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피해자가 가해자 치료비 모두 부담…이상한 보험 약관

입력 2017.06.23 (11:10) 수정 2017.06.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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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피해자가 가해자 치료비 모두 부담…이상한 보험 약관

[취재후] 피해자가 가해자 치료비 모두 부담…이상한 보험 약관

신호를 위반한 차량에 들이받혔다. 과실비율은 9:1. 대물배상은 잘 알다시피 과실비율 만큼만 상대 측에 주면 된다. 그런데 치료비는 과실과 상관없이 내 보험사가 상대 측에 전액을 물어줘야 한다. 규정이 그렇다.

①11대 중과실 가해 차량에 들이받힌 자동차 사고 피해자가 과실이 잡혔고, ②자신의 치료비의 10배가량을 가해 운전자 측에 물게 된, 한경호 씨의 이야기다.

경찰 조사 결과 신호 위반으로 상대 측은 자동 형사처벌 대상이었다.경찰 조사 결과 신호 위반으로 상대 측은 자동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신호 및 지시 위반"...두 차량 모두 폐차

이면도로에서 4차로 대로로 합류하려고 왼쪽을 살피고, 나가는 찰나, 저 멀리서 시속 70km로 달려오던 차량이 그대로 들이받혔다.

60대 후반이던 상대방 차량 운전자는 허리 등 골절상을 입어 크게 다쳤다. 사고가 난 두 차량 모두 폐차 수준의 큰 사고가 났다.

상대 차량은 경찰 조사 결과 신호위반이었다. 신호 위반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1대 중과실에 해당해 보험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을 받는다. 11대 중과실엔 중앙선 침범이나, 횡단보도 보행자 사고 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측 과실이 10% 잡혔다.

보험사 간 합의가 결렬되자 교통사고 구상금 분쟁심의위원회로 사건이 넘어갔다. 과실비율은 9:1, 불복해 재차 심의를 청구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남은 것은 심의 결과를 받아들이든지 민사소송을 내든지였다.

교차로에서, 가해 차량(왼쪽)이 신호위반 해 피해차량(오른쪽)을 그대로 들이받은 상황교차로에서, 가해 차량(왼쪽)이 신호위반 해 피해차량(오른쪽)을 그대로 들이받은 상황

"운전할 때 어디까지 신경쓰라는 얘긴가"

교통사고 과실비율을 쉽게 따지기 어렵지만 기준표(자동차사고 과실비율 간편 알아보기 / 교통사고 구상금 분쟁심의위원회 제공)를 보면, 한 씨가 만약 위 사진의 6시 쪽 도로에서 좌회전을 받다가 들이받혔다면 기본 과실은 100:0부터 시작한다. 한 씨의 경우 이면도로였기 때문에 80:20으로 시작했다. 기본 과실에 조정요소를 더하고 빼서 과실 비율이 정해지지만, 시작점이 0이냐 20이냐는 크게 다른 것이다.

직접 만나 본 한 씨는 자신의 상황을 단순히 '이면도로에서 진출하던 차량'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위 사진처럼 이면도로에서 나오려고 하던 상황이지만,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 씨는 오히려 사고차량이 달려오던 방향보다 자신과 인접한 바로 왼쪽의 4차로 도로에서 직진하거나 우회전하는 차량과 보행자를 신경 써 운전해야 했다는 것이다.

사고 장소 근처의 회사에 다녀 매일 출퇴근하던 길이라는 한 씨는, 더욱이 사고 장소에서는 해당 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이 드물다고 전했다. 가해 차량이 달려오던 내리막길, 고가도로에서 일반도로로 빠져나가기 위한 길이고, 가해 차량이 달려가던 오르막길 방향은 다시 고가도로로 진입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해당 차량이 직진한다면 '고가도로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고가도로로 다시 올라가는' 상황이라는 얘기. 더욱이 황색등 상황일 때, 상당히 먼 거리에 있던 차량이 주변 차량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와 들이받을 것까지 고려하면서 주변을 살피기는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피해자 측이 가해자 측에 10배가량 되는 금액을 물어줬다.피해자 측이 가해자 측에 10배가량 되는 금액을 물어줬다.

과실 '1'만 있어도 치료비 전액 배상

상대 측 치료비는 2500여만 원이 나왔다. 그리고 한 씨는 피해자이긴 하지만, 가해자 측 치료비를 전액 부담해야 했다. 관련 규정은 금융감독원의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이다. 금감원 약관에 "피해액 전액을 배상하라"는 식의 명문조항은 없다. 금감원 측 확인 결과, <별표3> 과실상계 등이란 조항이 관련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조항 내용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자신의 총 피해액(자동차 손해액+치료비 등)에서 상대방에게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본다. 그리고 자신의 치료비에 자신의 과실을 적용한 금액을 계산해본다. 마지막으로 두 계산 금액을 비교한다. 그 결과 자신이 받을 수 있는 피해 금액이 치료비에 과실을 적용한 금액 보다 적다면 치료비를 전액 상대 측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이다.

