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환경영향평가…‘수리부엉이 동산’의 위기

입력 2017.05.22 (16:37) 수정 2017.05.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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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환경영향평가…‘수리부엉이 동산’의 위기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수리부엉이 동산’의 위기


절벽 사이 갈라진 틈, 그 속에 수리부엉이(멸종위기2급, 천연기념물 324호)가 있습니다. 눈을 반쯤 감고 지긋이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천적의 접근이 어렵고,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암벽은 최적의 쉼터이자 둥지입니다. 절벽 바로 앞에 사람들이 살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수리부엉이가 사는 곳, 파주 법흥리의 작은 동산입니다.

수리부엉이 새끼. 2006년 파주 법흥리. ⓒ정다미수리부엉이 새끼. 2006년 파주 법흥리. ⓒ정다미

늦은 겨울이면 알을 낳고 봄까지 새끼를 키웁니다. 20년쯤 전부터 수리부엉이가 번식하는 모습이 주민들에게 목격됐다고 합니다. 접근성이 좋고 관찰하기도 편리해 탐조인과 사진작가들의 발길도 이어졌습니다. KBS 환경스페셜 제작팀은 이곳의 수리부엉이를 주인공으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편을 제작했습니다.

쥐를 물고 있는 수리부엉이 ⓒKBS 환경스페셜쥐를 물고 있는 수리부엉이 ⓒKBS 환경스페셜




위기도 있었습니다. 15년 전 절벽을 포함한 동산이 택지 개발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수리부엉이 서식이 알려지고 반발이 잇따르자 개발은 절벽 앞에서 멈췄다고 지역 환경단체는 말합니다. 절벽 뒤쪽 동산도 온전히 보전됐습니다.

둥지 주변에 둘러친 철조망.둥지 주변에 둘러친 철조망.

절벽 아래에 세운 경작 금지 팻말.절벽 아래에 세운 경작 금지 팻말.

지금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접근을 막기 위해 절벽 주위에 펜스와 철조망을 둘렀습니다. 행여 수리부엉이의 휴식을 방해할세라 절벽 아래 평지는 경작도 금지했습니다. 한마디로 법흥리 동산은 '수리부엉이 동산'입니다.

수리부엉이가 남긴 팰릿. 쥐털과 뼈가 보인다.수리부엉이가 남긴 팰릿. 쥐털과 뼈가 보인다.

절벽 아래서는 수리부엉이가 남긴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수리부엉이는 먹이를 한꺼번에 삼킨 뒤 소화가 안 되는 뼈나 털 등을 토해냅니다. 이렇게 토해낸 팰릿이 절벽 아래 무더기로 쌓입니다. 최근 팰릿에는 쥐 털이 많습니다. 요즘은 주로 쥐를 사냥했다는 거죠.

날개를 편 수리부엉이. 날개 양쪽 끝이 2m에 이른다,날개를 편 수리부엉이. 날개 양쪽 끝이 2m에 이른다,

아파트 단지 지붕 위에 앉은 수리부엉이. 파주 법흥리.아파트 단지 지붕 위에 앉은 수리부엉이. 파주 법흥리.

주민들에겐 수리부엉이 동산이 자녀들의 교육장이자 쉼터였습니다. 해 질 무렵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수리부엉이를 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두 날개를 펴면 2m에 이릅니다. 가을철, 짝을 찾는 수리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20년가량 사람들 옆에서 살아온 수리부엉이가 최근 위기를 맞았습니다.

동산 주위에 설치 중인 차단벽.동산 주위에 설치 중인 차단벽.

파주장단콩 웰빙마루 사업 조감도. 오른쪽 위가 수리부엉이 서식지.파주장단콩 웰빙마루 사업 조감도. 오른쪽 위가 수리부엉이 서식지.

