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임정에 울려퍼진 “대한독립 만세” 함성
입력 2018.03.01 (21:05)
수정 2018.03.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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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99년전 3.1 운동을 계기로 중국에는 우리 임시정부가 세워졌는데요.
하지만, 임시 정부는 중국에서도, 일제의 압박을 피해 거처를 옮겨 다녀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1일), 임시정부가 두 번째로 터를 잡았던 항저우에서 뜻깊은 3.1절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99주년을 맞은 3.1절 아침, 항저우 임시정부에 만세가 울려퍼집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가 고난의 유랑생활을 시작하며 상하이에서 처음 옮겨간 곳, 이 뜻깊은 장소에서 김구 선생의 증손녀 등 독립투사의 후손과 교민들이 모여 3.1절의 의미를 기렸습니다.
특히 이 항저우 임정청사 건물은 우리 임시정부가 3년을 머물다 떠난 뒤 일제가 군 위안소로 사용한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쑤즈량/교수/위안부 역사박물관장 : "여기가 전부 위안소였습니다. 60명이 넘는 위안부가 있었어요.(60명이 넘었나요?) 네. 한국에서 온 위안부도 있었지요."]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는 수 많은 증거들이 청사 부근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박선원/주상하이총영사 :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가 끝났다 안끝났다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양심과 가치와 그 기본 속성에 의해 판단될 문제입니다."]
3.1 만세운동의 결과물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범은 내년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기념사업 준비에 착수한 정부는 중국내 독립운동 자료 발굴과 유적 복원 작업에 힘을 쏟기로 했습니다.
항저우에서 KBS 김도엽입니다.
99년전 3.1 운동을 계기로 중국에는 우리 임시정부가 세워졌는데요.
하지만, 임시 정부는 중국에서도, 일제의 압박을 피해 거처를 옮겨 다녀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1일), 임시정부가 두 번째로 터를 잡았던 항저우에서 뜻깊은 3.1절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99주년을 맞은 3.1절 아침, 항저우 임시정부에 만세가 울려퍼집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가 고난의 유랑생활을 시작하며 상하이에서 처음 옮겨간 곳, 이 뜻깊은 장소에서 김구 선생의 증손녀 등 독립투사의 후손과 교민들이 모여 3.1절의 의미를 기렸습니다.
특히 이 항저우 임정청사 건물은 우리 임시정부가 3년을 머물다 떠난 뒤 일제가 군 위안소로 사용한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쑤즈량/교수/위안부 역사박물관장 : "여기가 전부 위안소였습니다. 60명이 넘는 위안부가 있었어요.(60명이 넘었나요?) 네. 한국에서 온 위안부도 있었지요."]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는 수 많은 증거들이 청사 부근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박선원/주상하이총영사 :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가 끝났다 안끝났다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양심과 가치와 그 기본 속성에 의해 판단될 문제입니다."]
3.1 만세운동의 결과물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범은 내년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기념사업 준비에 착수한 정부는 중국내 독립운동 자료 발굴과 유적 복원 작업에 힘을 쏟기로 했습니다.
항저우에서 KBS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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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저우 임정에 울려퍼진 “대한독립 만세”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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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03-01 22:15:45
[앵커]
99년전 3.1 운동을 계기로 중국에는 우리 임시정부가 세워졌는데요.
하지만, 임시 정부는 중국에서도, 일제의 압박을 피해 거처를 옮겨 다녀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1일), 임시정부가 두 번째로 터를 잡았던 항저우에서 뜻깊은 3.1절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99주년을 맞은 3.1절 아침, 항저우 임시정부에 만세가 울려퍼집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가 고난의 유랑생활을 시작하며 상하이에서 처음 옮겨간 곳, 이 뜻깊은 장소에서 김구 선생의 증손녀 등 독립투사의 후손과 교민들이 모여 3.1절의 의미를 기렸습니다.
특히 이 항저우 임정청사 건물은 우리 임시정부가 3년을 머물다 떠난 뒤 일제가 군 위안소로 사용한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쑤즈량/교수/위안부 역사박물관장 : "여기가 전부 위안소였습니다. 60명이 넘는 위안부가 있었어요.(60명이 넘었나요?) 네. 한국에서 온 위안부도 있었지요."]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는 수 많은 증거들이 청사 부근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박선원/주상하이총영사 :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가 끝났다 안끝났다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양심과 가치와 그 기본 속성에 의해 판단될 문제입니다."]
3.1 만세운동의 결과물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범은 내년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기념사업 준비에 착수한 정부는 중국내 독립운동 자료 발굴과 유적 복원 작업에 힘을 쏟기로 했습니다.
항저우에서 KBS 김도엽입니다.
99년전 3.1 운동을 계기로 중국에는 우리 임시정부가 세워졌는데요.
하지만, 임시 정부는 중국에서도, 일제의 압박을 피해 거처를 옮겨 다녀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1일), 임시정부가 두 번째로 터를 잡았던 항저우에서 뜻깊은 3.1절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99주년을 맞은 3.1절 아침, 항저우 임시정부에 만세가 울려퍼집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가 고난의 유랑생활을 시작하며 상하이에서 처음 옮겨간 곳, 이 뜻깊은 장소에서 김구 선생의 증손녀 등 독립투사의 후손과 교민들이 모여 3.1절의 의미를 기렸습니다.
특히 이 항저우 임정청사 건물은 우리 임시정부가 3년을 머물다 떠난 뒤 일제가 군 위안소로 사용한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쑤즈량/교수/위안부 역사박물관장 : "여기가 전부 위안소였습니다. 60명이 넘는 위안부가 있었어요.(60명이 넘었나요?) 네. 한국에서 온 위안부도 있었지요."]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는 수 많은 증거들이 청사 부근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박선원/주상하이총영사 : "위안부 문제는 가해자가 끝났다 안끝났다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양심과 가치와 그 기본 속성에 의해 판단될 문제입니다."]
3.1 만세운동의 결과물로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범은 내년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기념사업 준비에 착수한 정부는 중국내 독립운동 자료 발굴과 유적 복원 작업에 힘을 쏟기로 했습니다.
항저우에서 KBS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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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엽 기자 yop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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