(사례)<자신이 가해 차량이고 과실이 9:1이 나왔다. 내 과실이 90%인 상황이다. 총 손해액은 4,000만 원이고, 치료비가 2,500만 원>인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우선 보통 대물배상을 계산할 때처럼, 각각 과실비율을 곱해본다. 내가 상대방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총 손해액 4,000만 원에서 상대방 과실 비율 10%를 곱해 400만 원(A)이다.

다음으로, 자신이 자신의 치료비를 물게 될 경우의 금액을 구해본다. 총 치료비 2,500만 원에 내과실 90%를 곱해서 2,250만 원(B)이다.

"(과실)상계 후 치료비 합산액과 비교해 미달하면"이라는 약관은 '400만 원(A)이 2,250만 원(B)보다 작다'처럼 비교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되면, 총 치료비 2,500만 원을 전부 상대방 측에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비를 못 받게 됐을 경우, 부상 상황이 악화되거나 사회로 복귀가 늦어질 수 있어 이런 경우를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치료를 통해 사회로 조속히 복귀하도록 만들고, 생명과 목숨이 달린 일'이니 우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과실상계 제도 개선, 할증 유예 검토

취재를 해보니 제도 개선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금융감독원 주최로 보험개발원과 보험연구원 등 전문 기관이 모여 지난해 10월, 올해 2월 공청회를 열어 머리를 맞댔다. 금감원 차원에서도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는 시행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내부적으로 가다듬고 있다.

논의 주안점은 일단 치료비 전액 지급 제도 자체를 건드리기보다 주변 제도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과실비율을 따지는 방식을 보다 정확하게 만들자'는 것과, 무조건 양쪽에 보험료 할증을 매기지 말고 '과실이 낮은 사람은 할증을 유예해주자'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은 보험료 할증 제도부터 손 볼 예정이다. 한 씨의 사례처럼 상대방 측이 크게 다쳐, 자동차손해배상법상 배상 기준 표에서 높은 수준에 해당하면, 자신은 보험료 할증이 상대방보다 많이 될 우려가 있다. 이 부분부터 고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금감원은 교통사고 양측의 과실비율을 따져, 조금이라도 더 낮은 사람은 할증을 유예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관기사] [뉴스광장] 피해 차량인데 왜?…이상한 보험 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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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피해자가 가해자 치료비 모두 부담…이상한 보험 약관
    • 입력 2017-06-23 11:10:09
    • 수정2017-06-23 11:20:29
    취재후·사건후
신호를 위반한 차량에 들이받혔다. 과실비율은 9:1. 대물배상은 잘 알다시피 과실비율 만큼만 상대 측에 주면 된다. 그런데 치료비는 과실과 상관없이 내 보험사가 상대 측에 전액을 물어줘야 한다. 규정이 그렇다.

①11대 중과실 가해 차량에 들이받힌 자동차 사고 피해자가 과실이 잡혔고, ②자신의 치료비의 10배가량을 가해 운전자 측에 물게 된, 한경호 씨의 이야기다.

경찰 조사 결과 신호 위반으로 상대 측은 자동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신호 및 지시 위반"...두 차량 모두 폐차

이면도로에서 4차로 대로로 합류하려고 왼쪽을 살피고, 나가는 찰나, 저 멀리서 시속 70km로 달려오던 차량이 그대로 들이받혔다.

60대 후반이던 상대방 차량 운전자는 허리 등 골절상을 입어 크게 다쳤다. 사고가 난 두 차량 모두 폐차 수준의 큰 사고가 났다.

상대 차량은 경찰 조사 결과 신호위반이었다. 신호 위반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11대 중과실에 해당해 보험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을 받는다. 11대 중과실엔 중앙선 침범이나, 횡단보도 보행자 사고 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측 과실이 10% 잡혔다.

보험사 간 합의가 결렬되자 교통사고 구상금 분쟁심의위원회로 사건이 넘어갔다. 과실비율은 9:1, 불복해 재차 심의를 청구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남은 것은 심의 결과를 받아들이든지 민사소송을 내든지였다.