동산을 둘러싸고 차단벽을 세우는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수리부엉이가 있는 동산 전체 13만 8천㎡를 개발하는 '파주장단콩 웰빙마루' 조성 공사가 지난 4월 시작된 겁니다. 파주시가 200억 원을 투입한 사업입니다. 콩체험장, 장류 제조시설, 음식점, 판매점, 전망대 등 관광지를 만들 계획입니다. 지난해(2016년) 9월 개발에 따른 환경영향평가가 시작돼 12월 한강유역환경청의 협의 절차를 마쳤습니다. 그렇다면 수리부엉이는?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수리부엉이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현지 조사 당시 법종보호종으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만 공중에서 관찰됐다고 기록했습니다. 사업이 조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사업 내용에 수리부엉이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습니다. 공사는 지난 4월 시작됐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있는 절벽 바로 위로 산책로가 조성됩니다. 둥지와의 거리가 10여 미터에 불과합니다. 둥지 바로 위로 사람들이 다니게 되는 셈입니다. 그 뒤로는 광장과 전망대가 설치됩니다. 전망탑과 둥지 사이의 거리는 70m에 불과합니다. 동산의 절반 이상이 주차장과 전시장, 전망대, 음식점 등으로 변합니다. 수리부엉이 먹이터와 활동 공간이 그만큼 사라집니다. 수리부엉이 서식 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둥지 바로 위에 산책로와 전망대를 만들 경우 어린 새끼들의 활동 공간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환경단체는 우려합니다.

산책로 설치가 예정된 언덕. 나무 아래가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는 절벽.산책로 설치가 예정된 언덕. 나무 아래가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는 절벽.



환경영향 평가 과정에서 파주시와 시행 업체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습니다. 개발 규모가 작은 소규모 사업이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에 주민 의견 수렴절차가 없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개발 사업을 알게 된 일부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수익성도 의심되는 관광지를 만든다면서 생태 명소인 '수리부엉이 동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환경단체는 파주시와 시행업체가 환경영향평가에서 의도적으로 수리부엉이를 누락시킨 것으로 의심합니다. 예전부터 수리부엉이 탐조의 명소로 알려진 데다가 TV에도 자주 등장한 '수리부엉이 동산'을 파주시가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겁니다.





