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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미래로] 자유를 위해 든 목발…북한인권 운동가 지성호
입력 2018.02.24 (08:10) 수정 2018.02.24 (08:29)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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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얼마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목발을 흔들며 큰 주목을 받았던 인물 기억하시나요?

네, 탈북민 지성호 씨 말씀이죠?

북한에서 얻은 장애를 딛고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더군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극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소하기에 더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과 통일 준비를 위해 노력하는 지성호 씨의 꿈을 정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한 건물.

십 여 명의 남북한 출신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이 박수로 반겨 맞아주자 조금 쑥스러운 듯 자리를 함께하는 지성호 씨.

[지성호/북한인권운동가 : "저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도 탈북 청년들도 있고, 남한 청년들도 있고..."]

그는 지난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소개해 화제가 된 탈북 청년인데요.

[도널드 트럼프/美 대통령 : "지성호 씨의 사연은 자유롭게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의 갈망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목발을 높이 치켜들었던 지성호 씨.

그는 목발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과 북한의 인권 상황을 보여주었는데요.

그는 어떤 사연으로 북한인권운동을 하게 되었고 또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을까요?

2006년 한국에 온 지성호 씨.

그는 2010년부터 북한인권운동 청년 단체를 조직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건우/북한인권 단체 ’나우‘ 홍보팀장 : "저희 단체는 2010년도에 남과 북, 해외교포 청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고요. 일반 사람들이 소화하기에도 벅찬 일정과 스케줄을 (지 대표가) 소화하는 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존경심이 많이 가는 그런 분입니다."]

길거리 캠페인을 비롯해 북한 장마당 재연 행사와 토크콘서트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과 인권 상황을 알리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270명의 탈북민을 구출하고, 국제 무대에서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지성호/북한인권운동가 : "여러분들이 북한을 위해서 함께 해 줄 때, 북한 주민들에 자유가 깃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동참해 주세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북한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을까요?

2009년 재미교포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이 두만강을 건너 입북한 뒤 억류됐다 46일 만에 풀려난 일이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편지를 품고 성탄절에 북으로 갔던 그가 바로 성호 씨의 친구였던 겁니다.

[지성호/북한인권 단체 ’나우‘ 대표 : "충격이 굉장히 컸죠. 그리고 그 친구는 저의 삶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저와 함께 생활도 했었고. 또한 저의 고향인 회령시를 통해가지고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국경 경비대에게 체포되어가지고 지금 고문을 당하는데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굉장히 마음이 슬펐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북한인권운동 단체를 만들었고, 국제 사회에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 부르는 1996년, 십대의 나이에 사고로 장애를 얻고, 탈북하기까지의 과정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성호/북한인권 단체 ’나우‘ 대표 : "(식량을 구하려면) 회령역까지 다섯 정거장 가는 도중에 밤에 매달려서 석탄을 훔쳐야 되는 거죠. 당시에는 먹지도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석탄을 훔치다가 정신을...그러니까 회령역에 거의 도착할 때 정신을 잃었는데 결국은 열차에서 떨어졌고 화물열차 바퀴가 제 다리와 손을 밟고 지나가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장애를 갖게 되었던 것이죠."]

장애인으로서 북한에서 살아가기는 더욱 힘들었고, 결국 탈북을 결심 했다고 합니다.

[지성호/북한인권 단체 ’나우‘ 대표 : "뭐 지급해 주는 것도 전혀 없고 그나마 중국에 가서 식량 구걸해 오면 그것이 이제 나라 망신시킨다고 고문하고... 그래서 힘들지만 탈북을 결심하였죠. 그때..."]

지성호 씨는 지난 해 ‘우리는 행복합니다’라는 영어 창작극을 만들어 미국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해매는 북한 꽃제비들의 실상을 보여주며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요.

이렇게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점을 인정받아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미국의 ‘커리지 어워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갑자기 유명해진 요즘,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는 정치인은 아니고, 북한 인권 활동가잖아요. 여러 가지 이슈가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오로지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합니다."]

예상 밖의 관심을 받게 된 지성호 씨.

그는 이를 계기로, 북한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는데요.

북한 인권 개선 뿐 아니라 통일 준비에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지성호 씨가 바쁜 일정 중에도 각별히 관심을 갖고 챙기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통일 후를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요.

[이영석/북한인권 단체 ’나우‘ 총괄실장 : "남북한 (출신의) 대학생들이 함께 사회 통합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프로그램이고, 대표적으로 경청하는 방법이라든지 또는 소통하는 방법들 위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토론과 강연, 여러 가지 캠페인 사업을 남북한 출신 대학생들이 함께 수행하며 서로를 알아갑니다.

[김필주/탈북 대학생 : "저 같은 경우는 한국에 와서 뒤늦게 진로도 찾고. 이 프로그램이 그러한 저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또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염지효/대학생 : "‘아, 이 사람들이 그렇게 다르지 않구나. 나랑 비슷하구나, 같은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 정도를 알고 그냥 사람으로서 친해지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북녘 고향에 돌아가는 날, 아버지 묘에 술 한 잔 올리는 게 꿈이라는 평범한 장남, 지성호 씨.

