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풍미한 스타 나애심 씨 별세…가수 김혜림 모친상

입력 2017.12.21 (15:47) 수정 2017.12.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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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를 풍미한 가수 겸 배우 나애심(본명 전봉선) 씨가 지난 20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87세.

21일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따르면 나씨는 전날 오후 5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씨는 당대 '노래하는 은막 스타'이자 1990년대 인기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로 잘 알려져 있다.

1930년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인 고인은 이국적인 외모와 허스키한 음색으로 주목받으며 1950~60년대 가요계와 영화계를 아울러 획을 그은 스타이자 당시 문인 등 예술인들의 집합지였던 '명동 시대'의 주역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해 무대 활동을 시작했으며 막냇동생 전봉옥 등과 함께 '아리랑 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쇼에도 출연했다.

가수로 정식 데뷔한 것은 1953년 친오빠 전오승(본명 전봉수, 2016년 별세)이 작곡한 '밤의 탱고'를 발표하면서다. 당시 처음 사용한 예명이 '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란 뜻의 나애심(羅愛心)으로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이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인은 '정든 님', '언제까지나', '세월이 가면',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마세요', '맘보는 난 싫어' 등 300여 곡을 발표했다. 그중 '세월이 가면'은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명동의 한 술집에서 쓴 즉흥시에 작가 이진섭이 멜로디를 붙인 곡으로 나애심이 취입한 뒤 조용필, 박인희에 의해 다시 불렸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한 고인은 다큐멘터리 영화 '여군'(1954)으로 출발해 극영화 '구원의 애정'(1955)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구원의 애정'으로 인기를 모은 그는 '백치 아다다'(1956), '종말 없는 비극'(1958),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쌀'(1964), '감자'(1968),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등 1980년대 초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구원의 애정'의 주제가 '물새 우는 강 언덕'과 '백치 아다다'의 동명 주제가가 크게 히트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는 "나애심 씨는 1950년대 정열적인 눈,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해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싱잉 스타' 시대를 열었다"며 "무대와 스크린을 누비는 은막 스타로서 '한국의 안나 카시피'로도 불렸다. 두 분야를 동시에 장악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 들어 활동을 줄인 고인은 1980년대 초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가정생활에 전념했다.

고인은 연예인 집안으로도 잘 알려졌다. 작곡가로 콤비를 이룬 오빠 전오승과 가수인 여동생 전봉옥 외에도 전오승의 딸인 조카 전영선은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출신이며, 딸 김혜림은 1989년 'DDD'로 데뷔해 1990년대 인기를 끈 가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5호실이며 발인은 22일 오전 9시, 장지는 성남영생원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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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1 15:47:19
    • 수정2017-12-21 16:19:43
    연합뉴스
1950~60년대를 풍미한 가수 겸 배우 나애심(본명 전봉선) 씨가 지난 20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87세.

21일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따르면 나씨는 전날 오후 5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씨는 당대 '노래하는 은막 스타'이자 1990년대 인기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로 잘 알려져 있다.

1930년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인 고인은 이국적인 외모와 허스키한 음색으로 주목받으며 1950~60년대 가요계와 영화계를 아울러 획을 그은 스타이자 당시 문인 등 예술인들의 집합지였던 '명동 시대'의 주역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해 무대 활동을 시작했으며 막냇동생 전봉옥 등과 함께 '아리랑 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쇼에도 출연했다.

가수로 정식 데뷔한 것은 1953년 친오빠 전오승(본명 전봉수, 2016년 별세)이 작곡한 '밤의 탱고'를 발표하면서다. 당시 처음 사용한 예명이 '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란 뜻의 나애심(羅愛心)으로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이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인은 '정든 님', '언제까지나', '세월이 가면',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마세요', '맘보는 난 싫어' 등 300여 곡을 발표했다. 그중 '세월이 가면'은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명동의 한 술집에서 쓴 즉흥시에 작가 이진섭이 멜로디를 붙인 곡으로 나애심이 취입한 뒤 조용필, 박인희에 의해 다시 불렸다.

영화배우로도 활동한 고인은 다큐멘터리 영화 '여군'(1954)으로 출발해 극영화 '구원의 애정'(1955)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구원의 애정'으로 인기를 모은 그는 '백치 아다다'(1956), '종말 없는 비극'(1958),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쌀'(1964), '감자'(1968),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등 1980년대 초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구원의 애정'의 주제가 '물새 우는 강 언덕'과 '백치 아다다'의 동명 주제가가 크게 히트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는 "나애심 씨는 1950년대 정열적인 눈,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해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싱잉 스타' 시대를 열었다"며 "무대와 스크린을 누비는 은막 스타로서 '한국의 안나 카시피'로도 불렸다. 두 분야를 동시에 장악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 들어 활동을 줄인 고인은 1980년대 초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가정생활에 전념했다.

고인은 연예인 집안으로도 잘 알려졌다. 작곡가로 콤비를 이룬 오빠 전오승과 가수인 여동생 전봉옥 외에도 전오승의 딸인 조카 전영선은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출신이며, 딸 김혜림은 1989년 'DDD'로 데뷔해 1990년대 인기를 끈 가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5호실이며 발인은 22일 오전 9시, 장지는 성남영생원이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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