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최장 ‘105일 해외 전훈’ 양지팀 전설들의 추억

입력 2017.06.0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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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진출한 북한에 자극받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이듬해 1월 만든 양지축구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올해가 창설 50주년이 되는 해다.

양지팀은 당시 '축구로 북한을 꺾는다'는 목표 아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급조됐다.

중정은 당시 막강 전력을 자랑하던 육해공 3군 팀 소속의 대표급 선수들을 모두 양지팀으로 차출했다.

해병대팀 소속이었던 김정남, 김호, 이회택, 조정수, 김기복, 김삼락과 육군팀에서 뛰던 이세연, 박이천, 대위로 공군팀에 몸담았던 허윤정 등 한국 축구를 주름잡았던 정상급 선수들이 총망라됐다.

천연잔디 구장이 있는 동대문구 이문동 정보부 내 건물을 합숙소로 사용했고, 당시 실업팀인 한국전력 등의 선수 월급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을 정도로 파격 대우를 받았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이 뛰어난 데다 엄격한 규율 속에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당해낼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양지팀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1969년에 진행한 무려 105일에 이르는 유럽 전지훈련이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을 대비한 강화 훈련 성격이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특별 배려였다.

애초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축구선수권대회 참가가 목적이었는데 준결승에서 알제리에 아깝게 진 후 귀국하지 않고 유럽 4개국을 돌며 전지훈련을 했다.

당시 서독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의 아마추어·군(軍)·프로팀과 10여 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그해 5월 1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군인축구선수권 극동 예선부터 귀국한 8월 12일까지 석 달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105일 유럽 전훈에서는 한국 축구 '대부'로 불리는 김용식 선생이 감독을 맡았고, 선수로는 김정남, 김호, 이회택, 조정수, 이세연, 박이천 등 총 21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전훈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군인선수권 참가를 위해 특별 제공된 군용기가 이륙 1시간 만에 프로펠러 한 개가 고장 나는 바람에 김포공항으로 회항해야 했다. 대회 출전도 하지 못하고 불상사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당시 선수단 기수를 맡았던 골키퍼 이세연(72) OB축구회 부회장은 "이륙 직후 프로펠로 한 개가 돌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회에 나가지도 못하고 저승길 신세가 되나보다 생각했다"면서 "다행히 비행기를 수리하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유럽 전훈은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비행기와 차량편으로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입출국 수속에도 4~5시간 이상이 걸리는 등 장시간 공항 대기 등으로 선수들은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당시 전훈 멤버였던 조정수(73) 전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장은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평가전 직전 도착하는 일정이 반복되면서 선수들이 경기에서 최상 경기력을 내기 어려웠다"면서 "또 2m에 가까운 장신 선수들과 몸싸움에서 상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럽 전훈 중 10차례 평가전 중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건 물론 많은 점수 차로 패하는 게 다반사였다.

양지팀은 1967년 메르데카컵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고도 정작 북한과 대결하지 못한 채 1970년 3월 창단을 주도했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면서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며 선진 기술을 익힌 양지팀 일원들은 이후 한국 축구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는 데 밑거름이 됐다.

전훈에 참가했던 김정남(74)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고, 이회택(72) 전 축구협회 부회장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김호(73) 전 대전 시티즌 감독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각각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다.

이세연 부회장은 "당시 유럽에서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세계 축구계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지만 105일 전훈 경험이 결국 지금의 후배들에게까지 이어져 한국 축구 발전에 씨를 뿌렸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중앙정보부의 현역 소령으로 양지팀 전훈 지원단 실무자로 참가했던 윤기로(82) 일본 나가사키대학 명예교수는 양지팀 창설 50주년을 맞아 당시 유럽 전훈 기간에 자신이 찍었던 비공개 사진 수십 장을 김정남 OB축구회 회장에게 기증했다.

