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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공감토론] IMF 구제금융 20년 대한민국의 과제는?
입력 2017.11.22 (16:48) KBS공감토론
김동원 초빙교수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용하 교수 :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영학과
박상인 교수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이병훈 교수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 백운기 / 진행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S <공감토론> 백운기입니다. 11월 21일, 오늘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지 딱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에 자랑스러운 역사도 많지만 치욕스러운 순간도 적지 않은데 어쩌면 우리의 경제주권이 IMF로 넘어간 20년 전 오늘이 우리 현대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나라 빚을 갚기 위해서 집안에 있는 금을 아낌없이 모아서 빚을 갚았습니다. 어느 나라보다 빨리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치욕의 순간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어낸 우리 국민입니다. KBS <공감토론>은 오늘 IMF 20년을 맞아서 IMF 체제가 우리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진단해 보고, 또 우리 경제의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이슈다운 이슈! 토론다운 토론! KBS <공감토론> 시작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오늘 함께 하실 패널 분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동원 초빙교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 김동원
안녕하십니까?

□ 백운기 / 진행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지내신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김용하 교수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김용하
네, 안녕하십니까?

□ 백운기 / 진행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계셨죠?

□ 김용하
네, 안녕하십니까?

□ 백운기 / 진행
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상인
네, 안녕하세요.

□ 백운기 / 진행
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 함께 하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이병훈
네, 안녕하세요.

□ 백운기 / 진행
네 분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인사 서로 나누시고 시작할까요?

□ 패널
반갑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오늘 참 돌아보기에, 아까 앞부분에 제가 오프닝하면서도 좀 가슴이 메어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지금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를 수 있죠. 벌써 20년 전이니까요. 그때 태어난 애들은 이제 20살 성년이 됐고 돈이 없어서 유치원도 그만 둔 애들이 이제 청년이 됐습니다. 그 애들은 왜 유치원 다니다가 그만뒀는지 잘 모를 텐데. 김동원 교수님, 그때 당시 생각하면 어떤 게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 김동원
아마 국민들이 외환위기의 상처를 기억하시는 것은 아마 눈물의 비디오라고,

□ 백운기 / 진행
네, 제일은행 식구들.

□ 김동원
네, 제일은행 직원들이 해고가 돼 가지고. 그러니까 그게 98년 2월에 나온 거거든요. 나온 건데 아까 유치원을 왜 그만뒀는지도 모르고 그만뒀다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98년 11월에 대비해 가지고 99년 2월까지 우리 임금근로자가 169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4인 가족으로 따지면 피해를 받은 국민이 거의 한 700만, 800만 된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우리 현대사에 있어 가지고 아마 경제적으로는,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정말 그 어려운 질곡을 넘었다는 게 이 나라가 정말 대단한 나라고, 네, 그렇습니다.

□ 백운기 / 진행
그 전만 해도 그렇게 노숙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노숙자가 그렇게 많이 늘어났죠. 이병훈 교수님은 어떤 장면을 떠올리십니까?

□ 이병훈
아까도 잠깐 두 가지 장면이 오버랩 됐는데요. 말씀하셨던 금 모으기, 저도 아마 그때 동참을 했을 것 같고 많은 국민들이 참, 우리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국민들의 저력이 바탕이 됐다는 그런 돌아봄이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제가 공부하는 게 노동, 노사관계다 보니까 98년도 5월에서 7월까지 현대자동차의 현장을 저는 주로 많이, 그 문제를 첫째 연구도 그렇지만 아무튼 현장에 부딪치는 문제, 어떻게 중재하거나 하는 식의 일에 관여가 되게 되는데 그 당시에 이전에 없었던 고용조정을 둘러싼 노사 간의 아주 전쟁 같은 그런 상황이 벌어졌던 일도 돌아보게 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박상인 교수님은 실례지만 그때 뭐 하고 계셨어요?

□ 박상인
네, 저는 97년에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던 시기였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돈 벌고 계실 때니까 괜찮네요. 그때 공부하고 있었던 학생들은 막 돌아오고 난리 났죠.

□ 박상인
네. 그 당시 유학생들 굉장히 어려워서 말씀하신 것처럼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 하루아침에 환율이 거의 2배가 되니까 집에서 송금을 하는 것도 어려워진 집이 많았었고 또 장학금을 받았던 분들도 갑자기 원화로 이게 돈을 달러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서 유학생들이 굉장히 어려웠던, 국내에서 많은 실업문제라든지 또 가정해체, 이런 어려움이 있었던, 그것하고 비교는 될 수 없겠습니다마는, 상당한 충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학사회에서.

□ 백운기 / 진행
그럼 미국 대학에 계실 때인데 주변에 이렇게 같이 가깝게 지내던 학생들 막 돌아가고 그런 모습 많이 보셨겠네요.

□ 박상인
글쎄요. 돌아가고 하는 것은 사실 휴학 같은 것을 하고 일단 돌아가고 하는 경우는 있었고요. 그런데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 그 당시에 또 있었던 미국의 교민들이 또 유학생들을 돕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고 하는 모습도 있었고요. 그래서 어려울 때 상당히 동포애라는 것을 좀 느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은 우리 청취자들한테 이런 말씀 소개해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아드님이 아주 유명한 아이돌입니다. 그런데 지금 혹시 몇 살입니까?

□ 김용하
한 27살입니다.

□ 백운기 / 진행
그러면 그때 IMF 때는 7살쯤 됐었군요.

□ 김용하
네, 그렇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애 키우는 데 그때 힘드신 것은 없었습니까?

□ 김용하
네, 그 당시에 다 힘들었으니까요. 그나마 저는 월급을 받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팍팍해진 회사라든지 또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굉장히 긴장되고 조심스럽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밥줄이 끊기지 않고 겨우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백운기 / 진행
교수님은 그때 IMF 생각하면 어떤 점이 떠오르십니까?

□ 김용하
뭔가 약간, 그동안 무한히 성장할 줄 알았는데 이제 그런 성장이라는 것이 항상 끝없이 가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과 함께 미래에 대한 절망, 이제는 끝인가, 이런 국민들의 좌절, 이런 것들이 온 사회, 온 부분에 다 퍼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극복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감 같은 것은 생겼는데, 그리고 그 뒤에 사회가 변한 것 같아요. 그 전 IMF라는 게 단순히 짧은 하나의 사건일 수 있는데 그 전하고 그 후는 우리 대한민국이 달라진 나라가 됐다. 그래서 그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완전히 극복했는가 하는 부분에서 이제 좀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IMF 20년을 맞아서 네 분 패널 당시 상황을 한 번 되짚어보는 말씀을 들어봤고요. 또 소감도 함께 들어봤는데 오늘 <공감토론>은 이렇게 한 번 진행을 해 보겠습니다. 당시에 정말 우리가 미리 알 수 없었는가. 전조증상 같은 것은 없었을까. 그런 게 있었다면 막았으면 이런 위기를 안 겪었을 수도 있지 않는가. 왜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전에 조그마한 여러 가지 전조증상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데 분명히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런 것을 왜 놓쳤는지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고요. 그리고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 우리에게 남긴 상처, 부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한 번 그런 부분도 살펴보고,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과연 괜찮은지 한 번 진단하면서 일부에서는 또 이런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또 올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암에 걸려 있다,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그런 부분 한 번 짚어보는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이런 IMF로 가는 그런 어려운 상황, 왜 우리가 막지 못했는가, 김동원 교수님, 우리가 전혀 알 수가 없었을까요?

□ 김동원
금융위기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이 위기는 겉으로 드러난 것은 쌍둥이 위기라고 우리가 얘기를 하는데, 그러니까 ‘금융위기 + 외환위기’ 그럼 왜 이것이 일어났는가. 더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실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이라고 얘기하는 정실 자본주의. 즉, 다시 말하면 그 정실 자본주의라는 것이 그 본질은 바로 우리 개발체제의 붕괴죠. 외환위기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개발체제의 붕괴였고 그렇기 때문에 큰 그런 체제가 이렇게 무너지는데 조짐이 없을 리가 없죠.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위기를 한 번도 제대로 대응해 본 나라가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게 역설인데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위기는 오고 나서야 알게 된다.

□ 김동원
오고 나서야 압니다. 그런데 우리도 돌이켜보면 그 단초가 뭐냐 하면 96년에 반도체값이 대폭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경상수지 적자가 대폭 늘어났어요. 그리고 97년 들어와서 2월 달에 한보사태가 터졌죠. 한보사태가 터지고 해서 그로부터 쭉 내려가면서 2월, 3월, 4월 나오면서 그룹사가 30대 그룹 중에 6개가 매달 줄을 서서 터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아마 그 심지에 불이 붙어서 타올라 왔는데 여기에 7월 달에 태국의 바트화가 대폭락을 합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아시안 크라이시스가 일어나기 시작을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정부가 그때부터 비로소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을 했는데 10월 달에 홍콩 증시가 다시 대폭락을 합니다.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기 시작을 했고 그때부터는 결국 아까 말씀드린 불과 한 달 사이에 완전히 급격하게 위기가 타올랐죠.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역사적으로 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위기를 막지 못했냐. 큰 이유가 뭐냐 하면 권력자들이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이병훈 교수님, 그런 얘기도 제가 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이 많이 무너뜨렸잖아요. 경복궁도 철거하고 또 안가도 없앴는데 안가를 없애면서 시중에 돌아다니는 민심의 소리를 들을 기회를 차단한 것도 이유가 하나가 된 측면이 있다고 누가 얘기를 하더라고요.

□ 이병훈
글쎄요. 그때나 지난해 우리 촛불까지 이 사회 대통령제는 그냥 대통령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돼서 구중궁궐이라고 또 누구는 표현하더라고요. 대통령이 마치 예전에 임금처럼 들어앉게 되면 거기 소통이니 뭐를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현행과 같은 대통령 중심의 구조가 권력이 너무 집중이 되고 또 그를 둘러싼 몇 사람의 측근들이나 국정을 상의하거나 국정을 운영하는 틀이 되다 보면 이런 위기에 대해 어느 시기에 시그널이 가더라도 그런 것들이 국정 중심에 있는 대통령이나 아니면 의사결정에 있어서 그러한 논의가 그 당시에 제대로 작동이 안 됐다는 얘기가 되는 거고요. 또 그뿐만 아니라 96년, 97년도에 많은 일들이 경제적으로도 벌어졌고, 그러니까 저희들이 사후적으로 평가할 때는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를 만든 대통령 아니에요. 그것이 WTO 하면서 앞장서서 OECD도 가입하고 그리고 또 우리 사회의 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런 상황 속에서 노동개혁을 한다면서 내부적으로는 또 총파업이라는 그런 사회적인 큰 갈등에 봉착을 하게 되고 이런 일들이 쌓여나가면서, 그 시기가 더군다나 레임덕이라는 상황까지 맞물리다 보니까 아까 말씀하셨던 여러 경제적인 악재, 그것은 그냥 악재가 아니라 위기적인 상황들이 도래하는데 대통령이 뭔가 중심을 잡고 또 대통령이 여러 가지 사항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식의 상황보다는 아무튼 레임덕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더욱 더 군중들 안에 숨게 되는 그런 상황들이, 아무튼 돌아보면 이런 식으로 우리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경험했다고 하는데 몸이 끊어지고 목숨을 위협 받을 만한 그런 엄청난 위기를 우리가 겪게 된 것이죠.

□ 백운기 / 진행
김용하 교수님, 그때 알람이 울리긴 울렸을 것 같은데요.

□ 김용하
네. 사실은 알람은 진작에 울렸죠. 왜냐하면 1987년, 88년에 두 자리 수 성장을 하던 시기에서 그 뒤에 민주화, 그다음에 노동시장이 굉장히 자유화되고 그리고 그다음에 임금이 많이 올라가고 이런 과정에서 뭔가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90년대 초반에 이미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폐쇄경제가 아니고 개방경제 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제경쟁력이거든요. 그런데 OECD에 가입하면서 나라 문은 활짝 열어놓고 경쟁력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고, 그런 상황 하에서 외부의 금융이나 외환 쪽에 있어서의 위기 이전에 산업구조적인 그런 노동시장이나 이런 측면에 있어서 취약한 부분을 고치지 못한 것이 이런 IMF라는 계기를 통해서 폭발적으로 일어나 버린 거죠. 그래서 이것은 저는 어떻게 보면 구조적으로 쭉 불균형한 그 상황이 축적돼 왔는데 그 축적을 너무 방만하게 그리고 또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상황 하에서 갑자기 뒤통수 맞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가 지진이 갑자기 온 게 아니라 굉장히 많은 압력이 쌓여 가지고 생기듯이 마찬가지로 그 이전에 쭉 그런 압박이 압력이 있어 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혹시 어떤 전조가 있었는데 우리가 놓쳤다고 생각하십니까?

□ 박상인
앞에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요. 사실은 제 생각에는 97년에 경제위기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저희가 회피하기 어려운 위기였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저런 전조가 있었죠. 그런데 그 당시에 보면 우리가 60년대부터 해서 고도성장을 했습니다. 정부 주도 재벌 중심의 고도성장을 했고요. 그리고 물적 자본에 투자를 하면서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저임금을 기초로 해서 물건을 수출하는 그런 성장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지속될 것이라고들 흔히들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런 기대를 가지기가 쉬웠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당시에 많은 경고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경고를 귀 기울이기에는 우리의 과거의 성공 경험 자체가 너무나 강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경제위기가 아니었는가, 라는 것이고요. 더 중요한 것은 97년 위기 이후에 우리가 충분히 교훈을 얻고 지금은 우리가 준비되었는가, 사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이 되고요. IMF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들, 아까 김동원 교수님께서 잘 설명을 해 주셨는데 아마 IMF 외환위기 이후에 IMF 스텝들하고 국내 학자들이 2001년 정도에 학술대회를 같이 한 게 있고 책을 낸 게 있습니다. 거기 보면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것이 뭐냐 하면 구조적인 요인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것은 뭐냐 하면 과잉투자, 성장률 아까 말씀하셨는데 사실 경제성장률이 우리 70년대, 80년대 같이 두 자리가 계속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성장을 하게 되면.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데 성장률 떨어지는 것을 메꾸기 위해서 과잉투자를 굉장히 많이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GDP의 한 37% ~ 38% 투자하는 것은 굉장한 과잉투자였는데 그게 지속되었고요. 그런 게 한보철강이라든지 잘못된 투자들이 터지기 시작을 한 것이고 또 재벌들이 경영권 방어 때문에 은행에 과도한 부채경영을 했었던 거죠. 레버리지가 굉장히 높은 상황에서 경제가 나빠지면 하방리스크가 굉장히 커지는 것이고 또 재벌체제라는 특성 때문에 기업 하나가 아니고 기업집단이 같이 망하게 되는 그런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을 했었다는 것이고요. 그런 구조적인 문제점들은 결국 회피할 수 없었고 어떤 식이든 한 번 터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

□ 김동원
저는 아까,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를 추진했는데 우리가 위기를 불러들이는 큰 잘못을 무엇을 했냐. 물론 개발체제의 붕괴라는 게 있습니다마는, 그럼 개발체제가 왜 무너졌냐.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61년에 세운 베를린 장벽이 89년 11월인가에 붕괴를 하죠. 그래서 양극체제가 끝나고 소위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 미국이 금융무역에 걸쳐 가지고 대대적인 글로벌라이션 전략을 추진을 했다고요. 그러니까 거기에 편승해서 우리 정부도 소위 세계화를 추진했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세계화에서 우리가 보이는 이익만 좇는데 바빴지, 그래서 외국 돈을 빌려다가 기업 확장하고 막 이랬지, 이 세계화가 품고 있는 위험이 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간과했던 겁니다. 그리고 특히 금융 면에서 이게 세계화를 통해서 국제금융시장에 자금이 막 넘치니까 돈을 꾸기가 훨씬 쉬워졌죠. 그러니까 이것을 가져왔을 때 이것이 얼마나 큰 위험이 있는가 하는 것을 기업들도 몰랐고 금융기관들도 잘 몰랐고 심지어는 정부조차도 시대의 큰 흐름을 잘못 읽었던 것이 저는 가장 큰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당시 얘기를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을 해 주셨는데 앞으로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당시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좀 여쭤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고 지금 김동원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잘 될 것만 생각하고 잘못될 것에 대한 그런 분석이 부족했다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또 김용하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그런 측면도 있을 거고. 그런데 IMF라는 거대한 위기가 닥쳐오는 순간인데 우리가 분명히 이런 것쯤은 캐치를 했어야 될 건데 정말 이것만은 놓치면 안 되는데 놓쳤던 것,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병훈 교수님 먼저 말씀해 주시죠.

□ 이병훈
글쎄, 저는 경제학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 내지는 금융 외환위기를 제가 공부하는 사회학적인 논의라 한다면 앞서 말씀드린 권력 자체가 새로운 정부의 첫해 내지는 초기에 이런 위기가 온다고 한다면 나름대로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서 그런 위기라 하더라도 뭔가 대응이라는 것이 좀 더 힘을 받아서 사전에 예방하든 그런 조치들이 잘 대비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데 그 시기가 하필이면 YS정권의 말기였고 그리고 YS정권이 96년에 그 당시 국정원법하고 노동 관련법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전연, 그러니까 총파업이라든가 시민사회의 큰 하나의 반대투쟁을 겪으면서 거의 일을 못하는 지경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 지금 말씀하신 경제의 여러 재벌그룹들이 연이어 부도 사태가 나고, 그러니까 그 이전의 상황이라는 것은 방만경영이라든가 외환 내지는 세계화가 개방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이런 위험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하는 그런 정부라든가 여러 경제주체의 문제도 되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런 상황적인 그런 이슈도 우리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 백운기 / 진행
김용하 교수님, 어떤 시그널을 놓친 것을 가장 크게 꼽으실까요.

