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지배자 서어나무…서울에도 극상림이?

입력 2017.08.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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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지배자 서어나무…서울에도 극상림이?

숲의 지배자 서어나무…서울에도 극상림이?

금강역사의 팔뚝처럼 울퉁불퉁 근육질 줄기가 뒤틀리며 올라갑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자태가 역동적입니다. 들여다보면 줄기 곳곳이 힘줄처럼 튀어나왔죠. 이른바 '숲의 지배자', 서어나무입니다. 숲의 천이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등장해 숲을 점령하는 나무입니다. 숲에서는 최후의 권력자인 셈이지요.

서어나무 줄기서어나무 줄기

자연은 늘 변합니다. 빈 땅이 있으면 처음에는 한해살이풀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여러해살이풀이 한해살이를 밀어냅니다. 이제 키 작은 나무(관목)가 들어섭니다. 조금 있으면 키 큰 나무(교목), 침엽수인 소나무가 정착합니다. 소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햇빛을 좋아합니다.

서어나무로 덮인 하늘서어나무로 덮인 하늘

소나무 숲으로 흙이 비옥해지면 활엽수인 참나무류가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참나무는 소나무 아래서도 키를 올리며 세력을 넓힙니다. 참나무 아래서는 그늘 때문에 어린 소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 든 소나무가 죽고 나면 결국 활엽수림으로 대체됩니다.

서어나무는 활엽수림의 마지막 단계에 등장합니다. 참나무 그늘서 조금씩 꾸준히 자라며 힘을 키웁니다. 일단 그늘을 벗어나면 참나무보다 훨씬 왕성하게 자랍니다. 결국, 서어나무는 활엽수림을 지배합니다. 외부의 다른 교란이 없는 한 서어나무 숲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합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온대림의 극상림입니다.



서어나무 군락서어나무 군락

나이 든 서어나무와 젊은 나무가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안정된 극상림인 거죠. 이런 숲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전국 대부분 숲이 훼손됐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이나 경기도 포천 등지에 일부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위 서어나무 군락지는 서울입니다. 서울에 극상림이 있다니... 어디일까요?

불암산 삼육대 생태경관보전지역 해설판불암산 삼육대 생태경관보전지역 해설판

서울 공릉동 불암산 자락에는 태릉이 있습니다. 수탈이 심했던 일본 강점기 때도 왕릉을 둘러싼 능림은 보호됐습니다. 6·25 전쟁은 숲의 또 다른 위기였습니다. 행정력의 공백 속에 무차별 벌목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신학교가 있었습니다. 신학생들은 밤새 순찰을 하며 벌목을 막았습니다. 서어나무 숲은 이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적어도 2백 년은 넘은 숲입니다.


어렵게 살아남은 서어나무 군락지, 서울시는 이곳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더는 사람으로 인한 훼손이 없도록 한 거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안전할까요? 자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서어나무의 위기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어나무 아래 싹을 틔운 어린 나무들서어나무 아래 싹을 틔운 어린 나무들

서어나무 군락지 아래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올라옵니다. 이 나무들이 훗날 숲을 대체하는 후계목들이지요. 하지만 이 나무 중에 서어나무는 한 그루도 없습니다. 졸참나무와 신갈나무, 팥배나무 등만 보입니다. 일본목련과 가죽나무 등 도시림에 많이 등장하는 외래종도 들어왔습니다. 위에는 서어나무가 자리 잡고 있지만, 아래는 다른 활엽수가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서어나무 군락지에 등장한 외래종 일본목련서어나무 군락지에 등장한 외래종 일본목련

서어나무는 참나무보다 씨앗이 많습니다. 자라는 속도 역시 참나무보다 빠릅니다. 그런데도 어린 서어나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새로 싹을 틔운 나무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한다면 후계목이 없어 서어나무 숲이 사라지고 마는 것은 분명합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겁니다.

