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가족의 따뜻한 뜨개질…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입력 2017.11.09 (07:52) 수정 2017.11.0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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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같은 엄마는 새로운 사랑을 찾겠다고 종종 가출한다. 그럴 때마다 열한 살 토모(카키하라 린카)는 자상한 외삼촌 마키오(키리타니 켄타)가 일하는 서점에 찾아간다.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집에 홀로 남은 토모가 빨래를 개키고 삼각김밥을 뜯어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딘가 결핍된 가족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예상되는 도입부다. 그러나 가족의 잔잔한 일상을 그린 영화 치고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으로,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에서 한발 더 나아간 메시지를 던진다.

마키오가 토모를 돌보기 위해 데려간 집에는 동거인이 한 명 있다. 마키오의 애인 린코(이쿠타 토마)다. 치마를 입고 있지만 토모가 보기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린코는 처음에 남자였다가 여자로 다시 태어난 트랜스젠더다.

'호모, 변태' 같은 칠판 낙서가 예사일 정도로 토모의 학교에는 호모포비아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게 교육받은 토모는 린코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하지만 곧 세 사람은 모자람 없는 가족으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마키오와 린코의 사랑은 굳건하고, 토모 역시 두 사람과 함께 사는 게 낫다. 그러나 린코가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안락함은 번번이 깨진다. 토모가 '이상한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같은 반 친구의 엄마는 아들에게 토모와 놀지 말라고 한다. '평범한 것이 정상'이라는 친구 엄마의 말, '토모네 집은 변태 가족'이라는 낙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린코의 일상을 통해 성 소수자가 어떻게 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지, 반대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는 무엇인지 보여준다. 마키오는 린코의 고운 마음씨에 빠지고 나서는 그가 트렌스젠더라는 사실도 사랑을 막지 못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린코의 어머니는 성적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한 린코에게 '가슴'을 만들어주며 그를 지켜줬다.

하지만 린코의 손은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크고, 동료처럼 결혼을 준비하며 행복한 불평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엄마가 되고 싶지만, 마키오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는 조심스럽다. 영화는 린코의 입을 빌려, 그가 매일 겪는 고초가 과연 누구의 잘못에서 비롯됐는지 묻는다.

'카모메 식당'(2006)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번에도 음식을 교감의 매개로 활용한다. 처음에 어색해하던 토모의 마음을 돌린 건 린코가 정성 들여 싸준 도시락. 가족의 따뜻한 사랑에 목말라 있던 토모는 고양이 주먹밥과 문어 소시지로 꾸민 도시락을 보고 아까운 마음에 상할 때까지 먹지도 못한다.

제목은 영화의 두 가지 주제의식을 모두 담고 있다. 뜨개질은 소수자가 차별을 견뎌내는 나름의 생존 방식이자, 평범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연대감을 상징한다.

이쿠타 토마는 굽 높은 구두와 노란색 원피스 차림은 물론, 앉아있는 자세와 컵을 잡는 손의 모양새까지 트랜스젠더 여성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복잡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가키하라 린카의 연기 역시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테디심사위원상을 받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16일 개봉.

[사진출처 : 디스테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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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범한 가족의 따뜻한 뜨개질…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 입력 2017-11-09 07:52:44
    • 수정2017-11-09 09:06:54
    연합뉴스
철부지 같은 엄마는 새로운 사랑을 찾겠다고 종종 가출한다. 그럴 때마다 열한 살 토모(카키하라 린카)는 자상한 외삼촌 마키오(키리타니 켄타)가 일하는 서점에 찾아간다.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집에 홀로 남은 토모가 빨래를 개키고 삼각김밥을 뜯어 먹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딘가 결핍된 가족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예상되는 도입부다. 그러나 가족의 잔잔한 일상을 그린 영화 치고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으로,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에서 한발 더 나아간 메시지를 던진다.

마키오가 토모를 돌보기 위해 데려간 집에는 동거인이 한 명 있다. 마키오의 애인 린코(이쿠타 토마)다. 치마를 입고 있지만 토모가 보기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린코는 처음에 남자였다가 여자로 다시 태어난 트랜스젠더다.

'호모, 변태' 같은 칠판 낙서가 예사일 정도로 토모의 학교에는 호모포비아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게 교육받은 토모는 린코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하지만 곧 세 사람은 모자람 없는 가족으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마키오와 린코의 사랑은 굳건하고, 토모 역시 두 사람과 함께 사는 게 낫다. 그러나 린코가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안락함은 번번이 깨진다. 토모가 '이상한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같은 반 친구의 엄마는 아들에게 토모와 놀지 말라고 한다. '평범한 것이 정상'이라는 친구 엄마의 말, '토모네 집은 변태 가족'이라는 낙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린코의 일상을 통해 성 소수자가 어떻게 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지, 반대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는 무엇인지 보여준다. 마키오는 린코의 고운 마음씨에 빠지고 나서는 그가 트렌스젠더라는 사실도 사랑을 막지 못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린코의 어머니는 성적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한 린코에게 '가슴'을 만들어주며 그를 지켜줬다.

하지만 린코의 손은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크고, 동료처럼 결혼을 준비하며 행복한 불평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엄마가 되고 싶지만, 마키오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는 조심스럽다. 영화는 린코의 입을 빌려, 그가 매일 겪는 고초가 과연 누구의 잘못에서 비롯됐는지 묻는다.

'카모메 식당'(2006)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번에도 음식을 교감의 매개로 활용한다. 처음에 어색해하던 토모의 마음을 돌린 건 린코가 정성 들여 싸준 도시락. 가족의 따뜻한 사랑에 목말라 있던 토모는 고양이 주먹밥과 문어 소시지로 꾸민 도시락을 보고 아까운 마음에 상할 때까지 먹지도 못한다.

제목은 영화의 두 가지 주제의식을 모두 담고 있다. 뜨개질은 소수자가 차별을 견뎌내는 나름의 생존 방식이자, 평범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연대감을 상징한다.

이쿠타 토마는 굽 높은 구두와 노란색 원피스 차림은 물론, 앉아있는 자세와 컵을 잡는 손의 모양새까지 트랜스젠더 여성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복잡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가키하라 린카의 연기 역시 부족함이 없다.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테디심사위원상을 받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16일 개봉.

[사진출처 : 디스테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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