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다시 창고속으로

입력 2017.07.0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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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폭은 762mm, 표준궤도와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했다. 인천에서 출발해 시흥, 안산, 화성, 시흥을 거쳐 수원에서 멈췄다. 기적 소리가 울리면 역마다 기다리던 아낙들은 무거운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든 채 열차에 올랐다. 또 그만큼의 아낙들이 열차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역 밖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인천의 소금과 젓갈이 그렇게 내륙으로 들어갔고 내륙의 쌀과 채소들이 바닷가로 향했다.

학생들의 등하교시간이나 여름철이면 땀 냄새가 물씬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로 열차는 좁았던...그래서 ‘꼬마열차’ ‘동(童)차’라고 불렸던 객차 안은 어느새 콩나물시루처럼 변했다. 그 시루 안에서는 고단한 삶을 살던 젓갈 장수의 비린내가 풍겼고 또 잠시나마 그 고단함에서 벗어나고자 인천 송도유원지로 향하던 젊은 피서객들의 설렘이 가득 찼다.

최고속도 50km로 열차는 지역민들의 삶과 함께 58년을 달렸다.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에 관한 이야기다.

▲ 수인선 협궤열차는 1937년부터 1995년까지 58년간 수원~인천을 오가며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1937년부터 1995년까지 58년간 수원~인천을 오가며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


수인선이 개통한 것은 1937년 7월 19일이다. 민간회사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부설권을 따냈다. 일제강점기 철도의 역할이 그랬듯 부설목적은 수도권 지역의 산물을 인천항으로 더욱 수월하게 나르기 위해서였다. 경부선을 타고 수원에 도착한 물품들은 수인선에 옮겨져 인천항으로 이동했다.

해방되면서 수인선 협궤열차의 화물운송역할을 크게 줄었다. 두 지역 간 도로가 뚫리면서 굳이 시속 50km의 열차를 이용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인선은 이때부터 오히려 지역민과 더 가까워졌다.

▲열차 폭이 좁다 보니 학생들의 등하교시간이면 객차 안은 금세 승객들로 가득 찼다.▲열차 폭이 좁다 보니 학생들의 등하교시간이면 객차 안은 금세 승객들로 가득 찼다.

아침 시간에는 학생들의 통학열차로, 낮에는 소래포구 젓갈 상인들의 발이 되었다.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 운행 때까지 58년 동안 지역민들의 삶은 수인선의 기적 소리와 함께했다.

하지만 그런 수인선의 흔적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협궤열차 운행중단과 동시에 시작된 수인선 복선 전철 공사는 이제 내년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과거 역사 자리에는 신역사가 들어섰다. 어떤 역사는 헐리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현대식 건물이 차지했다.

그렇다고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원 오목동의 화산터널, 고잔역의 잔선, 빈정, 소래, 승기천 등의 철교가 남아있다. 수원역 앞에는 과거 수인선 수원역에서 사용했던 물탱크 2개가 남아있다. 벽돌로 된 구조물인데 수인선에 증기선이 오가던 시절 열차들이 이곳에서 물을 공급받았다고 한다.

▲현재 수원역 앞에는 당시 수인선을 운행하던 증기선 협궤열차에 물을 공급했던 물탱크 2개가 남아 있다.▲현재 수원역 앞에는 당시 수인선을 운행하던 증기선 협궤열차에 물을 공급했던 물탱크 2개가 남아 있다.

하지만 보존 상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수원역 앞 물탱크에는 변변한 안내 표지판조차 없다. 젊은 사람들이나 수인선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은 굴뚝 모양으로 세워진 낡은 벽돌구조물의 용도를 알기 힘들다. 안산과 화성을 연결하는 빈정철교는 아예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다.