□ 김용하
저는 아까 우리 박상인 교수님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뭔가 환경이 변화하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글로벌화되고 경쟁이 강화되고 나름대로 또 우리나라의 우리나라 그 나름대로의 새로운, 과거의 고도성장체계에서 성장이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노사가 또 협력해야 되고, 이런 새로운 변화가 굉장히 요구되고 있었는데 요구되고 있는 그런 흐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냥 방치돼 있었다, 이런 것이 결국은 그냥 폭발시키게 만든 원인이 됐다는 거예요. 우리가 개혁이라는 게 그런 계기가 있어야 또 개혁이 될 수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은 그 전에 우리가 스스로 구조변화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노사가 협력하고 뭔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가기 위한 노력을 했더라면 아마 IMF 위기가 왔다 하더라도 좀 더 약하게 왔지 않겠는가 생각을 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박상인 교수님, 그런데 돌이켜보면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기 이틀 전에, 그러니까 11월 19일에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어요. 이런 것을 보면 뭔가 좀 알았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은 걸까요?

□ 박상인
네, 이틀 전이니까 사실 너무 늦었고요. 이것은 이때 11월 19일 날 대책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이 들고요. 거의 막을 수 없는 단계에서 나온 대책이었고요. 전조가 어떤 거냐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지금도 저희가 과거의 경험에서 눈여겨봐야 될 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첫 번째는 과잉투자 문제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보면 GDP의 한 30% 수준의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장기성장률을 보면 그 당시에 YS정부 때 한 5%에서 4% 이렇게 가고 있었고요. 지금은 한 2%대라고 하는데 지금도 굉장히 과잉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 이게 왜 과잉투자가 되느냐 하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식의 투자보다는 경기부양식 투자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건설이라든지 그런 측면에서 과잉투자가 항상 전조가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 하나는 기업들의 부실화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 보면 대우조선부터 시작해서 조선해양부터 해서 많은 산업들이 지금 부실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부실화가 또 은행의 부실로 전이되기 시작하는 그게 상당히 나쁜 시그널인데 우리도 지금 또 유사한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들, 이게 구조조정이 사실 원활히 안 되니까 퇴출돼야 될 기업들이 계속 살아남고 그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은행이 대출하면서 부실화가 이루어지고 자꾸 이렇게 부실이 커지는 레버리지가 자꾸 커지는 식의 정책들을 지금 하고 있는데요. 그 당시에도 했고 지금도 저는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려면 이게 대책이라는 것이 정책적인 대응, 단기적인 대응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즉, 원활한 구조조정들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되고 경제에 오는 충격들이 그때그때 흡수가 될 수 있는 플렉시블한 경제가 돼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개혁이나 노동개혁 같은 것들이 사실 필요한 시점이고 그 당시에도 그런 구조적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한 방을 맞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 말씀 듣겠습니다.

□ 김동원
외환위기가 일어나고 나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마는, 그중에서도 국민들을 가장 실소하게 하는 이야기가 소위 우리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 유명한 이야기죠. 당시 부총리께서 그런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까 1월 달에 한보그룹이 터지고 3월 달에 삼미, 4월 달에 진로, 5월 달에 대농, 6월 달에 한신공영, 드디어 기아가 7월, 이렇게 도미노처럼 타들어 가는데도 그 당시에 우리 경제 수뇌부에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대책을 내서 시장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아까 우리 박 교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거죠. 그때 우리가 정말 펀더멘털이 뭐냐, 뭐가 튼튼한 거냐, 그것에 관해서 정말 근본적으로, 아까 우리가 과신했다고 하는데 결국은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 하면 시대에 대한 자성이 없었던 거죠. 아까 한 방 맞았다고 그랬는데 왜 맞을 수밖에 없었냐. 이 개발체제라고 하는 것을 60년대부터 이렇게 끌어오고 나서 그 많은 문제가 누적돼 있었는데도,

□ 백운기 / 진행
알겠습니다.

□ 김동원
그것을 힘이라고 펀더멘털이라고 믿고 반성하지 않았다는 거죠.

□ 백운기 / 진행
이제 말씀하신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IMF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20년이 흘렀습니다. IMF 이후에 우리 사회 어떤 것이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보시는지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병훈 교수님, 뭐가 제일 크게 달라졌나요?

□ 이병훈
저는 앞서도 제 소개를 했을 때 노동 공부하는 사람이니까요. 노동세계가 엄청나게 변화했죠. 아까 김 교수님이 말씀하셨나요? 전과 후가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IMF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평생직장 신화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나오든 아니면 고등학교 나오든 해서 직장을 가지면 본인이 자발적으로 이직하지 않는 이상 그 직장 내에서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때 되면 임금인상이 되고 승진하고 하는 평생직장의 신화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아주 하루아침에 다 무너졌죠. 정리해고, 명예퇴직, 희망퇴직, 그런 식으로 그 당시에 정규직의, 앞서 말씀하신 대기업부터 그리고 또 일부 기업들은 아예 기업이 부도나는 상황까지, 은행 같은 경우 다 폐쇄하는 상황까지 겪게 됐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IMF의 이행각서로 4대 부문의 개혁이 추진이 되고 그중의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화로 시행된 것이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제의 법제화가 됐는데 그 법 두 개, 하나는 법 조항이고 하나는 법이지만 그것은 그 법으로 해 가지고 노동시장이 확 바뀐 게 아니고 기업들 그리고 노동시장의 정서를 바꾼 것이죠. 하다 보니까 그 이후에 소위 평생직장시대에서 평생직업시대라고 바뀌면서 한마디로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일자리의 안정성이 급격히 사라지고 소위 고용불안,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하는 그런 노동 상황 자체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그러면서 경제위기는 벗어났지만 노동사회에서는 또 크나큰 문제를 심은 그 출발점을 98년으로 삼게 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장 큰 변화로 꼽으셨는데 공감이 갑니다.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어떤 것을 꼽으시겠습니까?

□ 박상인
저도 노동시장 공감하고요.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씀하신 조기퇴직, 조기퇴직하고 나서 자영업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자영업이 굉장히 종사자가 많아지고 수익률이 굉장히 낮고 자영업 문제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는 거고요.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또 파견근무노동자 이런 것 다 포함해서요. 비정규직 문제가 생기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문제가 생기고요. 그리고 대기업 중소기업의 격차도 더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결국은 임금소득 양극화로 나아가고 소득 양극화, 사회 양극화로 발전돼 갔다, 라는 게 IMF가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상처고요. 또 말씀하신 것처럼 위기 시에 구조조정을 위해서 도입됐던 노동 관련법들이 하루빨리 정상화됐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굉장히 아쉽고요. 오히려 또 한편으로는 말씀드린 것처럼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 같은 것들은 오히려 해소가 되지가 않았다.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던 부분들은 사실 한 2001~2년부터 지금까지 경제력 집중은 더 강화되면서 근본적인 기업 구조조정 문제는 사실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또 안 된 측면에서의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양극화 꼽아주셨고요. 김동원 교수님께서는 어떤 점을 꼽으시겠습니까?

□ 김동원
저는 우리가 큰 틀로 봤을 때 우리가 96년을 예를 들면요. 수출이 우리 GDP의 25%였습니다. 그러니까 수입까지 다 해도 수출이 우리 GDP의 53%였거든요. 그때도 대외의존도가 높다고 정부가 아주 비판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아까 우리가 이 위기를 어떻게 빨리 극복했냐. 우리가 바로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서 결국은 극복을 했고 그런 결과로 대외의존도는 급속하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이 되면 수출의존도가 35%, 수출입을 하면 68%로 올라가고 2010년이 되면 수출이 GDP의 거의 50%에 달합니다. 2012년 되면 수출은 56, 수출입 합치면 GDP의 110%가 됩니다. 그러니까 96년하고 2012년하고 비하면 수출의존도나 수출입의존도가 대외의존도가 배가 된 거죠. 저는 이게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진 것.

□ 김동원
네. 배로 높아진 거고 거기에서 생기는 문제가 바로 뭐냐 하면 아까 그런 소위 해외에 수출을 하는 교역재 부분하고 비교역재 부문하고가 갈라지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양극화라고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교역재 부분은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해서 물건을 파니까 더 빨리 규모가 커지고 이것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양 부문 간에 임금 격차도 커지고 생산성 격차도 커지고 돌이킬 수 없는 양극화를 지금 낳게 됐고 결국은 아까 변했냐고 그랬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쌍둥이 적자라고 그랬죠. 외환이나 금융, 이 부분은 엄청나게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지붕은 우리가 갈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개발체제라는 지붕은 우리가 그대로 지난 10여 년을 끌어왔다고요. 저는 그런 면에서는 뭐가 달라졌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만약에 정말 달라졌다면 최순실 사태가 일어났겠습니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결국 최순실 사태가 일어났고 정권이 무너진 거거든요.

□ 백운기 / 진행
무슨 말씀인 줄은 알겠는데 이런 달라진 변화 쪽으로 논점을 좀 좁혀보겠습니다. 아직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 같은데 IMF 위기 이후 20년 동안 가장 달라진 점이 뭔가 하는 질문을 제가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병훈 교수님께서는 노동시장의 변화 꼽아주셨고 박상인 교수님께서도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그리고 김동원 교수님께서는 대외의존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는 점 지적을 해 주셨는데, 역시 관심분야 또 전공에 따라서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신 것 같습니다. 김용하 교수님께서는 어떤 점을 꼽으시겠습니까?

□ 김용하
저는 대한민국 공동체가 붕괴가 됐다. 과거에는 기업주하고 근로자가 한 몸이었다는 생각이, 아까 우리 평생직장도 그런 전제에서 나오는 거죠. 그리고 가계와 기업이 선순환구조가 있었다. 그런데 IMF를 거치면서 가계든 기업이든 이제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자가 도생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자기 스스로 살아야지 정부도 믿을 수 없고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 가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업은 예를 들면 도산될 데는 도산됐죠. 그렇지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글로벌 기업이 됐습니다. 삼성, 현대, 이런 세계적인 기업이 된 거죠. 정말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춘 거죠. 반면에 그런 경쟁과정에서 가계, 특히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라든지 저임금 근로자라든지 비정규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있는 분들은 각자도생 상태에서 경쟁에서 밀리고 그 과정에서 양극화라는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불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공동체가 흔들리는 거죠. 이 흔들리는 것이 바로 작년에 촛불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사실은 보수정부 9년간에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치유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되는데 여전히 과거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서 성장주도, 성장 중심,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하는데 저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말보다는 성장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함께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냥 경제적 성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핵심성장이 요즘 새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제 성장도 해야 되죠. 그렇지만 성장 못지않게 우리 대한민국이 함께 같이 살아야 된다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강조하는 그런 정부가 들어섰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더 중요하게 강조를 해야 되는데 여전히 성장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부분은 다소 대한민국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현재의 문제점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또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보는지 짚어봤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변화 또 우리에게 남긴 상처, 이런 것을 꼽아주셨습니다. 참고로 한국개발연구원 KDI가 외환위기 20년을 맞아서 설문조사한 내용이 있는데 잠깐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외환위기가 몰고 온 부정적인 영향 어떤 것을 꼽느냐, 가장 많은 응답자가 '소득 빈부 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를 꼽았습니다. 아까 박상인 수님께서도 양극화 지적해 주셨는데요. 31.8%로 가장 많았고, '대량실직, 청년실업 이런 실업문제가 더욱 심화됐다'가 28.0%였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증가한 것' 그리고 '공무원·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게 된 것' 이런 부분들도 많이 꼽아줬고요. 긍정적 영향으로는 '구조조정을 통한 대기업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경쟁력이 높아졌다'가 24.5%, '아끼고 절약하는 소비문화가 확산된 것' 23.1%, 그리고 '기업경영과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진 것' 22.7%, 이렇게 꼽혔네요. 참고로 이 조사는 KDI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선과 무선 혼용 조사했고요.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조사했습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입니다. 이런 것들 꼽아주신 것 대체로 비슷한데요. 긍정적인 면도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어떤 게 있을까요?

□ 김동원
네, 그 조사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위기를 불러들인 이유가 글로벌라이션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위험이 뭔지를 우리가 몰랐다. 그래서 혼이 났기 때문에 그 이후에 그 위험에 대해서 정부가 강력하게 금융개혁을 하고 또 우리가 공적자금을 투입을 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고 아직까지 여러 가지 부실기업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마는, 어쨌든 기업들도 이제는 오히려 돈을 너무 안 빌려가서 지금 문제가 될 정도로 해서 그런 면에서 우리가 과거와 같은 이런 식의 위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만큼 우리가 왔다, 그런 점이 제가 보기에는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박상인 교수님께서는요.

□ 박상인
네. 사실 저는 긍정적인 면은 많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더 많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상당히 아쉽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 같은 경우 생각해 보시면 대공황을 거치면서 뉴딜정책을 통해서 많은 노동문제, 사회문제, 기업지배구조라든지 아메리카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재벌에 대한 문제, 어쩌면 경제의 근본구조와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했고 사회가 정말 바뀌어서 그런 대공황이 빨리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어지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노력을 못했다는 게 정말 아쉽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것을 꼽으라면 외환보유고 우리가 많이 가지게,

□ 백운기 / 진행
신경 쓰게 됐고.

□ 박상인
네, 신경을 쓰게 됐다는 것. 금융부문은 여전히 관치금융에서 미흡합니다마는, 과거에 비해서는 금융부문이 그나마 좀 좋아진 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전체적으로 말씀 들어보면 혼난 만큼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이런 진단이신 것 같네요?

□ 박상인
네, 너무 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데에 단기적인 처방에만 급급했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처방을 같이 하는 그런 전략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그래요. 모든 일에 빛과 그림자가 있는데 외환위기가 우리한테 상처도 줬지만 또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 짚어보는데 또 조기졸업 했다고 우리가 긍지를 갖지만 그 부분도 또 그림자가 또 있습니다. 네, 김동원 교수님, 어떤 말씀.

□ 김동원
네, 우리가 돌이켜보면 아까 말씀한 금융이라든가 또는 기업의 건전성이라든가, 그러니까 우리는 외환위기를 말하자면 재무적인 측면에서는 훌륭하게 극복을 했습니다. 지금 외환보유고가 전 세계에서 9등이고 우리가 지금은 순채권만 약 한 4,500억 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는 아주 건강한 나라가 됐죠. 그런데 지금 지적하시는, 아까 미국 얘기를 하셨습니다마는, 우리가 근본적인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경제적인 국치를 당하고도 근본적인 우리가 안고 있는 시대반성이 없었다는 거죠. 이것이 결국은 지금까지 몰려와서 그것이 누적돼서 이것이 더, 아까 말씀드린 그런 글로벌라이션에 의한 양극화를 통해서 이것이 더 복잡해지고 더 꼬여서 결국은 그것이 말하자면 촛불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체제를 바꾸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러면 정말 여전히 시대를 제대로 반성하고 있냐,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지금은 긍정적인 부분을 꼽고 있는 순서니까요. 과제 부분에서 좀 더 다시 한 번 강조를 해 주십시오. 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두 분의 얘기를 한편으로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또 너무 비관적이거나 돌아보면서 너무 부정적인 얘기들이 되는 것 같아서, 저희들이 공부하다 보면 하나의 현상을 두고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상태를 진단할 때는 남들하고 견주는 식의 얘기도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얘기는 먼저 돌아가서 98년도, 90년대 여러 가지 논의를 할 때 그 당시에 논의가 된 게 우리가 ‘L’자형으로 이 위기가 굳어지는 게 아닌가, 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었어요.

□ 백운기 / 진행
‘L’자형이요.

□ 이병훈
그 얘기는 처박아서 바닥으로 계속 갈 거다, 라고 하는 상황이 이게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그런 것에 비추었으면 우리가 ‘V’자처럼 1년 만에 그냥 다 경제가 살아났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때 위기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못하면서 이후에 여러 가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다고도 얘기 되는데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여러 경제위기의 국가들, 중남미에도 여러 나라가 있고 또 유럽에도 지금 그리스니 있을 때 그런 나라들이 ‘L’자형으로 그냥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서 계속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에 비해서 우리가 금 모으기라든가 그 당시에 우리가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사회적 협약이라든가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저는 경제, 금융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나름대로 채무국가에서 채권, 그리고 기업들도 그만큼 투명해지고 그리고 지금도 그때 경험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를 테면 부채관리를 엄격하게 해 나가는 거라든가 그것들이 시간이 2년 지나다 보니까 또 다시 느슨해지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쌓이면서 경제적으로보다는 정치적으로 되고 또 지금 우리 성장동력이라든가 구조적인 경제문제, 여러 문제를 낳긴 하지만 그 당시를 돌아보면서는 우리가 꼭 그렇게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한다면 그 이후의 상황도 계속 그냥 바닥에서 기는 식의 모습으로만 얘기가 될 것 같은데 실상 우리가 또 나름대로 살아나서 경제가 또 한때 나름대로, 우리가 저성장이라는 문제로 다시 궤도를 우리가 낮춰주는 또 다른 문제를 겪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또 그 위기를 쉽게 극복하고 또 2008년도에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나름대로 또 대응력을 하는 그런 식의 것들이 우리가 98년도에 뭔가 학습하고 뭔가 우리가 그 체질로서 담은 것도 있지 않는가, 라는 식의 얘기도 해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 백운기 / 진행
네, 공감합니다. 그러면 이병훈 교수님, ‘U’자형으로 극복하는 게 제일 좋을까요?

□ 이병훈
글쎄요. 그런데 설사 지식인으로서 그 당시의 교훈을 얻고 이후에 그런 것들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한다면 뭔가 ‘U’자처럼 하는 것들의 경험을 얘기할지 몰라도 일반 국민들, 서민들 입장에서는,

□ 백운기 / 진행
빨리 탈출해야죠.

