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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귀향 조정래 감독 “영화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한 분의 영혼이 돌아온다는 심정”
입력 2017.09.14 (13:42) TV특종
지난해 2월 개봉되어 358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귀향>이 다시 개봉된다. 1반 반 만에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확장판으로 돌아온 것이다. 7만 5천명이라는 적지 않은 지지자들의 쌈짓돈 11억 6천만 원을 밑천 삼아 완성된 <귀향>은 왜 다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감독은 왜 이렇게 계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집착할까. 조정래 감독을 만나 직접 그 ‘소명감’에 대해 물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제국주의 일본군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 중 위안부문제는 아직까지도 한일관계를 경색시키는 역사적 응어리로 남아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부터 ‘위안부’는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고, 역사의 지뢰밭이 되었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8만에서 많게는 20만에 이르는 조선의 처자들이 전쟁터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군함도>에서 보여준 강제징용, 노역의 길이 아니라, 순전히 일본군인의 성적 노예로 끌려간 것이다. 한때는 ‘정신대’라는 용어로 혼용되었고, UN 등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 성 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로 일컬어지는 위안부이다.

조정래 감독의 <귀향>은 시골마을에서 갑자기 일본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수많은 조선의 소녀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들은 트럭에 실려, 기차에 실려, 배를 타고, 저 먼 이국땅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의 스토리를 유지하면서, 생존한 할머니의 증언을 추가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같은 또래 소녀들이 모여서 할머니들을 위해 아리랑 합창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조용히 보여준다.

조정래 감독은 그동안 바빴다. 그동안 영화 <귀향>을 들고 10개국 61개 도시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무려 1300회에 이른다고 밝혔다.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서구권 관객들이 굉장한 충격을 받더라. 이게 사실이냐 질문하는 관객이 많았다.”며 관객과의 대화시간이 역사 알리기로 이어졌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으로 우리가 모르는 엄청나게 훌륭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정래 감독은 대학(중앙대 연극영화과)시절 학생회장을 맡았고, 국악동아리 활동을 했단다. 그 시절 그랬다면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2002년 처음 ‘나눔의 집’에 갔었단다. 할머니 앞에서 공연하는 봉사활동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눈물을 흘렸단다.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소녀들>을 본 것도 그때였단다. 패전 후 위안소의 존재를 숨기려고 행한 끔찍한 학살 씬이다. <귀향>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우리가 겪은 일의 백분의 일도 안 된다

사실 영화 <귀향>이 그리는 장면은 끔찍했다. 조정래 감독은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에게 처음 영화를 보여드릴 때를 이렇게 술회한다. “불안하고 긴장되어 죽을 지경이었다. 영화를 완성하고는 할머니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었고, 그러는 게 도리였다. 봉사자로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같은 식구가 되었는데, 보는 것 자체가 힘드실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매주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하신다. 정말 강인하신 분이시다.”라고. 영화를 보신 뒤 하시는 말씀은 같았단다. “영화로 만들어 주어 고맙다.”, “우리가 겪은 일의 백분의 일도 안 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 영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조정래 감독은 경북 청송 출신이란다. “내가 산골 출신이다. 나눔의 집에 봉사 갔을 때 김순덕 할머니 등 경상도분들이 많으셨다.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고, 그 당시 나온 증언집을 꼼꼼히 읽었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녹취하면서 잘못 옮긴 부분이 눈에 들어오더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무슨 뜻으로 한 이야기인지 알겠더라. 시골에서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자랐기에 그런 이야기들이 강렬하게 들렸다.”고 말한다. “정말 많이 울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범한 소녀였고, 옛날부터 알았던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귀향>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마지막 장면은 마치 할머니들이 환생한 것처럼 현재에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주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이어진 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조금 민감한 질문을 던졌었다. 훌륭한 의도로 만든 작품인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각에 대한 ‘젠더’ 문제 제기였다. <귀향>에서 위안소에서 펼쳐지는 지옥같은 모습이 있다. 부감 씬으로 훑어지나가는 끔찍한 장면.