▲ 빈정철교(안산시 상록구 본오동)는 수인선 안산과 화성을 연결했지만, 지금은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빈정철교(안산시 상록구 본오동)는 수인선 안산과 화성을 연결했지만, 지금은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인천 소래포구에 그나마 수인선 협궤열차 박물관과 옛 철교도 남아있다. 그곳에서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 한 견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취재과정에서 나름 귀중한 자료들이 발견됐다.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수인선 옛 역사인 송도역에서다.

▲(구) 수인선 송도역사, 1995년 수인선 운행이 중단되면서 민간에게 임대됐다.▲(구) 수인선 송도역사, 1995년 수인선 운행이 중단되면서 민간에게 임대됐다.


1995년 12월 운행중단 이후 송도역은 민간인에게 임대됐다. 당시 철도청이 빈 역사를 마땅히 사용할 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돈을 받고 민간에게 사용권을 잠시 넘긴 셈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7년이 흘렀다. 대부분의 역사 주변이 개발되면서 구 역사건물들이 철거됐지만, 송도역사는 헐리지 않았다. 대규모 도시개발을 피해갔기 때문이고 새로 들어선 전철 수인선 송도역사도 다른 곳에 건설됐기 때문이다.

송도역을 임대해 27년째 사무실 겸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조규식씨는 취재진에게 과거 역무원들이 사용하다 버리고 간 물건이 있다며 작은 창고의 문을 열어줬다. 27년 만에 열린 창고 안에는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협궤열차 송도역의 철도 자료들이 그대로 있었다.

열차운행허가증이던 ‘통표’를 넣어 전달하던 통표수거기가 3개와 당시 역무원들이 착용했던 정모 3개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열차표를 판매할 때 이용했던 나무함도 2개나 나왔다. 송도역사에 걸렸던 현수막도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발행됐던 공보, 관보 등도 다수 나왔다. 모두 다 최소 30~40년은 되는 자료들이다.

▲(구) 송도역사에서 창고에서 발견된 과거 철도 자료들▲(구) 송도역사에서 창고에서 발견된 과거 철도 자료들




발견된 것들은 당시 역무원들이 송도역을 떠날 때는 그저 그런 폐품들이었을지 모른다. 버려진 폐품들이 27년이 흐른 지금은 소중한 자료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자료들은 현재 다시 창고에 들어간 상태다. 창고에 자료를 폐품 처리해 보관했던 코레일(당시 철도청) 측이 마땅히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코레일 관계자는 송도역은 당시에는 철도청이 관할했지만 나중에 철도시설관리공단이 생기면서 관리소유권이 그곳으로 넘어갔다고 답했다. 철도시설관리공단 역시 송도역사에 대한 소유권은 있지만, 창고 속 물품들에 대한 소유권은 없다.

서로 소유권을 딱히 주장하지 않는다면 현재 송도역을 임대한 조규식 씨가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법률자문결과 폐품으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창고에서 발견된 것이라면 민간인이 가져갈 수 없다고 한다. 자칫 절도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문화재단 조성면 팀장(좌)이 기자에게 송도역사에서 발견된 자료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수원문화재단 조성면 팀장(좌)이 기자에게 송도역사에서 발견된 자료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취재에 도움을 줬던 (재) 수원문화재단의 조성면 시민문화팀장은 자료들을 발견하고 누구보다 기뻐했다. 조 팀장은 오랫동안 수인선 협궤열차를 연구하면서 논문도 발표하고 신문에 기고도 자주 하던 전문가다. 수인선의 문화적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팀장도 이 자료들을 가져다가 연구할 수는 없다.

경기도 의왕시에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철도박물관이 있다. 과거 수인선을 운행하던 협궤열차가 전시돼 있다. 송도역에서 발견된 작은 소품들이 그 열차와 함께 전시된다면 어떨까? 아니면 현재 (구) 송도역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송도전철역도 좋다. 그곳 역사 안에 작은 전시공간을 만들어 과거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을 전시한다면 어떨까? 오가는 시민들이 과거 송도역을 오가던 협궤열차의 흔적을 추억하거나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크고 화려하고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기념물만이 꼭 보존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작고 초라하지만 어쩌면 그런 것들이 당시의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더 좋은 기념물이 될 수도 있다.

