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 위기 베네수엘라…국제유가 폭락에 美제재로 ‘결정타’

입력 2017.11.16 (03:27) 수정 2017.11.16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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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베네수엘라의 국가 부도(디폴트, 채무불이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국제 금융계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전날 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인 베네수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제한적 디폴트'(RD·Restricted Default)로 강등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베네수엘라의 장기 외화표시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CC에서 '선택적 디폴트'(SD·Selective Default)로 두 단계 내렸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정치적 혼란과 함께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총부채가 1천500억 달러(약 167조3천억 원)로 불어났으나 보유 외환은 1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베네수엘라는 연말까지 14억7천만 달러, 내년에는 80억 달러의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내년에 외화 보유액이 24억 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신용평가사들은 이자 상환 만기를 지키지 못할 채권이 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국가부도 위기, 국제유가 폭락 속 미국 제재가 결정타 =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 경제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뒤덮기 시작한 것은 국제유가가 폭락한 2014년부터다.

베네수엘라는 재정 수입의 90% 안팎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가졌다. 내수 기반이 취약해 대부분의 식량, 생필품, 의약품 등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국가부도 위기는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거론됐다. 지난 2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대외 채무 재조정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베네수엘라의 국가부도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그간 경제난의 원인을 중남미 사회주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미국 제국주의의 음모로 돌려왔다. 미국과 결탁한 국내 우파 보수 세력이 결탁해 벌인 태업 등과 같은 경제전쟁 탓에 자국 경제가 곤궁에 빠졌다고 주장해왔다.

베네수엘라는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쿠바에 석유를 무상 수준으로 지원하는 등 중남미 좌파 국가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면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이권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고, 미국이 자신의 앞 마당인 중남미에서 좌파세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게 미국의 '복심'이라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인식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국가부도 위기의 결정타는 미국이 날렸다. 미국은 지난 8월 자국 금융기관이나 개인이 베네수엘라와 새로 금융거래하는 것을 제한하는 금융제재를 가했다. 앞서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국영 석유 회사 페데베사(PDVSA) 경영진과의 금융거래도 제재했다.

중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는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에 타격을 주려면 칠레 경제가 비명을 지르도록 하면 된다는 리차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명령이 지금의 베네수엘라가 겪는 상황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좌파정권의 '퍼주기식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정책과 인재 유출이 베네수엘라의 국가부도 위기에 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친시장주의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나온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집권한 1999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떠난 국민은 200만 명에 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석했다. 풍부한 석유자원만 믿고 무상교육·의료·주택보급 등 과도한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바람에 성장의 주역이 될 중산층 자녀 등 고급 인재가 미국과 유럽 등지로 유출됐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베네수엘라, 러시아 채무조정에 숨통 트여…국민 생활고 가중될 듯
국제신용평가기관이 잇따라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9년과 2024년 만기도래하는 채권의 이자 2억 달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벼랑 끝으로 몰린 베네수엘라는 손을 내민 러시아 덕에 숨통이 트였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날 베네수엘라가 러시아에 지고 있는 31억5천만 달러(약 3조5천억 원) 상당의 국채 상환을 재조정하기로 합의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본격적인 채무조정 협상에 앞서 전통적인 사회주의 우방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에 공을 들여왔다. 러시아와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주요 채권국으로 각각 80억 달러와 280억 달러의 채권을 갖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중국과도 협상을 진행 중이라 조만간 유리한 결과물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의 노력에도 국가부도 위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베네수엘라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 중 70%는 북미 지역에 있고, 나머지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보유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가 새로 융자를 받거나 기존 채무를 다른 조건으로 갱신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이 채무조정 협상을 주목하는 가운데 채권자들이 베네수엘라 제재 대상자들과 함께 새로운 채무조정 결과를 내놓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부도 위기 속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외채 상환에 더 많은 외화를 쓰는 대신 가뜩이나 부족한 수입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어 국민의 생활고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수출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지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마두로 정권의 입지가 국가부도 위기로 공고해질 전망이다. 마두로 정권의 복지정책 시혜를 입은 상당수 중하층 서민의 경우 반미 구호 아래 더 결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야권은 부정선거 탓에 최근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다고 주장했지만, 야권 일각에서는 민심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야권 주지사 5명 중 4명이 국가 최고 헌법기관인 친정부 성향의 제헌의회 앞에서 취임선서를 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헌의회가 마두로 정권의 독재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비판해왔다.