□ 이병훈
그 당시가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빠르게 타고 나고 그러고 나서 거기의 생활을 우리가 일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들이 그나마 우리가 다행이었다고 얘기가 되는데 문제는 그 이후의 상황이 모두가 고르게 그 회복의 효과를 나누지 못하고, 저희가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게 일부의 사람들, 특히 아까 말한 수출대기업, 재벌들에게 그것이 독식되고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또 중소기업의 격차가 늘어나고 생활이 더 어려워진 그런 식의 후과들이 우리가 이후에 현재 큰 숙제로 되는 것인데요. 일단 그 당시에 우리가 겪어낸 것에 대한 나름대로 우리 저력이라든가 우리가 해낸 일에 대해서도 평가가 좀 될 필요도 있겠죠.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

□ 김용하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이나마라도 된 것은 IMF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IMF라는 충격이 없었다면 아마 계속 비실비실 거리면서 성장률이 더 낮은 상태에서 유지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사실 IMF를 거치면서 나쁜 측면이 늘어났지만 그 나쁜 측면에 대응하기 위한 서구식 체계가 많이 도입됐다. 특히 사회안전망과 관련해서 우리 고용보험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대폭 강화됐고요. 그다음에 국민연금, 그다음에 건강보험, 이런 제도들이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체계로서 들어왔고요. 그다음에 노인 장기요양보험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도입됐고. 그래서 그 당시 1997년, 98년도에는 우리 복지지출 비율이 GDP의 3.8%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12% 수준으로 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전반적으로 서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좋은 제도라는 것은 다 도입해 놨어요. 각 분야에. 그런데 이게 한국인의 몸에 맞게 안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필요한 것들은 다 외형은 갖춰졌어요. 그래서 이 부분을 어떻게 잘 맞추느냐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지 실제로 완전히 그냥 절멸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보면 IMF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외형적인 충격을 통해서 우리의 변화를 촉발시킨 그런 계기는 됐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KBS <공감토론> 오늘은 IMF 20년을 맞아서 옛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동원 초빙교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김용하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 함께 하고 계십니다.

□ 백운기 / 진행
우리 청취자 분들께서 보내주신 문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휴대전화 뒷자리 2475 쓰시는 분입니다. “IMF 외환위기 때 쌍용자동차에 다니던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그때는 가게가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이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전전했는데요. 열심히 살았지만 참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4222 쓰시는 분 “20년 전에 잘 나가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는데요.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어도 어려운 것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1425님 “하남시 건설현장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는 72살 청취자입니다.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과도한 임금상승과 과소비 풍토가 외환위기를 불러오는데 한 몫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절약하는 문화는 계속됐으면 합니다.”
4942 쓰시는 분 “IMF 때 어려울 때 쓰려고 장롱 속에 보관해 둔 금붙이 내놓았는데요. 국민들만 발을 동동 굴렸던 것 같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양극화만 심해지고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빚만 늘었는데요. 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제정책을 펼쳤는지 의문이 듭니다.”
8968 쓰시는 분 “IMF 때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는데요.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학연과 지연, 연줄에 의한 경제구조, 그리고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개입, 관치금융이 더 큰 위기를 몰고 온 것 같습니다.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0014 쓰시는 분 “IMF 때 직장을 잃은 사람입니다. 재벌 위주의 경제, 수출에만 의지한 압축적인 성장정책이 위기를 만든 근본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노동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문제일 텐데요. 정치권과 기업, 그리고 근로자들이 위기가 남긴 교훈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문자로 참여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부분에 당시 상황을 짚어보면서 IMF 이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리고 긍정적인 점도 있다면 어떤 게 있는가, 이런 것을 살펴봤는데요. 그때 당시에 IMF가 우리한테 요구했던 가장 큰 것이 강력한 재정긴축, 그리고 구조조정이었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당시 이 처방은 옳다가 평가하십니까?

□ 김동원
네. 우리가 IMF가 구제금융을 준 나라 중에서 한국만큼 가혹한 조치를 요구한 예가 없고요.

□ 백운기 / 진행
왜 그랬을까요?

□ 김동원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당시에 우리가 들었던 흔한 이야기가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 워싱턴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내주에 뒤집어졌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면 97년 12월 3일 날 IMF가 구제금융을 주기로 와서 했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우리 외환사태가 훨씬 나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금고가 다 비고 12월 25일 날 미국 정부가 개입을 해서 우리가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것은 결국 뭐냐면 미국의 재무성보다는 소위 NEC가,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2차 대전 이후에 자본주의가 가꾼 우리가 가장 성공한 꽃밭인데 이것을 망가뜨리게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미국의 한국 길들이기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가혹했기 때문에 아까 얘기한 대로 ‘V’자로 일어날 수 있는 측면도 있고 또 가혹했기 때문에 아까 말했던 많은 실업문제라든가 루저를, 소위 경제적 패자를 양산하는 것을 겪었고 그다음에 또 재밌는 일이 뭐냐 하면 그 이후에 아까 말씀드린 그런 그리스 사태라든가 유럽이라든가 많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일어나서 IMF가 돌이켜보니까 한국한테는 좀 심했다, 그런 평가가 있었던 걸로 압니다.

□ 백운기 / 진행
워싱턴 컨센서스가 뭔지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조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김동원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게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소위 정실 자본주의를 하지 말고 제대로 시장규율을 하라는 거죠. 모든 것을 제대로 시장규율을 하라는 것이, 그러니까 그 시장규율이라는 게 소위 우리나라처럼 상당히 관계라든가 또는 연줄이 중요한 사업에서는 그것하고 시장이 소위 모든 것이 가격으로 움직이는 야박한 사회하고는 상당히 문화적인 충돌이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소위 우리가 얘기하는 그런 구조개혁이라는 것에서 본질이 말하자면 시장규율을 세우라는 거였거든요. 워싱턴 컨센서스의 본질은 시장규율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그 당시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99년 8월 달에 우리는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외환위기를 재무적인 위기로 받아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IMF나 또는 미국 정부가 얘기했던 소위 Crony capitalism이라고 하는 개발체제의 문제를 얘기를 했는데 우리 정부는 사실은 그보다 밑단에 있는 재무적 위기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빨리 극복을 하고 그 문제의 본질은 오래 잊어버린 겁니다. 말하자면 일찍 잊어버린 거죠.

□ 백운기 / 진행
네. 그러면 그때 요구했던 그 두 가지는 현재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나 수행을 했다고 보십니까? 강력한 긴축과 구조조정.

□ 김동원
당시에는 그것을 굉장히 많이 했죠. 많이 했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것이 아까 개발체제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다음 체제가 뭐냐. 그다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우리가 더 치밀한 시장시스템 또 그것으로 인한 그런 사회안전망, 이런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됐는데 그것을 못했다는 거죠.

□ 백운기 / 진행
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네. 지금 돌아보면서 그 당시에 긴축과 구조조정, 그때도 아마 이런 논의가 있었던 것이 아시아의 위기가 여러 나라에서 같이 공식적으로 터졌기 때문에 그 당시에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한테 가해진 IMF의 여러 요구사항들이 적정했는가, 그것도 아마 대략 진행 중에서는 그런 얘기를 할 여유가 없었고요. 우리가 99년 하반기에 빠져나오면서 그러면서 국내의 이러저러한 논의가 될 때 제가 기억되는 것은 그 당시에 말레이시아라든가 그런 아시아의 또 다른 위기를 겪던 나라하고 우리가 이런 IMF의 여러 요구사항들을 비교하니까 앞서 김동원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가 지나치리만큼 가혹했다, 라는 얘기는 그 당시에도 이미 지적이 됐어요. 그리고 그러면서 얘기가 한편으로 나오는 것이 정부가 왜 우리는 완전히 백기 투항하듯이 모든 요구를 그냥 넙죽 받고 반면에 말레이시아라든가 다른 나라의 경우는 그냥 거기에 대해서 정부가 좀 버틸 수 있었던 것에 비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가, 라는 논의도 기억이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마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완전히 국가 부도상황의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그냥 두 손 들고 IMF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까 그런 상황적인 것하고 그리고 또 우리 같은 경우 이런 전례 없던 경기하강이라든가 위기상황에 봉착하면서 정부가 어떠한 대비 없이 그냥 IMF가 시키는 대로 일단 때우고 보자, 하는 일들이 되면서 문제는 그 긴축이나 구조조정의 가장 큰 희생자는 사실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그 긴축을 통해서 구조조정을 통해서 실업자가 되거나 아니면 또 임금이 깎이거나 하는 그런 희생, 그러니까 한편으로 눈에 보이는 국민들의 금 모으기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희생이, 그리고 사실 또 살아나서는 그 사람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 되는 그런 상황의 아픔들이 현재까지 우리 사회가 풀어야 될 큰 하나의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 백운기 / 진행
네. 당시에 IMF가 요구했던 강력한 재정긴축과 구조조정 처방이 옳았다고 보시는지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박상인 교수님.

□ 박상인
네. 사실 IMF가 그 당시에 긴축정책을 재정정책으로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이론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균형재정을 하라고 요구를 한 것이고요. 그래서 긴축재정보다는 사실 고금리 문제였죠. 굉장히 고금리를 유지하도록 함으로 인해서 그 이후에 흑자도산 같은 일도 벌어지고 경제가 굉장히 위축이 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당시 고금리 정책 때문에 외국에서 국내 은행이라든지 기업에 돈을 빌려줬던 금융투자자들한테, 이게 이른바 롤오버라고 하는 거죠. 채권을 연기해 달라는, 구조조정을 해서 연기시키는 것인데 그것을 롤오버를 설득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또 합니다. 그래서 고금리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그 효과에 대해서 긍정, 부정적인 측면에서 조금 갈리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정책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1년 안에 수출이 늘어나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되면서 고금리 정책이 사실상 빨리 없어지고요. 그러면서 사실 재정도 균형재정이긴 했지만 그렇게 재정을 압박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흔히들 또 평가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있고요. 또 하나 IMF가 요구했던 게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인데요. 그런데 금융구조조정은 사실 은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비은행들, 특히 투신사 같은 경우를 통해서 채권으로 조달을 하는 대우 같은 그룹이 대표적인 예죠. 그 이후에 문제가 생겨서 대우가 다시 망하게 되는, 그래서 그런 문제점, 금융구조조정도 은행에만 당장에 초점을 맞춰서 너무 즉각적인 효과를 했었다는 것, 또 기업구조조정도 마찬가지로 빅딜로 결국은 갔었죠. 이것이 경제력 집중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사실 갔었다는 것이고요. 빅딜이 아닌 방식으로도 사실 기업구조조정을 통해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방식도 가능했었는데 그런 방식에 대해서 사실 너무나 익숙지가 않았죠. 과거에 재벌 중심의 개발정책들을 쭉 해 왔던 관료들이나 거기에 익숙한 국민이나 정치권이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해서 재벌문제가 더 심화가 되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김용하
IMF 당시에 세계 경제 조류가 신자유주의였습니다. 경쟁체제를 강화하는 거죠.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거고.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런 부분에서 IMF를 계기로 해 가지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력하게 신자유주의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아까 거기에 대한 부작용은 이야기했지만 긍정적인 측면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강한 힘이 생겼고 그래서 2008년에 생겼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충격이 약했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이 성장률이라든지 여러 가지 충격이 굉장히 강했습니다마는, 우리는 IMF 때 단련된 체질로 2008년도 금융위기를 굉장히 스무스하게 넘겼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국가 경제력 순위가 높아졌어요. 그래서 지금 그런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강함이 이루어졌는데 그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양극화, 이런 부분이 같이 더 커진 거죠.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 이제는 치유하고 조정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되는데 정부가 사실은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만의 노력 가지고는 안 된다,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신자유주의 체계를 보완하는,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를 복원하는 그런 식의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단순히 복지지출로만 우리가 될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의 변화의 시기가 왔다는 거죠. 그래서 그 변화를 한 번 더 넘어야 우리나라가 정말로 큰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데 지금은 그것을 못 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상인
제가 2008년 금융위기 관련해서 한 말씀만 드리면, 이게 사실 2008년 금융위기를 우리가 잘 극복했다는 이야기들을 흔히 하는데 사실은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유럽이 진앙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진앙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좀 적게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고요. 사실 이스라엘 같은 경우도 2008년 금융위기를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2008년도쯤에 이스라엘하고 한국 1인당 GDP가 비슷했는데요. 지금은 이스라엘 같은 경우 1인당 GDP가 한 3만 6~7천 불로 벌써 올라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2008년 금융위기를 우리가 잘 극복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저는 약간 좀 금융위기의 강도라든지 우리한테 미친 파장을 생각할 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이병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97년, 98년도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에 비해서 세계금융위기를 겪었던 우리의 강도랄까요. 이런 충격은 사뭇 좀 차이가 컸다고 생각되고요. 그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공부하는 고용, 노동하고 무관치가 않은 게 98년의 주된 아까 말한 여러 구조조정 긴축을 통해서 타격은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들이었어요. 아까 우리 청취자들 중에서도 일하다가 잘리고 했던 그런 경험들을 얘기하는데 그들이 정리해고 내지는 명예퇴직 내지는 조기퇴직 형태로 잘려 나가는 식으로 하다 보니까 사회적인, 그리고 당사자들이 받는 그런 고통이라는 것이 참 컸는데, 그리고 99년도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되면서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두텁게, 이제 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도 약아진 거죠. 고용 관행 인력 운영에 있어서도 정규직만 계속 뽑는 식의 것을 이제는 피하고 비정규직으로 하든가 아니면 그중에 일부를 또 외주화라든가 하는 형태로 두텁게 완충 버퍼를 하다 보니까 2008년에 충격이 왔을 때는 정규직은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비정규직을 갖고 그 위기를 타개하는 방식으로 인력조절을 하다 보니까 현상적으로 98년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겪던, 그러니까 비정규직들은 2008년에 참 힘들었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느꼈던 충격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덜하게끔 됐던 게 98년하고 2008년의 그런 연관성을 지어서 또 이해해 볼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그때 당시에 IMF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것 과연 어떻다고 보시는지 그 평가를 한 번 들어봤는데요. 그러면 그 뒤로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시는지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특히 기업들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는지요. 외환위기 당시에 아까 말씀하신 대로 기업들이 다 이렇게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당시 30대 그룹 가운데 상당수가 사라지거나 해체가 됐는데 기업들도 나름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는데 그만큼 체질개선이 됐다고 보시는지요. 김용하 교수님 한 번 진단을 해 주시면?

□ 김용하
저는 IMF에 의해서 가장 큰 변화를 이룬 것이 바로 기업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다른 분 말씀하셨듯이 기업부채가 굉장히 높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가계부문, 기업부문, 정부부문 중에서 다 건전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건전성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부채비율이 가장 낮고요. 저축률 측면에서 기업의 저축률은 IMF 이전보다 거의 한 7~8%p가 높아졌습니다. 물론 기업 중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도산했죠. 그렇지만 살아남은 기업은 훨씬 더 강한 기업이 됐고 글로벌화 된 기업이 됐고 이제 세계 어떤 나라의 어떤 기업과 경쟁해도 경쟁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다. 그런 측면에서 IMF 위기를 가장 긍정적으로 소화시킬 부문이 바로 기업부문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김동원
기업이 얼마나 건강해졌느냐 하면 97년에는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396%였습니다. 그러니까 400%였다는 거죠. 그리고 이자보상비율이라고 그래서 영업이익 가지고 이자를 내는 비율이 간신히 이자를 낼 정도였는데 아까 400%가 작년의 경우에 이게 79.8, 그러니까 80%로 낮아졌습니다. 엄청나게 낮아진 거고 이자보상비율은 지금 이자 낸 돈의 6배 정도의 수익을 낸다니까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 백운기 / 진행
79.8%요?

□ 김동원
네. 79.8.

□ 백운기 / 진행
그럼 80%가 아니고 거의 4분의 1 이하로 떨어진 거네요?

□ 김동원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셔야 될 것은 뭐냐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90년대에는 글로벌라이션이라고 하는 큰 시대의 흐름을 우리 정부가 잘못 읽었다. 그런데 위기를 겪고 나서 우리가 이렇게 한 것이 어디서 실력을 발휘하게 됐느냐 하면 2000년대 들어오면 이 글로벌 세계의 판도가 소위 중국 굴기의 시대로 들어오게 됩니다. 중국이 세계무역에서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을 하거든요. 여기에 우리가 위기를 겪고 난 아까 말씀드린 거기서 체력을 다진 실력이 중국 굴기와 편승해서 우리 경제가 급속하게 살아나죠. 저는 이게 양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고생을 했기 때문에 단단해지고 강해져서 중국 굴기와 함께 더불어 우리가 일어설 수 있었고 그래서 아까 2008년 위기도 그냥 넘길 수 있었고, 다른 한편의 문제는 뭐냐 하면 그것을 우리는 착각을 한 거죠. 우리가 건강해졌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이게 중국 거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지속적으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그런 시스템을 훨씬 더 치밀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10여 년 세월을 허송세월을 한 거죠.

□ 백운기 / 진행
그러니까 기업의 체질개선은 이루어졌으나,

□ 김동원
그러니까 그 체질개선은 이루어졌고 그 힘으로 중국 굴기의 시대에 한국경제가 더 세계의 중심으로 갈 수 있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정비하는 그 위기시대의 체력 단련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됐다는 거죠. 다음에 안게 되는 문제가.

