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21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호스피스는 삶의 끝에서 잠시 머물며 이별을 준비하는 곳이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평균 21일을 머문다. 그곳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마지막 이별식'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다큐 공감(21일 저녁 7시 5분, KBS 1TV)'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낌없이 내어준 이들이 말하는 삶의 비밀을 전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과 절망으로 소진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 귀한 시간에 저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결국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는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항7암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항암제 사용률이 캐나다의 11배, 미국의 4배에 달한다. 말기 암 환자의 24%가 사망 2주 전까지도 항암제를 투여받는다. 이러한 암 환자 10명 가운데 4명(42%)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듣지 못한다. 즉, 사망자 3명 중 1명은 끝까지 연명 치료를 하다 죽는다. 암 환자 중 호스피스 이용자는 10명이 1명에 불과하다. 호스피스 이용자는 '죽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1/7 수준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치료받느라 고통 속에서 헤매다 떠난다. 이들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죽음을 맞는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 동안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
환자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호스피스'
"마지막 한 달 동안 그저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결국 우리가 함께 보낸 나날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호스피스 이용자-
치료를 도와야 할 항암제로 부작용만 생기는 시기를 '말기'라고 부른다. 의료진은 이때부터 평균 생존 기간을 약 11주로 보며, 이때 하는 연명 의료는 치료 효과가 거의 없다고들 말한다.
즉, 말기의 의료 행위는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료다. 가족들은 말기 암 환자를 놓아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때가 오히려 통증 조절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며,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
강신국(82) 씨와 그의 가족들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늘 해맑은 웃음을 띤 강신국 씨와 그 옆을 지키는 사랑스러운 아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 부부'로 유명하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과감히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었던 건, 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딸 강명아 씨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아빠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아버지를 그냥 놔두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폐암 말기니까 진통제 말고는 아빠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가족의 사랑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 덕분에 아빠가 1년은 더 사신 거 같아요."
"사랑해. 진작 말할걸"
김옥순 씨는 완치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뒤늦게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옥순 씨는 지금 의식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못다 한 말들이 많아 후회하며 그 옆을 지키는 남편 김일경 씨가 있다. 눈을 맞추고 말을 주고받는 순간이 한 번쯤 있을 줄 알았지만, 아내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다.
일경 씨는 좀 더 일찍 마음속에 간직해온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참 멋지게 죽는다는 건 우리하고 거리가 먼 것 같아. 작별인사를 차근차근했다면 환자한테 도움이 됐을 텐데. 괜히 희망만 심어 줘서 밭에 가을에 배추 심어야 하고 무 심고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 하느라고 진짜 할 말을 못 했어요. 그래도 해야지. 말해야지."
남편은 아내를 위해 매일 편지를 쓰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내 생에 마지막 의료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호스피스 센터의 의료진은 일반 병동의 의료진과 관심사가 다르다. 일반 병동에서는 환자에게 병의를 묻지만, 이곳에선 그 사람의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단순히 육체만의 문제도, 환자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표는 환자가 마지막 남은 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고통 없이 행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김영성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에게 '마지막 의사'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이분들이 어떻게 기억을 하실지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박영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중요한 것이 '스킨십'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 중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환자분들에게는 큰 것이 스킨십이 아닐까 싶어요. 환자들이 '따뜻하고 좋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의 호스피스 팀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호스피스는 삶의 끝에서 잠시 머물며 이별을 준비하는 곳이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평균 21일을 머문다. 그곳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마지막 이별식'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다큐 공감(21일 저녁 7시 5분, KBS 1TV)'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낌없이 내어준 이들이 말하는 삶의 비밀을 전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과 절망으로 소진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 귀한 시간에 저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결국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는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항7암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항암제 사용률이 캐나다의 11배, 미국의 4배에 달한다. 말기 암 환자의 24%가 사망 2주 전까지도 항암제를 투여받는다. 이러한 암 환자 10명 가운데 4명(42%)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듣지 못한다. 즉, 사망자 3명 중 1명은 끝까지 연명 치료를 하다 죽는다. 암 환자 중 호스피스 이용자는 10명이 1명에 불과하다. 호스피스 이용자는 '죽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1/7 수준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치료받느라 고통 속에서 헤매다 떠난다. 이들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죽음을 맞는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 동안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
환자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호스피스'
"마지막 한 달 동안 그저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결국 우리가 함께 보낸 나날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호스피스 이용자-
치료를 도와야 할 항암제로 부작용만 생기는 시기를 '말기'라고 부른다. 의료진은 이때부터 평균 생존 기간을 약 11주로 보며, 이때 하는 연명 의료는 치료 효과가 거의 없다고들 말한다.