아버지의 유품이기도 한 목발은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힘입니다.
  • [통일로 미래로] 자유를 위해 든 목발…북한인권 운동가 지성호
    • 입력 2018-02-24 08:23:03
    • 수정2018-02-24 08:29:02
    남북의 창
[앵커]

얼마 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목발을 흔들며 큰 주목을 받았던 인물 기억하시나요?

네, 탈북민 지성호 씨 말씀이죠?

북한에서 얻은 장애를 딛고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더군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극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소하기에 더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과 통일 준비를 위해 노력하는 지성호 씨의 꿈을 정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한 건물.

십 여 명의 남북한 출신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이 박수로 반겨 맞아주자 조금 쑥스러운 듯 자리를 함께하는 지성호 씨.

[지성호/북한인권운동가 : "저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도 탈북 청년들도 있고, 남한 청년들도 있고..."]

그는 지난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소개해 화제가 된 탈북 청년인데요.

[도널드 트럼프/美 대통령 : "지성호 씨의 사연은 자유롭게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의 갈망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목발을 높이 치켜들었던 지성호 씨.

그는 목발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과 북한의 인권 상황을 보여주었는데요.

그는 어떤 사연으로 북한인권운동을 하게 되었고 또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을까요?

2006년 한국에 온 지성호 씨.

그는 2010년부터 북한인권운동 청년 단체를 조직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건우/북한인권 단체 ’나우‘ 홍보팀장 : "저희 단체는 2010년도에 남과 북, 해외교포 청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고요. 일반 사람들이 소화하기에도 벅찬 일정과 스케줄을 (지 대표가) 소화하는 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존경심이 많이 가는 그런 분입니다."]

길거리 캠페인을 비롯해 북한 장마당 재연 행사와 토크콘서트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과 인권 상황을 알리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270명의 탈북민을 구출하고, 국제 무대에서 북한의 실상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지성호/북한인권운동가 : "여러분들이 북한을 위해서 함께 해 줄 때, 북한 주민들에 자유가 깃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동참해 주세요."]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북한인권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을까요?

2009년 재미교포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이 두만강을 건너 입북한 뒤 억류됐다 46일 만에 풀려난 일이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편지를 품고 성탄절에 북으로 갔던 그가 바로 성호 씨의 친구였던 겁니다.

[지성호/북한인권 단체 ’나우‘ 대표 : "충격이 굉장히 컸죠. 그리고 그 친구는 저의 삶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저와 함께 생활도 했었고. 또한 저의 고향인 회령시를 통해가지고 들어가게 되었거든요. ‘국경 경비대에게 체포되어가지고 지금 고문을 당하는데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굉장히 마음이 슬펐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북한인권운동 단체를 만들었고, 국제 사회에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 부르는 1996년, 십대의 나이에 사고로 장애를 얻고, 탈북하기까지의 과정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성호/북한인권 단체 ’나우‘ 대표 : "(식량을 구하려면) 회령역까지 다섯 정거장 가는 도중에 밤에 매달려서 석탄을 훔쳐야 되는 거죠. 당시에는 먹지도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석탄을 훔치다가 정신을...그러니까 회령역에 거의 도착할 때 정신을 잃었는데 결국은 열차에서 떨어졌고 화물열차 바퀴가 제 다리와 손을 밟고 지나가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장애를 갖게 되었던 것이죠."]

장애인으로서 북한에서 살아가기는 더욱 힘들었고, 결국 탈북을 결심 했다고 합니다.

[지성호/북한인권 단체 ’나우‘ 대표 : "뭐 지급해 주는 것도 전혀 없고 그나마 중국에 가서 식량 구걸해 오면 그것이 이제 나라 망신시킨다고 고문하고... 그래서 힘들지만 탈북을 결심하였죠. 그때..."]

지성호 씨는 지난 해 ‘우리는 행복합니다’라는 영어 창작극을 만들어 미국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해매는 북한 꽃제비들의 실상을 보여주며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요.

이렇게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점을 인정받아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미국의 ‘커리지 어워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갑자기 유명해진 요즘,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는 정치인은 아니고, 북한 인권 활동가잖아요. 여러 가지 이슈가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오로지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합니다."]

예상 밖의 관심을 받게 된 지성호 씨.

그는 이를 계기로, 북한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는데요.

북한 인권 개선 뿐 아니라 통일 준비에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지성호 씨가 바쁜 일정 중에도 각별히 관심을 갖고 챙기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통일 후를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요.

[이영석/북한인권 단체 ’나우‘ 총괄실장 : "남북한 (출신의) 대학생들이 함께 사회 통합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프로그램이고, 대표적으로 경청하는 방법이라든지 또는 소통하는 방법들 위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토론과 강연, 여러 가지 캠페인 사업을 남북한 출신 대학생들이 함께 수행하며 서로를 알아갑니다.

[김필주/탈북 대학생 : "저 같은 경우는 한국에 와서 뒤늦게 진로도 찾고. 이 프로그램이 그러한 저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또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염지효/대학생 : "‘아, 이 사람들이 그렇게 다르지 않구나. 나랑 비슷하구나, 같은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 정도를 알고 그냥 사람으로서 친해지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북녘 고향에 돌아가는 날, 아버지 묘에 술 한 잔 올리는 게 꿈이라는 평범한 장남, 지성호 씨.

아버지의 유품이기도 한 목발은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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