□ 백운기 / 진행
네, 체력관리를 계속 했어야 되는데 그게 좀 부족했군요.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박상인
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실은 부실기업들을 한 번 크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기업들이 살아남은 기업들은 또 건전해지고 또 부실기업들 정리해서 되살리기도 해서 한 번 크게 어떻게 보면 빚잔치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 겁니다. 효과가 김동원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또 환율하고 맞물려서 급격하게 또 수출이 늘어나는 것도 있었고 또 중국 특수가 오면서 저희가 또 중국 특수 덕을 본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2010년대, 그리고 2010년에서 지금까지 보면 그렇게 성장을 해 가면서 과거 IMF 이전과 비슷한 식의 양상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말씀드리면 기업들, 재벌대기업들 경제력 집중 정도를 보면 97년 전까지 굉장히 올라가다가 97년부터 한 2001년까지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한 2001년부터 2013년, 14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서 지금 97년 이전보다 몇 개 재벌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문어발식 확장 이야기한 것, 문어발식 확장 훨씬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 재벌대기업들 같은 경우에 계열사가 평균 한 55개 전후로 있고요. 그런데 사업영역이 중분류 산업분류인데요. 산업분류로 따져도 한 22개 정도 있어요. 그러니까 큰 중분류에 기업이 한 두세 개씩 한 스물두세 개씩 거느리고 있는, 그리고 많은 그런 재벌대기업들이 수익률이 좋지가 않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양극화, 기업에서도 지금 양극화가 심한 것이죠. 돈을 잘 벌고 글로벌라이즈 돼서 잘 나가는 기업들이 있는 반면에 많은 대다수 기업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른바 한계기업의 문제가 지금 심각해지고 더더구나 97년과 달리 지금 심각한 문제는 중국 같은 신흥공업국가가 따라오니까 우리가 기존에 물적 자본의 중심에 저렴한 숙련 노동력 임금경쟁력, 그리고 부품가격을 단가 후려치기 해서 낮게 유지해서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던 시대의 장점이 이제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른바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이루어져야 되는데 그런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현 재벌 중심의 정부주도, 이게 박정희 개발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체제가 맞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코퍼릭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많이 했습니다. 미국식 상법을 많이 도입해서 사외이사 문제부터 해서 소송 문제, 여러 가지 도입을 했는데 실제로 작동이 안 됩니다. 황제경영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그런 소유지배 구조라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 그런 미국식 상법의 도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네, 지금 뭘 다루는 거죠? 기업을 얘기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학이 아니기 때문에,

□ 백운기 / 진행
네, 그러면 제가 그다음 짚어볼 부분을 이병훈 교수님께 여쭤보겠습니다. IMF 때 우리한테 IMF가 요구했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과연 온당했느냐 하는 부분 짚어본 뒤에 과연 그러면 그 요구에 따라서 우리가 제대로 수행했는가, 그리고 그 숙제를 제대로 풀었는가. 물론 각 나라 실정에 맞는 숙제였는가 하는 부분은 좀 차치하고요. 분명히 나쁜 짓 하라고 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 나름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서 요구를 했을 텐데 그때 긴축재정 또 그리고 구조조정과 함께 요구했던 게 노동유연성이었습니다. 그 노동유연성은 분명히 우리한테 필요한 과제였지 않습니까?

□ 이병훈
네.

□ 백운기 / 진행
그러면 지금은 그 노동유연성 우리가 과연 얼마나 해냈는지 한 번 그 부분도 함께 짚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병훈
네. 앞서도 노동에 준 임팩트가 한편으로는 유연성이 확보되면서 그 당시에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 셈이 된 것이죠. 정리해고 그리고 파견제도 마찬가지인데 그러고 나서 99년도 하반기에 경제가 살아났을 때 대부분의 기업들은 살아났을 때의 인력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채운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나 아니면 사업 부문을 아예 떼 내서 외주라든가 그런 방식으로 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이고요. 그것이 한편으로 여러 유연성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기는 합니다마는, 저는 기업들의 인력운영에 대한 상당한 유연성들을 확보할 수 있는 그런 식의 변화도 그 시기에 나타났다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결과가 그 유연에 피해를 보는 대상으로 나타난 사람들이 주로 비정규직들, 이를 양산하게 되고 그래서 그 숫자가 정부 통계로는 33%, 그 숫자가 계속 유지가 됩니다. 하지만 그 33%에는 감춰진 비정규직도 언급을 해요. 간접고용이라든가 물론 그 사람들의 비정규직의 지위를 두고 논란은 합니다만, 좀 넓게 봤을 때는 50%에 육박하고 있다, 하는 식의 평가까지 되는 것인데요. IMF를 겪으면서 유연성이 늘어나면서 한편으로 이런 비정규직들을 양산한 식으로 되고, 그런데 문제가 반쪽만 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얘기할 때 고용도 한쪽은 경직돼 있다, 정규직, 또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유연화 돼 있다, 해서 고용관행도 이렇게 아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 되고, 또 정규직은 고용만 안정돼 있는 게 아니라 임금도 높아요. 반면에 비정규직은 최저임금이나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되고. 또 법을 지켜주느냐 하면 이 정규직 같은 경우는 노동조합도 있고 그리고 대기업이다 보니까 법도 잘 지키는 반면에 하층에 있는 비정규직 같은 경우에는 법도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고 노동조합도 없고, 하다 보니까 한국사회가 1등 시민하고 2등 시민이라고 하는 그런 얘기들이 지금 젊은 사람들한테 수저 계급론이라고 부모의 얘기가 나한테 청년들에게까지 넘겨오면서 그런 이중구조가 어떻게 보면 그 전만 하더라도 다 같이 가능하고 다 같이 고용이 안정돼 있다고 한다면 IMF 위기를 겪으면서 일부의 사람들은 재벌의, 아까 엄청난 수익을 받은 사람들이 정규직을 나눠 갖고 고용도 그냥 기득권처럼 안정성을 확보한 반면에 나머지 사람들은 완전히 광야에 내몰린 식으로 하면서 저임금에 여러 가지 고용의 불안에 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 사회로 되는 가운데 우리가 노동시장의 개혁을 하더라도 유연성만 하면 한쪽에는 또 지나치게 유연한 사람들을 더 이상 유연하게 내몰 것이냐, 또 안전성을 얘기하다 보면 안정성에 있는 사람들, 해서 이 이중구조라는 문제를 개혁한다고 한다면 다 양면을 보면서 종합적인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그런 노력이 시발점으로는 IMF로 시작된다고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겁니다.

□ 백운기 / 진행
김용하 교수님, 말이 좋아서 유연안정성이지,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과제 아니겠습니까?

□ 김용하
네. 항상 좋은 유연성과 안정성 이게 다 좋은 말인데 이것을 딱 맞추는 게 바로 피팅하는 거죠. 그래서 그것은 정말 우리가 해야 될 일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아까 우리 이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글로벌화 되는 그런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편입된 그런 계층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데에 비해서 그렇지 않은 계층은 지금 힘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결국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깨졌다는 거거든요. 대한민국이라는 그룹 속에서 두 개의 깨어진 이 부분을 어떻게 같이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그런 과제를 남겼긴 했지만 결국은 IMF가 요구하는 그런 사항을 가장 충실히 이행한 그런 대표적인 사례는 맞다. 그렇지만 그 이제는 더 이상 IMF 말만 들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이거예요. 현재 한국에 생긴 문제는 한국적 상황이 있는데 자꾸 한국의 사정도 충분히 모르는 IMF 이야기만 계속 들어서 될 상황은 아니다. 이제는 한국적 상황에서 좀 더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될 때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 번 짚어봤습니다. 그러면 청취자 분들 보내주신 문자 소개해 드리고 잠깐 쉬었다가 미래를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휴대전화 뒷자리 8351 쓰시는 분입니다. “무분별한 세계화가 외환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때마다 국내 금융시장이 들썩이는데 외환보유고가 넉넉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9979 쓰시는 분 “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는 경제구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된 지금은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908님 “IMF가 남긴 교훈은 투기자본에 대응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점일 겁니다.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 있는 거품을 제거해서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합니다.”
3699 쓰시는 분 “회고해 보니 외환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시 취업을 앞두고 있던 젊은이들이었던 것 같은데요. 당시 젊은이었던 그들의 자녀들이 또 다시 취업대란을 겪고 있으니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3082 쓰시는 분 “IMF 체제를 조기 졸업했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를 어렵게 만든 책임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1211 쓰시는 분 “경제정책은 경제전반, 특히 하위 계층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저는 비정규직 근로자 노무담당 업체에서 일을 하는데 그분들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IMF 이후 고용불안과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만 더 소개합니다. 3338님 “IMF 위기를 극복한 상황에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조언을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4343 쓰시는 분 “경제개혁이 시급한데요. 기업은 구조조정을 잘하고 있는 만큼 공공부문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문자 보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KBS <공감토론> 함께 하고 계십니다.

□ 백운기 / 진행
토론 이어가겠습니다. 이제 외환위기를 극복한 지 20년이 됐는데 지금 우리 경제상황 어떤지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일단 외환보유고는 괜찮습니까?

□ 김동원
네, 외환보유고는 지금 10월 말 현재로 우리가 3,845억 원입니다. 그러니까 97년에 89억 불이었으니까 지금 세계 9위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채무를 까고 순대외채권을 우리가 4,230억 불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가 지금 외국인들이 주식을 한 700조 가지고 있고 또 우리 국채를 한 100조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것 가지고 충분하냐 하는 것은 시비 여지가 있습니다마는, 하지만 어쨌든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이런 외환이라든가 아까 말씀드린 그런 재무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 백운기 / 진행
네, 큰 걱정 안 해도 된다.

□ 김동원
네, 저는 위기가 다시 온다, 설사 반도체값이 다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럴 가능성은 없고 우리가 걱정해야 되는 다가오는 위기는 97년 위기와는 전혀 다른 위기라는 사실을 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어떤 위기입니까? 말씀해 주시죠.

□ 김동원
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우선 단적으로 보시면 지금 미국은 2001년 이래 실업률이 가장 낮습니다. 일본은 93년 이래 가장 낮습니다. 심지어 영국은 71년 이래 가장 낮습니다. 그러니까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나고 지난 9년 동안 세계경제가 정말 어려움을 겪었는데 선진국들이 그냥 어려움을 겪었던 게 아니라는 거죠. 그동안 선진국들은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해서 산업조정을 해서 이제 이것이 일어나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물론 문제는 있습니다마는. 그런데 우리의 노동시장은 어떠냐. 예를 들어 보시면 10월 달 전년 동기 대비해서 취업자 증가가 27만 5천 명이 늘어났는데 그중에 65%가 50대와 60대 여성입니다. 전형적으로 우리의 그런 취업시장, 더군다나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5명 중에 1명이 지금 실업의 상태에 있거든요. 그것 우리가 왜 그러느냐는 거죠. 전 세계의 선진국들은 지금 다 거의 사상 최고의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고 경기가 좋아졌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바로 우리가 그겁니다. 선진국들은 그동안 구조개혁을 계속해서 저렇게 체력이 강화됐는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런 체력강화가 안 됐다는 거죠. 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느냐. 거의 2012년 이후로는 기업이 활동기업, 일정 규모의, 1인 기업 이런 것을 제외하고 예를 들면 100인 이상 기업이 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요. 그래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문제는 바로 아까 말씀드린 그런 재무적인 외환위기 또는 금융위기 그런 것이 아니고 다가올 위기는 바로 성장의 위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세대의 위기입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 말씀을 좀 더 오래 듣고 싶은데 또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서요. 일단 다른 분 말씀 듣고 마무리 발언으로 또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네. 김동원 교수님은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거나 직면할 위기를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좀 더 경제, 사회로 확대했을 때 이렇게 또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다중위기에 진입하고 있다. 그 얘기는 우리 지금 이미 논의됐던 경제력 집중이라든가 그리고 또 경제산업구조가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데 우리의 먹거리 아니면 우리의 성장동력이라는 것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이미 노동 관련해서도 이중구조 얘기가 됐지만 또 노동 소득분배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한쪽의 사람들이 부를 차지하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상태의 격차가 우리 사회를 계속 사회공동체를 해체하고 또 이것이 내수를 그만큼 다운시키면서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한다는 그런 얘기도 나오는 거고 또 고령화의 문제, 해서 켜켜이 첩첩이 문제들을 겪다 보니까 지난 98년 같이 나라가 곳간이 하루아침에 비어 가지고 오는 위기가 아니라 그냥 서서히 대한민국 호라는 것들이 가라앉는, 그러면서 우리가 올해 내년까지는 어떻게 산다고 하지만 이게 10년 후의 대한민국이 어디에 가 있을 것인가, 라는 점에서 다중위기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게끔 하고 있다는 상태가 되는 거고요. 그랬을 때 외환위기에 대한 것들을 단순히 경제적인 하나의 우리가 겪었던 그런 현상의 문제 진단뿐만 아니라 그것이 두루두루 사회에 미치는 그런 측면에서의 교훈을 찾으면서 그때와 달리 다중위기라는 것들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거나 그것을 어떻게 돌파해낼지, 그런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백운기 / 진행
네. 고맙습니다. 김용하 교수님.

□ 김용하
저도 이번 새로운 위기가 외부에서 올 것 같지는 않다. 내부에서 지금 커지고 있는 위기가 더 크다는 거죠.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듯이 저출산 고령화가 새로운, 우리 1997년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위기고 그다음에 양극화 위기 이 부분을, 저는 사실은 저성장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저성장이라는 것은 경제규모가 커지면 자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거고요.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저성장체제에 우리 사회가 적응해 가는 것, 저출산 고령화를 위기로 생각할 게 아니라 새로운 사회변화로 생각하고 우리가 적응해 나가야 되고 양극화도 현재 있는 이 양극화를 어떻게 하면 공동체 차원이라는 속에서 복원할 것이냐 라는 차원에서 고민하면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를 들면 양극화 해결한다고 대기업 때린다고 될 것이 아니라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열심히 하는 거죠. 그렇지만 세금 더 내고 그 세금 낸 것 가지고 분배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 양극화를 해소하고 그러면서 국민 전체를 통합시켜나가는, 자꾸 상대를 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통합하는 대통령이 오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통합으로 나가야 된다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조심해야 될 위기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 박상인
네. 지금 한국경제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제조업의 위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은 GDP의 한 30%입니다. 일본, 독일 같은 경우 GDP 19%가 안 되고 22% 정도 됩니다. 제조업 비중이 굉장히 큰데 이 제조업 대부분이 또 7대 중화학 공업이 차지합니다. 7~80%를 차지합니다. 우리 제조업 비중이 굉장히 큰데 제조업도 몇 개 산업에 몰빵이 돼 있는데 이 산업들이 경쟁력을 지금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한국 제조업이 고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유럽, 미국 말씀하셨는데 제조업이 고도화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물적 자본 대기업 위주에서 인적 자본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 위주로 가는 것이고요. 그리고 모방에서 혁신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이 우리가 일어나고 있지 못한 것, 이게 큰 문제고 그러면서 한계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산업들 위주로 지금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이 다시 관치금융을 통해서 한계기업을 계속 키우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지금 계속 지속되고 있는 정부 주도 재벌중심 체제에서 오는 것인데요. 결국 이것이 기회와 유인과 금융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왔다는 것입니다. 혁신할 기회, 혁신할 유인들이 재벌대기업들이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나 내부거래를 통해서 기회가 없어지고 기술혁신이라든지 단가 후려치기를 통해서 유인이 없어지는 겁니다. 거기에 따라서 민간자본들이 원활한 금융이 뒷받침 못 되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 이것을 풀어줘야 된다. 이것을 풀어주지 않고 그러면 우리가 저성장으로 균형점을 이뤄서 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안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레버리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저성장이 어느 정도 지속되면 위기가 올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그런 생각이고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

□ 백운기 / 진행
네, 지금 말씀하신 내용들만 봐도 우리가 참 조심해야 될 것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병훈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다중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단순히 재무지표만 가지고 우리 위기상황을 진단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은데요. 한 30초씩만 드리겠습니다. 아까 우리 청취자들께서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될지, 참 짧은 시간이지만 한 말씀씩 어드바이스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먼저 말씀해 주시죠.

□ 김동원
네. 저는 한마디로 햇볕이 있을 때 지붕을 고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2012년부터 계속 2% 성장을 하다가 올해 아마 간신히 3%를 좀 넘어서고 내년도 거의 조금 못할 정도로 갈, 그러니까 세계경제가 지금, IMF가 계속 경고하는 게 그거거든요. 이 호황이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다시 한 번 우리의 성장여력을 키워갈 시간은 바로 내년이 엄청나게 중요한 해입니다. 그래서 저는 햇볕이 있을 때 정말 우리의 지붕을 바꿔야 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

□ 김용하
IMF 이전의 3~40년의 성장은 성장 위주의 또 성공한 우리 역사였죠. 그리고 IMF 이후도 상처는 있지만 그래도 성공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IMF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작용을 또 저출산 고령화를 양극화를 어떻게 하면 다시 우리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지만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너무 불안만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과거의 저력으로 다시 국민이 통합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고맙습니다. 박상인 교수님.

□ 박상인
네. 저는 3대 개혁과제를 정부가 정말 추진해야 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개혁, 재벌개혁, 산업구조개혁을 포함한 경제개혁을 해야 되고요. 노동개혁을 동시에 추구해야 되고 동시에 사회안전망과 복지개혁을 추진을 해서 이 3대 구조를 바꿔줌으로써 우리가 재도약하고 성장과 복지, 분배가 선순환 할 수 있는 구조로 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3대 개혁 시급하죠. 이병훈 교수님,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 이병훈
네. 2008년인가 9년에 제가 일본에 연구학교에 가 있을 때 그 당시 한국은 ‘K’자를 쓰는 카멜론이고 일본은 자라파고스가 돼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 같다, 라는 그런 방송들이 참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은 우리가 칼라파고스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하셨던 그런 여러 가지 시대적인 도전이라든가 변화의 요구들을 우리 사회, 특히 이것을 정치권이나 정부나 또 하다 못해 우리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런 식의 다중위기 말씀을 드린 것처럼 그 위기를 변화로 또 혁신으로 이미 언급했던 여러 과제를 해내지 못하면 화석이 되는 대한민국의 여러 어려운 날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또 하게 되네요. 앞으로 잘 좀 변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말씀 감사합니다. KBS <공감토론> 오늘은 IMF 20년을 맞아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또 우리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대비해야 될지 짚어봤습니다.
토론 함께 해 주신 고려대학교 김동원 초빙교수님,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님,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님,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님, 네 분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패널
수고하셨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전화와 인터넷, 문자로 참여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 [KBS 공감토론] IMF 구제금융 20년 대한민국의 과제는?
    • 입력 2017-11-22 16:48:55
    KBS공감토론
김동원 초빙교수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용하 교수 :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영학과
박상인 교수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이병훈 교수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 백운기 / 진행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S <공감토론> 백운기입니다. 11월 21일, 오늘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지 딱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에 자랑스러운 역사도 많지만 치욕스러운 순간도 적지 않은데 어쩌면 우리의 경제주권이 IMF로 넘어간 20년 전 오늘이 우리 현대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나라 빚을 갚기 위해서 집안에 있는 금을 아낌없이 모아서 빚을 갚았습니다. 어느 나라보다 빨리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치욕의 순간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어낸 우리 국민입니다. KBS <공감토론>은 오늘 IMF 20년을 맞아서 IMF 체제가 우리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진단해 보고, 또 우리 경제의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이슈다운 이슈! 토론다운 토론! KBS <공감토론> 시작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오늘 함께 하실 패널 분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동원 초빙교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 김동원
안녕하십니까?

