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 17주년…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다

입력 2017.06.15 (09:58) 수정 2017.06.1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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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그 사이 북한은 다섯 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위기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현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방법은 없는 걸까.

6월 15일을 맞아 잊힌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본다.

임동원 전 장관이 전하는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정부에서 선전하는 대로 (김대중 대통령을) 거짓말쟁이, 과격한 정치인, 빨갱이 이런 식으로만 생각해 왔었죠.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러 갔는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제가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예, 모시고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됐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외교 안보 분야에서 자주국방을 설계하며 평화수호자로서 역할을 해온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후, 분단 극복과 통일을 위해 앞장서게 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추진해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던 당시에 어떻게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 그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본다.



6.15 정상회담, 결렬 위기를 맞다

6.15 정상회담 직전, 북측은 김대중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조건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동의했다. 그러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는 남북한 양측이 모두 양보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였다.

임동원 전 장관은 남한의 부정적 여론과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 약화를 이유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남쪽 국민의 정서만 정서입니까? 우리 북쪽 인민의 정서는 생각 안 합니까?"

강경한 견해차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때까지도 회담이 무산될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6.15 남북정상회담은 반세기 만에 성사됐다.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는지, 숨겨진 일화를 임동원 전 장관이 공개한다.

만남과 대화, 한반도 평화 정착의 물꼬를 트다

"지금 적들은, 외신들,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나는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나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대. 그래서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해요). 좋아요, 그런 말 들어도 좋아요."
-김정일 국방위원장/2000.06.14


"연방제로 즉각 통일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건 냉전 시대에 하던 얘기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2000.06.14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 지위와 역할을 변경한다면 환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6.15 남북정상회담의 큰 성과 중 하나는 남북한의 두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 생각을 교환하고 공통점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음을 방증한 것이었다. 'KBS스페셜'에서는 주한미군에 대한 생각, 남북한 통일방안에 대한 생각 등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한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빛나는 성과…그러나 지금은?

6.15 남북공동선언은 큰 성과를 가져왔다.


분단으로 생이별했던 이산가족은 반세기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남북 선수단은 분단 최초로 'KOREA'라는 이름으로 시드니 올림픽에 공동입장 했고, 남과 북에는 철길이 열렸다.

2003년에는 북한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개성에 공단이 들어섰다. 개성공단은 분단 이후 대남방송을 하던 남북한 적대적 대결의 장을 경제·문화 교류와 협력과 화해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했다.


또, 남북한 모두에게 큰 경제적 이익을 줬다. 독일 동방정책 설계자이자 집행자인 에곤 바(Egon Bahr) 박사는 남북 간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로 개성공단을 꼽으며 "왜 독일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후회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6.15 선언의 마지막 성과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다시 저 공단에 들어가서 우리가 기계 소리를 내야 (개성공단이) 그야말로 경제공단, 안보공단, 평화공단이 되지 않을까…"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한반도 평화 이정표는 다시 세워질 것인가


최근 9년 동안 남북관계는 다시 불신과 대결을 일삼던 냉전 시대로 회귀했다. 올해 들어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6.15 공동선언 17주년이자 10.4 정상회담 1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이 스스로 세운 한반도의 평화 이정표, '6·15 남북공동선언'을 되돌아본다. 위기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6.15남북공동선언은 어떤 통찰과 지혜를 줄 수 있을까.


자세한 내용은 6월 15일(목) 오후 10시, KBS 1TV 'KBS 스페셜-오래된 기억,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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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5 공동선언’ 17주년…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다
    • 입력 2017-06-15 09:58:35
    • 수정2017-06-15 09: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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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그 사이 북한은 다섯 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위기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현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방법은 없는 걸까.

6월 15일을 맞아 잊힌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본다.

임동원 전 장관이 전하는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정부에서 선전하는 대로 (김대중 대통령을) 거짓말쟁이, 과격한 정치인, 빨갱이 이런 식으로만 생각해 왔었죠.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러 갔는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제가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예, 모시고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됐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외교 안보 분야에서 자주국방을 설계하며 평화수호자로서 역할을 해온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후, 분단 극복과 통일을 위해 앞장서게 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추진해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던 당시에 어떻게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 그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본다.



6.15 정상회담, 결렬 위기를 맞다

6.15 정상회담 직전, 북측은 김대중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조건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동의했다. 그러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는 남북한 양측이 모두 양보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였다.

임동원 전 장관은 남한의 부정적 여론과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 약화를 이유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남쪽 국민의 정서만 정서입니까? 우리 북쪽 인민의 정서는 생각 안 합니까?"

강경한 견해차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때까지도 회담이 무산될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6.15 남북정상회담은 반세기 만에 성사됐다.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는지, 숨겨진 일화를 임동원 전 장관이 공개한다.

만남과 대화, 한반도 평화 정착의 물꼬를 트다

"지금 적들은, 외신들,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나는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나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대. 그래서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해요). 좋아요, 그런 말 들어도 좋아요."
-김정일 국방위원장/2000.06.14


"연방제로 즉각 통일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건 냉전 시대에 하던 얘기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2000.06.14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 지위와 역할을 변경한다면 환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6.15 남북정상회담의 큰 성과 중 하나는 남북한의 두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 생각을 교환하고 공통점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음을 방증한 것이었다. 'KBS스페셜'에서는 주한미군에 대한 생각, 남북한 통일방안에 대한 생각 등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한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빛나는 성과…그러나 지금은?

6.15 남북공동선언은 큰 성과를 가져왔다.


분단으로 생이별했던 이산가족은 반세기 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남북 선수단은 분단 최초로 'KOREA'라는 이름으로 시드니 올림픽에 공동입장 했고, 남과 북에는 철길이 열렸다.

2003년에는 북한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개성에 공단이 들어섰다. 개성공단은 분단 이후 대남방송을 하던 남북한 적대적 대결의 장을 경제·문화 교류와 협력과 화해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했다.


또, 남북한 모두에게 큰 경제적 이익을 줬다. 독일 동방정책 설계자이자 집행자인 에곤 바(Egon Bahr) 박사는 남북 간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로 개성공단을 꼽으며 "왜 독일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후회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6.15 선언의 마지막 성과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다시 저 공단에 들어가서 우리가 기계 소리를 내야 (개성공단이) 그야말로 경제공단, 안보공단, 평화공단이 되지 않을까…"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한반도 평화 이정표는 다시 세워질 것인가


최근 9년 동안 남북관계는 다시 불신과 대결을 일삼던 냉전 시대로 회귀했다. 올해 들어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6.15 공동선언 17주년이자 10.4 정상회담 1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이 스스로 세운 한반도의 평화 이정표, '6·15 남북공동선언'을 되돌아본다. 위기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6.15남북공동선언은 어떤 통찰과 지혜를 줄 수 있을까.


자세한 내용은 6월 15일(목) 오후 10시, KBS 1TV 'KBS 스페셜-오래된 기억,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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