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세 살, 내 이름은 아저씨

입력 2017.12.01 (08: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내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사는 곳은 어딘지, 오늘은 며칠인지, 가족이 누군지도 잊어버린 아내는 대소변도 가리질 못한다. 남편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 곁을 묵묵히 지킨다. 내 아내이기에, 이 사람이 가장 편안해 하는 자신이 돌봐야 한다.


내 이름은 아저씨

아내 임유숙(55) 씨는 남편 안희성(59) 씨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유숙 씨는 남편이란 무엇인지, 남편이 누구인지 잊어버렸다.


처음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은 5년 전, 당시 아내 나이 50세였다. 치매에 걸리기엔 젊은 나이였기에 믿고 싶지 않았지만 유숙 씨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소금과 설탕을 구별하지 못하더니 차츰 자신이 사는 곳이 어딘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어린아이가 돼버렸다. 장성한 아들을 둘이나 뒀지만, 아내는 그들이 자신이 낳은 아들이란 사실도 잊어버렸다.


아내는 세 살

아내의 지적 수준은 세 살 정도로 혼자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한 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 희성 씨는 아픈 아내를 위해 복잡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맑은 공기 마시며 한적하게 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젊어서는 내 짝 소중한 줄 모르고 바쁘게 지냈는데 나이 들어 아내가 아기가 돼버리니 치매에 좋은 건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울고 싶은 날이 웃는 날보다 훨씬 더 많지만, 눈물을 보이면 아내도 따라 울기 때문에 희성 씨는 맘 놓고 울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순 없다. '나 절대 버리지 마요'라고 한 아내의 말 때문이다.

"내 짝이니까"

남편 강주찬(80) 씨는 중증 치매인 아내 김수자(75) 씨를 돌보는 중이다. 주찬 씨는 학교 교사로 재직한 총명한 아내가 치매에 걸릴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 아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물건의 이름도 까먹은 지 오래다. 밤만 되면 집에 가자고 보채고, 몰래 나가려고 해 문도 안으로 걸어놓아야 한다. 치매 센터 주간 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병든 아내를 돌본다는 것이 주찬 씨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허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주찬 씨는 아내를 요양시설에 맡길까도 생각했다. 몸도 힘들고,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자식들에게 이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아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었다.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상적인 대화도 나눌 수 없지만, 아내는 주찬 씨의 영원한 반려자다. 주찬 씨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이 함께 생을 마치는 것, 그것뿐이다.


2017년 국내 치매 환자 72만 명.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엔 마땅한 치료 약이 없어 환자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의 고통 또한 크다. 언제 끝날지,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누가 어디서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큐공감(2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이야기를 전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아내는 세 살, 내 이름은 아저씨
    • 입력 2017-12-01 08:02:48
    사회
아내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사는 곳은 어딘지, 오늘은 며칠인지, 가족이 누군지도 잊어버린 아내는 대소변도 가리질 못한다. 남편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 곁을 묵묵히 지킨다. 내 아내이기에, 이 사람이 가장 편안해 하는 자신이 돌봐야 한다.


내 이름은 아저씨

아내 임유숙(55) 씨는 남편 안희성(59) 씨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유숙 씨는 남편이란 무엇인지, 남편이 누구인지 잊어버렸다.


처음 치매 판정을 받은 것은 5년 전, 당시 아내 나이 50세였다. 치매에 걸리기엔 젊은 나이였기에 믿고 싶지 않았지만 유숙 씨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소금과 설탕을 구별하지 못하더니 차츰 자신이 사는 곳이 어딘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어린아이가 돼버렸다. 장성한 아들을 둘이나 뒀지만, 아내는 그들이 자신이 낳은 아들이란 사실도 잊어버렸다.


아내는 세 살

아내의 지적 수준은 세 살 정도로 혼자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한 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다. 희성 씨는 아픈 아내를 위해 복잡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맑은 공기 마시며 한적하게 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젊어서는 내 짝 소중한 줄 모르고 바쁘게 지냈는데 나이 들어 아내가 아기가 돼버리니 치매에 좋은 건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울고 싶은 날이 웃는 날보다 훨씬 더 많지만, 눈물을 보이면 아내도 따라 울기 때문에 희성 씨는 맘 놓고 울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순 없다. '나 절대 버리지 마요'라고 한 아내의 말 때문이다.

"내 짝이니까"

남편 강주찬(80) 씨는 중증 치매인 아내 김수자(75) 씨를 돌보는 중이다. 주찬 씨는 학교 교사로 재직한 총명한 아내가 치매에 걸릴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 아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물건의 이름도 까먹은 지 오래다. 밤만 되면 집에 가자고 보채고, 몰래 나가려고 해 문도 안으로 걸어놓아야 한다. 치매 센터 주간 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병든 아내를 돌본다는 것이 주찬 씨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허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주찬 씨는 아내를 요양시설에 맡길까도 생각했다. 몸도 힘들고,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자식들에게 이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아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었다.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상적인 대화도 나눌 수 없지만, 아내는 주찬 씨의 영원한 반려자다. 주찬 씨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이 함께 생을 마치는 것, 그것뿐이다.


2017년 국내 치매 환자 72만 명.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엔 마땅한 치료 약이 없어 환자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의 고통 또한 크다. 언제 끝날지,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누가 어디서 돌봐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큐공감(2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이야기를 전한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