27년째 여전히 협궤열차 수인선 (구) 송도역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는 추억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대해본다.

[연관기사]
‘수인선 협궤열차’ 사라지는 흔적들
수인선 옛 역사에서 ‘통표’ 등 철도자료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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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다시 창고속으로
    • 입력 2017-07-04 13:56:42
    취재후·사건후
철로 폭은 762mm, 표준궤도와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했다. 인천에서 출발해 시흥, 안산, 화성, 시흥을 거쳐 수원에서 멈췄다. 기적 소리가 울리면 역마다 기다리던 아낙들은 무거운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든 채 열차에 올랐다. 또 그만큼의 아낙들이 열차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역 밖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인천의 소금과 젓갈이 그렇게 내륙으로 들어갔고 내륙의 쌀과 채소들이 바닷가로 향했다.

학생들의 등하교시간이나 여름철이면 땀 냄새가 물씬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로 열차는 좁았던...그래서 ‘꼬마열차’ ‘동(童)차’라고 불렸던 객차 안은 어느새 콩나물시루처럼 변했다. 그 시루 안에서는 고단한 삶을 살던 젓갈 장수의 비린내가 풍겼고 또 잠시나마 그 고단함에서 벗어나고자 인천 송도유원지로 향하던 젊은 피서객들의 설렘이 가득 찼다.

최고속도 50km로 열차는 지역민들의 삶과 함께 58년을 달렸다.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에 관한 이야기다.

▲ 수인선 협궤열차는 1937년부터 1995년까지 58년간 수원~인천을 오가며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

수인선이 개통한 것은 1937년 7월 19일이다. 민간회사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부설권을 따냈다. 일제강점기 철도의 역할이 그랬듯 부설목적은 수도권 지역의 산물을 인천항으로 더욱 수월하게 나르기 위해서였다. 경부선을 타고 수원에 도착한 물품들은 수인선에 옮겨져 인천항으로 이동했다.

해방되면서 수인선 협궤열차의 화물운송역할을 크게 줄었다. 두 지역 간 도로가 뚫리면서 굳이 시속 50km의 열차를 이용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인선은 이때부터 오히려 지역민과 더 가까워졌다.

▲열차 폭이 좁다 보니 학생들의 등하교시간이면 객차 안은 금세 승객들로 가득 찼다.
아침 시간에는 학생들의 통학열차로, 낮에는 소래포구 젓갈 상인들의 발이 되었다.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 운행 때까지 58년 동안 지역민들의 삶은 수인선의 기적 소리와 함께했다.

하지만 그런 수인선의 흔적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협궤열차 운행중단과 동시에 시작된 수인선 복선 전철 공사는 이제 내년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과거 역사 자리에는 신역사가 들어섰다. 어떤 역사는 헐리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현대식 건물이 차지했다.

그렇다고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원 오목동의 화산터널, 고잔역의 잔선, 빈정, 소래, 승기천 등의 철교가 남아있다. 수원역 앞에는 과거 수인선 수원역에서 사용했던 물탱크 2개가 남아있다. 벽돌로 된 구조물인데 수인선에 증기선이 오가던 시절 열차들이 이곳에서 물을 공급받았다고 한다.

▲현재 수원역 앞에는 당시 수인선을 운행하던 증기선 협궤열차에 물을 공급했던 물탱크 2개가 남아 있다.
하지만 보존 상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수원역 앞 물탱크에는 변변한 안내 표지판조차 없다. 젊은 사람들이나 수인선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은 굴뚝 모양으로 세워진 낡은 벽돌구조물의 용도를 알기 힘들다. 안산과 화성을 연결하는 빈정철교는 아예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다.

▲ 빈정철교(안산시 상록구 본오동)는 수인선 안산과 화성을 연결했지만, 지금은 버려진 채 방치돼 있다.

