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재미없는 자연 해설판…이제 그만!

입력 2017.08.2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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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재미없는 자연 해설판…이제 그만!

어렵고 재미없는 자연 해설판…이제 그만!

절벽 단면이 특이합니다. 켜켜이 얇은 지층을 쌓아 놓은 듯합니다. 간간이 휘어진 지층과 사이사이 박힌 돌덩어리도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만들어졌을까요? 궁금하기 마련이죠. 이런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절벽 앞에 해설판이 있습니다. 제주 수월봉입니다.

제주 수월봉 해설판제주 수월봉 해설판

'화산쇄설암층의 퇴적구조'라는 제목부터 어렵습니다. 설명에 나오는 단어들도 난해합니다. '판상의 층리' '화산암괴' '층리(탄낭)' '화쇄난류' '거대연흔' '사층리'가 등장합니다. 누구를 위한 해설인가요? 한자어에 익숙한 고학력자나 지층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해설판 옆에는 '화쇄난류'를 설명한 또 다른 해설판이 있습니다.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화산쇄설물' '괴상층' '견인퇴적' '판산층리(판상층리의 오자로 보임)' '거대연흔 사층리' '판상엽층리' 등의 단어는 그 자체가 또 다른 해설이 필요합니다. 해설이 필요한 해설판, 읽는 데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해설판은 이곳만이 아닙니다.

제주 동백동산 도틀굴 안내문제주 동백동산 도틀굴 안내문

제주 도틀굴 앞에 있는 안내문입니다. '용암선반' '승상용암' '아아용암' '용암주석' 동굴산호' '용암종유' '용암곡석' 등 알 수 없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문장도 복잡합니다. 마지막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문장을 포함해 단 세 문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문장은 길어질수록 이해가 어렵습니다. 재미도 없습니다. 더구나 두 문장은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는 비문(非文)입니다. 어떻게 하면 쉽고 재밌는 해설판이 될까요?

경북 청송 주왕산경북 청송 주왕산

주왕산 역시 독특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회색의 암석 봉우리가 불쑥불쑥 솟아올랐습니다. 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습니다. 그동안 청송군은 지질공원 등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해설판에서도 그 노력이 엿보입니다.

주왕산 해설판주왕산 해설판

주왕산 형성 과정을 설명한 해설판입니다.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지형이지만 어려운 학술용어가 등장하진 않습니다. '화쇄난류'나 '화산쇄설암층' 대신 여기서는 '화산 분출물이 저지대를 덮으며 두꺼운 층을 이뤘다'고 설명합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왕산 용연폭포주왕산 용연폭포

주왕산의 대표적 절경 가운데 하나인 용연폭포입니다. 폭포 옆 절벽이 동그랗게 파였습니다. 마치 굴을 판 듯, 세 곳이 움푹 들어갔습니다. 왜 파였을까? 역시 궁금하지요. 용연폭포 앞에는 아래와 같은 해설판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폭포가 조금씩 뒤로 후퇴했기 때문에 폭포 앞이 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하식동굴'이라는 제목도 재밌습니다. '하식동굴'이란 어려운 용어는 붉은색으로 표기하고 아래에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주왕산은 폭포가 많습니다. 아래 해설판을 보시죠.

주왕산 폭포 해설판주왕산 폭포 해설판

'왜 폭포가 잘 만들어질까요?' 제목부터 관심을 유도합니다. 어린이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하듯 그림과 함께 폭포 형성 과정을 설명합니다. 문장도 짧습니다.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애서배스카 폭포캐나다 애서배스카 폭포

캐나다 로키 산맥 국립공원에 있는 애서배스카 폭포입니다. 거대한 물줄기가 굉음과 함께 떨어지는 경관이 장관입니다. 전망대 눈에 띄는 곳에 해설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해설판이라면 폭포 높이와 너비 혹은 천연기념물 번호나 문화재 지정 내용이 줄줄이 나열됐겠지요. 하지만 여기 해설판은 다릅니다.

애서배스카 해설판애서배스카 해설판


해설판 제목이 It's a (Fish) Mystery! 입니다. 번역하자면 '이건 (물고기) 미스터리!'겠지요. 제목부터 호기심을 일으킵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폭포 아래는 14종의 고유종 물고기가 있지만, 폭포 위에는 단 하나의 고유종, bull trout(바다 송어)만 있다는 겁니다. 빙하기 내내 계곡에는 얼음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빙하가 녹으면서 폭포가 생겼고, 폭포는 물고기의 이동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다 송어는 폭포를 넘었을까요? 사람이 옮겼을까요? 아니면 알 수 없는 자연의 변덕일까요? 이게 미스터리라면서 해설은 끝납니다.