교차로에서, 가해 차량(왼쪽)이 신호위반 해 피해차량(오른쪽)을 그대로 들이받은 상황
"운전할 때 어디까지 신경쓰라는 얘긴가"

교통사고 과실비율을 쉽게 따지기 어렵지만 기준표(자동차사고 과실비율 간편 알아보기 / 교통사고 구상금 분쟁심의위원회 제공)를 보면, 한 씨가 만약 위 사진의 6시 쪽 도로에서 좌회전을 받다가 들이받혔다면 기본 과실은 100:0부터 시작한다. 한 씨의 경우 이면도로였기 때문에 80:20으로 시작했다. 기본 과실에 조정요소를 더하고 빼서 과실 비율이 정해지지만, 시작점이 0이냐 20이냐는 크게 다른 것이다.

직접 만나 본 한 씨는 자신의 상황을 단순히 '이면도로에서 진출하던 차량'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위 사진처럼 이면도로에서 나오려고 하던 상황이지만,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 씨는 오히려 사고차량이 달려오던 방향보다 자신과 인접한 바로 왼쪽의 4차로 도로에서 직진하거나 우회전하는 차량과 보행자를 신경 써 운전해야 했다는 것이다.

사고 장소 근처의 회사에 다녀 매일 출퇴근하던 길이라는 한 씨는, 더욱이 사고 장소에서는 해당 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이 드물다고 전했다. 가해 차량이 달려오던 내리막길, 고가도로에서 일반도로로 빠져나가기 위한 길이고, 가해 차량이 달려가던 오르막길 방향은 다시 고가도로로 진입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해당 차량이 직진한다면 '고가도로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고가도로로 다시 올라가는' 상황이라는 얘기. 더욱이 황색등 상황일 때, 상당히 먼 거리에 있던 차량이 주변 차량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와 들이받을 것까지 고려하면서 주변을 살피기는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피해자 측이 가해자 측에 10배가량 되는 금액을 물어줬다.
과실 '1'만 있어도 치료비 전액 배상

상대 측 치료비는 2500여만 원이 나왔다. 그리고 한 씨는 피해자이긴 하지만, 가해자 측 치료비를 전액 부담해야 했다. 관련 규정은 금융감독원의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이다. 금감원 약관에 "피해액 전액을 배상하라"는 식의 명문조항은 없다. 금감원 측 확인 결과, <별표3> 과실상계 등이란 조항이 관련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조항 내용을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우선 자신의 총 피해액(자동차 손해액+치료비 등)에서 상대방에게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해본다. 그리고 자신의 치료비에 자신의 과실을 적용한 금액을 계산해본다. 마지막으로 두 계산 금액을 비교한다. 그 결과 자신이 받을 수 있는 피해 금액이 치료비에 과실을 적용한 금액 보다 적다면 치료비를 전액 상대 측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이다.

(사례)<자신이 가해 차량이고 과실이 9:1이 나왔다. 내 과실이 90%인 상황이다. 총 손해액은 4,000만 원이고, 치료비가 2,500만 원>인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우선 보통 대물배상을 계산할 때처럼, 각각 과실비율을 곱해본다. 내가 상대방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총 손해액 4,000만 원에서 상대방 과실 비율 10%를 곱해 400만 원(A)이다.

다음으로, 자신이 자신의 치료비를 물게 될 경우의 금액을 구해본다. 총 치료비 2,500만 원에 내과실 90%를 곱해서 2,250만 원(B)이다.

"(과실)상계 후 치료비 합산액과 비교해 미달하면"이라는 약관은 '400만 원(A)이 2,250만 원(B)보다 작다'처럼 비교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되면, 총 치료비 2,500만 원을 전부 상대방 측에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비를 못 받게 됐을 경우, 부상 상황이 악화되거나 사회로 복귀가 늦어질 수 있어 이런 경우를 막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치료를 통해 사회로 조속히 복귀하도록 만들고, 생명과 목숨이 달린 일'이니 우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과실상계 제도 개선, 할증 유예 검토

취재를 해보니 제도 개선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금융감독원 주최로 보험개발원과 보험연구원 등 전문 기관이 모여 지난해 10월, 올해 2월 공청회를 열어 머리를 맞댔다. 금감원 차원에서도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는 시행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내부적으로 가다듬고 있다.

논의 주안점은 일단 치료비 전액 지급 제도 자체를 건드리기보다 주변 제도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과실비율을 따지는 방식을 보다 정확하게 만들자'는 것과, 무조건 양쪽에 보험료 할증을 매기지 말고 '과실이 낮은 사람은 할증을 유예해주자'는 것이다.

특히 금감원은 보험료 할증 제도부터 손 볼 예정이다. 한 씨의 사례처럼 상대방 측이 크게 다쳐, 자동차손해배상법상 배상 기준 표에서 높은 수준에 해당하면, 자신은 보험료 할증이 상대방보다 많이 될 우려가 있다. 이 부분부터 고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금감원은 교통사고 양측의 과실비율을 따져, 조금이라도 더 낮은 사람은 할증을 유예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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