□ 백운기 / 진행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지내신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김용하 교수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김용하
네, 안녕하십니까?

□ 백운기 / 진행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계셨죠?

□ 김용하
네, 안녕하십니까?

□ 백운기 / 진행
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상인
네, 안녕하세요.

□ 백운기 / 진행
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 함께 하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이병훈
네, 안녕하세요.

□ 백운기 / 진행
네 분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인사 서로 나누시고 시작할까요?

□ 패널
반갑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오늘 참 돌아보기에, 아까 앞부분에 제가 오프닝하면서도 좀 가슴이 메어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지금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를 수 있죠. 벌써 20년 전이니까요. 그때 태어난 애들은 이제 20살 성년이 됐고 돈이 없어서 유치원도 그만 둔 애들이 이제 청년이 됐습니다. 그 애들은 왜 유치원 다니다가 그만뒀는지 잘 모를 텐데. 김동원 교수님, 그때 당시 생각하면 어떤 게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 김동원
아마 국민들이 외환위기의 상처를 기억하시는 것은 아마 눈물의 비디오라고,

□ 백운기 / 진행
네, 제일은행 식구들.

□ 김동원
네, 제일은행 직원들이 해고가 돼 가지고. 그러니까 그게 98년 2월에 나온 거거든요. 나온 건데 아까 유치원을 왜 그만뒀는지도 모르고 그만뒀다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98년 11월에 대비해 가지고 99년 2월까지 우리 임금근로자가 169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4인 가족으로 따지면 피해를 받은 국민이 거의 한 700만, 800만 된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우리 현대사에 있어 가지고 아마 경제적으로는,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정말 그 어려운 질곡을 넘었다는 게 이 나라가 정말 대단한 나라고, 네, 그렇습니다.

□ 백운기 / 진행
그 전만 해도 그렇게 노숙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노숙자가 그렇게 많이 늘어났죠. 이병훈 교수님은 어떤 장면을 떠올리십니까?

□ 이병훈
아까도 잠깐 두 가지 장면이 오버랩 됐는데요. 말씀하셨던 금 모으기, 저도 아마 그때 동참을 했을 것 같고 많은 국민들이 참, 우리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국민들의 저력이 바탕이 됐다는 그런 돌아봄이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제가 공부하는 게 노동, 노사관계다 보니까 98년도 5월에서 7월까지 현대자동차의 현장을 저는 주로 많이, 그 문제를 첫째 연구도 그렇지만 아무튼 현장에 부딪치는 문제, 어떻게 중재하거나 하는 식의 일에 관여가 되게 되는데 그 당시에 이전에 없었던 고용조정을 둘러싼 노사 간의 아주 전쟁 같은 그런 상황이 벌어졌던 일도 돌아보게 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박상인 교수님은 실례지만 그때 뭐 하고 계셨어요?

□ 박상인
네, 저는 97년에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던 시기였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돈 벌고 계실 때니까 괜찮네요. 그때 공부하고 있었던 학생들은 막 돌아오고 난리 났죠.

□ 박상인
네. 그 당시 유학생들 굉장히 어려워서 말씀하신 것처럼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 하루아침에 환율이 거의 2배가 되니까 집에서 송금을 하는 것도 어려워진 집이 많았었고 또 장학금을 받았던 분들도 갑자기 원화로 이게 돈을 달러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서 유학생들이 굉장히 어려웠던, 국내에서 많은 실업문제라든지 또 가정해체, 이런 어려움이 있었던, 그것하고 비교는 될 수 없겠습니다마는, 상당한 충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학사회에서.

□ 백운기 / 진행
그럼 미국 대학에 계실 때인데 주변에 이렇게 같이 가깝게 지내던 학생들 막 돌아가고 그런 모습 많이 보셨겠네요.

□ 박상인
글쎄요. 돌아가고 하는 것은 사실 휴학 같은 것을 하고 일단 돌아가고 하는 경우는 있었고요. 그런데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 그 당시에 또 있었던 미국의 교민들이 또 유학생들을 돕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고 하는 모습도 있었고요. 그래서 어려울 때 상당히 동포애라는 것을 좀 느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은 우리 청취자들한테 이런 말씀 소개해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아드님이 아주 유명한 아이돌입니다. 그런데 지금 혹시 몇 살입니까?

□ 김용하
한 27살입니다.

□ 백운기 / 진행
그러면 그때 IMF 때는 7살쯤 됐었군요.

□ 김용하
네, 그렇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애 키우는 데 그때 힘드신 것은 없었습니까?

□ 김용하
네, 그 당시에 다 힘들었으니까요. 그나마 저는 월급을 받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팍팍해진 회사라든지 또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굉장히 긴장되고 조심스럽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밥줄이 끊기지 않고 겨우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백운기 / 진행
교수님은 그때 IMF 생각하면 어떤 점이 떠오르십니까?

□ 김용하
뭔가 약간, 그동안 무한히 성장할 줄 알았는데 이제 그런 성장이라는 것이 항상 끝없이 가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과 함께 미래에 대한 절망, 이제는 끝인가, 이런 국민들의 좌절, 이런 것들이 온 사회, 온 부분에 다 퍼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극복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감 같은 것은 생겼는데, 그리고 그 뒤에 사회가 변한 것 같아요. 그 전 IMF라는 게 단순히 짧은 하나의 사건일 수 있는데 그 전하고 그 후는 우리 대한민국이 달라진 나라가 됐다. 그래서 그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완전히 극복했는가 하는 부분에서 이제 좀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IMF 20년을 맞아서 네 분 패널 당시 상황을 한 번 되짚어보는 말씀을 들어봤고요. 또 소감도 함께 들어봤는데 오늘 <공감토론>은 이렇게 한 번 진행을 해 보겠습니다. 당시에 정말 우리가 미리 알 수 없었는가. 전조증상 같은 것은 없었을까. 그런 게 있었다면 막았으면 이런 위기를 안 겪었을 수도 있지 않는가. 왜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전에 조그마한 여러 가지 전조증상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데 분명히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런 것을 왜 놓쳤는지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고요. 그리고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 우리에게 남긴 상처, 부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한 번 그런 부분도 살펴보고,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과연 괜찮은지 한 번 진단하면서 일부에서는 또 이런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또 올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암에 걸려 있다,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그런 부분 한 번 짚어보는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이런 IMF로 가는 그런 어려운 상황, 왜 우리가 막지 못했는가, 김동원 교수님, 우리가 전혀 알 수가 없었을까요?

□ 김동원
금융위기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이 위기는 겉으로 드러난 것은 쌍둥이 위기라고 우리가 얘기를 하는데, 그러니까 ‘금융위기 + 외환위기’ 그럼 왜 이것이 일어났는가. 더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실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이라고 얘기하는 정실 자본주의. 즉, 다시 말하면 그 정실 자본주의라는 것이 그 본질은 바로 우리 개발체제의 붕괴죠. 외환위기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개발체제의 붕괴였고 그렇기 때문에 큰 그런 체제가 이렇게 무너지는데 조짐이 없을 리가 없죠.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위기를 한 번도 제대로 대응해 본 나라가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게 역설인데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위기는 오고 나서야 알게 된다.

□ 김동원
오고 나서야 압니다. 그런데 우리도 돌이켜보면 그 단초가 뭐냐 하면 96년에 반도체값이 대폭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경상수지 적자가 대폭 늘어났어요. 그리고 97년 들어와서 2월 달에 한보사태가 터졌죠. 한보사태가 터지고 해서 그로부터 쭉 내려가면서 2월, 3월, 4월 나오면서 그룹사가 30대 그룹 중에 6개가 매달 줄을 서서 터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아마 그 심지에 불이 붙어서 타올라 왔는데 여기에 7월 달에 태국의 바트화가 대폭락을 합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아시안 크라이시스가 일어나기 시작을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정부가 그때부터 비로소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을 했는데 10월 달에 홍콩 증시가 다시 대폭락을 합니다.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기 시작을 했고 그때부터는 결국 아까 말씀드린 불과 한 달 사이에 완전히 급격하게 위기가 타올랐죠.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역사적으로 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위기를 막지 못했냐. 큰 이유가 뭐냐 하면 권력자들이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이병훈 교수님, 그런 얘기도 제가 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김영삼 대통령이 많이 무너뜨렸잖아요. 경복궁도 철거하고 또 안가도 없앴는데 안가를 없애면서 시중에 돌아다니는 민심의 소리를 들을 기회를 차단한 것도 이유가 하나가 된 측면이 있다고 누가 얘기를 하더라고요.

□ 이병훈
글쎄요. 그때나 지난해 우리 촛불까지 이 사회 대통령제는 그냥 대통령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돼서 구중궁궐이라고 또 누구는 표현하더라고요. 대통령이 마치 예전에 임금처럼 들어앉게 되면 거기 소통이니 뭐를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현행과 같은 대통령 중심의 구조가 권력이 너무 집중이 되고 또 그를 둘러싼 몇 사람의 측근들이나 국정을 상의하거나 국정을 운영하는 틀이 되다 보면 이런 위기에 대해 어느 시기에 시그널이 가더라도 그런 것들이 국정 중심에 있는 대통령이나 아니면 의사결정에 있어서 그러한 논의가 그 당시에 제대로 작동이 안 됐다는 얘기가 되는 거고요. 또 그뿐만 아니라 96년, 97년도에 많은 일들이 경제적으로도 벌어졌고, 그러니까 저희들이 사후적으로 평가할 때는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를 만든 대통령 아니에요. 그것이 WTO 하면서 앞장서서 OECD도 가입하고 그리고 또 우리 사회의 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런 상황 속에서 노동개혁을 한다면서 내부적으로는 또 총파업이라는 그런 사회적인 큰 갈등에 봉착을 하게 되고 이런 일들이 쌓여나가면서, 그 시기가 더군다나 레임덕이라는 상황까지 맞물리다 보니까 아까 말씀하셨던 여러 경제적인 악재, 그것은 그냥 악재가 아니라 위기적인 상황들이 도래하는데 대통령이 뭔가 중심을 잡고 또 대통령이 여러 가지 사항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식의 상황보다는 아무튼 레임덕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더욱 더 군중들 안에 숨게 되는 그런 상황들이, 아무튼 돌아보면 이런 식으로 우리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경험했다고 하는데 몸이 끊어지고 목숨을 위협 받을 만한 그런 엄청난 위기를 우리가 겪게 된 것이죠.

□ 백운기 / 진행
김용하 교수님, 그때 알람이 울리긴 울렸을 것 같은데요.

□ 김용하
네. 사실은 알람은 진작에 울렸죠. 왜냐하면 1987년, 88년에 두 자리 수 성장을 하던 시기에서 그 뒤에 민주화, 그다음에 노동시장이 굉장히 자유화되고 그리고 그다음에 임금이 많이 올라가고 이런 과정에서 뭔가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90년대 초반에 이미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폐쇄경제가 아니고 개방경제 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제경쟁력이거든요. 그런데 OECD에 가입하면서 나라 문은 활짝 열어놓고 경쟁력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고, 그런 상황 하에서 외부의 금융이나 외환 쪽에 있어서의 위기 이전에 산업구조적인 그런 노동시장이나 이런 측면에 있어서 취약한 부분을 고치지 못한 것이 이런 IMF라는 계기를 통해서 폭발적으로 일어나 버린 거죠. 그래서 이것은 저는 어떻게 보면 구조적으로 쭉 불균형한 그 상황이 축적돼 왔는데 그 축적을 너무 방만하게 그리고 또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상황 하에서 갑자기 뒤통수 맞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가 지진이 갑자기 온 게 아니라 굉장히 많은 압력이 쌓여 가지고 생기듯이 마찬가지로 그 이전에 쭉 그런 압박이 압력이 있어 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혹시 어떤 전조가 있었는데 우리가 놓쳤다고 생각하십니까?

□ 박상인
앞에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요. 사실은 제 생각에는 97년에 경제위기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저희가 회피하기 어려운 위기였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저런 전조가 있었죠. 그런데 그 당시에 보면 우리가 60년대부터 해서 고도성장을 했습니다. 정부 주도 재벌 중심의 고도성장을 했고요. 그리고 물적 자본에 투자를 하면서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저임금을 기초로 해서 물건을 수출하는 그런 성장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지속될 것이라고들 흔히들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런 기대를 가지기가 쉬웠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당시에 많은 경고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경고를 귀 기울이기에는 우리의 과거의 성공 경험 자체가 너무나 강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경제위기가 아니었는가, 라는 것이고요. 더 중요한 것은 97년 위기 이후에 우리가 충분히 교훈을 얻고 지금은 우리가 준비되었는가, 사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이 되고요. IMF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들, 아까 김동원 교수님께서 잘 설명을 해 주셨는데 아마 IMF 외환위기 이후에 IMF 스텝들하고 국내 학자들이 2001년 정도에 학술대회를 같이 한 게 있고 책을 낸 게 있습니다. 거기 보면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것이 뭐냐 하면 구조적인 요인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것은 뭐냐 하면 과잉투자, 성장률 아까 말씀하셨는데 사실 경제성장률이 우리 70년대, 80년대 같이 두 자리가 계속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성장을 하게 되면.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데 성장률 떨어지는 것을 메꾸기 위해서 과잉투자를 굉장히 많이 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GDP의 한 37% ~ 38% 투자하는 것은 굉장한 과잉투자였는데 그게 지속되었고요. 그런 게 한보철강이라든지 잘못된 투자들이 터지기 시작을 한 것이고 또 재벌들이 경영권 방어 때문에 은행에 과도한 부채경영을 했었던 거죠. 레버리지가 굉장히 높은 상황에서 경제가 나빠지면 하방리스크가 굉장히 커지는 것이고 또 재벌체제라는 특성 때문에 기업 하나가 아니고 기업집단이 같이 망하게 되는 그런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을 했었다는 것이고요. 그런 구조적인 문제점들은 결국 회피할 수 없었고 어떤 식이든 한 번 터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

□ 김동원
저는 아까,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를 추진했는데 우리가 위기를 불러들이는 큰 잘못을 무엇을 했냐. 물론 개발체제의 붕괴라는 게 있습니다마는, 그럼 개발체제가 왜 무너졌냐.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61년에 세운 베를린 장벽이 89년 11월인가에 붕괴를 하죠. 그래서 양극체제가 끝나고 소위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 미국이 금융무역에 걸쳐 가지고 대대적인 글로벌라이션 전략을 추진을 했다고요. 그러니까 거기에 편승해서 우리 정부도 소위 세계화를 추진했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세계화에서 우리가 보이는 이익만 좇는데 바빴지, 그래서 외국 돈을 빌려다가 기업 확장하고 막 이랬지, 이 세계화가 품고 있는 위험이 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간과했던 겁니다. 그리고 특히 금융 면에서 이게 세계화를 통해서 국제금융시장에 자금이 막 넘치니까 돈을 꾸기가 훨씬 쉬워졌죠. 그러니까 이것을 가져왔을 때 이것이 얼마나 큰 위험이 있는가 하는 것을 기업들도 몰랐고 금융기관들도 잘 몰랐고 심지어는 정부조차도 시대의 큰 흐름을 잘못 읽었던 것이 저는 가장 큰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당시 얘기를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각도에서 분석을 해 주셨는데 앞으로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당시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좀 여쭤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고 지금 김동원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잘 될 것만 생각하고 잘못될 것에 대한 그런 분석이 부족했다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또 김용하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그런 측면도 있을 거고. 그런데 IMF라는 거대한 위기가 닥쳐오는 순간인데 우리가 분명히 이런 것쯤은 캐치를 했어야 될 건데 정말 이것만은 놓치면 안 되는데 놓쳤던 것,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병훈 교수님 먼저 말씀해 주시죠.

□ 이병훈
글쎄, 저는 경제학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 내지는 금융 외환위기를 제가 공부하는 사회학적인 논의라 한다면 앞서 말씀드린 권력 자체가 새로운 정부의 첫해 내지는 초기에 이런 위기가 온다고 한다면 나름대로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서 그런 위기라 하더라도 뭔가 대응이라는 것이 좀 더 힘을 받아서 사전에 예방하든 그런 조치들이 잘 대비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데 그 시기가 하필이면 YS정권의 말기였고 그리고 YS정권이 96년에 그 당시 국정원법하고 노동 관련법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전연, 그러니까 총파업이라든가 시민사회의 큰 하나의 반대투쟁을 겪으면서 거의 일을 못하는 지경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 지금 말씀하신 경제의 여러 재벌그룹들이 연이어 부도 사태가 나고, 그러니까 그 이전의 상황이라는 것은 방만경영이라든가 외환 내지는 세계화가 개방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이런 위험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하는 그런 정부라든가 여러 경제주체의 문제도 되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런 상황적인 그런 이슈도 우리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 백운기 / 진행
김용하 교수님, 어떤 시그널을 놓친 것을 가장 크게 꼽으실까요.

