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헤이그 특사’ 이상설 순국일은 4월 1일”
입력 2017.08.15 (06:54) 수정 2017.08.15 (08:36) 뉴스광장 1부
자동재생
동영상영역 시작
동영상영역 끝
<앵커 멘트>

외교사절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린 보재 이상설 선생은 사재를 털어 항일 민족교육기관을 세운 교육자이기도 한데요.

독립 운동에 헌신한 그의 개인 재산규모와 순국일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이만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중국 지린성에 있는 한 소학교.

1906년, 보재 이상설 선생이 사재를 털어 세운 민족교육기관 '서전서숙'의 후신입니다.

당시 보재 선생의 사재규모는 얼마였을까?

1901년, 대한제국이 발간한 토지 대장, '광무양안'입니다.

사각 형태의 기와 스무 칸, 저택의 주인은 이상설 선생으로 돼 있습니다.

보재 선생 소유의 토지는 모두 83필지로, 현재 시세로 최소 80억 원에서 100억 원에 육박합니다.

보재 선생의 순국일도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1917년 4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 대리가 본국 외무대신에 보고한 문서에 4월 1일, 니콜리스크 우스리스크시에서 병사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보고된 다른 문서에는 사망 시각과 병원까지 명시돼 이를 뒷받침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순국일은 1917년 4월 22일입니다.

<인터뷰> 박걸순(교수/충북대 사학과) : "해방이 된지 72년이나 됐는데 그분의 제례일조차 제대로 모시지 못해왔다라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광복 72주년, 해외 독립운동사는 여전히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KBS 뉴스 이만영입니다.
  • “‘헤이그 특사’ 이상설 순국일은 4월 1일”
    • 입력 2017-08-15 06:58:09
    • 수정2017-08-15 08:36:59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외교사절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린 보재 이상설 선생은 사재를 털어 항일 민족교육기관을 세운 교육자이기도 한데요.

독립 운동에 헌신한 그의 개인 재산규모와 순국일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이만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중국 지린성에 있는 한 소학교.

1906년, 보재 이상설 선생이 사재를 털어 세운 민족교육기관 '서전서숙'의 후신입니다.

당시 보재 선생의 사재규모는 얼마였을까?

1901년, 대한제국이 발간한 토지 대장, '광무양안'입니다.

사각 형태의 기와 스무 칸, 저택의 주인은 이상설 선생으로 돼 있습니다.

보재 선생 소유의 토지는 모두 83필지로, 현재 시세로 최소 80억 원에서 100억 원에 육박합니다.

보재 선생의 순국일도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1917년 4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 대리가 본국 외무대신에 보고한 문서에 4월 1일, 니콜리스크 우스리스크시에서 병사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보고된 다른 문서에는 사망 시각과 병원까지 명시돼 이를 뒷받침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순국일은 1917년 4월 22일입니다.

<인터뷰> 박걸순(교수/충북대 사학과) : "해방이 된지 72년이나 됐는데 그분의 제례일조차 제대로 모시지 못해왔다라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광복 72주년, 해외 독립운동사는 여전히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KBS 뉴스 이만영입니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뉴스광장 1부 전체보기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