탐방객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연 현상에 대한 궁금증, 이 호기심을 풀어 줄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자연을 이해할 때 애정도 조금씩 생겨납니다.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됩니다. 어렵고 재미없는 해설판,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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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렵고 재미없는 자연 해설판…이제 그만!
    • 입력 2017-08-28 06:04:27
    취재K
절벽 단면이 특이합니다. 켜켜이 얇은 지층을 쌓아 놓은 듯합니다. 간간이 휘어진 지층과 사이사이 박힌 돌덩어리도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만들어졌을까요? 궁금하기 마련이죠. 이런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절벽 앞에 해설판이 있습니다. 제주 수월봉입니다.

제주 수월봉 해설판
'화산쇄설암층의 퇴적구조'라는 제목부터 어렵습니다. 설명에 나오는 단어들도 난해합니다. '판상의 층리' '화산암괴' '층리(탄낭)' '화쇄난류' '거대연흔' '사층리'가 등장합니다. 누구를 위한 해설인가요? 한자어에 익숙한 고학력자나 지층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해설판 옆에는 '화쇄난류'를 설명한 또 다른 해설판이 있습니다.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화산쇄설물' '괴상층' '견인퇴적' '판산층리(판상층리의 오자로 보임)' '거대연흔 사층리' '판상엽층리' 등의 단어는 그 자체가 또 다른 해설이 필요합니다. 해설이 필요한 해설판, 읽는 데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해설판은 이곳만이 아닙니다.

제주 동백동산 도틀굴 안내문
제주 도틀굴 앞에 있는 안내문입니다. '용암선반' '승상용암' '아아용암' '용암주석' 동굴산호' '용암종유' '용암곡석' 등 알 수 없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문장도 복잡합니다. 마지막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문장을 포함해 단 세 문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문장은 길어질수록 이해가 어렵습니다. 재미도 없습니다. 더구나 두 문장은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는 비문(非文)입니다. 어떻게 하면 쉽고 재밌는 해설판이 될까요?

경북 청송 주왕산
주왕산 역시 독특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회색의 암석 봉우리가 불쑥불쑥 솟아올랐습니다. 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습니다. 그동안 청송군은 지질공원 등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해설판에서도 그 노력이 엿보입니다.

주왕산 해설판
주왕산 형성 과정을 설명한 해설판입니다.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지형이지만 어려운 학술용어가 등장하진 않습니다. '화쇄난류'나 '화산쇄설암층' 대신 여기서는 '화산 분출물이 저지대를 덮으며 두꺼운 층을 이뤘다'고 설명합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왕산 용연폭포
주왕산의 대표적 절경 가운데 하나인 용연폭포입니다. 폭포 옆 절벽이 동그랗게 파였습니다. 마치 굴을 판 듯, 세 곳이 움푹 들어갔습니다. 왜 파였을까? 역시 궁금하지요. 용연폭포 앞에는 아래와 같은 해설판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폭포가 조금씩 뒤로 후퇴했기 때문에 폭포 앞이 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하식동굴'이라는 제목도 재밌습니다. '하식동굴'이란 어려운 용어는 붉은색으로 표기하고 아래에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주왕산은 폭포가 많습니다. 아래 해설판을 보시죠.

주왕산 폭포 해설판
'왜 폭포가 잘 만들어질까요?' 제목부터 관심을 유도합니다. 어린이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하듯 그림과 함께 폭포 형성 과정을 설명합니다. 문장도 짧습니다.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애서배스카 폭포
캐나다 로키 산맥 국립공원에 있는 애서배스카 폭포입니다. 거대한 물줄기가 굉음과 함께 떨어지는 경관이 장관입니다. 전망대 눈에 띄는 곳에 해설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해설판이라면 폭포 높이와 너비 혹은 천연기념물 번호나 문화재 지정 내용이 줄줄이 나열됐겠지요. 하지만 여기 해설판은 다릅니다.

애서배스카 해설판

해설판 제목이 It's a (Fish) Mystery! 입니다. 번역하자면 '이건 (물고기) 미스터리!'겠지요. 제목부터 호기심을 일으킵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폭포 아래는 14종의 고유종 물고기가 있지만, 폭포 위에는 단 하나의 고유종, bull trout(바다 송어)만 있다는 겁니다. 빙하기 내내 계곡에는 얼음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다 빙하가 녹으면서 폭포가 생겼고, 폭포는 물고기의 이동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다 송어는 폭포를 넘었을까요? 사람이 옮겼을까요? 아니면 알 수 없는 자연의 변덕일까요? 이게 미스터리라면서 해설은 끝납니다.

탐방객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연 현상에 대한 궁금증, 이 호기심을 풀어 줄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자연을 이해할 때 애정도 조금씩 생겨납니다.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됩니다. 어렵고 재미없는 해설판, 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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