관계의 모든 게 다 변했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에서 잘 헤어나오기 어려우시고, 그게 증상이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우울증이 동반된다든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술을 찾게 되시는 분도 많아요."

12년 전, 낙산사를 집어삼켰던 양양 산불.

32가구가 모여 사는 이 작은 마을도 당시 온통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인터뷰> 김규하(마을 주민) : "임야에 소나무들 다 타고, 또 이 불이 한군데만 내려간 게 아니고 이쪽 좌측도 내려 타고 싹 내려 타고, 집 근처까지 막 내려 탔으니까 후유증은 말도 못하겠습니다."

불탄 자리엔 나무가 자라고 꽃이 다시 피고.. 옛모습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산불을 경험했던 주민들은 봄철이면 다시 큰불이 엄습해오지 않을까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인터뷰> 김규하(마을 주민) : "산불은 나면 재산을 놔두고 여기만 타는 것도 아니고 싹 모조리 다 휩쓸리니까 그게 더 무서운 거지."

화마와 싸우는 소방공무원들도 이런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30년 차 소방공무원인 김병익 씨.

유난히 산불이 잦은 강원도에서만 25년을 근무했습니다.

산불 진압이 끝나도 당시의 상황들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인터뷰> 김병익(강원도 강릉소방서) : "전쟁이 났을 때나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죠. 민가가 소실되면서 주민들이 집주인들이 그것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부짖었던 모습, 그런 모습들이 마음이 굉장히 안타깝고 크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번 산불 진화중 산림청 헬기 정비사가 숨지면서 충격은 더 컸습니다.

<인터뷰> 김병익(강원도 강릉소방서) : "아무래도 직업이 그런 일을 많이 겪다가 보니까 조금 익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신적인 충격이 많이 남죠."

지난달 소방관을 위한 정기 심리상담을 받았지만 정작 이번 산불을 겪고는 받지 못했습니다.

2008년부터 전국 17개 시도에는 재난심리지원센터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현재 산불 피해 주민들의 심리 상담 수요만 파악하고 있을 뿐, 실제 상담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데다 체계가 미흡해 구호 물품 지원에 치중하고 있는겁니다.

<인터뷰>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 : "심리적인 변화가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그런 정보가 없이는 '내가 이렇게 잠을 못 자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 내가 정신력이 약해서다.'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나만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 '나는 굉장히 약하고 나한테 큰 문제가 생겼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거든요."

일본과 호주 등에선 재난 트라우마를 전문적으로 치유하는 국가 기구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재난 피해자의 정신과 신체 건강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 : "일본같은 경우는 중앙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해서 전국을 커버하는 네트워크가 이미 형성이 되어있어요. 전산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 있고, 언제, 어디서 재난이 나도 중앙에서 정보가 취합이 돼서 파견 인력을 보내는 것, 상담을 이어가는 것까지도 다 모니터링되도록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 있습니다. 연구도 같이 진행되고 있고요."

수시로 반복되는 강원 영동지방의 대형 산불.

단순 구호 물품 지원에만 그칠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겪는 피해지역 주민들을 치유하는 것도 큰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 화마가 남긴 트라우마
    • 입력 2017-05-21 22:45:33
    • 수정2017-05-21 23:23:14
    취재파일K
<프롤로그>

<인터뷰> "하나도 못 건졌어요. 수저 하나도 못 건졌어. 건진 것은 이 트럭 하나. 도망가기 위해서 이 트럭 하나밖에는 남은 게 없어요.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

<인터뷰> 전향옥(산불 이재민) : "마음이 불안해서 밤에 잠도 잘 안 오니까. 지금도 막 골이 깨질 것 같아요. 머리도 많이 아프고 지금 그렇거든요."

보름여 전 동해안 지역을 덮친 산불은 나흘 동안 이어졌습니다.

집과 터를 잃은 이재민들은 무너진 일상에 막막해 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주들은 산불을 겪은 후,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리포트>

마을 곳곳이 까맣게 불탔습니다.

이달 초 대형산불로 이 마을에서만 여덟 가구가 잿더미가 됐습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이 임시 대피소가 된 마을 회관에 모였습니다.

<녹취> "불탄데 갔다 왔어. 내 집 어떻게 됐나 또 보러.. (기가 막히고.. 기가 막혀.)"

폐허가 된 마을을 떠올리면 아직도 공포가 밀려옵니다.

<인터뷰> 전향옥(산불 이재민) : "말만 하면 속 떨려. 나 지금 떨려 죽겠어. 불 얘기하면 속 떨린다고. 밤에도 자꾸 불타는 게 자꾸 떠오르고…."

구호물품을 정리하던 주민들, 헬기 소리가 들리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창가로 모여듭니다.

<녹취> "불이 또 났대. 불 냄새 나나? (냄새는 모르겠는데 저기에 연기는 싸하다고.)"

흰구름이 연기로 보인다는 주민도 있습니다.

80대 노모와 지내는 58살 전향옥 씨, 원주에 있는 친척 집에 들렀다 돌아오던 중 불길에 휩싸인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인터뷰> 전향옥(산불 이재민) : "우리 동네 내려다보니까 진짜 불길이 아주 말도 못하게 올라가는데 그때부터 가슴이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더라고요. 집에 연락하니 연락도 안 되고 엄마 핸드폰 다 두고 나왔지. "

다행히 노모는 불을 피해 집밖으로 대피해 무사했습니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전씨는 당시 상황을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인터뷰> 한옥선(산불 이재민) "집에 있었으면 차도 못 끌고 다녔어. 네가 집에 있었으면. 미처 차를 탈 수 있나 휠체어를 실을 수 있나…."