□ 김용하
저는 아까 우리 박상인 교수님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뭔가 환경이 변화하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글로벌화되고 경쟁이 강화되고 나름대로 또 우리나라의 우리나라 그 나름대로의 새로운, 과거의 고도성장체계에서 성장이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노사가 또 협력해야 되고, 이런 새로운 변화가 굉장히 요구되고 있었는데 요구되고 있는 그런 흐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냥 방치돼 있었다, 이런 것이 결국은 그냥 폭발시키게 만든 원인이 됐다는 거예요. 우리가 개혁이라는 게 그런 계기가 있어야 또 개혁이 될 수도 있을 수 있지만 사실은 그 전에 우리가 스스로 구조변화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노사가 협력하고 뭔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가기 위한 노력을 했더라면 아마 IMF 위기가 왔다 하더라도 좀 더 약하게 왔지 않겠는가 생각을 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박상인 교수님, 그런데 돌이켜보면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기 이틀 전에, 그러니까 11월 19일에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어요. 이런 것을 보면 뭔가 좀 알았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은 걸까요?

□ 박상인
네, 이틀 전이니까 사실 너무 늦었고요. 이것은 이때 11월 19일 날 대책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이 들고요. 거의 막을 수 없는 단계에서 나온 대책이었고요. 전조가 어떤 거냐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지금도 저희가 과거의 경험에서 눈여겨봐야 될 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첫 번째는 과잉투자 문제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보면 GDP의 한 30% 수준의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장기성장률을 보면 그 당시에 YS정부 때 한 5%에서 4% 이렇게 가고 있었고요. 지금은 한 2%대라고 하는데 지금도 굉장히 과잉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 이게 왜 과잉투자가 되느냐 하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식의 투자보다는 경기부양식 투자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건설이라든지 그런 측면에서 과잉투자가 항상 전조가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 하나는 기업들의 부실화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 보면 대우조선부터 시작해서 조선해양부터 해서 많은 산업들이 지금 부실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부실화가 또 은행의 부실로 전이되기 시작하는 그게 상당히 나쁜 시그널인데 우리도 지금 또 유사한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들, 이게 구조조정이 사실 원활히 안 되니까 퇴출돼야 될 기업들이 계속 살아남고 그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은행이 대출하면서 부실화가 이루어지고 자꾸 이렇게 부실이 커지는 레버리지가 자꾸 커지는 식의 정책들을 지금 하고 있는데요. 그 당시에도 했고 지금도 저는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려면 이게 대책이라는 것이 정책적인 대응, 단기적인 대응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즉, 원활한 구조조정들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되고 경제에 오는 충격들이 그때그때 흡수가 될 수 있는 플렉시블한 경제가 돼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개혁이나 노동개혁 같은 것들이 사실 필요한 시점이고 그 당시에도 그런 구조적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한 방을 맞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 말씀 듣겠습니다.

□ 김동원
외환위기가 일어나고 나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마는, 그중에서도 국민들을 가장 실소하게 하는 이야기가 소위 우리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 유명한 이야기죠. 당시 부총리께서 그런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까 1월 달에 한보그룹이 터지고 3월 달에 삼미, 4월 달에 진로, 5월 달에 대농, 6월 달에 한신공영, 드디어 기아가 7월, 이렇게 도미노처럼 타들어 가는데도 그 당시에 우리 경제 수뇌부에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대책을 내서 시장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아까 우리 박 교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거죠. 그때 우리가 정말 펀더멘털이 뭐냐, 뭐가 튼튼한 거냐, 그것에 관해서 정말 근본적으로, 아까 우리가 과신했다고 하는데 결국은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 하면 시대에 대한 자성이 없었던 거죠. 아까 한 방 맞았다고 그랬는데 왜 맞을 수밖에 없었냐. 이 개발체제라고 하는 것을 60년대부터 이렇게 끌어오고 나서 그 많은 문제가 누적돼 있었는데도,

□ 백운기 / 진행
알겠습니다.

□ 김동원
그것을 힘이라고 펀더멘털이라고 믿고 반성하지 않았다는 거죠.

□ 백운기 / 진행
이제 말씀하신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IMF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20년이 흘렀습니다. IMF 이후에 우리 사회 어떤 것이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보시는지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병훈 교수님, 뭐가 제일 크게 달라졌나요?

□ 이병훈
저는 앞서도 제 소개를 했을 때 노동 공부하는 사람이니까요. 노동세계가 엄청나게 변화했죠. 아까 김 교수님이 말씀하셨나요? 전과 후가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IMF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평생직장 신화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나오든 아니면 고등학교 나오든 해서 직장을 가지면 본인이 자발적으로 이직하지 않는 이상 그 직장 내에서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때 되면 임금인상이 되고 승진하고 하는 평생직장의 신화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아주 하루아침에 다 무너졌죠. 정리해고, 명예퇴직, 희망퇴직, 그런 식으로 그 당시에 정규직의, 앞서 말씀하신 대기업부터 그리고 또 일부 기업들은 아예 기업이 부도나는 상황까지, 은행 같은 경우 다 폐쇄하는 상황까지 겪게 됐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IMF의 이행각서로 4대 부문의 개혁이 추진이 되고 그중의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화로 시행된 것이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제의 법제화가 됐는데 그 법 두 개, 하나는 법 조항이고 하나는 법이지만 그것은 그 법으로 해 가지고 노동시장이 확 바뀐 게 아니고 기업들 그리고 노동시장의 정서를 바꾼 것이죠. 하다 보니까 그 이후에 소위 평생직장시대에서 평생직업시대라고 바뀌면서 한마디로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일자리의 안정성이 급격히 사라지고 소위 고용불안,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하는 그런 노동 상황 자체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그러면서 경제위기는 벗어났지만 노동사회에서는 또 크나큰 문제를 심은 그 출발점을 98년으로 삼게 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장 큰 변화로 꼽으셨는데 공감이 갑니다.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어떤 것을 꼽으시겠습니까?

□ 박상인
저도 노동시장 공감하고요.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씀하신 조기퇴직, 조기퇴직하고 나서 자영업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자영업이 굉장히 종사자가 많아지고 수익률이 굉장히 낮고 자영업 문제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는 거고요.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또 파견근무노동자 이런 것 다 포함해서요. 비정규직 문제가 생기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문제가 생기고요. 그리고 대기업 중소기업의 격차도 더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결국은 임금소득 양극화로 나아가고 소득 양극화, 사회 양극화로 발전돼 갔다, 라는 게 IMF가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상처고요. 또 말씀하신 것처럼 위기 시에 구조조정을 위해서 도입됐던 노동 관련법들이 하루빨리 정상화됐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굉장히 아쉽고요. 오히려 또 한편으로는 말씀드린 것처럼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 같은 것들은 오히려 해소가 되지가 않았다.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던 부분들은 사실 한 2001~2년부터 지금까지 경제력 집중은 더 강화되면서 근본적인 기업 구조조정 문제는 사실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또 안 된 측면에서의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양극화 꼽아주셨고요. 김동원 교수님께서는 어떤 점을 꼽으시겠습니까?

□ 김동원
저는 우리가 큰 틀로 봤을 때 우리가 96년을 예를 들면요. 수출이 우리 GDP의 25%였습니다. 그러니까 수입까지 다 해도 수출이 우리 GDP의 53%였거든요. 그때도 대외의존도가 높다고 정부가 아주 비판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아까 우리가 이 위기를 어떻게 빨리 극복했냐. 우리가 바로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서 결국은 극복을 했고 그런 결과로 대외의존도는 급속하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이 되면 수출의존도가 35%, 수출입을 하면 68%로 올라가고 2010년이 되면 수출이 GDP의 거의 50%에 달합니다. 2012년 되면 수출은 56, 수출입 합치면 GDP의 110%가 됩니다. 그러니까 96년하고 2012년하고 비하면 수출의존도나 수출입의존도가 대외의존도가 배가 된 거죠. 저는 이게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진 것.

□ 김동원
네. 배로 높아진 거고 거기에서 생기는 문제가 바로 뭐냐 하면 아까 그런 소위 해외에 수출을 하는 교역재 부분하고 비교역재 부문하고가 갈라지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양극화라고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교역재 부분은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해서 물건을 파니까 더 빨리 규모가 커지고 이것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양 부문 간에 임금 격차도 커지고 생산성 격차도 커지고 돌이킬 수 없는 양극화를 지금 낳게 됐고 결국은 아까 변했냐고 그랬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쌍둥이 적자라고 그랬죠. 외환이나 금융, 이 부분은 엄청나게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지붕은 우리가 갈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개발체제라는 지붕은 우리가 그대로 지난 10여 년을 끌어왔다고요. 저는 그런 면에서는 뭐가 달라졌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만약에 정말 달라졌다면 최순실 사태가 일어났겠습니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결국 최순실 사태가 일어났고 정권이 무너진 거거든요.

□ 백운기 / 진행
무슨 말씀인 줄은 알겠는데 이런 달라진 변화 쪽으로 논점을 좀 좁혀보겠습니다. 아직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 같은데 IMF 위기 이후 20년 동안 가장 달라진 점이 뭔가 하는 질문을 제가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병훈 교수님께서는 노동시장의 변화 꼽아주셨고 박상인 교수님께서도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그리고 김동원 교수님께서는 대외의존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는 점 지적을 해 주셨는데, 역시 관심분야 또 전공에 따라서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신 것 같습니다. 김용하 교수님께서는 어떤 점을 꼽으시겠습니까?

□ 김용하
저는 대한민국 공동체가 붕괴가 됐다. 과거에는 기업주하고 근로자가 한 몸이었다는 생각이, 아까 우리 평생직장도 그런 전제에서 나오는 거죠. 그리고 가계와 기업이 선순환구조가 있었다. 그런데 IMF를 거치면서 가계든 기업이든 이제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자가 도생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자기 스스로 살아야지 정부도 믿을 수 없고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 가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업은 예를 들면 도산될 데는 도산됐죠. 그렇지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글로벌 기업이 됐습니다. 삼성, 현대, 이런 세계적인 기업이 된 거죠. 정말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춘 거죠. 반면에 그런 경쟁과정에서 가계, 특히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라든지 저임금 근로자라든지 비정규직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있는 분들은 각자도생 상태에서 경쟁에서 밀리고 그 과정에서 양극화라는 모습을 가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불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공동체가 흔들리는 거죠. 이 흔들리는 것이 바로 작년에 촛불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사실은 보수정부 9년간에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치유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되는데 여전히 과거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서 성장주도, 성장 중심,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하는데 저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말보다는 성장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함께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냥 경제적 성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핵심성장이 요즘 새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제 성장도 해야 되죠. 그렇지만 성장 못지않게 우리 대한민국이 함께 같이 살아야 된다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강조하는 그런 정부가 들어섰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더 중요하게 강조를 해야 되는데 여전히 성장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부분은 다소 대한민국을 치유하는데 있어서, 현재의 문제점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또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보는지 짚어봤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변화 또 우리에게 남긴 상처, 이런 것을 꼽아주셨습니다. 참고로 한국개발연구원 KDI가 외환위기 20년을 맞아서 설문조사한 내용이 있는데 잠깐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외환위기가 몰고 온 부정적인 영향 어떤 것을 꼽느냐, 가장 많은 응답자가 '소득 빈부 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를 꼽았습니다. 아까 박상인 수님께서도 양극화 지적해 주셨는데요. 31.8%로 가장 많았고, '대량실직, 청년실업 이런 실업문제가 더욱 심화됐다'가 28.0%였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증가한 것' 그리고 '공무원·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게 된 것' 이런 부분들도 많이 꼽아줬고요. 긍정적 영향으로는 '구조조정을 통한 대기업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경쟁력이 높아졌다'가 24.5%, '아끼고 절약하는 소비문화가 확산된 것' 23.1%, 그리고 '기업경영과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진 것' 22.7%, 이렇게 꼽혔네요. 참고로 이 조사는 KDI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선과 무선 혼용 조사했고요.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조사했습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입니다. 이런 것들 꼽아주신 것 대체로 비슷한데요. 긍정적인 면도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어떤 게 있을까요?

□ 김동원
네, 그 조사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위기를 불러들인 이유가 글로벌라이션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위험이 뭔지를 우리가 몰랐다. 그래서 혼이 났기 때문에 그 이후에 그 위험에 대해서 정부가 강력하게 금융개혁을 하고 또 우리가 공적자금을 투입을 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고 아직까지 여러 가지 부실기업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마는, 어쨌든 기업들도 이제는 오히려 돈을 너무 안 빌려가서 지금 문제가 될 정도로 해서 그런 면에서 우리가 과거와 같은 이런 식의 위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만큼 우리가 왔다, 그런 점이 제가 보기에는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박상인 교수님께서는요.

□ 박상인
네. 사실 저는 긍정적인 면은 많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더 많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상당히 아쉽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 같은 경우 생각해 보시면 대공황을 거치면서 뉴딜정책을 통해서 많은 노동문제, 사회문제, 기업지배구조라든지 아메리카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재벌에 대한 문제, 어쩌면 경제의 근본구조와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했고 사회가 정말 바뀌어서 그런 대공황이 빨리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어지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노력을 못했다는 게 정말 아쉽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것을 꼽으라면 외환보유고 우리가 많이 가지게,

□ 백운기 / 진행
신경 쓰게 됐고.

□ 박상인
네, 신경을 쓰게 됐다는 것. 금융부문은 여전히 관치금융에서 미흡합니다마는, 과거에 비해서는 금융부문이 그나마 좀 좋아진 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전체적으로 말씀 들어보면 혼난 만큼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이런 진단이신 것 같네요?

□ 박상인
네, 너무 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데에 단기적인 처방에만 급급했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처방을 같이 하는 그런 전략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 백운기 / 진행
그래요. 모든 일에 빛과 그림자가 있는데 외환위기가 우리한테 상처도 줬지만 또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 짚어보는데 또 조기졸업 했다고 우리가 긍지를 갖지만 그 부분도 또 그림자가 또 있습니다. 네, 김동원 교수님, 어떤 말씀.

□ 김동원
네, 우리가 돌이켜보면 아까 말씀한 금융이라든가 또는 기업의 건전성이라든가, 그러니까 우리는 외환위기를 말하자면 재무적인 측면에서는 훌륭하게 극복을 했습니다. 지금 외환보유고가 전 세계에서 9등이고 우리가 지금은 순채권만 약 한 4,500억 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는 아주 건강한 나라가 됐죠. 그런데 지금 지적하시는, 아까 미국 얘기를 하셨습니다마는, 우리가 근본적인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경제적인 국치를 당하고도 근본적인 우리가 안고 있는 시대반성이 없었다는 거죠. 이것이 결국은 지금까지 몰려와서 그것이 누적돼서 이것이 더, 아까 말씀드린 그런 글로벌라이션에 의한 양극화를 통해서 이것이 더 복잡해지고 더 꼬여서 결국은 그것이 말하자면 촛불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체제를 바꾸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러면 정말 여전히 시대를 제대로 반성하고 있냐,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지금은 긍정적인 부분을 꼽고 있는 순서니까요. 과제 부분에서 좀 더 다시 한 번 강조를 해 주십시오. 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두 분의 얘기를 한편으로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또 너무 비관적이거나 돌아보면서 너무 부정적인 얘기들이 되는 것 같아서, 저희들이 공부하다 보면 하나의 현상을 두고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한 상태를 진단할 때는 남들하고 견주는 식의 얘기도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얘기는 먼저 돌아가서 98년도, 90년대 여러 가지 논의를 할 때 그 당시에 논의가 된 게 우리가 ‘L’자형으로 이 위기가 굳어지는 게 아닌가, 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었어요.

□ 백운기 / 진행
‘L’자형이요.

□ 이병훈
그 얘기는 처박아서 바닥으로 계속 갈 거다, 라고 하는 상황이 이게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그런 것에 비추었으면 우리가 ‘V’자처럼 1년 만에 그냥 다 경제가 살아났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때 위기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못하면서 이후에 여러 가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다고도 얘기 되는데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여러 경제위기의 국가들, 중남미에도 여러 나라가 있고 또 유럽에도 지금 그리스니 있을 때 그런 나라들이 ‘L’자형으로 그냥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서 계속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에 비해서 우리가 금 모으기라든가 그 당시에 우리가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사회적 협약이라든가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저는 경제, 금융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나름대로 채무국가에서 채권, 그리고 기업들도 그만큼 투명해지고 그리고 지금도 그때 경험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를 테면 부채관리를 엄격하게 해 나가는 거라든가 그것들이 시간이 2년 지나다 보니까 또 다시 느슨해지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쌓이면서 경제적으로보다는 정치적으로 되고 또 지금 우리 성장동력이라든가 구조적인 경제문제, 여러 문제를 낳긴 하지만 그 당시를 돌아보면서는 우리가 꼭 그렇게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한다면 그 이후의 상황도 계속 그냥 바닥에서 기는 식의 모습으로만 얘기가 될 것 같은데 실상 우리가 또 나름대로 살아나서 경제가 또 한때 나름대로, 우리가 저성장이라는 문제로 다시 궤도를 우리가 낮춰주는 또 다른 문제를 겪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또 그 위기를 쉽게 극복하고 또 2008년도에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나름대로 또 대응력을 하는 그런 식의 것들이 우리가 98년도에 뭔가 학습하고 뭔가 우리가 그 체질로서 담은 것도 있지 않는가, 라는 식의 얘기도 해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 백운기 / 진행
네, 공감합니다. 그러면 이병훈 교수님, ‘U’자형으로 극복하는 게 제일 좋을까요?

□ 이병훈
글쎄요. 그런데 설사 지식인으로서 그 당시의 교훈을 얻고 이후에 그런 것들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한다면 뭔가 ‘U’자처럼 하는 것들의 경험을 얘기할지 몰라도 일반 국민들, 서민들 입장에서는,

□ 백운기 / 진행
빨리 탈출해야죠.