조정래 감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피해 할머니가 그린 그림 중에 <지옥도>라는 작품이 있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 너무 끔찍했다.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군인들. 잔혹하지만 영화로 반드시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지만 그래야 했다. 방마다 개별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밖에서 기다리는 군인을 보여주며 커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개인화된 느낌이다. 전체적인 조감도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일본 제국주의, 군부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길게 설명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으셨고, 분노할 것이다. 영화에서 여성을 담는 문제에 대해 실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수위로,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까. 안타깝고, 힘들었다면 그분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녀들의, 피해 여성들의 몸이라는 느낌보다는 당시 고통 받았던 소녀들의 영혼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 <귀향>, 중국영화 <22>



그의 <귀향>에 용기를 얻은 사람이 또 있다. 중국에서는 궈커(郭柯) 감독이 중국판 <귀향>인 다큐멘터리 <22>(二十二)를 만들었다. 제작 당시 생존해 있는 22명의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를 인터뷰한 작품이다. 이 작품도 우리처럼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고생했고, 4만 여 명의 후원자의 지지로 겨우 완성했다. (그 중에는 장신이같은 스타 배우도 있다. 100만 위안을 쾌척하여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지난 달, 조정래 감독을 대만을 찾았다. 대만 ‘아메이의 집’(Ama Museum, 평화와 여성인권관)에서 열린 ‘국제위안부인권영화제’에 참가한 것이다. 조정래 감독은 <22>에 등장하는 한국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에는 중국, 미얀마, 대만 등지에 끌려가신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신 분들도 많다. 22에는 박차순 할머니가 등장하신다. 한국어는 거의 다 잊어버리셨지만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을 완벽하게 부른다.“면서 ”궈커 감독은 ‘아리랑’과 ‘도라지’를 끝까지 부르는 모습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았었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인다.

이날, 조정래 감독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대만에서 영화제를 할 때 <귀향>은 상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만에서 판권을 사 가신 분이 영화상영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다. 중국에서도 <귀향>을 사 갔는데 1년 반 동안 한 번도 상영하지 않았더라. 사드문제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설득하여 판권을 다시 회수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는 정식 개봉이 안 되었지만 어떻게 보았는지 다들 잘 알더라. 궈커 감독이 나를 “나라를 바꾼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22>는 1억 6,800만 위엔(273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렸고, 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22>를 이야기할 때 한국의 <귀향>을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CCTV와 인민일보에서도 조정래 감독을 인터뷰해갈 정도로 관심이 높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작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펼쳤다. “캐나다 티파니 슝 감독의 <어폴로지>도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곧 개봉되는 <아이 캔 스피크>도이 문제를 다뤘다고 들었다.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채시라 출연했던 오래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MBC)에까지 이르렀다. 김성종 원작소설을 극화한 <여명의 눈동자>에는 해방 후 공간에서 위안부(당시에는 정신대)로 끌려갔다고 ‘살아서 돌아온’ 조선여인을 경멸하는 장면을 고발하는 장면이 있었다. 조정래 감독도 “그 장면을 지금 다시 보아도 잘 만들었다. 정말 공을 들여 연구를 한 최고의 드라마였다.”

鬼鄕, 歸鄕

“하지만 그 뒤 아픈 역사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드라마를 보고 더 알아보려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지만 나는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했던 케이스다. ‘나눔의 집’봉사 갔다가다가 할머니를 뵙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속죄이다. 무지에 대한 속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죄송함.” 그리고 덧붙인다. “일본군에게 유린 당하고 사회의 냉대를 받으신 분들이다. 그런데 살아 돌아온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제사 지내잖아요. 명절이면 귀향하잖아요. 돌아가신 분 묘소 찾는 게 큰일이잖아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이국 땅에 끌려가서 타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는데 묘비도 없고, 묘소도 없고, 모셔오는 그런 것도 없ᄋᅠᆻ다는 것이, 그동안 아무 것도 안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영화로나마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고 말한다.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를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한 분의 영혼이 고향에 돌아온다고 생각한단다. 처음부터 제목을 <귀향>으로 잡은 것이 영화로 제사지내자는 뜻이었단다. 모시고 따뜻한 밥 한술 올려드리고 싶었단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생각한다. (귀향의 중국어 제목은 ‘鬼鄕’이다)

조정래 감독은 지금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에움길>이란 작품을 다듬고 있단다. ‘빙 둘러서 가는 길’을 일컫는다. 평생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만 만들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그게 내 운명이라면 고맙죠.”라고.

<귀향, 끝나지 않은 길>은 오늘 개봉된다.