인천 소래포구에 그나마 수인선 협궤열차 박물관과 옛 철교도 남아있다. 그곳에서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 한 견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취재과정에서 나름 귀중한 자료들이 발견됐다.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수인선 옛 역사인 송도역에서다.

▲(구) 수인선 송도역사, 1995년 수인선 운행이 중단되면서 민간에게 임대됐다.

1995년 12월 운행중단 이후 송도역은 민간인에게 임대됐다. 당시 철도청이 빈 역사를 마땅히 사용할 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돈을 받고 민간에게 사용권을 잠시 넘긴 셈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7년이 흘렀다. 대부분의 역사 주변이 개발되면서 구 역사건물들이 철거됐지만, 송도역사는 헐리지 않았다. 대규모 도시개발을 피해갔기 때문이고 새로 들어선 전철 수인선 송도역사도 다른 곳에 건설됐기 때문이다.

송도역을 임대해 27년째 사무실 겸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조규식씨는 취재진에게 과거 역무원들이 사용하다 버리고 간 물건이 있다며 작은 창고의 문을 열어줬다. 27년 만에 열린 창고 안에는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협궤열차 송도역의 철도 자료들이 그대로 있었다.

열차운행허가증이던 ‘통표’를 넣어 전달하던 통표수거기가 3개와 당시 역무원들이 착용했던 정모 3개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열차표를 판매할 때 이용했던 나무함도 2개나 나왔다. 송도역사에 걸렸던 현수막도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발행됐던 공보, 관보 등도 다수 나왔다. 모두 다 최소 30~40년은 되는 자료들이다.

▲(구) 송도역사에서 창고에서 발견된 과거 철도 자료들



발견된 것들은 당시 역무원들이 송도역을 떠날 때는 그저 그런 폐품들이었을지 모른다. 버려진 폐품들이 27년이 흐른 지금은 소중한 자료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자료들은 현재 다시 창고에 들어간 상태다. 창고에 자료를 폐품 처리해 보관했던 코레일(당시 철도청) 측이 마땅히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 코레일 관계자는 송도역은 당시에는 철도청이 관할했지만 나중에 철도시설관리공단이 생기면서 관리소유권이 그곳으로 넘어갔다고 답했다. 철도시설관리공단 역시 송도역사에 대한 소유권은 있지만, 창고 속 물품들에 대한 소유권은 없다.

서로 소유권을 딱히 주장하지 않는다면 현재 송도역을 임대한 조규식 씨가 임의대로 처분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법률자문결과 폐품으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창고에서 발견된 것이라면 민간인이 가져갈 수 없다고 한다. 자칫 절도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문화재단 조성면 팀장(좌)이 기자에게 송도역사에서 발견된 자료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취재에 도움을 줬던 (재) 수원문화재단의 조성면 시민문화팀장은 자료들을 발견하고 누구보다 기뻐했다. 조 팀장은 오랫동안 수인선 협궤열차를 연구하면서 논문도 발표하고 신문에 기고도 자주 하던 전문가다. 수인선의 문화적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팀장도 이 자료들을 가져다가 연구할 수는 없다.

경기도 의왕시에는 코레일이 운영하는 철도박물관이 있다. 과거 수인선을 운행하던 협궤열차가 전시돼 있다. 송도역에서 발견된 작은 소품들이 그 열차와 함께 전시된다면 어떨까? 아니면 현재 (구) 송도역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송도전철역도 좋다. 그곳 역사 안에 작은 전시공간을 만들어 과거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을 전시한다면 어떨까? 오가는 시민들이 과거 송도역을 오가던 협궤열차의 흔적을 추억하거나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크고 화려하고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기념물만이 꼭 보존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작고 초라하지만 어쩌면 그런 것들이 당시의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더 좋은 기념물이 될 수도 있다.

27년째 여전히 협궤열차 수인선 (구) 송도역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는 추억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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