□ 이병훈
그 당시가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빠르게 타고 나고 그러고 나서 거기의 생활을 우리가 일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들이 그나마 우리가 다행이었다고 얘기가 되는데 문제는 그 이후의 상황이 모두가 고르게 그 회복의 효과를 나누지 못하고, 저희가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게 일부의 사람들, 특히 아까 말한 수출대기업, 재벌들에게 그것이 독식되고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또 중소기업의 격차가 늘어나고 생활이 더 어려워진 그런 식의 후과들이 우리가 이후에 현재 큰 숙제로 되는 것인데요. 일단 그 당시에 우리가 겪어낸 것에 대한 나름대로 우리 저력이라든가 우리가 해낸 일에 대해서도 평가가 좀 될 필요도 있겠죠.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

□ 김용하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이나마라도 된 것은 IMF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IMF라는 충격이 없었다면 아마 계속 비실비실 거리면서 성장률이 더 낮은 상태에서 유지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사실 IMF를 거치면서 나쁜 측면이 늘어났지만 그 나쁜 측면에 대응하기 위한 서구식 체계가 많이 도입됐다. 특히 사회안전망과 관련해서 우리 고용보험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대폭 강화됐고요. 그다음에 국민연금, 그다음에 건강보험, 이런 제도들이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체계로서 들어왔고요. 그다음에 노인 장기요양보험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도입됐고. 그래서 그 당시 1997년, 98년도에는 우리 복지지출 비율이 GDP의 3.8%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12% 수준으로 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전반적으로 서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좋은 제도라는 것은 다 도입해 놨어요. 각 분야에. 그런데 이게 한국인의 몸에 맞게 안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필요한 것들은 다 외형은 갖춰졌어요. 그래서 이 부분을 어떻게 잘 맞추느냐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지 실제로 완전히 그냥 절멸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보면 IMF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외형적인 충격을 통해서 우리의 변화를 촉발시킨 그런 계기는 됐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KBS <공감토론> 오늘은 IMF 20년을 맞아서 옛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동원 초빙교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김용하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 함께 하고 계십니다.

□ 백운기 / 진행
우리 청취자 분들께서 보내주신 문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휴대전화 뒷자리 2475 쓰시는 분입니다. “IMF 외환위기 때 쌍용자동차에 다니던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그때는 가게가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이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전전했는데요. 열심히 살았지만 참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4222 쓰시는 분 “20년 전에 잘 나가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는데요.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어도 어려운 것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1425님 “하남시 건설현장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는 72살 청취자입니다.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과도한 임금상승과 과소비 풍토가 외환위기를 불러오는데 한 몫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절약하는 문화는 계속됐으면 합니다.”
4942 쓰시는 분 “IMF 때 어려울 때 쓰려고 장롱 속에 보관해 둔 금붙이 내놓았는데요. 국민들만 발을 동동 굴렸던 것 같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양극화만 심해지고 카드대란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빚만 늘었는데요. 정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제정책을 펼쳤는지 의문이 듭니다.”
8968 쓰시는 분 “IMF 때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는데요.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학연과 지연, 연줄에 의한 경제구조, 그리고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개입, 관치금융이 더 큰 위기를 몰고 온 것 같습니다.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0014 쓰시는 분 “IMF 때 직장을 잃은 사람입니다. 재벌 위주의 경제, 수출에만 의지한 압축적인 성장정책이 위기를 만든 근본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노동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문제일 텐데요. 정치권과 기업, 그리고 근로자들이 위기가 남긴 교훈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문자로 참여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부분에 당시 상황을 짚어보면서 IMF 이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리고 긍정적인 점도 있다면 어떤 게 있는가, 이런 것을 살펴봤는데요. 그때 당시에 IMF가 우리한테 요구했던 가장 큰 것이 강력한 재정긴축, 그리고 구조조정이었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당시 이 처방은 옳다가 평가하십니까?

□ 김동원
네. 우리가 IMF가 구제금융을 준 나라 중에서 한국만큼 가혹한 조치를 요구한 예가 없고요.

□ 백운기 / 진행
왜 그랬을까요?

□ 김동원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당시에 우리가 들었던 흔한 이야기가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 워싱턴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내주에 뒤집어졌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면 97년 12월 3일 날 IMF가 구제금융을 주기로 와서 했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우리 외환사태가 훨씬 나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금고가 다 비고 12월 25일 날 미국 정부가 개입을 해서 우리가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것은 결국 뭐냐면 미국의 재무성보다는 소위 NEC가,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2차 대전 이후에 자본주의가 가꾼 우리가 가장 성공한 꽃밭인데 이것을 망가뜨리게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미국의 한국 길들이기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가혹했기 때문에 아까 얘기한 대로 ‘V’자로 일어날 수 있는 측면도 있고 또 가혹했기 때문에 아까 말했던 많은 실업문제라든가 루저를, 소위 경제적 패자를 양산하는 것을 겪었고 그다음에 또 재밌는 일이 뭐냐 하면 그 이후에 아까 말씀드린 그런 그리스 사태라든가 유럽이라든가 많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일어나서 IMF가 돌이켜보니까 한국한테는 좀 심했다, 그런 평가가 있었던 걸로 압니다.

□ 백운기 / 진행
워싱턴 컨센서스가 뭔지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조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김동원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게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소위 정실 자본주의를 하지 말고 제대로 시장규율을 하라는 거죠. 모든 것을 제대로 시장규율을 하라는 것이, 그러니까 그 시장규율이라는 게 소위 우리나라처럼 상당히 관계라든가 또는 연줄이 중요한 사업에서는 그것하고 시장이 소위 모든 것이 가격으로 움직이는 야박한 사회하고는 상당히 문화적인 충돌이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소위 우리가 얘기하는 그런 구조개혁이라는 것에서 본질이 말하자면 시장규율을 세우라는 거였거든요. 워싱턴 컨센서스의 본질은 시장규율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그 당시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99년 8월 달에 우리는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외환위기를 재무적인 위기로 받아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IMF나 또는 미국 정부가 얘기했던 소위 Crony capitalism이라고 하는 개발체제의 문제를 얘기를 했는데 우리 정부는 사실은 그보다 밑단에 있는 재무적 위기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빨리 극복을 하고 그 문제의 본질은 오래 잊어버린 겁니다. 말하자면 일찍 잊어버린 거죠.

□ 백운기 / 진행
네. 그러면 그때 요구했던 그 두 가지는 현재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나 수행을 했다고 보십니까? 강력한 긴축과 구조조정.

□ 김동원
당시에는 그것을 굉장히 많이 했죠. 많이 했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것이 아까 개발체제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다음 체제가 뭐냐. 그다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우리가 더 치밀한 시장시스템 또 그것으로 인한 그런 사회안전망, 이런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됐는데 그것을 못했다는 거죠.

□ 백운기 / 진행
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네. 지금 돌아보면서 그 당시에 긴축과 구조조정, 그때도 아마 이런 논의가 있었던 것이 아시아의 위기가 여러 나라에서 같이 공식적으로 터졌기 때문에 그 당시에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한테 가해진 IMF의 여러 요구사항들이 적정했는가, 그것도 아마 대략 진행 중에서는 그런 얘기를 할 여유가 없었고요. 우리가 99년 하반기에 빠져나오면서 그러면서 국내의 이러저러한 논의가 될 때 제가 기억되는 것은 그 당시에 말레이시아라든가 그런 아시아의 또 다른 위기를 겪던 나라하고 우리가 이런 IMF의 여러 요구사항들을 비교하니까 앞서 김동원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가 지나치리만큼 가혹했다, 라는 얘기는 그 당시에도 이미 지적이 됐어요. 그리고 그러면서 얘기가 한편으로 나오는 것이 정부가 왜 우리는 완전히 백기 투항하듯이 모든 요구를 그냥 넙죽 받고 반면에 말레이시아라든가 다른 나라의 경우는 그냥 거기에 대해서 정부가 좀 버틸 수 있었던 것에 비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가, 라는 논의도 기억이 됩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마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완전히 국가 부도상황의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그냥 두 손 들고 IMF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까 그런 상황적인 것하고 그리고 또 우리 같은 경우 이런 전례 없던 경기하강이라든가 위기상황에 봉착하면서 정부가 어떠한 대비 없이 그냥 IMF가 시키는 대로 일단 때우고 보자, 하는 일들이 되면서 문제는 그 긴축이나 구조조정의 가장 큰 희생자는 사실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그 긴축을 통해서 구조조정을 통해서 실업자가 되거나 아니면 또 임금이 깎이거나 하는 그런 희생, 그러니까 한편으로 눈에 보이는 국민들의 금 모으기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희생이, 그리고 사실 또 살아나서는 그 사람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 되는 그런 상황의 아픔들이 현재까지 우리 사회가 풀어야 될 큰 하나의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 백운기 / 진행
네. 당시에 IMF가 요구했던 강력한 재정긴축과 구조조정 처방이 옳았다고 보시는지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박상인 교수님.

□ 박상인
네. 사실 IMF가 그 당시에 긴축정책을 재정정책으로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 이론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균형재정을 하라고 요구를 한 것이고요. 그래서 긴축재정보다는 사실 고금리 문제였죠. 굉장히 고금리를 유지하도록 함으로 인해서 그 이후에 흑자도산 같은 일도 벌어지고 경제가 굉장히 위축이 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당시 고금리 정책 때문에 외국에서 국내 은행이라든지 기업에 돈을 빌려줬던 금융투자자들한테, 이게 이른바 롤오버라고 하는 거죠. 채권을 연기해 달라는, 구조조정을 해서 연기시키는 것인데 그것을 롤오버를 설득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또 합니다. 그래서 고금리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그 효과에 대해서 긍정, 부정적인 측면에서 조금 갈리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정책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1년 안에 수출이 늘어나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되면서 고금리 정책이 사실상 빨리 없어지고요. 그러면서 사실 재정도 균형재정이긴 했지만 그렇게 재정을 압박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흔히들 또 평가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있고요. 또 하나 IMF가 요구했던 게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인데요. 그런데 금융구조조정은 사실 은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비은행들, 특히 투신사 같은 경우를 통해서 채권으로 조달을 하는 대우 같은 그룹이 대표적인 예죠. 그 이후에 문제가 생겨서 대우가 다시 망하게 되는, 그래서 그런 문제점, 금융구조조정도 은행에만 당장에 초점을 맞춰서 너무 즉각적인 효과를 했었다는 것, 또 기업구조조정도 마찬가지로 빅딜로 결국은 갔었죠. 이것이 경제력 집중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사실 갔었다는 것이고요. 빅딜이 아닌 방식으로도 사실 기업구조조정을 통해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방식도 가능했었는데 그런 방식에 대해서 사실 너무나 익숙지가 않았죠. 과거에 재벌 중심의 개발정책들을 쭉 해 왔던 관료들이나 거기에 익숙한 국민이나 정치권이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해서 재벌문제가 더 심화가 되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김용하
IMF 당시에 세계 경제 조류가 신자유주의였습니다. 경쟁체제를 강화하는 거죠.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거고.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런 부분에서 IMF를 계기로 해 가지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력하게 신자유주의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아까 거기에 대한 부작용은 이야기했지만 긍정적인 측면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강한 힘이 생겼고 그래서 2008년에 생겼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충격이 약했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이 성장률이라든지 여러 가지 충격이 굉장히 강했습니다마는, 우리는 IMF 때 단련된 체질로 2008년도 금융위기를 굉장히 스무스하게 넘겼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국가 경제력 순위가 높아졌어요. 그래서 지금 그런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강함이 이루어졌는데 그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양극화, 이런 부분이 같이 더 커진 거죠.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 이제는 치유하고 조정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되는데 정부가 사실은 굉장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만의 노력 가지고는 안 된다,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신자유주의 체계를 보완하는,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를 복원하는 그런 식의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단순히 복지지출로만 우리가 될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의 변화의 시기가 왔다는 거죠. 그래서 그 변화를 한 번 더 넘어야 우리나라가 정말로 큰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데 지금은 그것을 못 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상인
제가 2008년 금융위기 관련해서 한 말씀만 드리면, 이게 사실 2008년 금융위기를 우리가 잘 극복했다는 이야기들을 흔히 하는데 사실은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유럽이 진앙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진앙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좀 적게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고요. 사실 이스라엘 같은 경우도 2008년 금융위기를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2008년도쯤에 이스라엘하고 한국 1인당 GDP가 비슷했는데요. 지금은 이스라엘 같은 경우 1인당 GDP가 한 3만 6~7천 불로 벌써 올라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2008년 금융위기를 우리가 잘 극복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저는 약간 좀 금융위기의 강도라든지 우리한테 미친 파장을 생각할 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이병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97년, 98년도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에 비해서 세계금융위기를 겪었던 우리의 강도랄까요. 이런 충격은 사뭇 좀 차이가 컸다고 생각되고요. 그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공부하는 고용, 노동하고 무관치가 않은 게 98년의 주된 아까 말한 여러 구조조정 긴축을 통해서 타격은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들이었어요. 아까 우리 청취자들 중에서도 일하다가 잘리고 했던 그런 경험들을 얘기하는데 그들이 정리해고 내지는 명예퇴직 내지는 조기퇴직 형태로 잘려 나가는 식으로 하다 보니까 사회적인, 그리고 당사자들이 받는 그런 고통이라는 것이 참 컸는데, 그리고 99년도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되면서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두텁게, 이제 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도 약아진 거죠. 고용 관행 인력 운영에 있어서도 정규직만 계속 뽑는 식의 것을 이제는 피하고 비정규직으로 하든가 아니면 그중에 일부를 또 외주화라든가 하는 형태로 두텁게 완충 버퍼를 하다 보니까 2008년에 충격이 왔을 때는 정규직은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비정규직을 갖고 그 위기를 타개하는 방식으로 인력조절을 하다 보니까 현상적으로 98년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겪던, 그러니까 비정규직들은 2008년에 참 힘들었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느꼈던 충격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덜하게끔 됐던 게 98년하고 2008년의 그런 연관성을 지어서 또 이해해 볼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그때 당시에 IMF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것 과연 어떻다고 보시는지 그 평가를 한 번 들어봤는데요. 그러면 그 뒤로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시는지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특히 기업들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는지요. 외환위기 당시에 아까 말씀하신 대로 기업들이 다 이렇게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당시 30대 그룹 가운데 상당수가 사라지거나 해체가 됐는데 기업들도 나름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는데 그만큼 체질개선이 됐다고 보시는지요. 김용하 교수님 한 번 진단을 해 주시면?

□ 김용하
저는 IMF에 의해서 가장 큰 변화를 이룬 것이 바로 기업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다른 분 말씀하셨듯이 기업부채가 굉장히 높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가계부문, 기업부문, 정부부문 중에서 다 건전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건전성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부채비율이 가장 낮고요. 저축률 측면에서 기업의 저축률은 IMF 이전보다 거의 한 7~8%p가 높아졌습니다. 물론 기업 중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은 도산했죠. 그렇지만 살아남은 기업은 훨씬 더 강한 기업이 됐고 글로벌화 된 기업이 됐고 이제 세계 어떤 나라의 어떤 기업과 경쟁해도 경쟁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다. 그런 측면에서 IMF 위기를 가장 긍정적으로 소화시킬 부문이 바로 기업부문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김동원
기업이 얼마나 건강해졌느냐 하면 97년에는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396%였습니다. 그러니까 400%였다는 거죠. 그리고 이자보상비율이라고 그래서 영업이익 가지고 이자를 내는 비율이 간신히 이자를 낼 정도였는데 아까 400%가 작년의 경우에 이게 79.8, 그러니까 80%로 낮아졌습니다. 엄청나게 낮아진 거고 이자보상비율은 지금 이자 낸 돈의 6배 정도의 수익을 낸다니까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 백운기 / 진행
79.8%요?

□ 김동원
네. 79.8.

□ 백운기 / 진행
그럼 80%가 아니고 거의 4분의 1 이하로 떨어진 거네요?

□ 김동원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셔야 될 것은 뭐냐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90년대에는 글로벌라이션이라고 하는 큰 시대의 흐름을 우리 정부가 잘못 읽었다. 그런데 위기를 겪고 나서 우리가 이렇게 한 것이 어디서 실력을 발휘하게 됐느냐 하면 2000년대 들어오면 이 글로벌 세계의 판도가 소위 중국 굴기의 시대로 들어오게 됩니다. 중국이 세계무역에서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을 하거든요. 여기에 우리가 위기를 겪고 난 아까 말씀드린 거기서 체력을 다진 실력이 중국 굴기와 편승해서 우리 경제가 급속하게 살아나죠. 저는 이게 양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고생을 했기 때문에 단단해지고 강해져서 중국 굴기와 함께 더불어 우리가 일어설 수 있었고 그래서 아까 2008년 위기도 그냥 넘길 수 있었고, 다른 한편의 문제는 뭐냐 하면 그것을 우리는 착각을 한 거죠. 우리가 건강해졌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이게 중국 거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지속적으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그런 시스템을 훨씬 더 치밀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10여 년 세월을 허송세월을 한 거죠.

□ 백운기 / 진행
그러니까 기업의 체질개선은 이루어졌으나,

□ 김동원
그러니까 그 체질개선은 이루어졌고 그 힘으로 중국 굴기의 시대에 한국경제가 더 세계의 중심으로 갈 수 있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정비하는 그 위기시대의 체력 단련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됐다는 거죠. 다음에 안게 되는 문제가.