  • [인터뷰] 귀향 조정래 감독 “영화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한 분의 영혼이 돌아온다는 심정”
    • 입력 2017-09-14 13:42:31
    TV특종
지난해 2월 개봉되어 358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귀향>이 다시 개봉된다. 1반 반 만에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확장판으로 돌아온 것이다. 7만 5천명이라는 적지 않은 지지자들의 쌈짓돈 11억 6천만 원을 밑천 삼아 완성된 <귀향>은 왜 다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감독은 왜 이렇게 계속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집착할까. 조정래 감독을 만나 직접 그 ‘소명감’에 대해 물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제국주의 일본군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 중 위안부문제는 아직까지도 한일관계를 경색시키는 역사적 응어리로 남아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부터 ‘위안부’는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고, 역사의 지뢰밭이 되었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8만에서 많게는 20만에 이르는 조선의 처자들이 전쟁터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군함도>에서 보여준 강제징용, 노역의 길이 아니라, 순전히 일본군인의 성적 노예로 끌려간 것이다. 한때는 ‘정신대’라는 용어로 혼용되었고, UN 등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 성 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로 일컬어지는 위안부이다.

조정래 감독의 <귀향>은 시골마을에서 갑자기 일본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수많은 조선의 소녀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들은 트럭에 실려, 기차에 실려, 배를 타고, 저 먼 이국땅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의 스토리를 유지하면서, 생존한 할머니의 증언을 추가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같은 또래 소녀들이 모여서 할머니들을 위해 아리랑 합창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조용히 보여준다.

조정래 감독은 그동안 바빴다. 그동안 영화 <귀향>을 들고 10개국 61개 도시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무려 1300회에 이른다고 밝혔다.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서구권 관객들이 굉장한 충격을 받더라. 이게 사실이냐 질문하는 관객이 많았다.”며 관객과의 대화시간이 역사 알리기로 이어졌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으로 우리가 모르는 엄청나게 훌륭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정래 감독은 대학(중앙대 연극영화과)시절 학생회장을 맡았고, 국악동아리 활동을 했단다. 그 시절 그랬다면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2002년 처음 ‘나눔의 집’에 갔었단다. 할머니 앞에서 공연하는 봉사활동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눈물을 흘렸단다.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소녀들>을 본 것도 그때였단다. 패전 후 위안소의 존재를 숨기려고 행한 끔찍한 학살 씬이다. <귀향>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우리가 겪은 일의 백분의 일도 안 된다

사실 영화 <귀향>이 그리는 장면은 끔찍했다. 조정래 감독은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에게 처음 영화를 보여드릴 때를 이렇게 술회한다. “불안하고 긴장되어 죽을 지경이었다. 영화를 완성하고는 할머니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었고, 그러는 게 도리였다. 봉사자로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같은 식구가 되었는데, 보는 것 자체가 힘드실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매주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하신다. 정말 강인하신 분이시다.”라고. 영화를 보신 뒤 하시는 말씀은 같았단다. “영화로 만들어 주어 고맙다.”, “우리가 겪은 일의 백분의 일도 안 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 영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조정래 감독은 경북 청송 출신이란다. “내가 산골 출신이다. 나눔의 집에 봉사 갔을 때 김순덕 할머니 등 경상도분들이 많으셨다.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고, 그 당시 나온 증언집을 꼼꼼히 읽었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녹취하면서 잘못 옮긴 부분이 눈에 들어오더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무슨 뜻으로 한 이야기인지 알겠더라. 시골에서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자랐기에 그런 이야기들이 강렬하게 들렸다.”고 말한다. “정말 많이 울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범한 소녀였고, 옛날부터 알았던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귀향>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마지막 장면은 마치 할머니들이 환생한 것처럼 현재에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주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이어진 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조금 민감한 질문을 던졌었다. 훌륭한 의도로 만든 작품인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각에 대한 ‘젠더’ 문제 제기였다. <귀향>에서 위안소에서 펼쳐지는 지옥같은 모습이 있다. 부감 씬으로 훑어지나가는 끔찍한 장면.

