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도 강제 징용…“해초 채취에 동원”

입력 2017.08.15 (07:40) 수정 2017.08.1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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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은 주로 광산이나 군수 공장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는데요.

제주 해녀들은 노역 대신 해초 채취에 동원되는 징용 물질을 해야 했습니다.

윤지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산업화에 주력하던 일본은 해초 채취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감태는 군수 물자 원료로, 주요 수탈품이 됐습니다.

<인터뷰> 유철인(제주대학교 철학과) : "(당시에는 제주) 성산포에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감태공장이 있었거든요. 감태가 요오드와 칼륨이 많아서 폭약의 재료가 되고, 빨간약 (의약품 원료로도)..."

제주산 감태를 수탈한 것도 모자라 제주 해녀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물질 능력이 뛰어나 잠수 어선 없이도 감태 채취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마치요 야마시타(일본 해녀) : "(예전부터) 제일 숙련된 해녀는 한국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해녀들을 데려 왔죠."

'징용물질'로 끌려간 해녀들은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타국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인터뷰> 김예진(작가/징용 해녀 취재) : "집이 화재로 타서 옛날 사진 당시 기록 이런 게 전혀 없어요. 보상이나 이런 면에 있어서는 소외 되신 거죠. 그런 절차가 있었는 지도 모르세요."

제주 해녀의 징용물질.

여태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입니다.

KBS 뉴스 윤지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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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해녀도 강제 징용…“해초 채취에 동원”
    • 입력 2017-08-15 07:41:37
    • 수정2017-08-15 08: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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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은 주로 광산이나 군수 공장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는데요.

제주 해녀들은 노역 대신 해초 채취에 동원되는 징용 물질을 해야 했습니다.

윤지연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산업화에 주력하던 일본은 해초 채취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감태는 군수 물자 원료로, 주요 수탈품이 됐습니다.

<인터뷰> 유철인(제주대학교 철학과) : "(당시에는 제주) 성산포에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감태공장이 있었거든요. 감태가 요오드와 칼륨이 많아서 폭약의 재료가 되고, 빨간약 (의약품 원료로도)..."

제주산 감태를 수탈한 것도 모자라 제주 해녀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물질 능력이 뛰어나 잠수 어선 없이도 감태 채취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마치요 야마시타(일본 해녀) : "(예전부터) 제일 숙련된 해녀는 한국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해녀들을 데려 왔죠."

'징용물질'로 끌려간 해녀들은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타국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인터뷰> 김예진(작가/징용 해녀 취재) : "집이 화재로 타서 옛날 사진 당시 기록 이런 게 전혀 없어요. 보상이나 이런 면에 있어서는 소외 되신 거죠. 그런 절차가 있었는 지도 모르세요."

제주 해녀의 징용물질.

여태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입니다.

KBS 뉴스 윤지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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