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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日 여중생의 절규…“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입력 2017.06.04 (11:01) 수정 2017.06.05 (07:19) 특파원 리포트
[특파원리포트] 日 여중생의 절규…“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특파원리포트] 日 여중생의 절규…“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일본의 '이지메', 우리말로 구태여 번역하면 집단 괴롭힘, 집단 따돌림, 왕따 등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우리말로는 모두 담아 내기 어려운 함의가 있지만, 특유의 공격성을 감안하면 '집단 괴롭힘'쯤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근접한 의미가 될 것 같다.

여중생의 절규 “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지난 2015년 11월 이바라키 현 도리데 시에서 중학교 3학년 '나카시마' 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15살이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여러 경연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던 소녀는 왜 막다른 선택을 했을까?


사망 닷새 뒤, 나키시마 양의 방에서 일기장이 발견됐다. '이젠 싫다, 학교가 그렇게 즐겁지 않다', '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외톨이는 싫다' 등 학교 생활의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모는 일기 내용을 근거로 학교 측에 진상 조사를 요청했다. 2015년 12월, 학교와 시 교육위원회는 설문 조사와 면담 조사를 실시했지만 집단 괴롭힘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부모는 학생들을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눈 뒤, 집단 괴롭힘이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시 교육위는 2016년(지난해) 3월, 나키시마 양의 죽음이 '이지메 방지대책추진법'에 규정된 '중대한 상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의결했다. 역시, 집단 괴롭힘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모의 진상규명 요구가 계속되자, 시 교육위는 '제3자 위원회'를 설치하고 2016년 7월부터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들어갔다. 유족 측은 조사위가 '집단 따돌림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며, 공정성과 중립성을 문제 삼았다.

“자살 자체가 중대 사태”…머나먼 진상규명의 길

지난 5월 30일 시 교육위는 결국 기존 의결을 철회했다. 자살한 사실 자체가 '중대 사태'였다면서 비로소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야하기' 시 교육감은 '법에 따른 중태 사태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했음을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살과의 인과 관계는 알수 없지만, 친구들로부터의 욕설 등 집단 괴롭힘 행위는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음날인 5월 31일에는 문부과학성이 교육감 등을 불러, 당초 대응에 문제는 없었는지, 지금까지의 경과는 어떠했는지를 조사했다. 문부성은 '유족의 요청대로 제3자 위원회를 새로 만들거나 유족과 협의해 적절히 판단하라'고 요구했다. 시 교육위는 문부성 면담을 마친 뒤, 피해자 유족을 직접 방문해 지금까지의 대응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6월 1일에는 도리데 시의 '후지이' 시장까지 나섰다. 후지이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까지 교육위의 대응이 유족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시와 교육위는 논란이 많았던 제 3자 조사위를 조만간 해산하고, 새로운 위원회의 구성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원전 피난민까지 집단 괴롭힘

'이지메'로 불리는 일본판 집단 괴롭힘은 이미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넘어었다. 가정불화, 우울증 등과 함께 청소년 자살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또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국가적 재난의 피해자들도 공격의 표적이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난민들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고통을 받았다. NHK 조사 결과, 피난민의 45% 가량이 피난지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학생들의 고통이 컸다. 지난 4월 문부성이 피난 학생 1,200명을 조사한 결과, 129건의 집단 괴롭힘 사례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13건은 원전 사고 등을 직접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몸에 방사능이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마라'며 비난받은 사례, '세균'이라 불리며 돈을 빼앗긴 사례까지 보고됐다. '죽고 싶다'는 내용의 피해학생 수기가 공개됐고, 심지어 교사까지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3월 원전사고 이주 아동에 대한 집단 괴롭힘 피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부가 이미 특별법까지 만들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유별나다. 종종 소수자·약자에 대한 가학성이 섬뜩할 만큼 집요한 경향을 보인다. 사회 일각을 관류하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특파원리포트] 日 여중생의 절규…“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 입력 2017-06-04 11:01:34
    • 수정2017-06-05 07:19:15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이지메', 우리말로 구태여 번역하면 집단 괴롭힘, 집단 따돌림, 왕따 등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우리말로는 모두 담아 내기 어려운 함의가 있지만, 특유의 공격성을 감안하면 '집단 괴롭힘'쯤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근접한 의미가 될 것 같다.

여중생의 절규 “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지난 2015년 11월 이바라키 현 도리데 시에서 중학교 3학년 '나카시마' 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15살이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여러 경연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던 소녀는 왜 막다른 선택을 했을까?


사망 닷새 뒤, 나키시마 양의 방에서 일기장이 발견됐다. '이젠 싫다, 학교가 그렇게 즐겁지 않다', '이지메 당하고 싶지 않다', '외톨이는 싫다' 등 학교 생활의 고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모는 일기 내용을 근거로 학교 측에 진상 조사를 요청했다. 2015년 12월, 학교와 시 교육위원회는 설문 조사와 면담 조사를 실시했지만 집단 괴롭힘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부모는 학생들을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눈 뒤, 집단 괴롭힘이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시 교육위는 2016년(지난해) 3월, 나키시마 양의 죽음이 '이지메 방지대책추진법'에 규정된 '중대한 상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의결했다. 역시, 집단 괴롭힘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모의 진상규명 요구가 계속되자, 시 교육위는 '제3자 위원회'를 설치하고 2016년 7월부터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들어갔다. 유족 측은 조사위가 '집단 따돌림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며, 공정성과 중립성을 문제 삼았다.

“자살 자체가 중대 사태”…머나먼 진상규명의 길

지난 5월 30일 시 교육위는 결국 기존 의결을 철회했다. 자살한 사실 자체가 '중대 사태'였다면서 비로소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야하기' 시 교육감은 '법에 따른 중태 사태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했음을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살과의 인과 관계는 알수 없지만, 친구들로부터의 욕설 등 집단 괴롭힘 행위는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음날인 5월 31일에는 문부과학성이 교육감 등을 불러, 당초 대응에 문제는 없었는지, 지금까지의 경과는 어떠했는지를 조사했다. 문부성은 '유족의 요청대로 제3자 위원회를 새로 만들거나 유족과 협의해 적절히 판단하라'고 요구했다. 시 교육위는 문부성 면담을 마친 뒤, 피해자 유족을 직접 방문해 지금까지의 대응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6월 1일에는 도리데 시의 '후지이' 시장까지 나섰다. 후지이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까지 교육위의 대응이 유족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시와 교육위는 논란이 많았던 제 3자 조사위를 조만간 해산하고, 새로운 위원회의 구성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원전 피난민까지 집단 괴롭힘

'이지메'로 불리는 일본판 집단 괴롭힘은 이미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넘어었다. 가정불화, 우울증 등과 함께 청소년 자살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또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국가적 재난의 피해자들도 공격의 표적이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난민들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고통을 받았다. NHK 조사 결과, 피난민의 45% 가량이 피난지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학생들의 고통이 컸다. 지난 4월 문부성이 피난 학생 1,200명을 조사한 결과, 129건의 집단 괴롭힘 사례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13건은 원전 사고 등을 직접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몸에 방사능이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마라'며 비난받은 사례, '세균'이라 불리며 돈을 빼앗긴 사례까지 보고됐다. '죽고 싶다'는 내용의 피해학생 수기가 공개됐고, 심지어 교사까지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3월 원전사고 이주 아동에 대한 집단 괴롭힘 피해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정부가 이미 특별법까지 만들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유별나다. 종종 소수자·약자에 대한 가학성이 섬뜩할 만큼 집요한 경향을 보인다. 사회 일각을 관류하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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