□ 백운기 / 진행
네, 체력관리를 계속 했어야 되는데 그게 좀 부족했군요.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박상인
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실은 부실기업들을 한 번 크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기업들이 살아남은 기업들은 또 건전해지고 또 부실기업들 정리해서 되살리기도 해서 한 번 크게 어떻게 보면 빚잔치에서 새로운 시작을 한 겁니다. 효과가 김동원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또 환율하고 맞물려서 급격하게 또 수출이 늘어나는 것도 있었고 또 중국 특수가 오면서 저희가 또 중국 특수 덕을 본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2010년대, 그리고 2010년에서 지금까지 보면 그렇게 성장을 해 가면서 과거 IMF 이전과 비슷한 식의 양상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말씀드리면 기업들, 재벌대기업들 경제력 집중 정도를 보면 97년 전까지 굉장히 올라가다가 97년부터 한 2001년까지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한 2001년부터 2013년, 14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상승해서 지금 97년 이전보다 몇 개 재벌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문어발식 확장 이야기한 것, 문어발식 확장 훨씬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 재벌대기업들 같은 경우에 계열사가 평균 한 55개 전후로 있고요. 그런데 사업영역이 중분류 산업분류인데요. 산업분류로 따져도 한 22개 정도 있어요. 그러니까 큰 중분류에 기업이 한 두세 개씩 한 스물두세 개씩 거느리고 있는, 그리고 많은 그런 재벌대기업들이 수익률이 좋지가 않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양극화, 기업에서도 지금 양극화가 심한 것이죠. 돈을 잘 벌고 글로벌라이즈 돼서 잘 나가는 기업들이 있는 반면에 많은 대다수 기업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른바 한계기업의 문제가 지금 심각해지고 더더구나 97년과 달리 지금 심각한 문제는 중국 같은 신흥공업국가가 따라오니까 우리가 기존에 물적 자본의 중심에 저렴한 숙련 노동력 임금경쟁력, 그리고 부품가격을 단가 후려치기 해서 낮게 유지해서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던 시대의 장점이 이제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른바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이루어져야 되는데 그런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현 재벌 중심의 정부주도, 이게 박정희 개발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이 체제가 맞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코퍼릭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많이 했습니다. 미국식 상법을 많이 도입해서 사외이사 문제부터 해서 소송 문제, 여러 가지 도입을 했는데 실제로 작동이 안 됩니다. 황제경영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그런 소유지배 구조라는 근본적인 개혁 없이 그런 미국식 상법의 도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네, 지금 뭘 다루는 거죠? 기업을 얘기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학이 아니기 때문에,

□ 백운기 / 진행
네, 그러면 제가 그다음 짚어볼 부분을 이병훈 교수님께 여쭤보겠습니다. IMF 때 우리한테 IMF가 요구했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과연 온당했느냐 하는 부분 짚어본 뒤에 과연 그러면 그 요구에 따라서 우리가 제대로 수행했는가, 그리고 그 숙제를 제대로 풀었는가. 물론 각 나라 실정에 맞는 숙제였는가 하는 부분은 좀 차치하고요. 분명히 나쁜 짓 하라고 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 나름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서 요구를 했을 텐데 그때 긴축재정 또 그리고 구조조정과 함께 요구했던 게 노동유연성이었습니다. 그 노동유연성은 분명히 우리한테 필요한 과제였지 않습니까?

□ 이병훈
네.

□ 백운기 / 진행
그러면 지금은 그 노동유연성 우리가 과연 얼마나 해냈는지 한 번 그 부분도 함께 짚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병훈
네. 앞서도 노동에 준 임팩트가 한편으로는 유연성이 확보되면서 그 당시에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 셈이 된 것이죠. 정리해고 그리고 파견제도 마찬가지인데 그러고 나서 99년도 하반기에 경제가 살아났을 때 대부분의 기업들은 살아났을 때의 인력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채운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나 아니면 사업 부문을 아예 떼 내서 외주라든가 그런 방식으로 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이고요. 그것이 한편으로 여러 유연성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기는 합니다마는, 저는 기업들의 인력운영에 대한 상당한 유연성들을 확보할 수 있는 그런 식의 변화도 그 시기에 나타났다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결과가 그 유연에 피해를 보는 대상으로 나타난 사람들이 주로 비정규직들, 이를 양산하게 되고 그래서 그 숫자가 정부 통계로는 33%, 그 숫자가 계속 유지가 됩니다. 하지만 그 33%에는 감춰진 비정규직도 언급을 해요. 간접고용이라든가 물론 그 사람들의 비정규직의 지위를 두고 논란은 합니다만, 좀 넓게 봤을 때는 50%에 육박하고 있다, 하는 식의 평가까지 되는 것인데요. IMF를 겪으면서 유연성이 늘어나면서 한편으로 이런 비정규직들을 양산한 식으로 되고, 그런데 문제가 반쪽만 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얘기할 때 고용도 한쪽은 경직돼 있다, 정규직, 또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유연화 돼 있다, 해서 고용관행도 이렇게 아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 되고, 또 정규직은 고용만 안정돼 있는 게 아니라 임금도 높아요. 반면에 비정규직은 최저임금이나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되고. 또 법을 지켜주느냐 하면 이 정규직 같은 경우는 노동조합도 있고 그리고 대기업이다 보니까 법도 잘 지키는 반면에 하층에 있는 비정규직 같은 경우에는 법도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고 노동조합도 없고, 하다 보니까 한국사회가 1등 시민하고 2등 시민이라고 하는 그런 얘기들이 지금 젊은 사람들한테 수저 계급론이라고 부모의 얘기가 나한테 청년들에게까지 넘겨오면서 그런 이중구조가 어떻게 보면 그 전만 하더라도 다 같이 가능하고 다 같이 고용이 안정돼 있다고 한다면 IMF 위기를 겪으면서 일부의 사람들은 재벌의, 아까 엄청난 수익을 받은 사람들이 정규직을 나눠 갖고 고용도 그냥 기득권처럼 안정성을 확보한 반면에 나머지 사람들은 완전히 광야에 내몰린 식으로 하면서 저임금에 여러 가지 고용의 불안에 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 사회로 되는 가운데 우리가 노동시장의 개혁을 하더라도 유연성만 하면 한쪽에는 또 지나치게 유연한 사람들을 더 이상 유연하게 내몰 것이냐, 또 안전성을 얘기하다 보면 안정성에 있는 사람들, 해서 이 이중구조라는 문제를 개혁한다고 한다면 다 양면을 보면서 종합적인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그런 노력이 시발점으로는 IMF로 시작된다고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겁니다.

□ 백운기 / 진행
김용하 교수님, 말이 좋아서 유연안정성이지,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과제 아니겠습니까?

□ 김용하
네. 항상 좋은 유연성과 안정성 이게 다 좋은 말인데 이것을 딱 맞추는 게 바로 피팅하는 거죠. 그래서 그것은 정말 우리가 해야 될 일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아까 우리 이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글로벌화 되는 그런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편입된 그런 계층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데에 비해서 그렇지 않은 계층은 지금 힘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결국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깨졌다는 거거든요. 대한민국이라는 그룹 속에서 두 개의 깨어진 이 부분을 어떻게 같이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그런 과제를 남겼긴 했지만 결국은 IMF가 요구하는 그런 사항을 가장 충실히 이행한 그런 대표적인 사례는 맞다. 그렇지만 그 이제는 더 이상 IMF 말만 들어서 될 일이 아니다 이거예요. 현재 한국에 생긴 문제는 한국적 상황이 있는데 자꾸 한국의 사정도 충분히 모르는 IMF 이야기만 계속 들어서 될 상황은 아니다. 이제는 한국적 상황에서 좀 더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될 때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 번 짚어봤습니다. 그러면 청취자 분들 보내주신 문자 소개해 드리고 잠깐 쉬었다가 미래를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휴대전화 뒷자리 8351 쓰시는 분입니다. “무분별한 세계화가 외환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때마다 국내 금융시장이 들썩이는데 외환보유고가 넉넉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9979 쓰시는 분 “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는 경제구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된 지금은 분배 중심의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908님 “IMF가 남긴 교훈은 투기자본에 대응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점일 겁니다.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에 있는 거품을 제거해서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합니다.”
3699 쓰시는 분 “회고해 보니 외환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당시 취업을 앞두고 있던 젊은이들이었던 것 같은데요. 당시 젊은이었던 그들의 자녀들이 또 다시 취업대란을 겪고 있으니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3082 쓰시는 분 “IMF 체제를 조기 졸업했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를 어렵게 만든 책임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1211 쓰시는 분 “경제정책은 경제전반, 특히 하위 계층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저는 비정규직 근로자 노무담당 업체에서 일을 하는데 그분들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IMF 이후 고용불안과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만 더 소개합니다. 3338님 “IMF 위기를 극복한 상황에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조언을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4343 쓰시는 분 “경제개혁이 시급한데요. 기업은 구조조정을 잘하고 있는 만큼 공공부문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문자 보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KBS <공감토론> 함께 하고 계십니다.

□ 백운기 / 진행
토론 이어가겠습니다. 이제 외환위기를 극복한 지 20년이 됐는데 지금 우리 경제상황 어떤지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일단 외환보유고는 괜찮습니까?

□ 김동원
네, 외환보유고는 지금 10월 말 현재로 우리가 3,845억 원입니다. 그러니까 97년에 89억 불이었으니까 지금 세계 9위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채무를 까고 순대외채권을 우리가 4,230억 불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가 지금 외국인들이 주식을 한 700조 가지고 있고 또 우리 국채를 한 100조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것 가지고 충분하냐 하는 것은 시비 여지가 있습니다마는, 하지만 어쨌든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이런 외환이라든가 아까 말씀드린 그런 재무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 백운기 / 진행
네, 큰 걱정 안 해도 된다.

□ 김동원
네, 저는 위기가 다시 온다, 설사 반도체값이 다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럴 가능성은 없고 우리가 걱정해야 되는 다가오는 위기는 97년 위기와는 전혀 다른 위기라는 사실을 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어떤 위기입니까? 말씀해 주시죠.

□ 김동원
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우선 단적으로 보시면 지금 미국은 2001년 이래 실업률이 가장 낮습니다. 일본은 93년 이래 가장 낮습니다. 심지어 영국은 71년 이래 가장 낮습니다. 그러니까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나고 지난 9년 동안 세계경제가 정말 어려움을 겪었는데 선진국들이 그냥 어려움을 겪었던 게 아니라는 거죠. 그동안 선진국들은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해서 산업조정을 해서 이제 이것이 일어나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물론 문제는 있습니다마는. 그런데 우리의 노동시장은 어떠냐. 예를 들어 보시면 10월 달 전년 동기 대비해서 취업자 증가가 27만 5천 명이 늘어났는데 그중에 65%가 50대와 60대 여성입니다. 전형적으로 우리의 그런 취업시장, 더군다나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5명 중에 1명이 지금 실업의 상태에 있거든요. 그것 우리가 왜 그러느냐는 거죠. 전 세계의 선진국들은 지금 다 거의 사상 최고의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고 경기가 좋아졌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바로 우리가 그겁니다. 선진국들은 그동안 구조개혁을 계속해서 저렇게 체력이 강화됐는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런 체력강화가 안 됐다는 거죠. 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느냐. 거의 2012년 이후로는 기업이 활동기업, 일정 규모의, 1인 기업 이런 것을 제외하고 예를 들면 100인 이상 기업이 늘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요. 그래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문제는 바로 아까 말씀드린 그런 재무적인 외환위기 또는 금융위기 그런 것이 아니고 다가올 위기는 바로 성장의 위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세대의 위기입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동원 교수님 말씀을 좀 더 오래 듣고 싶은데 또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아서요. 일단 다른 분 말씀 듣고 마무리 발언으로 또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병훈 교수님.

□ 이병훈
네. 김동원 교수님은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거나 직면할 위기를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좀 더 경제, 사회로 확대했을 때 이렇게 또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다중위기에 진입하고 있다. 그 얘기는 우리 지금 이미 논의됐던 경제력 집중이라든가 그리고 또 경제산업구조가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데 우리의 먹거리 아니면 우리의 성장동력이라는 것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이미 노동 관련해서도 이중구조 얘기가 됐지만 또 노동 소득분배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한쪽의 사람들이 부를 차지하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상태의 격차가 우리 사회를 계속 사회공동체를 해체하고 또 이것이 내수를 그만큼 다운시키면서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한다는 그런 얘기도 나오는 거고 또 고령화의 문제, 해서 켜켜이 첩첩이 문제들을 겪다 보니까 지난 98년 같이 나라가 곳간이 하루아침에 비어 가지고 오는 위기가 아니라 그냥 서서히 대한민국 호라는 것들이 가라앉는, 그러면서 우리가 올해 내년까지는 어떻게 산다고 하지만 이게 10년 후의 대한민국이 어디에 가 있을 것인가, 라는 점에서 다중위기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게끔 하고 있다는 상태가 되는 거고요. 그랬을 때 외환위기에 대한 것들을 단순히 경제적인 하나의 우리가 겪었던 그런 현상의 문제 진단뿐만 아니라 그것이 두루두루 사회에 미치는 그런 측면에서의 교훈을 찾으면서 그때와 달리 다중위기라는 것들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거나 그것을 어떻게 돌파해낼지, 그런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백운기 / 진행
네. 고맙습니다. 김용하 교수님.

□ 김용하
저도 이번 새로운 위기가 외부에서 올 것 같지는 않다. 내부에서 지금 커지고 있는 위기가 더 크다는 거죠.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듯이 저출산 고령화가 새로운, 우리 1997년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위기고 그다음에 양극화 위기 이 부분을, 저는 사실은 저성장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저성장이라는 것은 경제규모가 커지면 자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거고요.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저성장체제에 우리 사회가 적응해 가는 것, 저출산 고령화를 위기로 생각할 게 아니라 새로운 사회변화로 생각하고 우리가 적응해 나가야 되고 양극화도 현재 있는 이 양극화를 어떻게 하면 공동체 차원이라는 속에서 복원할 것이냐 라는 차원에서 고민하면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를 들면 양극화 해결한다고 대기업 때린다고 될 것이 아니라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열심히 하는 거죠. 그렇지만 세금 더 내고 그 세금 낸 것 가지고 분배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 양극화를 해소하고 그러면서 국민 전체를 통합시켜나가는, 자꾸 상대를 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통합하는 대통령이 오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통합으로 나가야 된다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박상인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조심해야 될 위기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 박상인
네. 지금 한국경제의 위기는 기본적으로 제조업의 위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경제에서 제조업 비중은 GDP의 한 30%입니다. 일본, 독일 같은 경우 GDP 19%가 안 되고 22% 정도 됩니다. 제조업 비중이 굉장히 큰데 이 제조업 대부분이 또 7대 중화학 공업이 차지합니다. 7~80%를 차지합니다. 우리 제조업 비중이 굉장히 큰데 제조업도 몇 개 산업에 몰빵이 돼 있는데 이 산업들이 경쟁력을 지금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한국 제조업이 고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유럽, 미국 말씀하셨는데 제조업이 고도화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물적 자본 대기업 위주에서 인적 자본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 위주로 가는 것이고요. 그리고 모방에서 혁신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이 우리가 일어나고 있지 못한 것, 이게 큰 문제고 그러면서 한계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있는 산업들 위주로 지금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이 다시 관치금융을 통해서 한계기업을 계속 키우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지금 계속 지속되고 있는 정부 주도 재벌중심 체제에서 오는 것인데요. 결국 이것이 기회와 유인과 금융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왔다는 것입니다. 혁신할 기회, 혁신할 유인들이 재벌대기업들이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나 내부거래를 통해서 기회가 없어지고 기술혁신이라든지 단가 후려치기를 통해서 유인이 없어지는 겁니다. 거기에 따라서 민간자본들이 원활한 금융이 뒷받침 못 되고 있는 문제가 있는데 이것을 풀어줘야 된다. 이것을 풀어주지 않고 그러면 우리가 저성장으로 균형점을 이뤄서 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안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레버리지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저성장이 어느 정도 지속되면 위기가 올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그런 생각이고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

□ 백운기 / 진행
네, 지금 말씀하신 내용들만 봐도 우리가 참 조심해야 될 것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병훈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다중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단순히 재무지표만 가지고 우리 위기상황을 진단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은데요. 한 30초씩만 드리겠습니다. 아까 우리 청취자들께서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될지, 참 짧은 시간이지만 한 말씀씩 어드바이스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동원 교수님 먼저 말씀해 주시죠.

□ 김동원
네. 저는 한마디로 햇볕이 있을 때 지붕을 고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2012년부터 계속 2% 성장을 하다가 올해 아마 간신히 3%를 좀 넘어서고 내년도 거의 조금 못할 정도로 갈, 그러니까 세계경제가 지금, IMF가 계속 경고하는 게 그거거든요. 이 호황이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다시 한 번 우리의 성장여력을 키워갈 시간은 바로 내년이 엄청나게 중요한 해입니다. 그래서 저는 햇볕이 있을 때 정말 우리의 지붕을 바꿔야 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김용하 교수님.

□ 김용하
IMF 이전의 3~40년의 성장은 성장 위주의 또 성공한 우리 역사였죠. 그리고 IMF 이후도 상처는 있지만 그래도 성공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IMF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작용을 또 저출산 고령화를 양극화를 어떻게 하면 다시 우리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지만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너무 불안만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과거의 저력으로 다시 국민이 통합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고맙습니다. 박상인 교수님.

□ 박상인
네. 저는 3대 개혁과제를 정부가 정말 추진해야 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개혁, 재벌개혁, 산업구조개혁을 포함한 경제개혁을 해야 되고요. 노동개혁을 동시에 추구해야 되고 동시에 사회안전망과 복지개혁을 추진을 해서 이 3대 구조를 바꿔줌으로써 우리가 재도약하고 성장과 복지, 분배가 선순환 할 수 있는 구조로 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3대 개혁 시급하죠. 이병훈 교수님,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 이병훈
네. 2008년인가 9년에 제가 일본에 연구학교에 가 있을 때 그 당시 한국은 ‘K’자를 쓰는 카멜론이고 일본은 자라파고스가 돼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 같다, 라는 그런 방송들이 참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은 우리가 칼라파고스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하셨던 그런 여러 가지 시대적인 도전이라든가 변화의 요구들을 우리 사회, 특히 이것을 정치권이나 정부나 또 하다 못해 우리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런 식의 다중위기 말씀을 드린 것처럼 그 위기를 변화로 또 혁신으로 이미 언급했던 여러 과제를 해내지 못하면 화석이 되는 대한민국의 여러 어려운 날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또 하게 되네요. 앞으로 잘 좀 변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백운기 / 진행
네, 말씀 감사합니다. KBS <공감토론> 오늘은 IMF 20년을 맞아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또 우리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대비해야 될지 짚어봤습니다.
토론 함께 해 주신 고려대학교 김동원 초빙교수님,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님,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님,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님, 네 분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패널
수고하셨습니다.

□ 백운기 / 진행
전화와 인터넷, 문자로 참여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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