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공론(空論)이 안되려면…

입력 2017.07.2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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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가를 공론화위원회가 오늘(24일) 출범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앞으로 3개월간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완전히 중단할지 여부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공론화위원회가 설계한 절차에 따라 논의를 거쳐 시민배심원단이 내린다.

이처럼 공론화기구를 통해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처럼 찬반 의견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독일의 경우 원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 용지 선정을 위해 '시민소통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 7만 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을 한 뒤 이 중 120명을 추출해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정보와 토론 기회 등을 제공한 뒤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일본 역시 원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12년 '에너지 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3,000명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300명의 배심원단을 뽑은 다음, 2030년 원전 의존도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학습과 토론을 거쳐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원전 제로 시나리오 지지율이 46.7%로 나타났고, 일본 정부는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도 각각 2000년대 초반 핵 폐기물 처리 문제를 두고 비슷한 공론화 절차를 밟았다.

이들 사례는 대체로 원전 정책 공론화의 모범으로 꼽힌다.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친 뒤 다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고, 이후 실제 정책 시행으로도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찬반 양측의 상반된 시각과 주장에 대해 균형 잡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공정하게 구성된 배심원단이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우리나라도 원전 정책 결정에 공론화 절차를 거친 사례가 있다.

2013년 10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방식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개월 동안 공론조사를 진행해 사용후핵연료를 땅속에 묻는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2020년까지 선정할 것과 임시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 포화 속도를 감안해 2051년엔 건설을 마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4년 안엔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위원회 권고와 달리 정부는 기간을 3배로 늘려 12년을 잡았고 영구처분시설 가동 시작 시점도 권고보다 2년 늦은 2053년으로 정했다.

이마저도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미뤄지면서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공론(公論)이 아닌 공론(空論)을 만드는 데 시간과 돈만 낭비한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사실상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정성 확보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범 직후부터 위원장 선정을 둘러싼 잡음으로 시민단체 측 위원들이 사퇴하며 반쪽짜리 위원회라는 빈축을 샀다.

공론화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지도 않았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회의록을 공개했는데 각 안건 당 평균 1~2줄, 길어봤자 3~4줄 수준이었고 국회의 속기록 요구에 대해서도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역시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더구나 이번엔 시간도 3개월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3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인 원전 정책에 대해 일반 시민배심원단이 충분히 이해하고, 올바른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이라는 방향을 제시한 만큼 자칫 공론화위원회가 구색 맞추기용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이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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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공론(空論)이 안되려면…
    • 입력 2017-07-24 15:20:33
    취재K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가를 공론화위원회가 오늘(24일) 출범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앞으로 3개월간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완전히 중단할지 여부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공론화위원회가 설계한 절차에 따라 논의를 거쳐 시민배심원단이 내린다.

이처럼 공론화기구를 통해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처럼 찬반 의견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독일의 경우 원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 용지 선정을 위해 '시민소통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 7만 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을 한 뒤 이 중 120명을 추출해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정보와 토론 기회 등을 제공한 뒤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일본 역시 원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12년 '에너지 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3,000명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300명의 배심원단을 뽑은 다음, 2030년 원전 의존도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학습과 토론을 거쳐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원전 제로 시나리오 지지율이 46.7%로 나타났고, 일본 정부는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도 각각 2000년대 초반 핵 폐기물 처리 문제를 두고 비슷한 공론화 절차를 밟았다.

이들 사례는 대체로 원전 정책 공론화의 모범으로 꼽힌다.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친 뒤 다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고, 이후 실제 정책 시행으로도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찬반 양측의 상반된 시각과 주장에 대해 균형 잡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공정하게 구성된 배심원단이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우리나라도 원전 정책 결정에 공론화 절차를 거친 사례가 있다.

2013년 10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방식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개월 동안 공론조사를 진행해 사용후핵연료를 땅속에 묻는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2020년까지 선정할 것과 임시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 포화 속도를 감안해 2051년엔 건설을 마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4년 안엔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위원회 권고와 달리 정부는 기간을 3배로 늘려 12년을 잡았고 영구처분시설 가동 시작 시점도 권고보다 2년 늦은 2053년으로 정했다.

이마저도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미뤄지면서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공론(公論)이 아닌 공론(空論)을 만드는 데 시간과 돈만 낭비한 셈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사실상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정성 확보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범 직후부터 위원장 선정을 둘러싼 잡음으로 시민단체 측 위원들이 사퇴하며 반쪽짜리 위원회라는 빈축을 샀다.

공론화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지도 않았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회의록을 공개했는데 각 안건 당 평균 1~2줄, 길어봤자 3~4줄 수준이었고 국회의 속기록 요구에 대해서도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역시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더구나 이번엔 시간도 3개월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3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인 원전 정책에 대해 일반 시민배심원단이 충분히 이해하고, 올바른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이라는 방향을 제시한 만큼 자칫 공론화위원회가 구색 맞추기용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이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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