즉, 말기의 의료 행위는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료다. 가족들은 말기 암 환자를 놓아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때가 오히려 통증 조절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며,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
강신국(82) 씨와 그의 가족들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늘 해맑은 웃음을 띤 강신국 씨와 그 옆을 지키는 사랑스러운 아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 부부'로 유명하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과감히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었던 건, 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딸 강명아 씨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아빠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아버지를 그냥 놔두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폐암 말기니까 진통제 말고는 아빠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가족의 사랑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 덕분에 아빠가 1년은 더 사신 거 같아요."
"사랑해. 진작 말할걸"
김옥순 씨는 완치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뒤늦게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옥순 씨는 지금 의식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못다 한 말들이 많아 후회하며 그 옆을 지키는 남편 김일경 씨가 있다. 눈을 맞추고 말을 주고받는 순간이 한 번쯤 있을 줄 알았지만, 아내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다.
일경 씨는 좀 더 일찍 마음속에 간직해온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참 멋지게 죽는다는 건 우리하고 거리가 먼 것 같아. 작별인사를 차근차근했다면 환자한테 도움이 됐을 텐데. 괜히 희망만 심어 줘서 밭에 가을에 배추 심어야 하고 무 심고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 하느라고 진짜 할 말을 못 했어요. 그래도 해야지. 말해야지."
남편은 아내를 위해 매일 편지를 쓰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내 생에 마지막 의료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호스피스 센터의 의료진은 일반 병동의 의료진과 관심사가 다르다. 일반 병동에서는 환자에게 병의를 묻지만, 이곳에선 그 사람의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단순히 육체만의 문제도, 환자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표는 환자가 마지막 남은 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고통 없이 행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김영성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에게 '마지막 의사'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이분들이 어떻게 기억을 하실지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박영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중요한 것이 '스킨십'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 중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환자분들에게는 큰 것이 스킨십이 아닐까 싶어요. 환자들이 '따뜻하고 좋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의 호스피스 팀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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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앞둔 당신, 어떻게 죽을 것인가
-
- 입력 2017-10-27 08:00:10
삶이 21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호스피스는 삶의 끝에서 잠시 머물며 이별을 준비하는 곳이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평균 21일을 머문다. 그곳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마지막 이별식'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다큐 공감(21일 저녁 7시 5분, KBS 1TV)'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낌없이 내어준 이들이 말하는 삶의 비밀을 전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과 절망으로 소진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 귀한 시간에 저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결국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는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항7암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항암제 사용률이 캐나다의 11배, 미국의 4배에 달한다. 말기 암 환자의 24%가 사망 2주 전까지도 항암제를 투여받는다. 이러한 암 환자 10명 가운데 4명(42%)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듣지 못한다. 즉, 사망자 3명 중 1명은 끝까지 연명 치료를 하다 죽는다. 암 환자 중 호스피스 이용자는 10명이 1명에 불과하다. 호스피스 이용자는 '죽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1/7 수준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치료받느라 고통 속에서 헤매다 떠난다. 이들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죽음을 맞는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 동안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
환자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호스피스'
"마지막 한 달 동안 그저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결국 우리가 함께 보낸 나날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호스피스 이용자-
치료를 도와야 할 항암제로 부작용만 생기는 시기를 '말기'라고 부른다. 의료진은 이때부터 평균 생존 기간을 약 11주로 보며, 이때 하는 연명 의료는 치료 효과가 거의 없다고들 말한다.
즉, 말기의 의료 행위는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료다. 가족들은 말기 암 환자를 놓아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때가 오히려 통증 조절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며,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
강신국(82) 씨와 그의 가족들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늘 해맑은 웃음을 띤 강신국 씨와 그 옆을 지키는 사랑스러운 아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 부부'로 유명하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과감히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었던 건, 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딸 강명아 씨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아빠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아버지를 그냥 놔두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폐암 말기니까 진통제 말고는 아빠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가족의 사랑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 덕분에 아빠가 1년은 더 사신 거 같아요."
"사랑해. 진작 말할걸"
김옥순 씨는 완치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뒤늦게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옥순 씨는 지금 의식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못다 한 말들이 많아 후회하며 그 옆을 지키는 남편 김일경 씨가 있다. 눈을 맞추고 말을 주고받는 순간이 한 번쯤 있을 줄 알았지만, 아내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다.