김정남 회장은 양지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사진을 이재형 축구자료 수집가에게 전달해 일반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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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축구 최장 ‘105일 해외 전훈’ 양지팀 전설들의 추억
    • 입력 2017-06-09 15:21:59
    연합뉴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진출한 북한에 자극받아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이듬해 1월 만든 양지축구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올해가 창설 50주년이 되는 해다.

양지팀은 당시 '축구로 북한을 꺾는다'는 목표 아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급조됐다.

중정은 당시 막강 전력을 자랑하던 육해공 3군 팀 소속의 대표급 선수들을 모두 양지팀으로 차출했다.

해병대팀 소속이었던 김정남, 김호, 이회택, 조정수, 김기복, 김삼락과 육군팀에서 뛰던 이세연, 박이천, 대위로 공군팀에 몸담았던 허윤정 등 한국 축구를 주름잡았던 정상급 선수들이 총망라됐다.

천연잔디 구장이 있는 동대문구 이문동 정보부 내 건물을 합숙소로 사용했고, 당시 실업팀인 한국전력 등의 선수 월급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을 정도로 파격 대우를 받았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이 뛰어난 데다 엄격한 규율 속에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당해낼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양지팀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1969년에 진행한 무려 105일에 이르는 유럽 전지훈련이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을 대비한 강화 훈련 성격이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특별 배려였다.

애초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축구선수권대회 참가가 목적이었는데 준결승에서 알제리에 아깝게 진 후 귀국하지 않고 유럽 4개국을 돌며 전지훈련을 했다.

당시 서독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의 아마추어·군(軍)·프로팀과 10여 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그해 5월 1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군인축구선수권 극동 예선부터 귀국한 8월 12일까지 석 달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105일 유럽 전훈에서는 한국 축구 '대부'로 불리는 김용식 선생이 감독을 맡았고, 선수로는 김정남, 김호, 이회택, 조정수, 이세연, 박이천 등 총 21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전훈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군인선수권 참가를 위해 특별 제공된 군용기가 이륙 1시간 만에 프로펠러 한 개가 고장 나는 바람에 김포공항으로 회항해야 했다. 대회 출전도 하지 못하고 불상사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당시 선수단 기수를 맡았던 골키퍼 이세연(72) OB축구회 부회장은 "이륙 직후 프로펠로 한 개가 돌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회에 나가지도 못하고 저승길 신세가 되나보다 생각했다"면서 "다행히 비행기를 수리하고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유럽 전훈은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비행기와 차량편으로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입출국 수속에도 4~5시간 이상이 걸리는 등 장시간 공항 대기 등으로 선수들은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당시 전훈 멤버였던 조정수(73) 전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장은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평가전 직전 도착하는 일정이 반복되면서 선수들이 경기에서 최상 경기력을 내기 어려웠다"면서 "또 2m에 가까운 장신 선수들과 몸싸움에서 상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럽 전훈 중 10차례 평가전 중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건 물론 많은 점수 차로 패하는 게 다반사였다.

양지팀은 1967년 메르데카컵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고도 정작 북한과 대결하지 못한 채 1970년 3월 창단을 주도했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면서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며 선진 기술을 익힌 양지팀 일원들은 이후 한국 축구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는 데 밑거름이 됐다.

전훈에 참가했던 김정남(74)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고, 이회택(72) 전 축구협회 부회장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김호(73) 전 대전 시티즌 감독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각각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다.

이세연 부회장은 "당시 유럽에서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는 세계 축구계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지만 105일 전훈 경험이 결국 지금의 후배들에게까지 이어져 한국 축구 발전에 씨를 뿌렸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중앙정보부의 현역 소령으로 양지팀 전훈 지원단 실무자로 참가했던 윤기로(82) 일본 나가사키대학 명예교수는 양지팀 창설 50주년을 맞아 당시 유럽 전훈 기간에 자신이 찍었던 비공개 사진 수십 장을 김정남 OB축구회 회장에게 기증했다.

김정남 회장은 양지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사진을 이재형 축구자료 수집가에게 전달해 일반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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