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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vs 김종서, 누가 진짜 ‘역적’인가?
입력 2017.08.27 (08:01) 방송·연예
1453년 10월 10일 늦은 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찾는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고, 달빛에 비쳐 편지를 보던 김종서의 머리 위로 철퇴가 내리친다.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맞이한 죽음이었다.

역모의 내용은 김종서 일파가 단종을 끌어내리고 안평대군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는 것. 수양대군은 역모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칼끝을 수많은 피로 물들였다. 실록은 이날의 사건을 계유년의 어려움(어려울 난, 難)을 평정했다(평정할 정, 靖)는 뜻의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기록했다. 사건의 승자인 세조의 관점에서 기록된 셈이다.


김종서, 충신인가 역적인가?

세종의 뜻에 따라 6진을 개척한 대호(大虎) 김종서는 태종 대 관직에 진출해 세종, 문종, 단종까지 4대 왕의 신임을 받았던 문신이다. 죽음을 앞둔 문종이 나라의 뒷일을 유언으로 부탁하며 '고명대신'이 된다. 세종 때부터 신임을 받고 활약했던 김종서였기에 문종도 믿고 자기 뜻과 아들을 부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종서는 문종의 기대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

김종서가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으니, 자기 집의 별실을 지으면서. 목재와 기와, 철재와 석재를 모두 조정의 공사를 관장하는 관리에게서 취하였다.
- 단종 즉위년 12월 11일

김종서가 충청도 공주에 가서 성묘하고자 대궐에 나아가 하직하니, 그를 전별하는 사람들로 도성이 가득 찼고, 군현에서도 뇌물이 잇달아서 끊이지가 않았다.
- 단종 즉위년 12월 15일

조선판 '김종서 게이트'?

김종서는 계유정난 직전까지 아들과 친인척 인사에 끊임없이 개입했다. 특히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는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승진한 기록이 있다.


사복시는 말과 수레, 목장을 담당한 관청으로 왕실의 말을 관리하며 왕 가까이에 있다 보니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자리였다. 김종서는 장남 김승규를 사복시 소윤으로 앉힌다. 또한, 지형조사 관직을 구할 때, 인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김종서에게 "누가 하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더니, 김종서는 장남 김승규가 좋을 것 같다는 뜻을 내비친다.

김종서가 말하기를 "내 아들 김승규가 적당하나, 다만 품계가 낮을 뿐이오."하고 급히 나가서 집으로 돌아갔다.
-단종실록 단종 1년 7월 1일

결국, 김승규는 지형조사직에 오른다. 김종서가 자신의 친인척을 인사 전횡한다는 소문은 김종서 자신의 귀에도 들어간다. 하지만 김종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김종서가 말하기를 "우리가 죽을 때가 가까웠으니 앞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만약에 자손을 위하여 도모하지 않으면, 누가 다시 그들을 쓰겠는가?"
-단종실록 단종 1년 7월 15일

김종서는 어린 왕을 보좌하는 대가로 얻은 권력을 악용해 대놓고 인사 전횡을 통해 권력을 과시했다. 실록에는 안평대군에게 시를 보내 모반을 일으킬 것을 권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렇다면 정말 김종서가 역모를 꾀했던 걸까.

하늘은 본래 고요하니 아득하고 묘한 조화를 누구에게 물으랴
사람의 일이 진실로 어그러지지 않으면 비 오고 볕 나는 것도 이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되나니

바람을 따라 복사꽃 오얏꽃 피어나서
화사하게 꽃 소식을 재촉하고

보리밭에까지 촉촉하게 적셔서
온 나라가 고르게 윤택하리라

-김종서가 안평대군에게 쓴 편지-


"내가 왕이 될 상인가?"..수양대군의 참 얼굴

문종이 승하했을 당시 수양대군이 울면서 한 이야기다.

(문종 형님은) 나더러 정대하고 충성하고 지식이 다른 사람보다 다르다 하여 항상 더불어 일을 논하였다. 일찍이 진법을 만들었는데 말씀하기를, '이정·제갈량인들 어찌 수양보다 나을까?' 하였다. 또 일찍이 내궁에서 칭찬하기를, '수양은 비상한 사람이야.'
- 단종 즉위년 5월 18일


대신들의 중심에 김종서가 있었다면 종친들의 중심엔 수양대군이 있었다. 형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은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남다른 존재감을 내보인다. 계유정난 이후에는 '영의정부사 영경연 서운관사 겸판이병조사'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며 실권을 장악했다. 결국,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의 양위를 받아 결국 조선의 7대 왕 세조로 등극한다.


계유정난 이후, 김종서는 철퇴에 사라지고 수양대군은 왕 자리에 오른다. 이후 계유정난의 승자가 기록한 김종서의 역모는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KBS '역사저널 그날(27일,일,밤 9시 40분, KBS 1TV)'은 지난해 공개된 세조의 실제 얼굴을 담은 세조 어진 초본과 함께 세조 수양대군의 본모습을 살펴본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 수양대군 vs 김종서, 누가 진짜 ‘역적’인가?
    • 입력 2017-08-27 08:01:53
    방송·연예
1453년 10월 10일 늦은 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찾는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고, 달빛에 비쳐 편지를 보던 김종서의 머리 위로 철퇴가 내리친다.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맞이한 죽음이었다.