뒤늦게 파주시는 조류 전문가에게 수리부엉이 서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의뢰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사업에 반영하겠다는 겁니다.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는 절벽은 '원형보전지구'로 유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더라도 절벽 뒤 먹이터인 동산이 관광지로 변하는 상황에서 수리부엉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요?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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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수리부엉이 동산’의 위기
    • 입력 2017-05-22 16:37:15
    • 수정2017-05-22 16:37:52
    취재K
절벽 사이 갈라진 틈, 그 속에 수리부엉이(멸종위기2급, 천연기념물 324호)가 있습니다. 눈을 반쯤 감고 지긋이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천적의 접근이 어렵고,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암벽은 최적의 쉼터이자 둥지입니다. 절벽 바로 앞에 사람들이 살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수리부엉이가 사는 곳, 파주 법흥리의 작은 동산입니다. 수리부엉이 새끼. 2006년 파주 법흥리. ⓒ정다미 늦은 겨울이면 알을 낳고 봄까지 새끼를 키웁니다. 20년쯤 전부터 수리부엉이가 번식하는 모습이 주민들에게 목격됐다고 합니다. 접근성이 좋고 관찰하기도 편리해 탐조인과 사진작가들의 발길도 이어졌습니다. KBS 환경스페셜 제작팀은 이곳의 수리부엉이를 주인공으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편을 제작했습니다. 쥐를 물고 있는 수리부엉이 ⓒKBS 환경스페셜 위기도 있었습니다. 15년 전 절벽을 포함한 동산이 택지 개발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수리부엉이 서식이 알려지고 반발이 잇따르자 개발은 절벽 앞에서 멈췄다고 지역 환경단체는 말합니다. 절벽 뒤쪽 동산도 온전히 보전됐습니다. 둥지 주변에 둘러친 철조망. 절벽 아래에 세운 경작 금지 팻말. 지금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접근을 막기 위해 절벽 주위에 펜스와 철조망을 둘렀습니다. 행여 수리부엉이의 휴식을 방해할세라 절벽 아래 평지는 경작도 금지했습니다. 한마디로 법흥리 동산은 '수리부엉이 동산'입니다. 수리부엉이가 남긴 팰릿. 쥐털과 뼈가 보인다. 절벽 아래서는 수리부엉이가 남긴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수리부엉이는 먹이를 한꺼번에 삼킨 뒤 소화가 안 되는 뼈나 털 등을 토해냅니다. 이렇게 토해낸 팰릿이 절벽 아래 무더기로 쌓입니다. 최근 팰릿에는 쥐 털이 많습니다. 요즘은 주로 쥐를 사냥했다는 거죠. 날개를 편 수리부엉이. 날개 양쪽 끝이 2m에 이른다, 아파트 단지 지붕 위에 앉은 수리부엉이. 파주 법흥리. 주민들에겐 수리부엉이 동산이 자녀들의 교육장이자 쉼터였습니다. 해 질 무렵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수리부엉이를 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두 날개를 펴면 2m에 이릅니다. 가을철, 짝을 찾는 수리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20년가량 사람들 옆에서 살아온 수리부엉이가 최근 위기를 맞았습니다. 동산 주위에 설치 중인 차단벽. 파주장단콩 웰빙마루 사업 조감도. 오른쪽 위가 수리부엉이 서식지. 동산을 둘러싸고 차단벽을 세우는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수리부엉이가 있는 동산 전체 13만 8천㎡를 개발하는 '파주장단콩 웰빙마루' 조성 공사가 지난 4월 시작된 겁니다. 파주시가 200억 원을 투입한 사업입니다. 콩체험장, 장류 제조시설, 음식점, 판매점, 전망대 등 관광지를 만들 계획입니다. 지난해(2016년) 9월 개발에 따른 환경영향평가가 시작돼 12월 한강유역환경청의 협의 절차를 마쳤습니다. 그렇다면 수리부엉이는?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수리부엉이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현지 조사 당시 법종보호종으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만 공중에서 관찰됐다고 기록했습니다. 사업이 조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사업 내용에 수리부엉이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습니다. 공사는 지난 4월 시작됐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있는 절벽 바로 위로 산책로가 조성됩니다. 둥지와의 거리가 10여 미터에 불과합니다. 둥지 바로 위로 사람들이 다니게 되는 셈입니다. 그 뒤로는 광장과 전망대가 설치됩니다. 전망탑과 둥지 사이의 거리는 70m에 불과합니다. 동산의 절반 이상이 주차장과 전시장, 전망대, 음식점 등으로 변합니다. 수리부엉이 먹이터와 활동 공간이 그만큼 사라집니다. 수리부엉이 서식 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둥지 바로 위에 산책로와 전망대를 만들 경우 어린 새끼들의 활동 공간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환경단체는 우려합니다. 산책로 설치가 예정된 언덕. 나무 아래가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는 절벽. 환경영향 평가 과정에서 파주시와 시행 업체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습니다. 개발 규모가 작은 소규모 사업이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에 주민 의견 수렴절차가 없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개발 사업을 알게 된 일부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수익성도 의심되는 관광지를 만든다면서 생태 명소인 '수리부엉이 동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환경단체는 파주시와 시행업체가 환경영향평가에서 의도적으로 수리부엉이를 누락시킨 것으로 의심합니다. 예전부터 수리부엉이 탐조의 명소로 알려진 데다가 TV에도 자주 등장한 '수리부엉이 동산'을 파주시가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겁니다. 뒤늦게 파주시는 조류 전문가에게 수리부엉이 서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의뢰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사업에 반영하겠다는 겁니다.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는 절벽은 '원형보전지구'로 유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더라도 절벽 뒤 먹이터인 동산이 관광지로 변하는 상황에서 수리부엉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요?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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