서어나무를 살펴보는 동국대 오충현 교수서어나무를 살펴보는 동국대 오충현 교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토양의 산성화나 영양분의 부족일 수 있습니다. 혹은 기후변화로 봄 가뭄이 심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서어나무는 수분이 어느 정도 확보돼야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릅니다.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자연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우린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서울의 극상림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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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의 지배자 서어나무…서울에도 극상림이?
    • 입력 2017-08-13 09:08:32
    취재K
금강역사의 팔뚝처럼 울퉁불퉁 근육질 줄기가 뒤틀리며 올라갑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자태가 역동적입니다. 들여다보면 줄기 곳곳이 힘줄처럼 튀어나왔죠. 이른바 '숲의 지배자', 서어나무입니다. 숲의 천이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등장해 숲을 점령하는 나무입니다. 숲에서는 최후의 권력자인 셈이지요.

서어나무 줄기
자연은 늘 변합니다. 빈 땅이 있으면 처음에는 한해살이풀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여러해살이풀이 한해살이를 밀어냅니다. 이제 키 작은 나무(관목)가 들어섭니다. 조금 있으면 키 큰 나무(교목), 침엽수인 소나무가 정착합니다. 소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햇빛을 좋아합니다.

서어나무로 덮인 하늘
소나무 숲으로 흙이 비옥해지면 활엽수인 참나무류가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참나무는 소나무 아래서도 키를 올리며 세력을 넓힙니다. 참나무 아래서는 그늘 때문에 어린 소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 든 소나무가 죽고 나면 결국 활엽수림으로 대체됩니다.

서어나무는 활엽수림의 마지막 단계에 등장합니다. 참나무 그늘서 조금씩 꾸준히 자라며 힘을 키웁니다. 일단 그늘을 벗어나면 참나무보다 훨씬 왕성하게 자랍니다. 결국, 서어나무는 활엽수림을 지배합니다. 외부의 다른 교란이 없는 한 서어나무 숲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합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온대림의 극상림입니다.



서어나무 군락
나이 든 서어나무와 젊은 나무가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안정된 극상림인 거죠. 이런 숲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전국 대부분 숲이 훼손됐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이나 경기도 포천 등지에 일부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위 서어나무 군락지는 서울입니다. 서울에 극상림이 있다니... 어디일까요?

불암산 삼육대 생태경관보전지역 해설판
서울 공릉동 불암산 자락에는 태릉이 있습니다. 수탈이 심했던 일본 강점기 때도 왕릉을 둘러싼 능림은 보호됐습니다. 6·25 전쟁은 숲의 또 다른 위기였습니다. 행정력의 공백 속에 무차별 벌목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신학교가 있었습니다. 신학생들은 밤새 순찰을 하며 벌목을 막았습니다. 서어나무 숲은 이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적어도 2백 년은 넘은 숲입니다.


어렵게 살아남은 서어나무 군락지, 서울시는 이곳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더는 사람으로 인한 훼손이 없도록 한 거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안전할까요? 자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서어나무의 위기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어나무 아래 싹을 틔운 어린 나무들
서어나무 군락지 아래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올라옵니다. 이 나무들이 훗날 숲을 대체하는 후계목들이지요. 하지만 이 나무 중에 서어나무는 한 그루도 없습니다. 졸참나무와 신갈나무, 팥배나무 등만 보입니다. 일본목련과 가죽나무 등 도시림에 많이 등장하는 외래종도 들어왔습니다. 위에는 서어나무가 자리 잡고 있지만, 아래는 다른 활엽수가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서어나무 군락지에 등장한 외래종 일본목련
서어나무는 참나무보다 씨앗이 많습니다. 자라는 속도 역시 참나무보다 빠릅니다. 그런데도 어린 서어나무가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새로 싹을 틔운 나무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한다면 후계목이 없어 서어나무 숲이 사라지고 마는 것은 분명합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겁니다.

서어나무를 살펴보는 동국대 오충현 교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토양의 산성화나 영양분의 부족일 수 있습니다. 혹은 기후변화로 봄 가뭄이 심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서어나무는 수분이 어느 정도 확보돼야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릅니다.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자연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우린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서울의 극상림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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