마음을 추스리는 사이, 이재민들을 위한 식사가 배달됩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도시락 왔습니다. 한 분은 어디 가셨지?"

불이 나고 사흘간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몇 술 채 뜨지 못하고 수저를 놓습니다.

<녹취> "안 먹어 소화가 안 돼서 안 먹어. 아이고. (국물이라도 먹어. 국물이라도.) 안 먹어."

틀니까지 불에 타버려 제대로 밥을 씹지 못하는 노모를 보고, 참았던 눈물이 터집니다.

<녹취> "(밥 먹으라고.) 왜 우나? (엄마가 건강해야 나도 살지.) 배가 부르니 안먹지."

이웃들이 친척 집 등으로 옮겨가 이젠 모녀만 마을회관에 남았습니다.

<녹취> "이거는 거기 깔아놓고, 이렇게 깔고 자야"

자는 중에 또다시 화마가 덮치진 않을까 잠을 청하는 것도 힘듭니다.

<녹취> "마음이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자. 한 두 시간 자면 또 잠이 깨죠."

집은 불타고 마당 한켠 창고만 겨우 남은 전학표 씨.

<녹취>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어..."

창고에 임시 세간살이를 마련해 세 가족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학표(산불 이재민) : "노숙자들이 상자를 왜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았어. 상자도 이거 마트에 가서 너무 많이 가져오니까 뭐라 그러더라니까."

강릉시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전씨는 산불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일터에 나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전학표(산불 이재민) : "(아침에 근무 하세요?) 네. 지금 머리도 멍하고 얼굴도 열이 팍 나고 제정신이 아니에요. 돌아다니는 것도…."

이렇게 대형 재난 후에 찾아오는 트라우마.

피해가 복구되고 일상 생활로 돌아와도 마음의 복구는 더디게 이뤄집니다.

재난의 기억이 반복돼 지속적인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인터뷰>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 : "예민함, 불안함, 일상이라든지 관계의 모든 게 다 변했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에서 잘 헤어나오기 어려우시고, 그게 증상이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우울증이 동반된다든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술을 찾게 되시는 분도 많아요."

12년 전, 낙산사를 집어삼켰던 양양 산불.

32가구가 모여 사는 이 작은 마을도 당시 온통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인터뷰> 김규하(마을 주민) : "임야에 소나무들 다 타고, 또 이 불이 한군데만 내려간 게 아니고 이쪽 좌측도 내려 타고 싹 내려 타고, 집 근처까지 막 내려 탔으니까 후유증은 말도 못하겠습니다."

불탄 자리엔 나무가 자라고 꽃이 다시 피고.. 옛모습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산불을 경험했던 주민들은 봄철이면 다시 큰불이 엄습해오지 않을까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인터뷰> 김규하(마을 주민) : "산불은 나면 재산을 놔두고 여기만 타는 것도 아니고 싹 모조리 다 휩쓸리니까 그게 더 무서운 거지."

화마와 싸우는 소방공무원들도 이런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30년 차 소방공무원인 김병익 씨.

유난히 산불이 잦은 강원도에서만 25년을 근무했습니다.

산불 진압이 끝나도 당시의 상황들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인터뷰> 김병익(강원도 강릉소방서) : "전쟁이 났을 때나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죠. 민가가 소실되면서 주민들이 집주인들이 그것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부짖었던 모습, 그런 모습들이 마음이 굉장히 안타깝고 크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번 산불 진화중 산림청 헬기 정비사가 숨지면서 충격은 더 컸습니다.

<인터뷰> 김병익(강원도 강릉소방서) : "아무래도 직업이 그런 일을 많이 겪다가 보니까 조금 익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신적인 충격이 많이 남죠."

지난달 소방관을 위한 정기 심리상담을 받았지만 정작 이번 산불을 겪고는 받지 못했습니다.

2008년부터 전국 17개 시도에는 재난심리지원센터가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현재 산불 피해 주민들의 심리 상담 수요만 파악하고 있을 뿐, 실제 상담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데다 체계가 미흡해 구호 물품 지원에 치중하고 있는겁니다.

<인터뷰>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 : "심리적인 변화가 정상적이라는 것을 알려드리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그런 정보가 없이는 '내가 이렇게 잠을 못 자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 내가 정신력이 약해서다.'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나만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 '나는 굉장히 약하고 나한테 큰 문제가 생겼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거든요."

일본과 호주 등에선 재난 트라우마를 전문적으로 치유하는 국가 기구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재난 피해자의 정신과 신체 건강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심민영(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 : "일본같은 경우는 중앙 국립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해서 전국을 커버하는 네트워크가 이미 형성이 되어있어요. 전산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 있고, 언제, 어디서 재난이 나도 중앙에서 정보가 취합이 돼서 파견 인력을 보내는 것, 상담을 이어가는 것까지도 다 모니터링되도록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 있습니다. 연구도 같이 진행되고 있고요."

수시로 반복되는 강원 영동지방의 대형 산불.

단순 구호 물품 지원에만 그칠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겪는 피해지역 주민들을 치유하는 것도 큰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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