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아프리카에 빚졌다”지만…학살 배상엔 고개 돌려

입력 2018.01.25 (23:58) 수정 2018.01.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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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4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유럽이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른 점에 대해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특별연설에서 "우리는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 많은 빚을 졌다"면서 "아프리카를 돕고 경제 발전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거지소굴'이라고 빗댄 점을 다분히 겨냥하면서, 아프리카의 안정을 통해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독일은 당시 20세기 초 독일 식민지였던 남서아프리카(현 나미비아)의 헤레로족과 나마족을 집단학살한 데 대한 배상 문제와 관련해선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독일은 1904년 식민지배에 대한 반란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헤레로족 2만4천 명∼10만 명, 나마족 1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UN은 1985년 휘태커 보고서를 통해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25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후손들은 미국 법원을 통해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에 냉담하다. 외국 법정에서의 송사에 협조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사관은 독일 외무부에 소송 관련 서류를 보냈으나, 외무부 측은 6일 후 이를 돌려보냈다.

이 같은 절차가 독일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달았다.

독일 정부는 미국에서 변호사를 통해 뉴욕 남부지방 법원에 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거부당했다.

독일 정부 측은 도이체벨레에 배상 청구 소송이 국가 면책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뉴욕 법원에도 전달됐다.

독일 측은 직접적인 배상을 거부하는 이유로 1990년 독립한 나미비아에 상당한 개발원조를 해온 점을 들고 있다.

독일-나미비아 문제 전문가인 헤닝 멜버는 "많은 나미비아인은 독일 정부에 경멸적인 시선을 보낸다"면서 "독일 정부가 써온 지연 전술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 측은 2년 이상 배상 문제를 놓고 외교적인 접촉을 가져왔지만,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독일 내부에서도 배상 문제를 해결하고 공식사과하라는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녹색당의 안톤 호프라이터 원내대표는 공영방송 ZDF에 "독일 정부가 아직도 집단학살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2015년부터 나미비아와의 협상을 총괄하는 루프레흐트 폴렌츠 독일 특사는 도이체벨레에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합의에 이르렀다"면서 "이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헤레로족과 기금을 마련해 나마족 거주지역에서 직업훈련과 전기 공급, 주거 개선 등의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독일이 대연정 내각이 들어서는 등 안정을 찾은 뒤에야 양국 간 협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독일 정부는 협상이 마무리되면 공동 선언을 통한 공식 사과를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독일이 아프리카 식민지 집단학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유대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온도차가 난다.

독일 정부와 의회는 최근 이슬람 배경의 난민 급증과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등으로 반(反)유대주의 정서가 확산되자, 하원에 '반유대주의 위원장' 직을 신설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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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5 23:58:17
    • 수정2018-01-25 23:59:50
    국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4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유럽이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른 점에 대해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특별연설에서 "우리는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 많은 빚을 졌다"면서 "아프리카를 돕고 경제 발전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거지소굴'이라고 빗댄 점을 다분히 겨냥하면서, 아프리카의 안정을 통해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독일은 당시 20세기 초 독일 식민지였던 남서아프리카(현 나미비아)의 헤레로족과 나마족을 집단학살한 데 대한 배상 문제와 관련해선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독일은 1904년 식민지배에 대한 반란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헤레로족 2만4천 명∼10만 명, 나마족 1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UN은 1985년 휘태커 보고서를 통해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25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후손들은 미국 법원을 통해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에 냉담하다. 외국 법정에서의 송사에 협조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사관은 독일 외무부에 소송 관련 서류를 보냈으나, 외무부 측은 6일 후 이를 돌려보냈다.

이 같은 절차가 독일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달았다.

독일 정부는 미국에서 변호사를 통해 뉴욕 남부지방 법원에 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거부당했다.

독일 정부 측은 도이체벨레에 배상 청구 소송이 국가 면책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뉴욕 법원에도 전달됐다.

독일 측은 직접적인 배상을 거부하는 이유로 1990년 독립한 나미비아에 상당한 개발원조를 해온 점을 들고 있다.

독일-나미비아 문제 전문가인 헤닝 멜버는 "많은 나미비아인은 독일 정부에 경멸적인 시선을 보낸다"면서 "독일 정부가 써온 지연 전술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 측은 2년 이상 배상 문제를 놓고 외교적인 접촉을 가져왔지만,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독일 내부에서도 배상 문제를 해결하고 공식사과하라는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녹색당의 안톤 호프라이터 원내대표는 공영방송 ZDF에 "독일 정부가 아직도 집단학살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2015년부터 나미비아와의 협상을 총괄하는 루프레흐트 폴렌츠 독일 특사는 도이체벨레에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합의에 이르렀다"면서 "이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헤레로족과 기금을 마련해 나마족 거주지역에서 직업훈련과 전기 공급, 주거 개선 등의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독일이 대연정 내각이 들어서는 등 안정을 찾은 뒤에야 양국 간 협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독일 정부는 협상이 마무리되면 공동 선언을 통한 공식 사과를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독일이 아프리카 식민지 집단학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유대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온도차가 난다.

독일 정부와 의회는 최근 이슬람 배경의 난민 급증과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등으로 반(反)유대주의 정서가 확산되자, 하원에 '반유대주의 위원장' 직을 신설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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