[사진출처 : 브라질 일간지 폴랴 지 상파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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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폴트’ 위기 베네수엘라…국제유가 폭락에 美제재로 ‘결정타’
    • 입력 2017-11-16 03:27:35
    • 수정2017-11-16 04: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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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베네수엘라의 국가 부도(디폴트, 채무불이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국제 금융계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전날 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인 베네수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제한적 디폴트'(RD·Restricted Default)로 강등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베네수엘라의 장기 외화표시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CC에서 '선택적 디폴트'(SD·Selective Default)로 두 단계 내렸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정치적 혼란과 함께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총부채가 1천500억 달러(약 167조3천억 원)로 불어났으나 보유 외환은 1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베네수엘라는 연말까지 14억7천만 달러, 내년에는 80억 달러의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

내년에 외화 보유액이 24억 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신용평가사들은 이자 상환 만기를 지키지 못할 채권이 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국가부도 위기, 국제유가 폭락 속 미국 제재가 결정타 =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 경제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뒤덮기 시작한 것은 국제유가가 폭락한 2014년부터다.

베네수엘라는 재정 수입의 90% 안팎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가졌다. 내수 기반이 취약해 대부분의 식량, 생필품, 의약품 등을 수입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국가부도 위기는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거론됐다. 지난 2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대외 채무 재조정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베네수엘라의 국가부도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그간 경제난의 원인을 중남미 사회주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한 미국 제국주의의 음모로 돌려왔다. 미국과 결탁한 국내 우파 보수 세력이 결탁해 벌인 태업 등과 같은 경제전쟁 탓에 자국 경제가 곤궁에 빠졌다고 주장해왔다.

베네수엘라는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쿠바에 석유를 무상 수준으로 지원하는 등 중남미 좌파 국가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면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이권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고, 미국이 자신의 앞 마당인 중남미에서 좌파세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게 미국의 '복심'이라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인식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국가부도 위기의 결정타는 미국이 날렸다. 미국은 지난 8월 자국 금융기관이나 개인이 베네수엘라와 새로 금융거래하는 것을 제한하는 금융제재를 가했다. 앞서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국영 석유 회사 페데베사(PDVSA) 경영진과의 금융거래도 제재했다.

중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는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에 타격을 주려면 칠레 경제가 비명을 지르도록 하면 된다는 리차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명령이 지금의 베네수엘라가 겪는 상황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좌파정권의 '퍼주기식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정책과 인재 유출이 베네수엘라의 국가부도 위기에 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친시장주의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나온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집권한 1999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떠난 국민은 200만 명에 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석했다. 풍부한 석유자원만 믿고 무상교육·의료·주택보급 등 과도한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바람에 성장의 주역이 될 중산층 자녀 등 고급 인재가 미국과 유럽 등지로 유출됐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베네수엘라, 러시아 채무조정에 숨통 트여…국민 생활고 가중될 듯
국제신용평가기관이 잇따라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9년과 2024년 만기도래하는 채권의 이자 2억 달러를 지급하기 시작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벼랑 끝으로 몰린 베네수엘라는 손을 내민 러시아 덕에 숨통이 트였다.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날 베네수엘라가 러시아에 지고 있는 31억5천만 달러(약 3조5천억 원) 상당의 국채 상환을 재조정하기로 합의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본격적인 채무조정 협상에 앞서 전통적인 사회주의 우방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에 공을 들여왔다. 러시아와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주요 채권국으로 각각 80억 달러와 280억 달러의 채권을 갖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중국과도 협상을 진행 중이라 조만간 유리한 결과물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의 노력에도 국가부도 위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베네수엘라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 중 70%는 북미 지역에 있고, 나머지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보유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가 새로 융자를 받거나 기존 채무를 다른 조건으로 갱신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이 채무조정 협상을 주목하는 가운데 채권자들이 베네수엘라 제재 대상자들과 함께 새로운 채무조정 결과를 내놓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부도 위기 속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외채 상환에 더 많은 외화를 쓰는 대신 가뜩이나 부족한 수입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어 국민의 생활고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수출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지출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마두로 정권의 입지가 국가부도 위기로 공고해질 전망이다. 마두로 정권의 복지정책 시혜를 입은 상당수 중하층 서민의 경우 반미 구호 아래 더 결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야권은 부정선거 탓에 최근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다고 주장했지만, 야권 일각에서는 민심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야권 주지사 5명 중 4명이 국가 최고 헌법기관인 친정부 성향의 제헌의회 앞에서 취임선서를 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헌의회가 마두로 정권의 독재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비판해왔다.

[사진출처 : 브라질 일간지 폴랴 지 상파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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