조정래 감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피해 할머니가 그린 그림 중에 <지옥도>라는 작품이 있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 너무 끔찍했다.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군인들. 잔혹하지만 영화로 반드시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지만 그래야 했다. 방마다 개별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밖에서 기다리는 군인을 보여주며 커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개인화된 느낌이다. 전체적인 조감도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일본 제국주의, 군부가 제공하는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길게 설명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으셨고, 분노할 것이다. 영화에서 여성을 담는 문제에 대해 실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수위로,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까. 안타깝고, 힘들었다면 그분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녀들의, 피해 여성들의 몸이라는 느낌보다는 당시 고통 받았던 소녀들의 영혼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 <귀향>, 중국영화 <22>



그의 <귀향>에 용기를 얻은 사람이 또 있다. 중국에서는 궈커(郭柯) 감독이 중국판 <귀향>인 다큐멘터리 <22>(二十二)를 만들었다. 제작 당시 생존해 있는 22명의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를 인터뷰한 작품이다. 이 작품도 우리처럼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고생했고, 4만 여 명의 후원자의 지지로 겨우 완성했다. (그 중에는 장신이같은 스타 배우도 있다. 100만 위안을 쾌척하여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지난 달, 조정래 감독을 대만을 찾았다. 대만 ‘아메이의 집’(Ama Museum, 평화와 여성인권관)에서 열린 ‘국제위안부인권영화제’에 참가한 것이다. 조정래 감독은 <22>에 등장하는 한국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에는 중국, 미얀마, 대만 등지에 끌려가신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신 분들도 많다. 22에는 박차순 할머니가 등장하신다. 한국어는 거의 다 잊어버리셨지만 아리랑과 ‘도라지 타령’을 완벽하게 부른다.“면서 ”궈커 감독은 ‘아리랑’과 ‘도라지’를 끝까지 부르는 모습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았었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인다.

이날, 조정래 감독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대만에서 영화제를 할 때 <귀향>은 상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만에서 판권을 사 가신 분이 영화상영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다. 중국에서도 <귀향>을 사 갔는데 1년 반 동안 한 번도 상영하지 않았더라. 사드문제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설득하여 판권을 다시 회수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는 정식 개봉이 안 되었지만 어떻게 보았는지 다들 잘 알더라. 궈커 감독이 나를 “나라를 바꾼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22>는 1억 6,800만 위엔(273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렸고, 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22>를 이야기할 때 한국의 <귀향>을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CCTV와 인민일보에서도 조정래 감독을 인터뷰해갈 정도로 관심이 높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작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펼쳤다. “캐나다 티파니 슝 감독의 <어폴로지>도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곧 개봉되는 <아이 캔 스피크>도이 문제를 다뤘다고 들었다.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채시라 출연했던 오래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MBC)에까지 이르렀다. 김성종 원작소설을 극화한 <여명의 눈동자>에는 해방 후 공간에서 위안부(당시에는 정신대)로 끌려갔다고 ‘살아서 돌아온’ 조선여인을 경멸하는 장면을 고발하는 장면이 있었다. 조정래 감독도 “그 장면을 지금 다시 보아도 잘 만들었다. 정말 공을 들여 연구를 한 최고의 드라마였다.”

鬼鄕, 歸鄕

“하지만 그 뒤 아픈 역사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드라마를 보고 더 알아보려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지만 나는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했던 케이스다. ‘나눔의 집’봉사 갔다가다가 할머니를 뵙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속죄이다. 무지에 대한 속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죄송함.” 그리고 덧붙인다. “일본군에게 유린 당하고 사회의 냉대를 받으신 분들이다. 그런데 살아 돌아온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제사 지내잖아요. 명절이면 귀향하잖아요. 돌아가신 분 묘소 찾는 게 큰일이잖아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이국 땅에 끌려가서 타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는데 묘비도 없고, 묘소도 없고, 모셔오는 그런 것도 없ᄋᅠᆻ다는 것이, 그동안 아무 것도 안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영화로나마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고 말한다.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를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한 분의 영혼이 고향에 돌아온다고 생각한단다. 처음부터 제목을 <귀향>으로 잡은 것이 영화로 제사지내자는 뜻이었단다. 모시고 따뜻한 밥 한술 올려드리고 싶었단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생각한다. (귀향의 중국어 제목은 ‘鬼鄕’이다)

조정래 감독은 지금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에움길>이란 작품을 다듬고 있단다. ‘빙 둘러서 가는 길’을 일컫는다. 평생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만 만들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그게 내 운명이라면 고맙죠.”라고.

<귀향, 끝나지 않은 길>은 오늘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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