역모의 내용은 김종서 일파가 단종을 끌어내리고 안평대군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는 것. 수양대군은 역모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칼끝을 수많은 피로 물들였다. 실록은 이날의 사건을 계유년의 어려움(어려울 난, 難)을 평정했다(평정할 정, 靖)는 뜻의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기록했다. 사건의 승자인 세조의 관점에서 기록된 셈이다.


김종서, 충신인가 역적인가?

세종의 뜻에 따라 6진을 개척한 대호(大虎) 김종서는 태종 대 관직에 진출해 세종, 문종, 단종까지 4대 왕의 신임을 받았던 문신이다. 죽음을 앞둔 문종이 나라의 뒷일을 유언으로 부탁하며 '고명대신'이 된다. 세종 때부터 신임을 받고 활약했던 김종서였기에 문종도 믿고 자기 뜻과 아들을 부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종서는 문종의 기대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

김종서가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으니, 자기 집의 별실을 지으면서. 목재와 기와, 철재와 석재를 모두 조정의 공사를 관장하는 관리에게서 취하였다.
- 단종 즉위년 12월 11일

김종서가 충청도 공주에 가서 성묘하고자 대궐에 나아가 하직하니, 그를 전별하는 사람들로 도성이 가득 찼고, 군현에서도 뇌물이 잇달아서 끊이지가 않았다.
- 단종 즉위년 12월 15일

조선판 '김종서 게이트'?

김종서는 계유정난 직전까지 아들과 친인척 인사에 끊임없이 개입했다. 특히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는 일 년 동안 세 번이나 승진한 기록이 있다.


사복시는 말과 수레, 목장을 담당한 관청으로 왕실의 말을 관리하며 왕 가까이에 있다 보니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자리였다. 김종서는 장남 김승규를 사복시 소윤으로 앉힌다. 또한, 지형조사 관직을 구할 때, 인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김종서에게 "누가 하면 좋겠는가?" 하고 물었더니, 김종서는 장남 김승규가 좋을 것 같다는 뜻을 내비친다.

김종서가 말하기를 "내 아들 김승규가 적당하나, 다만 품계가 낮을 뿐이오."하고 급히 나가서 집으로 돌아갔다.
-단종실록 단종 1년 7월 1일

결국, 김승규는 지형조사직에 오른다. 김종서가 자신의 친인척을 인사 전횡한다는 소문은 김종서 자신의 귀에도 들어간다. 하지만 김종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김종서가 말하기를 "우리가 죽을 때가 가까웠으니 앞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만약에 자손을 위하여 도모하지 않으면, 누가 다시 그들을 쓰겠는가?"
-단종실록 단종 1년 7월 15일

김종서는 어린 왕을 보좌하는 대가로 얻은 권력을 악용해 대놓고 인사 전횡을 통해 권력을 과시했다. 실록에는 안평대군에게 시를 보내 모반을 일으킬 것을 권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렇다면 정말 김종서가 역모를 꾀했던 걸까.

하늘은 본래 고요하니 아득하고 묘한 조화를 누구에게 물으랴
사람의 일이 진실로 어그러지지 않으면 비 오고 볕 나는 것도 이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되나니

바람을 따라 복사꽃 오얏꽃 피어나서
화사하게 꽃 소식을 재촉하고

보리밭에까지 촉촉하게 적셔서
온 나라가 고르게 윤택하리라

-김종서가 안평대군에게 쓴 편지-


"내가 왕이 될 상인가?"..수양대군의 참 얼굴

문종이 승하했을 당시 수양대군이 울면서 한 이야기다.

(문종 형님은) 나더러 정대하고 충성하고 지식이 다른 사람보다 다르다 하여 항상 더불어 일을 논하였다. 일찍이 진법을 만들었는데 말씀하기를, '이정·제갈량인들 어찌 수양보다 나을까?' 하였다. 또 일찍이 내궁에서 칭찬하기를, '수양은 비상한 사람이야.'
- 단종 즉위년 5월 18일


대신들의 중심에 김종서가 있었다면 종친들의 중심엔 수양대군이 있었다. 형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은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남다른 존재감을 내보인다. 계유정난 이후에는 '영의정부사 영경연 서운관사 겸판이병조사'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며 실권을 장악했다. 결국,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의 양위를 받아 결국 조선의 7대 왕 세조로 등극한다.


계유정난 이후, 김종서는 철퇴에 사라지고 수양대군은 왕 자리에 오른다. 이후 계유정난의 승자가 기록한 김종서의 역모는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KBS '역사저널 그날(27일,일,밤 9시 40분, KBS 1TV)'은 지난해 공개된 세조의 실제 얼굴을 담은 세조 어진 초본과 함께 세조 수양대군의 본모습을 살펴본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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