일경 씨는 좀 더 일찍 마음속에 간직해온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참 멋지게 죽는다는 건 우리하고 거리가 먼 것 같아. 작별인사를 차근차근했다면 환자한테 도움이 됐을 텐데. 괜히 희망만 심어 줘서 밭에 가을에 배추 심어야 하고 무 심고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 하느라고 진짜 할 말을 못 했어요. 그래도 해야지. 말해야지."
남편은 아내를 위해 매일 편지를 쓰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내 생에 마지막 의료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호스피스 센터의 의료진은 일반 병동의 의료진과 관심사가 다르다. 일반 병동에서는 환자에게 병의를 묻지만, 이곳에선 그 사람의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단순히 육체만의 문제도, 환자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표는 환자가 마지막 남은 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고통 없이 행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김영성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에게 '마지막 의사'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이분들이 어떻게 기억을 하실지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박영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중요한 것이 '스킨십'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 중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환자분들에게는 큰 것이 스킨십이 아닐까 싶어요. 환자들이 '따뜻하고 좋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의 호스피스 팀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호스피스는 삶의 끝에서 잠시 머물며 이별을 준비하는 곳이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평균 21일을 머문다. 그곳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마지막 이별식'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있다.
'다큐 공감(21일 저녁 7시 5분, KBS 1TV)'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낌없이 내어준 이들이 말하는 삶의 비밀을 전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과 절망으로 소진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 귀한 시간에 저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결국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는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항7암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항암제 사용률이 캐나다의 11배, 미국의 4배에 달한다. 말기 암 환자의 24%가 사망 2주 전까지도 항암제를 투여받는다. 이러한 암 환자 10명 가운데 4명(42%)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듣지 못한다. 즉, 사망자 3명 중 1명은 끝까지 연명 치료를 하다 죽는다. 암 환자 중 호스피스 이용자는 10명이 1명에 불과하다. 호스피스 이용자는 '죽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1/7 수준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채 죽을 때까지 치료받느라 고통 속에서 헤매다 떠난다. 이들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죽음을 맞는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남은 시간 동안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
환자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는 '호스피스'
"마지막 한 달 동안 그저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결국 우리가 함께 보낸 나날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호스피스 이용자-
치료를 도와야 할 항암제로 부작용만 생기는 시기를 '말기'라고 부른다. 의료진은 이때부터 평균 생존 기간을 약 11주로 보며, 이때 하는 연명 의료는 치료 효과가 거의 없다고들 말한다.
즉, 말기의 의료 행위는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료다. 가족들은 말기 암 환자를 놓아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때가 오히려 통증 조절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며,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
강신국(82) 씨와 그의 가족들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늘 해맑은 웃음을 띤 강신국 씨와 그 옆을 지키는 사랑스러운 아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사랑 부부'로 유명하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과감히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었던 건, 늘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딸 강명아 씨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아빠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아버지를 그냥 놔두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폐암 말기니까 진통제 말고는 아빠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가족의 사랑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 덕분에 아빠가 1년은 더 사신 거 같아요."
"사랑해. 진작 말할걸"
김옥순 씨는 완치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뒤늦게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옥순 씨는 지금 의식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못다 한 말들이 많아 후회하며 그 옆을 지키는 남편 김일경 씨가 있다. 눈을 맞추고 말을 주고받는 순간이 한 번쯤 있을 줄 알았지만, 아내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다.
일경 씨는 좀 더 일찍 마음속에 간직해온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참 멋지게 죽는다는 건 우리하고 거리가 먼 것 같아. 작별인사를 차근차근했다면 환자한테 도움이 됐을 텐데. 괜히 희망만 심어 줘서 밭에 가을에 배추 심어야 하고 무 심고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 하느라고 진짜 할 말을 못 했어요. 그래도 해야지. 말해야지."
남편은 아내를 위해 매일 편지를 쓰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내 생에 마지막 의료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호스피스 센터의 의료진은 일반 병동의 의료진과 관심사가 다르다. 일반 병동에서는 환자에게 병의를 묻지만, 이곳에선 그 사람의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단순히 육체만의 문제도, 환자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표는 환자가 마지막 남은 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고통 없이 행복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김영성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에게 '마지막 의사'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지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이분들이 어떻게 기억을 하실지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박영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중요한 것이 '스킨십'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 중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환자분들에게는 큰 것이 스킨십이 아닐까 싶어요. 환자들이 '따뜻하고 좋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의 호스피스 팀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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